100820 용산국립중앙박물관

나는 스트레스가 쌓여 아..이러다 돌아버리겠구나 싶을 때는 자정작용에 들어간다. 때로 그건 과식이기도 하고, 어쩔때는 독서나 음악이기도 하고 혹은 산책일 때도 있다. 뭔가 일대일대응의 매커니즘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하게 어떤 경우에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고 그때그때 이거다-싶은 대로 움직인다. 평소에 나름 자제하고 정리된 삶을 사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으므로 그 정도의 방종이나 일탈은 정신건강에 좋다고 믿는다.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2010년 8월에도 혼자 중앙박물관을 돌아다닌 사진을 발견했다. 한참 보고 있자니 이 날이 생각난다. 왜 갔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왜 난 이 날 이 곳에 갔을까?

 

 

 

계단을 올라가면 탁 트인 전경이 보인다. 그래서 이 계단을 올라갈 때는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등산객의 심정으로 오르게 된다. 그림이 그려진 저 계단은 늘 올라가지 않다가 혼자 온 김에 저기도 가보자 싶어 올라갔었으나 보이는 뷰가 철거 후의 애매하게 남은, 그러니까 도시재계획에 실패한 용산을 보여주는 터라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심정은 그랬다. 아니 대체 이렇게 방치할거면 왜 그 난리를 쳐가면서 한 거야?

 

 

박물관 안은 시원하고 쾌적했고, 어린 휴먼들도 가방메고 아장아장

 

 

달밤의 매화 라는 제목의 그림. 저 때를 벗겨내고 나면 어떤 모습의 그림이었을까.

 

 

이 날은 서예실에 들어가서 실컷 구경을 했었는데 족자고 액자고 간에 글자 많이 써있는 작품들을 뛰어넘어 이 다섯글자 몽유도원도 글씨는 참 조형적으로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글자 한 자 한 자 어쩌면 저렇게 뜻과 일치하는 모양을 하고 있을까. 기가 막히는구나.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장자끄상뻬의 그림같았던 모습. 이 날은 좀 작정하고 사진을 찍어서 여기서 찍고 반대편으로도 가서 또 한 컷 찍었다. 꽤 자주 가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눈으로만 보고 딱히 사진을 찍은 적은 없어서 이 날은 꼭 사진을 찍겠다고 출발 전부터 마음을 먹었었다.

 

 

어디를 찍어도 사진은 그림이 된다. 8월이라 녹색이 푸르다.

 

 

슬렁슬렁 조용하고 한적한 시간대에 그곳을 느긋하게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에 다다르는 곳은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곳이다. 가끔은 78호가 나와있을 때도 있고 가끔은 83호가 나와있을때도 있는데 누가 나와있어도 괜찮다. 78호보다는 83호를 조금 더 좋아하긴 하는데 등판은 78호가 자주 하는것 같다.

 

 

 

이 날은 83호님이 나오셨다. 여기에 오면 아무도 없기를 바란다. 그럼 의자에 앉아 내내 바라보다가 한 바퀴 돌면서 구석구석을 바라보고 또 감탄하다가 다시 의자에 앉아 내내 바라본다. 작은 방에는 한 고대인의 모습을 한 무엇과 나만 앉아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나면 속에 쌓인 무언가가 내려가는 것도 같고, 날아가는 것도 같고, 흩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광배를 찍은거 같은데 누구의 광배인지는 모르겠다.

 

 

벽은 적당히 가리고 적당히 보여주며 액자의 기능을 한다.

 

 

우주선이라도 내려올 것 같은 천장.

 

 

밖을 나와 동부이촌동 C4로 갔다. 케익이나 타르트를 사 가서 먹어야지. 아... 이 사진을 보니 이 날 엄청 더웠던 기억이 난다. 정말 더워서 C4로 들어간 순간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을 기대했었지. 그런데 별로 시원하지도 않았고, 조용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

 

 

사진찍어도 되나요? 하고 물어보고 마음 놓고 찍는 중. 슈는 그냥 찍은 거고 사진 않았다.

 

 

좋아하는 크레이프. 한 겹 한 겹 벗겨서 돌돌 말아 먹어도 맛있고, 포크로 잘라 먹어도 맛있고. 크레이프 좋아요~

 

 

바나나 타르트, 평소에 바나나는 과일로 안 치고 곡물로 분류할 정도로 안좋아하는데 땡기는 게 딱히 없었나보다. 이걸 사는 모험을 한 걸 보면.

 

 

블루베리 크레이프를 샀었군. 그렇다면 아마 그냥 밀 크레이프를 살 걸 하고 후회했겠어. ㅋ

 

타르트는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날 이후 C4를 굳이 다시 찾아간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나보다.

 

사진을 보니 새삼스럽게 느끼는데 여름은 정말 좋은 계절이다. 옷도 가볍고, 몸도 가볍고, 훌쩍 나가서 돌아다니기 정말 좋아. 이렇게 겨울 끝무렵이 되면 모든 것이 무겁다. 더께가 내려앉은 기분이라 어서 날이 따뜻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가을 겨울은 예쁜 옷이 많아서 좋아하는데 그것도 한 두달이지. 여름은 반바지를 실컷 입을 수 있어서 좋아. 반바지에 슬립온 슈즈 하나 신으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그래도 올해는 작년 겨울에 비해서 눈도 적게 오고 날도 덜 추워서 좋았지. 마음이 벌써 겨울이 다 지난것처럼 봄을 기다린다. 경험상 3월까지는 겨울이나 다름없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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