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17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세 곳의 라이브러리 중 가장 좋아하는 곳. 그래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이 되어버린 디자인 라이브러리. 사실 이태원 뮤직 라이브러리는 대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엄두가 안 난다. 게다가 거긴 사람들이 막 누워있어;;;; ㅠㅠㅠ


입구에서 개인적인 짐은 락커에 맡아준다. 그리고 패스카드를 주는데, 현대카드와 신분증이 필요하니 꼭 챙겨가야함. 동반 1인까지 되던가. 동행도 신분증이 있어야 된다. 물은 투명하고 뚜껑이 있는 페트병만 반입 가능한걸로 안다. 그래서 나도 갖고 다니는 보온병은 못들고 올라감. 일단 3층부터 탐색해봐야지.

 

3층은 좁고 매우 private한데 이 날 엄청 더워서,  도저히 여기 있을 수가 없었다. 사진만 찍고 금방 내려왔다;

3층에서 2층 내려오는 계단. 좁고 가파르다. 왕복 2인길.

가장 좋아하는 테이블. 갈 때마다 여기에 앉게 되었다. 엄청 넓은 철판? 콘크리트?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진짜 좋다. 책상은 넓을 수록 좋습니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건지, 저 부분만 따서 올린건지 모르겠지만 저 부분이 있어서 이 건물의 정취가 산다.

진심 이 곳에 살고 싶습니다ㅠㅠ 내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이 의자 너무 좋지만 창가에는 앉지 않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늙으니까요;

자외선 직빵 받을 것 같은 느낌.

이 자리도 좋아보이지만 한 번 앉아보고 말음. 뭔가... 애매한 개방감이 있어 독서에 집중할 수가 없다. 자리마다 저렇게 개인 조명이 있다. 선반 위에 놓여져 있는 책들은 직원에게 이야기하고 봐야했던 듯.

간단히 메모할 수 있는 종이와 책갈피가 놓여져 있다. 깔끔해라. 지금은 이혼한 김새롬. 이찬오 커플이 저 종이로 프로포즈 했었다.

이렇게. 둘 다 화면구성이 남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부질없네.

 

 

 

작은 중정이 있다. 정말 작음. 건물규모가 작다보니 이렇게 숨 트일 공간이 있는게 중요하다.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책상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진. 8명이 앉아도 넉넉하다. 노트북을 갖고 와서 작업하는 사람도 있고, 도서관책이 아닌 개인책을 보는 사람도 있던데, 만약 엄청 가까운 거리에 산다면 나같아도 출근도장 찍을 듯.

이 날 엄청 더운 여름이었는데 에어컨 소리가 조금 크긴 했지만 이어폰 끼고 책을 읽으니 세상 천국이 따로 없다.

이런 데 오면 그림책 읽는 거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이런데 가서 쉬어야 되는데 ㅠㅠ

 

 

 

이 곳의 묘미는 디자인도서관이라는 컨셉에 맞게, 흔히 볼 수 없는 사진많고 글자 적은 책들을 보는 것.

조금 어두워졌다. 딱 좋은 시간.

구석에 있는 테이블. 이 주변의 책들은 패션 관련 서적. 세미나룸처럼 보이지만 이 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러지 말아주세요.

캬아. 멋지다.

 

 

실컷 보고 밖으로 나왔다.

또 올게-

앞에는 이제 서울에 몇 군데 남지 않은 크라제버거가 있다. 한때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워낙 맛있는 수제버거집이 많아져서. 다음엔 들러서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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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3 국립현대미술관 서소문관 MOMA

 

MOMA 서소문관은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과천 산자락에 처박혀서 가기 힘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비해서 접근성도 좋고, 시설도 좋고, 전시도 좋다. 물론 과천관은 야외전시하기 좋은 넓은 땅이 있고 뒤에 산이 있고 그래서 나들이 하는 기분은 날 지 모르겠지만, 설치미술이라고 그 넓은 들판 막 뛰어다니면서 보는 것도 아니고, 국립현대미술관이라고 이름하기엔 너무 외지다. 동선도 별로고.

 

 

이 작품은 관람객과 함께 하는 전시인데, 입구에 네 가지 색상의 점토가 놓여 있고 그 중의 하나를 골라서 원하는 만큼 떼어가 모양을 만들어 올려놓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된다.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점토 구들이 이렇게 모이게 된다.

 

 

넓은 공간에, 조용하게 점토 둥글리는 소리만 울린다.

 

 

오래돼서 이건 왜 찍었는지 모르겠음.

 

 

갈 때마다 계속 있는 걸로 보아 이젠 MOMA의 시그니처인듯. 기~잉~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4단짜리 물이 내려오며 여러 나라의 언어로 된 단어를 만든다. 많이 봐서 익숙해졌는데도 아직도 신기하다.

 

 

하늘도 좋고 날씨도 좋은 날.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이 작품에도 가 보았다.

이게 젊은 건축가 어쩌고 뭐 그런거였는데. 정확히 뭔지는 까먹었다.

 

 

내부는 2층으로 되있어서 불안한 사다리계단을 타고 올라가보았다.

 

 

창처럼 뚫려 있어서 밖을 볼 수 있다.

 

 

 

그 때는 그런 생각이 딱히 없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왠지 세월호 뱃머리같이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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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2 국립중앙박물관

지금 보니 나는 주로 8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구나. 몰랐다. 이 때 한참 돌아다닐 때였는데, 대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때 쯤이면 진공청소기의 먼지통이 찬 듯한 기분이라, 비워야겠다. 이걸 얼른 비워야겠다. 이런 상태일 때가 많은데 이땐 그런게 아니라 그냥 좋다! 가자! 이런 기분이었다. 정말 여름산책 같은 느낌으로.

 

 

휴대폰 바꾸고 계속 4:3으로 찍고 있었군 ㅋ 몰랐다. 당장 12:9로 바꿈.

 

 

항상 들어갈때마다 이따 나와서 저쪽으로 가봐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적은 없다 ㅋ 막상 나오면 모든 것이 해소된 느낌이라 그냥 직진.

 

 

이때 한국사 공부할때라; 생전 안가는 선사시대관도 가서 매우매우 주의깊게 살펴봤는데 또 그러니까 보이는게 전과 다르더라. 이번엔 놓치지 말고 접수해야 할 텐데. 백점 받아야 ㅋ 할 텐데

 

 

비례는 안 맞지만 자세가 멋져서 찍었다.

 

 

ㅋ 내가 비쳤네. 멋있다. 이런 부채 갖고 싶다. 성균관스캔들이라는 드라마에서 멋있었던 건 목깃이 높게 디자인 되고 옷감을 넉넉히 써 멋졌던 두루마기와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게 다르게 장식된 송중기의 갓끈장식이었다. 부잣집 아들 설정이라 그랬겠지만.

 

 

어딘가 영화 아가씨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어서 찍음. 갈 때마다 찍어오는게 비슷해서 취향이 보인다.

 

 

이런 게 취향이라 가끔은 일본 취향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저 군더더기 없는 직사각형만의 중첩. 완전 좋아.

 

 

그런가 하면 이런 건 완전 취향 아님. 글씨체부터 문양 하나하나까지 전혀 아님.

 

 

 

이것도 뭔가 물미역같은게 멋져서 찍음.

 

 

이건 왜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도자기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으니까 찍었겠지.

 

 

 

그리고 언제나 들르는 마지막 코스.

 

 

사진을 못찍어서 못생기게 나오셨네; 원래는 이것보단 아름다운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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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미야베 미유키

읽은 책인데 또 읽었다. 1/10쯤 읽었을 때 아.. 이거 읽은거다 하고 깨달았고, 그런데 무슨 내용이었더라? 에이 어차피 모르는데 또 읽자.. 하고 읽었고 1/3쯤 되니 슬슬 기억이 나기 시작했는데 사건의 중요한 부분에서는 처음 읽을때 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사건의 진상에 대한 착각)을 했고, 거의 끝부분에 다 가서야 아. 맞다. 이거였지. 하고 기억났다.

 

며칠 전에 읽었던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거였다. 일명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1권이다. 이때만 해도 사부로도, 사부로의 장인도 캐릭터가 그렇게 뚜렷한 느낌은 아니었던 대신에 사부로의 부인인 나호코의 이미지는 뭔가 뚜렷했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착한 사람인것 같지만 무언가가 날카로운 불안함이 공존하는 기분.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는 어디 하나 마음 둘 데가 없다. 사부로도, 장인도, 나호코도, 그리고 자매도, 언니의 남자친구도, 결정적인 범인도. 누구 하나 괜찮은 캐릭터가 없다. 그럼에도 사부로는 나와 달리 그 모든 사람들을 관조하듯이 바라보고 마치 관용과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장인도 산전수전 다 겪어서인지 그렇게 놀라지 않는다. 두 사람 다 내가 그걸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냐. 좋아한다는 것도 아냐.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마치 풍경을 바라보는 것 같은 거리감을 두고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거두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읽으면서도 분명 이랬을텐데 두 번째 읽고도 입맛에 씁씁하고 찝찝한 기분이 남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부로의 엄마가 한 두 마디 말이 관통한다. 독설이라고 하지만 핵심인 것이다.

1. "사내와 계집은 말이야. 붙어 있다 보면 품성까지 닮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사귀는 상대를 잘 골라야만 해."

2. "인간이란 누구나 상대가 제일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하는 주둥이를 갖고 있지. 아무리 바보라도 듣기 싫은 소리는 아주 정확하게 한다니까."

 

그리고 그 독설 아래 자란 사부로는 강하고 유연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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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2권은 <이름없는 독>이란다. 그것도 읽은 것 같다. 이건 꽤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 조금만 훑어보면 기억이 날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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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이름없는 독>은 2008년에 읽었군. 그쯤 되면 기억 안 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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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에펠 타워

비가 부슬부슬 왔고, 추웠다. 이때만 해도 구글지도님의 위대함을 활용하지 못할때라 애비뉴 이름을 머리속에 기억해두고 길 찾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길을 엄청 물어봤다 ㅋㅋㅋ 일단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기도 했고, 해가 짧아 정말 어둡고 비까지 내려 축축하고 칙칙한데다가 몸도 피곤했다. 호텔 찾는데 조금 헤매기까지 해서(정말 눈에 안 띄었다) 호텔을 드디어 찾았을 때는 어찌나 기쁘던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캐리어가 도착할 장소로 이 호텔 주소를 알려줬기 때문에 그 사정을 이야기했다.

-(문제상황설명) 아마 빠르면 내일 내 수트케이스가 도착할 텐데, 우리가 나가 있는 동안 짐이 도착한다면 좀 맡아줄래?

-응 알겠어. 근데 난 night직원이고, Daylight직원에겐 너가 한 번 더 얘기해야 할 수도 있어.

 

리셉셔니스트는 매우매우 꽉 끼는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바지의 지퍼부분 솔기가 튿어져 있었다ㅠㅠ E와 나는 서로 아무말도 못하고 방에 와서야 헐. 봤냐- 뭐야. 모를리가 없잖아 변태야?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내일 아침까지 저 사람 저 옷 입고 있을 거잖아. 그럼 내일 조식먹을 때 또 봐야 돼? 하고 매우매우 괴로워했다 ㅋ

 

방이 좀 추워 라디에이터를 틀었으나 (스트라스부르에서도 라디에이터 틀기는 실패했다) 그 정도의 온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로비로 내려가서,

 

-저기 있잖아. 방이 추워. 라디에이터를 틀었는데 내가 제대로 틀 줄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최고 온도도 추워

-응 보조 라디에이터 줄게.

 

헐, 왜 이렇게 간단하지;;;;

목소리가 엄청 크신 아주머니가 화난 듯한 목소리로 막 뭐라뭐라 해서 쫄았다. 우리가 귀찮게 해서 지금 화내는걸까? 근데 또 막상 우리랑 눈 마주치니 생긋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뭐지;;

 

짐을 풀고, 몸을 살짝 녹인 후에 아 도저히 아쉬워서 안되겠다. 에펠탑이라도 보러 갑시다. 아까 보니 별로 안멀어보이던데. ㄱㄱ 사실 엄청 어둡지만 한국에서라면 한창인 시간이잖아. 이 때가 9시 반쯤 됐던듯. 한국에서 9시 반이면 시작 아냐? ㅋ 갑시다 ㄱㄱ

 

 

꺅 꺅 에펠이다!!! 호텔이랑 정말 가까워 그냥 슉슉 걸어가니까 짜잔~ 하고 나타났다.

 

 

여기서 찍고 저기서 찍고, 멀리 가서도 찍고, DSLR 모드로 변경해서 찍고 정말 백 장은 찍은 듯. 인물 사진은 역광 때문인지 우리가 잘 못 찍어서인지 전부 괴기스럽게 나왔다 ㅋㅋㅋ 걔나 나나 휴대폰이 같은 기종이라 거기서 거기이기도 하지만 E는 알콜중독 때문인지 수전증이 있어서 셀카봉을 들고 ㄷㄷㄷㄷㄷ 거려서 안 그래도 광량이 부족한데 초점이 하나도 안맞는다 ㅋ

 

 

테러 일어난지 얼마 안 된 때라 주변에는 무장한 경찰이 많이 깔려있었다. 얼마 전까지 추모의 의미로 삼색조명을 밝히기도 했었고. 실제로 국내에서도 유럽여행 취소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우리도 생각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자 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왔다.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이 괜찮냐며 걱정하는 카톡을 보내주었고, 여행하는 내내 유럽 전역에 걸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해서 대도시 위주의 테러 예고 소문이 있었고, 우리가 다닌 일정에는 그런 곳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밝았다. 신년의 들뜸과 촉촉한 밤공기와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조명은 아직까지 연말 분위기를 주었고, 결국 밤에 나오길 정말 잘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더 오자고 했지만 우리는 다시 오지 않았다. 지금은 별로 아쉽지 않지만 나중에 좋은 계절, 좋은 날에 반대쪽의 공원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물론 사람이 많아서 어렵겠지.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정류장에 있는 광고판(?)을 찍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표시인지 의미인지 모르겠어서 일단 찍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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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소년탐정단-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책은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도 정말 기억이 안 난다.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나서 또 읽다가 얼마 지난후에야 아... 이거 읽은거다. 에이 어차피 기억 안나는데 또 읽지 뭐. 이러는 경우도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일단 죽이고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등장인물이 죽는 것은 요리로 치면 아뮤즈부쉐 같은 것이다. 게다가 잘나가는 레스토랑이므로 아, 거기. 거기 정도면 분위기도 괜찮고 가격도 합리적이고, 맛도 나쁘지 않아. 쉐프가 안정적으로 요리를 내는 편이지. 맨 처음에 갔을 때는 정말 너무 맛있어서 어쩔 줄 모를 정도였는데 두번째부터는 그정도는 아냐. 그래도 그 정도면 좋은 레스토랑이지. 의 느낌.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을때 헐! 하고 이 작가는 뭐지!!!!! 한 이후로 그렇게 딱히 먹고 싶은 거 없을 때 약간의 관성을 담아 선택하는 밥집이 되어버렸다. 

 

오사카 소년탐정단은 가볍게 키득거리며 읽을 수 있는 정도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쪽에 재능이 있는것 같다. 뭐랄까, 블랙코미디 같은거라고 해야하나 픽- 하고 썩소를 짓게 한다고 해야하나.

 

주인공인 시노부는 초등교사다. 평범한 초등교사(물론 평범하지 않지만)주변에서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어나가는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주변 인물들과 학생들부터가 히가시노 게이고 월드의 주인공들이다. 김전일 같은 녀석들.

 

갈릴레오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유가와 교수처럼 시노부도 확실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이건 미스터리 작가들의 로망인것 같다.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르나, 미스 마플이나, 브라운 신부같은 자기만의 탐정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 미야베 미유키도 전엔 그런 경향이 없었는데 에도 시리즈와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를 보면 슬슬 만들어가는 느낌이다. 작가로서의 성숙기 같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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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박상현

유머라고는 전혀 없는 건조한 문장으로 쓰여 있어, 쌓여진 책들 중 다른 걸 먼저 읽을까 하다가 에이 어차피 읽을거- 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단숨에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나는 휴대폰 갤러리에 「책」이라는 폴더를 갖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은 표지를 캡처해뒀다가 도서관에 가면 『지금 땡긴다+여기에 있다』의 조합으로 빌려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느 경로를 통해 내 휴대폰에 저장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다지 흥미없던 규슈지역을 여행해야겠다로 바꾸게 했다.

 

음식에 대해 갖는 주관이란 건 딱히 주변에 강요하지 않는다 해도 주변 사람을 약간 불편하게 하는 면이 있을 수 있어 요즘은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뭘 굳이 드러내나. 그냥 내가 그렇게 살면 되지-쪽인데(원래도 그래왔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면이 있을 뿐이다.) 이번 연수과제 보고서에도 썼지만, 로컬푸드의 유통과 음식점으로 이어지는 문화는 도시계획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것 같다. 흥미로운 분야이지만 이제 와서 내가 저 쪽 일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아서 아쉽다. 분명 우리 나라도 저 쪽으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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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이기호

그러니까 지금처럼, 볼 게 너무 많고, 들을 게 너무 많아, 내 수많은 입시생활을 버티게 해준 1일1예능도 가차없이 끊고, 미드영드도 사정없이 끊다보니 이젠 도저히 예능이나 드라마는 자극이 약해 볼 수 가 없어 뉴스나 정치사회팟캐만 파고 있던 때가 아니었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던 때는 그랬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잠자기 전 30분 후 저절로 꺼짐을 걸어놓고 하루를 정리하던 그런 때였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 안나고 이 제목과 작가만 머리속에 남았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와 이기호 작가.

 

캬. 그런데 이거 걸작이었네. 글솜씨도 보통이 아니지만 이야기의 구성 뿐 아니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는 뻥 걷어차고 들어오는 게 기가 막히는구나.

 

나는 정말로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도 왜지? 뭐지? 이 다음에 어떻게 되는거지?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 다음에 다가오는 건 헉??!!!!! 이었고. 조금 아쉬운 건 마무리. 강력한 한 방의 끝맺음이 없는 것이 좀 그렇지만 왜? 라고 생각하는게 작가의 의도라면야. 가장 훌륭한 건 플롯보다는 놀라운 상황묘사라고 해야되나. 세상에.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부끄러운 상황(부끄러움이 아니라)에서 겪게되는 자잘한 사고다발을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굳이 부끄러운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대개의 상황에서 그렇지만 좀 더 잘 드러난 것은 그런 것들이다. 와 이따위로밖에 표현 못하다니. 정말 비루한 언어능력이구나. 그냥 읽다보면 와... 헐.... 어떻게 이걸.. 이건 진짜 내가 느꼈던 바로 그... 라는 생각만 들게 한다. 그런 정밀묘사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큰 그림속에서의 디테일로 훌륭하게 녹아 있다. 

 

이걸 읽으면서 프라이드 89년 광고를 찾아봤다. 정말 남자배우는 그렇게 탄다. 여자배우도 그렇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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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 (2009)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2010)

김 박사는 누구인가? (2008)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2011)

탄원의 문장 (2011)

이정(而丁)-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2 (2012)

화라지송침 (2012)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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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책방 29회+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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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라지-옆으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땔나무로 이르는 말

송침-땔감으로 쓰려고 꺾어서 말린 소나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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