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나홍진이 감독한 영화는 현재 왓챠 기준으로 다섯편이다. 한, 완벽한 도미요리, 추격자, 황해, 곡성. 이 중에서 한과 추격자를 빼고 세 편을 보았고, 단 세 편에 별점을 매긴것만으로도 나홍진은 내가 선호하는 감독 9위로 집계됐다.

 

곡성은 개봉한 날 바로 보고 싶었지만 무슨 사정인가가 있어 둘째날 봤다. 같이 보려고 했지만 시간을 맞출 수 없어 미룰까 하던 차에 그냥 혼자 심야로 봤다. 그리고 좋았다. 좋았다는 것은 이 영화가 행복하며  나에게 고양되는 기분을 주었고 이 영화가 너무 사랑스럽다- 이런 얘기가 당연히 아니다. 이 영화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며,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허구로 쌓아올린 세계가 마치 진실인듯이 어떤 부분에선가 울림을 주었다는 뜻이다.

 

전에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자기가 그런 말을 한것도 까먹었겠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마치 구덩이처럼 불운이 바닥에 깔려있는거 같다고, 그 구덩이는 도처에 있어서 조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고. 나홍진은 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족중 가까운 사람의 불행을 경험하게 되었고, 왜 그것이 그에게 일어났는지 화가 났다고 했다. 이 영화는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화냐고 분노했지만 나는 그 말이 그냥 와닿았다.

 

천우희는 왜냐고 묻는 곽도원에게, 그것은 딸의 애비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황정민은 그냥 미끼를 던진 것이고 너는 미끼를 덥석 문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던진 입장에서는 누가 물었어도 상관없는 거였는데 그냥 니가 미끼를 문 것이라고. 마치 도처에 깔려있는 지뢰처럼. 누구여도 상관없으니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구덩이처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너만큼은 좀 다른 결과가 되길 바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잡아끌어보았던 천우희의 마지막 표정은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다는 절망, 또 하나 놓치고 말았다는 회한을 그 찰나의 순간 보여주었고, 이 영화는 천우희의 그 표정으로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나홍진이 피해자를 위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왜 하필 나냐고 생각하다가,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불행이라고 생각하다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다가. 자책과 후회와 절망이 범벅이 되어 발목을 잡아끄는 늪 같은 상태에 있을 살아남은 자들에게, 아니라고. 니가 어떻게 행동했건 별 변수가 되지 못했을, 그건 그냥 지뢰같은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자책도 후회도 내려놓으라고.

 

물론 이 영화가 영화 자체로 보여주는 것은, 끝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갈림길의 입구에서 제한된 정보와 끝없는 의심만을 가지고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갈팡질팡하는 모습과 한없는 무력감이었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나에게는 슬픈 영화였다. 그리고 진짜 무서운 영화는 슬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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