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에 해당되는 글 6건

  1. 하이델베르크 시티투어 2016.01.30
  2. 151231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2 2016.01.28
  3. 151230 인천공항 출발 2016.01.28
  4. 궁극의 파우치 2016.01.28
  5. prologue. 비행기 발권 2016.01.25
  6. 유럽에 갔다 왔다. 2016.01.24

하이델베르크 시티투어

비가 살짝 온 다음이었는지 땅은 젖어 있었는데 날씨는 따뜻했다. 코트를 벗고 다닐 정도로.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다행. 여행자에겐 날씨와 교통이 받쳐주는 게 최고다.

 

 

 

공항 밖으로 나와 루프트 한자 셔틀 타는 곳으로.

 

 

무슨 레스토랑 앞에서 타는 거라 해서 거기서 기다리는데 셔틀버스라고 해도 엄청 크지 않아요. 작아요. 루프트한자라고 써있는것만 찾았는데 frankfurt airport shuttles라고 쓰여있었던 것 같다. 레스토랑 앞에 설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중간차도에 서더라. 같이 기다리던 한국 분이 저거인것 같은데요- 라고 하셔서 캐리어 끌고 막 뜀 ㅋ 운이 좋았다. 그 분 없이 우리 둘만 있었다면 하염없이 루프트한자 써있는 것만 찾다가 한시간 간격으로 있는 버스를 놓쳤을 듯.

 

 

그렇게 하이델베르그에 내립니다. 계획은 중앙역으로 가서 코인로커에 짐을 맡기고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가는 것. 셔틀은 2시에 탔고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시각은 3시경. 중앙역에서 내려주는게 아니라서 거기까지 가야하는데 대략 30분쯤 걸린단다. 우리는 길도 나쁘지 않길래 그냥 걷기로 한다. 길을 알려주신 유학생?은 거기 걸어가기 좀 먼데....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앞으로 알게 된다 ㅋ 우리는 걷는데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ㅋㅋㅋㅋ 그리고 이후 길을 보는 기준은 캐리어를 끌 수 있는 길인가 로 바뀐다 ㅋ

 

 

 

길 중간에는 이렇게 트램이 다니는 길이 깔려 있다. 트램 처음봐서 한참 신남 ㅋ

 

 

 

어딘가 일본하고 느낌이 비슷하다. 높지 않고 크지 않고 각지고 깔끔한 건물들. 어딘가 통일된 폰트들. 정돈된 분위기.

 

 

연말이라 사람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차가 너무 없어 놀람. 두 사람에겐가 길을 물어 방향을 확인하고 중앙역에 도착했다.

 

 

코인락커는 동전만 사용가능. 역 내부 조금 외진 데 있다. 이 때만 해도 경계심이 한참 강할 때였다. 동전을 만들기 위해 역 내부의 마트에서 물을 하나 사고 E는 맥주를 하나 사고 코인락커 이용. 동전을 넣으면 이런 플라스틱이 나온다. 캐리어 두개가 거뜬히 들어가는 크기에 가격은 6유로. 그래도 이거 하나 넣어놓고 나니 몸이 가볍다.

 

그럼 이제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가볼까?

H의 메시지에 따르면 33번 또는 11번 버스를 타고 성-Bergbahn역에 내려서 6유로짜리 푸니쿨라를 타고 가면 된단다. 근데 어디에서 타는건지는 안 알려줬다 ㅋ 배차간격이 기니 잘 알아보고 타랬는데 나오자마자 33번 버스가 보인다. 아싸 저거다. 냅다 둘 다 올라탔다.

 

 

음... 근데 이상하다.. 노선도를 아무리 봐도 bergbahn역이라는 정류장이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버스는 점점 으슥한 곳으로 들어간다. 대략 몇 분쯤, 몇 정류장 안 가서 내린다고 검색에서 봤는데, 그 정도쯤 온 것 같은데도 보이질 않는다. 진짜 이상하다. 아무리 이상해도 이제는 성의 윗 꼬다리 부분이라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성처럼 생긴것도 안보인다. 아무리 봐도 이건 마을버스 노선이다. 해가 뉘엿뉘엿 진다. 유럽의 겨울해는 과연 짧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친구 사귀기가 시작된다. -_- 붙잡고 물어본다.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갈건데 이 차 맞니? 나 어디서 내려야되니? 근데 얘네들도 모르나보다. 왜 모르지? 우리 동네에 성 있으면 유명해서 대번 알 것 같은데. 친절한 독일 여자애(엄청 예뻤음)가 기사한테 물어봐주겠다더니 뭐라뭐라 독일어로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반대로 탔다는 얘기인거 같다. -_- 망했네.

 

우리가 내린 곳은 어떻게 봐도 마을 한 중간. 정류장의 노선도를 보고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께 여쭤봤는데 역시나 영어는 안 통하고 뭐라뭐라 설명하시는데 잘 모르겠어서 그냥 알아들은척 하고 고맙다 했다. 계속 우리를 주시하던 아저씨가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다. 역시나 끼어들어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한다. 독일어로 --_--. 진짜 열심히. 

 

아... 이럴거면 차나 빨리 와라. 아저씨랑 같은 트램을 타고 결국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옴 ㅋ

하이델베르크 성은 포기하기로 한다. 이미 반대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푸니쿨라 타고 올라가 성을 보기에는 늦은 시각이다. 우리는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해야 하니까.

 

 

여행의 설렘은 첫 도착지에서 전혀 충족되지 않았지만 시티투어 했다 치기로 함. 조금 걱정되긴 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동하는 일정인데, 이런식으로 여행이 진행되면 우린 뭐 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찍고 찍고만 하게 되는건 아닐까? 아직은 시작이라 긍정적인 마음 충만이라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ㅋ 그래도 독일에서 비행기도 타고, 버스도 타고, 트램도 타고, 잠시 후엔 기차도 타게 되니까 ㅋ 나름 교통정복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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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31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이 날의 일정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하이델베르그(루프트한자 셔틀)→스트라스부르(DB Bahn)

 

 

남방항공 기내식. 비프 or 치킨이었던 것 같은데 비프로 선택. 이때만 해도 국내 출발이었기 때문에 한국승객 입맛에 맞춘듯한 간장베이스 양념이었다.

 

 

초점이 나갔지만 다른 사진이 없으므로.

자다보면 불이 켜지고 음료수 서빙. 조금 있다가 식사서빙. 사육당하는 느낌이다. 삶은 채소에서는 묘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강하진 않지만 매우 진득하게 불쾌해 오믈렛에도 햄에도 배어있다. 과일과 빵만 먹고 대충 맛만 보고 포기. 기내식 남기기는 처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남기게 된다.

 

날아날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그리고 나는 어이없는 사건의 시작에 부딪치게 된다. baggage claim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내 캐리어가 나오지 않아 설마, 혹시 했지만 그 설마 혹시가 맞다. 내 캐리어가 도착하지 않았단다. 거구의 독일인 공항 에이전트가 나를 부른다.

 

-혹시 너 짐 안왔니?

-어. 설마?

-이리 와봐. 몇 명꺼가 안 왔어. 보니까 한국-중국간의 경로에서 이런 일이 자주 생기더라고. 혹시 분홍색이니?

-이 신발같은....ㅇㅇ 톤다운된 핑크색이야.

-늦어도 이틀 후에 보내줄게. 너 어디에 있을거니?

-나 그땐 파리에 있어.

-ㅇㅇ 그럼 여기에 호텔주소 적어

-이땐 도착하는거 확실하니? 나 이 다음날 바르셀로나로 가. 그리고 이 날은 호텔을 옮기기 때문에 체크아웃해야돼.

-ㅇㅇ 늦어도 오후 1시까지는 호텔로 도착할거야. 그래도 호텔측엔 미리 말을 해두는 게 좋을거야. 니 짐이 도착할 거니까 너 없을때 도착하면 맡아달라고.

-아.. 진짜... 어휴...알겠어.

-이거(사건발생신고서)받고, 이건 handling agent 전화번호야.  이 업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로 보내게 될거야. 그리고 이건 내 이름이야.

-ㅇㅋ

 

이때만 해도 그냥 우려하던 일이 생겼네 정도였다. 내 옆에 어떤 아저씨는 배낭이 안왔다고 했다. 그 비행기를 탄 사람 중 3명이 안왔다고 한다. 거지같은 남방항공. 대략 비행기 한 편에 2~3명이 이런 일이 발생하는 듯. 싼값으로 유럽 여행을 망치고 싶다면 남방항공 추천.

 

 

다른 비행기로 오는 E와는 프랑크푸르트공항 PP 라운지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터미널 2에서 내린 나는 공항셔틀트레인을 타고 터미널1로 이동해야 한다. 셔틀 트레인 타는 곳은 그냥 에스컬레이터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왼손 팔목엔 무거운 면세품 쇼핑백이 들려있고, 오른쪽 어깨에는 크로스백 짊어진 상태로 막 찍어서 사진이 수평도 안맞는다.

 

 

터미널 1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라운지를 찾아냈다. 이름은 Luxx 라운지인데 오늘 또 다른 비행스케줄이 없으면 3시간만 이용가능한데 너 지금부터 이용할거니? 라고 하길래 그럼 이따올게- 라고 함.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라운지가 매우 특이한 경우. 보통 라운지들은 탑승동에서 이용할 수 있는게 대부분. 여기는 시큐리티 체크를 받기전에 이용가능하다. 어쨌든 E가 12시30분 도착 예정이라 그 시각은 맞춰 대략 10쯤 다시 오는걸로. 자 이제 대략 3시간이 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나가자니 들고 있는 면세품이 너무 무겁다.

 

 

잘 안보이지만 의자에 참새가 앉아있다. 어딘가에 문이 열려있는지 참새들이 공항에 막 날아다닌다. 비둘기였으면 도망갔겠지만 참새니까 앉아 일단 좀 쉬고, 와이파이를 잡아 한국의 사람들에게 도착소식을 알리고, 이거저거 검색도 해보고, 일단 캐리어가 없으니 그 안에 있는 티켓들을 해결해야 한다. 다시 한번 빡치네 중국남방항공. 당장 오늘 타야 하는 것이 루프트한자 셔틀버스와 DB bahn 티켓이다. 이메일에 접속해 예약내역을 확인하고 캡쳐한다.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길때를 대비해 호텔예약과 교통티켓을 E에게 한장씩 더 뽑아주긴 했는데 워낙 초반 일정이라 이걸 뽑아줬는지 어쩐지 기억이 안난다. E에게 확인해보고 없으면 라운지에서 뽑아달라고 해야지.

 

 

면세품이 무거워 이걸 이용해볼까 했으나 아무리 빼도 안빠진다. 한참 생쇼를 하고 보니 유료 이용. 50센트인가 그랬던 듯. 당연히 공짜로 이용하던 것들이 공짜가 아님을 처음 인식하게 되는 순간. 굳이 쓰려고 해도 아직 동전이 없다.

 

 

어 그런데 금호타이어네.

 

 

기다리다 이제 할 일도 없어서 공항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사실 이때까지 고민한 건 캐리어를 살까말까였다. 이미 무거워서 다른 기념품이나 선물 같은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틀 후에 캐리어가 온다지만 면세품도 너무 무겁고, 어깨에 맨 가방에도 짐이 만땅이라 이렇게는 도저히 못 다닐것 같다. 이 가방은 어디까지나 소지품을 간단히 챙겨 나다닐때 사용하려고 들고 온 건데 이렇게 되면 가방채로 호텔에 놓고 빈손으로 다니거나 모두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둘 다 끔찍하다. 일단 호텔에 가기 전인 오늘이 문제다.

 

선택1.

-사고 싶던 리모와 캐리어를 산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돌아볼 계획이 아니므로 공항은 리모와 캐리어를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장점. 이 기회에 사고 싶은 걸 산다. 위기는 기회.

-단점. 비싸다. 택스리펀 받아도 비싸다.

-단점. 내 캐리어를 받게 되면 캐리어가 두 개가 된다. 하나는 버려야 한다.

-한국에서 갖고 온 캐리어는 매우 멀쩡하다. 내 물건 대부분이 그렇듯이 새 것이나 다름없다. 버리긴 아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 캐리어는 TSA lock이 없다. 언젠가 버려야 한다면 그 캐리어를 버리는 것이 맞다.

 

선택2.

-아메리칸 투어리스터나 그 하위로 아무거나 소프트 캐리어를 산다.

-장점. 리모와 캐리어보다 당연히 싸다. 확장형일 경우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짐을 넣을 수 있다.

-단점. 구 캐리어를 받아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새로 산 걸 버려야 한다. 구 캐리어는 하드케이스다.

-단점. 쌩돈이 나간다. 중국남방항공에서 보상해준다해도 아깝기는 마찬가지다.

 

공항을 세바퀴쯤 돌았다. 리모와 루프트한자 판매점을 갔고, 이런저런 편집샵에서 루프트한자 마크가 없는 리모와도 보았고, 샘소나이트에 가서 샘소나이트와 아메리칸투어리스터도 보았고, 투미도 갔고, 그외의 캐리어를 파는 곳이라면 모두 들러보았다. 들어보고 열어보고 들었다놨다 온갖 비교를 해보았는데 아무리 싼 캐리어라도 택스리펀 이전 가격이라면 유로 환율 1300원 기준으로 18만원 이상은 줘야한다. 그리고 며칠 쓰고 버린다고? 아... 그건 도저히 못하겠다. 그렇다고 하드케이스로 사자니 내 캐리어보다 못생긴 걸 훨씬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리모와가 사치다 싶어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소프트 캐리어로 마음을 굳혀 계산 직전까지 갔는데 그 순간 바퀴가 눈에 딱 들어왔다. 헐 내 구 캐리어보다 못한 바퀴를 보았네. 아... 이런 걸 쌩돈을 주고 사야하나. 이왕 사는거 왜 하위기종을 사야하나 에라이 리모와로 결정.

 

 

 

그렇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돈을 씁니다. -_- 리모와 루프트한자 컬렉션. 사이즈는 잘 모르겠는데 25인치 정도 되는거 같으니 63일듯. 다시 한번 열받네 미친남방항공아. PP라운지로 와서 면세품을 다 쑤셔넣고 가방에 있던 것 중 당장 쓰지 않을 것들과 전자제품등을 캐리어에 집어넣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무거운 걸 내내 들고 다니느라 손과 팔과 어깨가 너무 아팠다. 다음날 알게 되지만 손바닥에는 물집도 살짝 잡혔다. 그리고 나는 너무 피곤했고 씻고 싶었다.

 

라운지에서 샤워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자 5유로를 내면 샤워실을 사용할 수 있단다. 당연히 무료혜택일거라 생각하고 물어봤던거라 5유로면 좀 비싸잖아? 싶어 잠시 고민했지만 도저히 이러고는 못 살겠다. 나는 샤워를 하기로 하고 키를 받았다. 갈아입을 옷이 있었다면 갈아입었겠지만 나는 캐리어가 없다. -_- 그래도 샤워를 한 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다. 화장품이 있었다면 화장도 했겠지만 나는 캐리어가 없다. -_- 그래도 얼굴을 씻은 것만으로도 역시 살 것 같다. 수분크림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막판에 나오면서 쑤셔넣은 샘플 몇 개 뿐. 샘플 하나를 얼굴에 바르니 건조했던 피부가 단숨에 흡수한다. 아... 살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당당하게 쌩얼로 다니게 된다 ㅋ

 

 

이제 여유가 좀 생겨 라운지를 둘러보고, 오렌지주스도 가져다 마시고 빵도 두어개 먹었다. 내부에 이것보다 조금 더 큰 공간이 있지만 거기까지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와이파이를 잡아 계속 앞으로의 일정 검색. 이 모든 것을 한국에서 하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전날 자정까지 달달 볶이다 왔기 때문에 우리는 전날 아홉시에 호텔과 교통편을 한 건씩 더 해결한 것만으로도 스스로 장하다 생각하던 때였다. 일단 당장 오늘것부터. 셔틀타는 위치를 다시 검색해서 확인하고, 이따 기차 탈 위치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먹고 쉬고 충전도 하고, 확인도 다 했을 무렵 E가 도착했다는 카톡이 왔다. 이제 셔틀 시간이 촉박하다. ㅋㅋㅋ 하지만 빨리 오라고 재촉할 수는 없으므로 마음은 쫄깃하지만 최대한 티를 안내고 위치를 알려준다 ㅋㅋㅋㅋ 그리고 E가 도착하고 티켓을 확인해보자 역시나. 루프트 한자 셔틀 티켓이 없다.

 

라운지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가 컴퓨터와 프린터를 쓸 수 있냐라고 하자 저쪽에 고객용 컴퓨터가 있으며 내 이메일로 보내면 뽑아주겠다하지만 고객용 컴퓨터는 먹통이고 나는 더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럴땐 모바일이 빠르겠다 싶어 안 되는 건 빨리 포기하고 내 휴대폰 화면을 띄워 보여주자 직원이 이 pdf 파일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급할 땐 늘 그렇듯이 이메일은 갑자기 말을 안듣고 파일첨부가 잘 안 된다. 이제 진짜 셔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티켓 뽑는데 성공. 고맙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셔틀 타는 위치로 달려간다.

 

나는 앞으로도 여행 내내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감사하게 된다. 빠른 판단력. 그리고 좋은 시력. 지금 생각해도 데스크탑 컴퓨터를 오래 붙잡지 않고 빨리 모바일로 바꾸고 직원에게 도움을 구한 건 잘한 일이었다. 내가 조금 더 망설이는 성격이었다면, 조금 더 남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묻기를 껄끄러워하는 성격이었다면, 나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에 부딪쳤을 때마다 매우 많은 걸 놓치게 됐을 것이다.

 

물론 거지같은 남방항공이 내 캐리어만 줬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E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짧게 잡아도 6시간이 비는거라 캐리어만 제때 받았으면 나는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한바퀴 돌고 오려 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럽여행을 적은 노력으로 망치고 싶다면 중국남방항공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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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30 인천공항 출발

 

이 날의 일정

인천(환전 찾기, 면세품 찾기)→광저우 경유→프랑크푸르트

 

전날 자정까지 -_- 시달리다가 드디어 출발일. 짐은 이틀전부터 슬금슬금 싸기 시작했지만 워낙 시달리다 출발이라 사실 정신도 없다. 몇 번을 점검해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캐리어는 닫아버리고. 찾아야 할 면세품이 워낙 많아 일찍 출발했다. 4시 비행기지만 여유있게 12시 30분 리무진 타고 출발. 대략 한시간 걸리니까 공항엔 1시 30분 도착예정. 일정은 오후 4시에 출발해 21시간 10분을 날아 현지 시각으로 다음날 새벽 프랑크푸르트 도착.

 

 

캐리어 하나와 숄더백 하나, 그리고 기내에서 신을 슬리퍼를 따로 챙겼다. 배터리, 충전기등의 전자제품은 검색에서 걸릴까봐 모두 숄더백에 집어넣었다. 목록을 정리하고 짐을 챙기면서 줄이고줄이고 줄였는데도 짐이 많다. 정말 이번 여행짐 꾸리기의 모토는 짐 줄이기였는데도 소용이 없다. 옷은 가벼운 코트 하나를 캐리어에 넣었고 두툼한 코트를 입었다. 원래는 패딩을 입고갈 생각이었는데 얼마전 짧은 여행에서 패딩을 입고 돌아다녀보니 온 몸이 지치는 느낌이라 패딩은 패스. 역시 워커 하나를 캐리어에 넣고 레깅스에 운동화로 기내에서 버티기 쉬운 옷차림 장착. 그리고 나는 이 날 나의 선택을 엄청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고마워하게 된다. --_--

 

먼저 어플을 통해 환전한 유로부터 찾고. 환율이 최저치를 찍을때 바꿨어야 했는데 ㅋ 어느새 슬금슬금 올라가는 걸 보면서도 정신이 없어 출발 전날 겨우 환전신청해두었다. 환전은 몇 유로 했더라... 500유로 했던가. 50유로 두 장과, 20유로 16장, 10유로 8장 받은거 같다. 50유로 너무 커요. 20유로권+10유로권이 적당.

 

그동안 오빠와 친구들의 면세찬스를 이용하다가 오랜만의 내 면세이다 보니 신나서 질렀다. 열심히 적립금 쌓고 가격비교해서 알뜰살뜰하게;;; 지른 물건들을 찾기 위해 롯데, 신라, 동화, 신세계 네 군데 수령처를 탐방하듯이 갔는데 롯데면세점은 그중에서 특히 중국인관광객들이 많다. 그들은 모두들 바닥에 철푸덕 앉아 면세품을 신나게 뜯고 있는데 이게 뭔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광경이다. 롯데면세점 번호표를 뽑고 나머지 세 군데를 돌고 왔는데도 기다려야 했다. 시간 촉박하게 왔으면 심장 쫄렸을 듯. 정말 욕 나오게 질러서 -_- 뽁뽁이랑 비닐등을 뜯고 버리면서 가는데도 면세쇼핑백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가야했다. 조금이라도 부피를 줄이기 위해 액체류라 밀봉포장 뜯지 말아야 기내반입 가능한 품목을 빼고는 모든 포장지와 상자를 정리했다.

 

파우치 박스가 단단하고 예뻐서 챙겨놓으면 쓸모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버림. 원래의 나는 물건을 사면 거의 구입당시의 상태로 보관하는 편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짐이다. 귀걸이 박스들도 보증서만 챙기고 모두 버림. 시계보관 캔도 버림. 액체류가 아닌 화장품도 박스는 버리고 한곳에 모으고, 짐을 줄이고 줄이고 줄여서 쇼핑백 하나로 만들었지만 부피만 줄었을 뿐 당연히 무겁다 ㅠㅠ 이걸 도착때까지 들고 다닐 생각을 하니 깝깝하다. 대체 왜 그렇게 사댔을까. 왜 그랬긴 ㅋ 지금 생각하면 다 잘 샀지만 이때는 정말 욕 나왔다.

 

 

 

밤을 날고 날아 간다. 비행기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달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눈높이에서 보고, 눈앞에 펼쳐진 별을 본다. 밤 비행기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멀리 날아가는 것도 처음. 밤을 거꾸로 날아가는 것도 처음. 여행은 오랜만. 게다가 나는 혼자. 온갖 생각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온다. 구름 밑에 깔려있는 땅의 불빛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이 많은게 얼마만인가를 생각한다. 할 일이라고는 그저 생각뿐이다.

 

중국남방항공을 이용하는 광저우 경유였는데 진짜 귀찮게 한다. 24시간 비자도 받아야 했고, 경유라인도 복잡해서 직원이 사람들 모아서 데리고 갔고, 창사라는 곳에서 트랜짓도 있어서 내렸다 다시 타는등 정말 귀찮게 했다. 연착에다가 안내도 부실하고 모든 면에서 구린 항공사였다. 한 가지 다행은 경유 비행기에서 옆에 앉은 외국인이 뒷자리 멀리 가버려서 2인석을 혼자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 불이 켜졌을 땐 일기도 쓰다가 불이 꺼지면 음악도 듣다가 잠도 자다가 해도 시간이 가지 않는다. 종아리가 붓는 느낌이 이런거구나.

 

온통 밤이다. 모두들 잠을 자기 때문에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을 생각도 안했다. 별도 지겹고 달도 지겹다. 얼른 도착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얼른 도착해서 씻고 싶다. 물론 그럴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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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파우치

이번 여행에서 마련한 궁극의 화장품파우치. ㅋ

 

대부분 화장품 파우치란 화장품 살 때 껴주는 사은품이겠지만 나는 싫음. 원하는 용도에 맞는, 원하는 디자인과 크기와 촉감을 가진 물건을 쓰고 싶다. 걍 나는 그렇게 까탈스럽게 생겨먹었음. ㅋ 이거저거 다 써 본 결과 내가 원하는 형태는 반달형. 소재는 가죽. 컬러는 단색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정확히 말하자면 면세점에서 ㅋ) 원하는 걸 찾음. 막판까지 컬러를 고민했지만 블랙으로 하길 잘했다.

 

 

파우치긴 하지만 원한다면 클러치로 써도 될 정도의 크기. 가로길이 22cm정도 되는 듯. 

 

 

내부는 로고패턴의 패브릭. 부드럽게 잘 열리는 지퍼도 좋고, 넉넉한 들이도 좋고, 에나멜이나 뻣뻣한 합성가죽처럼 형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덜해 공간을 쓸데없이 차지하지 않아 좋다. 부드러운 가죽이다보니 내용물이 적으면 적은대로 납작해진다. 화장품파우치의 숙명을 피할 수 없어 화장품 묻은 손이 닿아 덕지덕지 얼룩이 지기도 하겠지만 가죽왁스로 닦으면 비교적 깨끗해지고.

 

 

 

빨간색을 워낙 좋아해서 막판까지 엄청 고민했었다. 빨간색은 채도 명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 실물을 안본 상태에서 결정할 수 없어 접었지만. 어떤 빨강이었건 질렸을 듯. 검은색으로 사길 잘했어. 로고가 바뀌어서 오른쪽도 조금은 고민했었으나 뭔가 성당 로고 같이 생긴 저 뉴 까메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제낌. 그리고 어렸을때 엄마가 들고 다녔을 법한 지갑같아보여(=옛날 이미지) 거부감도 있었음.

 

취향과 용도에 딱 맞는 물건은 구하려면 노력도 들고 시간도 들고 무엇보다 돈도 들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장만하면 불필요한 소비 대여섯개를 줄인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나님 한정. 신경 안쓰는 사람은 소비자체를 할 일이 없으니까 그걸로 좋겠지. 다 떠나서 좋은 물건은 그냥 그 자체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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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비행기 발권

여행의 시작은 비행기 발권부터- 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올해 엄빠와 함께 5월에 다녀온 제주도에서도, 이번 유럽 여행에서도, 나의 여행은 비행기 발권으로도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그건 정말 이상했다. 비행기 발권하고, e-ticket이 오고, 면세점에 출국정보를 입력하고 쇼핑을 하기 시작하면 아~ 드디어 내가 떠나긴 떠나는구나.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데 올해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남방항공은 e-ticket 따위 보내주지 않았고,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뭐 그땐 좀 있으면 오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지.)

 

아무것도 결정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몸과 마음이 다 지친 상태로 떠나는 여행인데 준비해야 하고, 알아봐야 하고, 비교해야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떠나게 된 것은 모두 H의 덕분이었다. 여름에 나는 모처럼 얼굴이나 보자며 H를 만났고, H는 몽골과 러시아에 다녀왔다며 지난 생일선물과 함께 기념초콜릿을 주었다. 평소 거의 빈 말을 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1/3정도는 빈 말을 담아 너 다음에 여행갈 때는 같이 가자라고 말했고, 추진력이 좋은 H는 이미 이번 겨울에 유럽에 갈 계획이라며 표는 이미 샀는데 아마 비슷한 조건으로 표가 있을 것 같다. 알아볼테니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내가 그랬듯이 H 역시 1/3쯤은 빈 마음을 담아 대답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잊고 있었다. H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ㅎ 며칠 후 매우 좋은 조건의 표가 있는데 어떠시냐며 물어왔고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그 표를 결제했다. 레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여행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 충격적인 가격. 중국남방항공으로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광저우를 경유, 프랑크푸르트 IN.  암스테르담에서 OUT. 베이징을 경유해 김포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664,200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에 겟했다 ㅋㅋㅋㅋ (지금 같은 시간, 같은 조건으로 검색하면 최저가가 1,117,800원이다) 그냥 생각하기에도 이건 뭐 다 필요없이 결제부터 해야 하는 가격이다. 친구들은 그거 혹시 편도냐고 물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모든 것은 H의 덕분이며 이후에도 나는 H의 도움을 무지하게 많이 받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 후 직장동료인 E에게 의사를 타진한다. 함께 가겠냐고. (물론 그 전에 H에게 E도 가겠다 하면 함께 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E도 아무 생각 없이ㅋㅋ OK! 하고 비행기를 발권했는데 겨우 일주일 차이에 비행기 값은 벌써 10만원 가까이 올라 있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에 잽싸게 결제. 라고 생각했으나.....유럽행 비행기 예약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ㅋㅋㅋㅋ ㅠㅠㅠㅠㅠ

 

어쨌든, 나는 8월 말에 이렇게 여행의 첫걸음인 비행기 발권을 마치게 되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나는 왜 남방항공에서 발권을 했나... 왜 이런 험난한 길을 선택했던가 싶지만. 그 얘기는 너무 길기 때문에 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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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갔다 왔다.

시차때문인지 흥분때문인지 피로때문인지 아직도 깨어있다. 그러니까 아직 꿈같기도 하고 현실같기도 하고 그 중간같기도 하다. 분명 암스테르담 센트럴 역에서 캐리어를 끌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어느새 우리 동네 지하철 역에서 캐리어를 끌고 있고. 주변에 온통 유럽사람들이었는데, 또 어느새 우리 나라 사람들로 둘러싸였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벨을 눌렀다.

 

한 개의 캐리어를 들고 들어왔는데 집에는 또 한 개의 캐리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두 개의 캐리어를 풀어낸 짐은 아무리 제 자리를 찾아주어도 여전히 널부러져 있다. 마치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내 여행의 기억들 같고 사진들 같다.

 

좋은 여행이었다. 즐겁고, 새롭고, 두근거리고.

정말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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