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231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이 날의 일정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하이델베르그(루프트한자 셔틀)→스트라스부르(DB Bahn)

 

 

남방항공 기내식. 비프 or 치킨이었던 것 같은데 비프로 선택. 이때만 해도 국내 출발이었기 때문에 한국승객 입맛에 맞춘듯한 간장베이스 양념이었다.

 

 

초점이 나갔지만 다른 사진이 없으므로.

자다보면 불이 켜지고 음료수 서빙. 조금 있다가 식사서빙. 사육당하는 느낌이다. 삶은 채소에서는 묘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강하진 않지만 매우 진득하게 불쾌해 오믈렛에도 햄에도 배어있다. 과일과 빵만 먹고 대충 맛만 보고 포기. 기내식 남기기는 처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남기게 된다.

 

날아날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그리고 나는 어이없는 사건의 시작에 부딪치게 된다. baggage claim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내 캐리어가 나오지 않아 설마, 혹시 했지만 그 설마 혹시가 맞다. 내 캐리어가 도착하지 않았단다. 거구의 독일인 공항 에이전트가 나를 부른다.

 

-혹시 너 짐 안왔니?

-어. 설마?

-이리 와봐. 몇 명꺼가 안 왔어. 보니까 한국-중국간의 경로에서 이런 일이 자주 생기더라고. 혹시 분홍색이니?

-이 신발같은....ㅇㅇ 톤다운된 핑크색이야.

-늦어도 이틀 후에 보내줄게. 너 어디에 있을거니?

-나 그땐 파리에 있어.

-ㅇㅇ 그럼 여기에 호텔주소 적어

-이땐 도착하는거 확실하니? 나 이 다음날 바르셀로나로 가. 그리고 이 날은 호텔을 옮기기 때문에 체크아웃해야돼.

-ㅇㅇ 늦어도 오후 1시까지는 호텔로 도착할거야. 그래도 호텔측엔 미리 말을 해두는 게 좋을거야. 니 짐이 도착할 거니까 너 없을때 도착하면 맡아달라고.

-아.. 진짜... 어휴...알겠어.

-이거(사건발생신고서)받고, 이건 handling agent 전화번호야.  이 업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로 보내게 될거야. 그리고 이건 내 이름이야.

-ㅇㅋ

 

이때만 해도 그냥 우려하던 일이 생겼네 정도였다. 내 옆에 어떤 아저씨는 배낭이 안왔다고 했다. 그 비행기를 탄 사람 중 3명이 안왔다고 한다. 거지같은 남방항공. 대략 비행기 한 편에 2~3명이 이런 일이 발생하는 듯. 싼값으로 유럽 여행을 망치고 싶다면 남방항공 추천.

 

 

다른 비행기로 오는 E와는 프랑크푸르트공항 PP 라운지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터미널 2에서 내린 나는 공항셔틀트레인을 타고 터미널1로 이동해야 한다. 셔틀 트레인 타는 곳은 그냥 에스컬레이터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왼손 팔목엔 무거운 면세품 쇼핑백이 들려있고, 오른쪽 어깨에는 크로스백 짊어진 상태로 막 찍어서 사진이 수평도 안맞는다.

 

 

터미널 1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라운지를 찾아냈다. 이름은 Luxx 라운지인데 오늘 또 다른 비행스케줄이 없으면 3시간만 이용가능한데 너 지금부터 이용할거니? 라고 하길래 그럼 이따올게- 라고 함.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라운지가 매우 특이한 경우. 보통 라운지들은 탑승동에서 이용할 수 있는게 대부분. 여기는 시큐리티 체크를 받기전에 이용가능하다. 어쨌든 E가 12시30분 도착 예정이라 그 시각은 맞춰 대략 10쯤 다시 오는걸로. 자 이제 대략 3시간이 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나가자니 들고 있는 면세품이 너무 무겁다.

 

 

잘 안보이지만 의자에 참새가 앉아있다. 어딘가에 문이 열려있는지 참새들이 공항에 막 날아다닌다. 비둘기였으면 도망갔겠지만 참새니까 앉아 일단 좀 쉬고, 와이파이를 잡아 한국의 사람들에게 도착소식을 알리고, 이거저거 검색도 해보고, 일단 캐리어가 없으니 그 안에 있는 티켓들을 해결해야 한다. 다시 한번 빡치네 중국남방항공. 당장 오늘 타야 하는 것이 루프트한자 셔틀버스와 DB bahn 티켓이다. 이메일에 접속해 예약내역을 확인하고 캡쳐한다.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길때를 대비해 호텔예약과 교통티켓을 E에게 한장씩 더 뽑아주긴 했는데 워낙 초반 일정이라 이걸 뽑아줬는지 어쩐지 기억이 안난다. E에게 확인해보고 없으면 라운지에서 뽑아달라고 해야지.

 

 

면세품이 무거워 이걸 이용해볼까 했으나 아무리 빼도 안빠진다. 한참 생쇼를 하고 보니 유료 이용. 50센트인가 그랬던 듯. 당연히 공짜로 이용하던 것들이 공짜가 아님을 처음 인식하게 되는 순간. 굳이 쓰려고 해도 아직 동전이 없다.

 

 

어 그런데 금호타이어네.

 

 

기다리다 이제 할 일도 없어서 공항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사실 이때까지 고민한 건 캐리어를 살까말까였다. 이미 무거워서 다른 기념품이나 선물 같은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틀 후에 캐리어가 온다지만 면세품도 너무 무겁고, 어깨에 맨 가방에도 짐이 만땅이라 이렇게는 도저히 못 다닐것 같다. 이 가방은 어디까지나 소지품을 간단히 챙겨 나다닐때 사용하려고 들고 온 건데 이렇게 되면 가방채로 호텔에 놓고 빈손으로 다니거나 모두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둘 다 끔찍하다. 일단 호텔에 가기 전인 오늘이 문제다.

 

선택1.

-사고 싶던 리모와 캐리어를 산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돌아볼 계획이 아니므로 공항은 리모와 캐리어를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장점. 이 기회에 사고 싶은 걸 산다. 위기는 기회.

-단점. 비싸다. 택스리펀 받아도 비싸다.

-단점. 내 캐리어를 받게 되면 캐리어가 두 개가 된다. 하나는 버려야 한다.

-한국에서 갖고 온 캐리어는 매우 멀쩡하다. 내 물건 대부분이 그렇듯이 새 것이나 다름없다. 버리긴 아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 캐리어는 TSA lock이 없다. 언젠가 버려야 한다면 그 캐리어를 버리는 것이 맞다.

 

선택2.

-아메리칸 투어리스터나 그 하위로 아무거나 소프트 캐리어를 산다.

-장점. 리모와 캐리어보다 당연히 싸다. 확장형일 경우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짐을 넣을 수 있다.

-단점. 구 캐리어를 받아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새로 산 걸 버려야 한다. 구 캐리어는 하드케이스다.

-단점. 쌩돈이 나간다. 중국남방항공에서 보상해준다해도 아깝기는 마찬가지다.

 

공항을 세바퀴쯤 돌았다. 리모와 루프트한자 판매점을 갔고, 이런저런 편집샵에서 루프트한자 마크가 없는 리모와도 보았고, 샘소나이트에 가서 샘소나이트와 아메리칸투어리스터도 보았고, 투미도 갔고, 그외의 캐리어를 파는 곳이라면 모두 들러보았다. 들어보고 열어보고 들었다놨다 온갖 비교를 해보았는데 아무리 싼 캐리어라도 택스리펀 이전 가격이라면 유로 환율 1300원 기준으로 18만원 이상은 줘야한다. 그리고 며칠 쓰고 버린다고? 아... 그건 도저히 못하겠다. 그렇다고 하드케이스로 사자니 내 캐리어보다 못생긴 걸 훨씬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리모와가 사치다 싶어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소프트 캐리어로 마음을 굳혀 계산 직전까지 갔는데 그 순간 바퀴가 눈에 딱 들어왔다. 헐 내 구 캐리어보다 못한 바퀴를 보았네. 아... 이런 걸 쌩돈을 주고 사야하나. 이왕 사는거 왜 하위기종을 사야하나 에라이 리모와로 결정.

 

 

 

그렇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돈을 씁니다. -_- 리모와 루프트한자 컬렉션. 사이즈는 잘 모르겠는데 25인치 정도 되는거 같으니 63일듯. 다시 한번 열받네 미친남방항공아. PP라운지로 와서 면세품을 다 쑤셔넣고 가방에 있던 것 중 당장 쓰지 않을 것들과 전자제품등을 캐리어에 집어넣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무거운 걸 내내 들고 다니느라 손과 팔과 어깨가 너무 아팠다. 다음날 알게 되지만 손바닥에는 물집도 살짝 잡혔다. 그리고 나는 너무 피곤했고 씻고 싶었다.

 

라운지에서 샤워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자 5유로를 내면 샤워실을 사용할 수 있단다. 당연히 무료혜택일거라 생각하고 물어봤던거라 5유로면 좀 비싸잖아? 싶어 잠시 고민했지만 도저히 이러고는 못 살겠다. 나는 샤워를 하기로 하고 키를 받았다. 갈아입을 옷이 있었다면 갈아입었겠지만 나는 캐리어가 없다. -_- 그래도 샤워를 한 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다. 화장품이 있었다면 화장도 했겠지만 나는 캐리어가 없다. -_- 그래도 얼굴을 씻은 것만으로도 역시 살 것 같다. 수분크림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막판에 나오면서 쑤셔넣은 샘플 몇 개 뿐. 샘플 하나를 얼굴에 바르니 건조했던 피부가 단숨에 흡수한다. 아... 살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당당하게 쌩얼로 다니게 된다 ㅋ

 

 

이제 여유가 좀 생겨 라운지를 둘러보고, 오렌지주스도 가져다 마시고 빵도 두어개 먹었다. 내부에 이것보다 조금 더 큰 공간이 있지만 거기까지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와이파이를 잡아 계속 앞으로의 일정 검색. 이 모든 것을 한국에서 하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전날 자정까지 달달 볶이다 왔기 때문에 우리는 전날 아홉시에 호텔과 교통편을 한 건씩 더 해결한 것만으로도 스스로 장하다 생각하던 때였다. 일단 당장 오늘것부터. 셔틀타는 위치를 다시 검색해서 확인하고, 이따 기차 탈 위치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먹고 쉬고 충전도 하고, 확인도 다 했을 무렵 E가 도착했다는 카톡이 왔다. 이제 셔틀 시간이 촉박하다. ㅋㅋㅋ 하지만 빨리 오라고 재촉할 수는 없으므로 마음은 쫄깃하지만 최대한 티를 안내고 위치를 알려준다 ㅋㅋㅋㅋ 그리고 E가 도착하고 티켓을 확인해보자 역시나. 루프트 한자 셔틀 티켓이 없다.

 

라운지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가 컴퓨터와 프린터를 쓸 수 있냐라고 하자 저쪽에 고객용 컴퓨터가 있으며 내 이메일로 보내면 뽑아주겠다하지만 고객용 컴퓨터는 먹통이고 나는 더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럴땐 모바일이 빠르겠다 싶어 안 되는 건 빨리 포기하고 내 휴대폰 화면을 띄워 보여주자 직원이 이 pdf 파일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급할 땐 늘 그렇듯이 이메일은 갑자기 말을 안듣고 파일첨부가 잘 안 된다. 이제 진짜 셔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티켓 뽑는데 성공. 고맙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셔틀 타는 위치로 달려간다.

 

나는 앞으로도 여행 내내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감사하게 된다. 빠른 판단력. 그리고 좋은 시력. 지금 생각해도 데스크탑 컴퓨터를 오래 붙잡지 않고 빨리 모바일로 바꾸고 직원에게 도움을 구한 건 잘한 일이었다. 내가 조금 더 망설이는 성격이었다면, 조금 더 남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묻기를 껄끄러워하는 성격이었다면, 나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에 부딪쳤을 때마다 매우 많은 걸 놓치게 됐을 것이다.

 

물론 거지같은 남방항공이 내 캐리어만 줬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E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짧게 잡아도 6시간이 비는거라 캐리어만 제때 받았으면 나는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한바퀴 돌고 오려 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럽여행을 적은 노력으로 망치고 싶다면 중국남방항공 추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