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시작은 간단하다. 어느 날 어떤 남자가 차를 몰고 가던 중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다. 보통 눈이 먼다는 것이 암흑속에 갇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반해 이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오히려 하얀 광채-온통 하얗게 멀어버린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치자. 문제는 이것이 전염된다는 것이다. 이 남자를 집에 데려다 준 남자의 눈이 멀고, 경찰관의 눈이 멀고, 안과의사가 눈이 멀고,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이 눈이 멀면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이 실명은 전염된다.

그럼 세상은 어떻게 될까? 모두 눈이 멀어버렸다면. 여기에 한가지 가정을 덧붙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전염병이 단 한 사람만을 빗겨갔다면? 그리고 그게 여자라면.

이런 류의 설정은 정말 중요한 것이 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7seeds라든가, 드래곤헤드 같은 만화도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 내던져진 인간들, 그로 인한 아노미를 상상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당연하게 여겨왔던 필수요소를 드러나게 하는 것처럼.

그리하여, 새겨놓아야 할 교훈은 집에 양초 몇 개쯤은 놔두는 것이 좋고, 집을 오래 비우게 되더라도 문단속은 잘 하고 열쇠는 꼭 챙길 것이며, 위기상황에서의 짐을 싸게 된다면 가위나 칼 같은 도구(혹은 무기)와 라이터가 유용할 수 있다는 것. (진짜?)


이 책의 핵심을 이 책에서 한문장으로 건져보자면 아마 이 문장일 것이다.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조금씩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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