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인가

 

 

 

 

전국을 들었다놨다 한 드라마를 이제야 완주했다. 칠봉이파였던 나는 칠봉이가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걍 흥미가 똑! 떨어져서 드라마를 접었었다. 사실 애초에 드라마를 볼 때도 칠봉이 나오는 부분만 띄엄띄엄. 말 그대로 발췌해서 봤었던 터라 드라마의 전체적인 흐름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누누히 내 20대를 90년대에 살았다는 것을 행운이자 자부심으로 느껴왔었다. 한국현대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사회에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됐던 세대. 고맙게도 이전 세대가 피로 쟁취해놓은 민주와 자유라는 차양아래 좀 편히 쉬어도 됐(다고 착각 했)던 세대. 밀려들던 자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과도기. 일본 문화, 미국 문화가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와 손을 뻗으면 잡을 수도 있다는 게 새로웠고, 신기했다. 그 이후의 시간들을 여태 살고있지만 90년대는 정말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풍요로웠다. 지금처럼 아무거나 마구마구 널려있는 시대가 아니라 좋은 것들부터 들어오는 시대였던 것도 같다. 그 시대를 살면서 내 작은 그릇에 하나라도 더 담아보려고 미친듯이 읽고, 보고 느끼려고 했었다. 그러기엔 주변에 길도 없었고, 이정표도 없어서 뭐 하나 제대로 한 건 없는 것 같고. 정작 그 시기에 해야할 것은 놓친 채 인생을 빙빙 돌아 살게 됐지만.

 

이들의 이십대가 나의 이십대였고, 이들의 90년대가 나의 90년대와 같아서 드라마를 차마 각 잡고 진지하게 볼 수가 없었다. 드라마를 보는 게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자꾸 내 이십대를 헤집는 것 같아서, 그래서 드라마는 일부러 건너뛰고 매력적인 캐릭터에 몰빵했는지도 모르겠다. 에피소드는 그럴싸하게 모두가 거쳐왔던 길에서 나던 냄새를 풍기며 기억을 자극하고 있지만 막상 저 주인공들은 엄청나게 치열하게 순간순간을 살아냈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내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저런 캐릭터들로만 둘러싸여있는 인생도 드물고. 저들의 90년대는 나의 90년대와 유사하지만 나의 이십대는 저들의 이십대와 같지 않다.

 

내 이십대는 그렇게 뽀샤시하고 아름답고 정겹기만 한 시절이 아니었다. 세상은 넘쳐나는데 비해 나는 너무 작았고, 몰랐고,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었다. 낯설고, 힘들었고, 앞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늘 내 자리가 아닌 곳에 꽂혀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판은 내 판이 아닌 것만 같았다. 매뉴얼도 없고, 표지판도 없고, 경고등도 없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그럼 어떻게 빠져나가야 되는건지, 어디로 가야 맞는 건지. 여기 저기 헤매고 부딪치고 너덜너덜 헤지는 느낌이 들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아련함보단 쓰림이, 후회가, 가슴을 치는 일이 더 많다. 되돌아보면 그림이 꽉 차있다기보다는 여기 저기 엉성한 조합에다가 그마저도 구멍이 뻥뻥 뚫린.

 

말만 들어도 솜털이 뽀송대는 이십대는 애저녁에 훅 지나가버렸고 나는 이제 삼십대다. 어른인가 하면 모르겠다. 어른의 삶을 살고는 있는데, 진짜 어른인가 하면 정말 잘 모르겠다. 나는 삼십대가 정말 좋은데, 살 수 있는 시기를 고를 수만 있다면 평생 삼십대로 살고 싶은데 얼척없는 소리고.

 

잉여잉여 보내고 있는 이 휴가기간중에도 참 번뇌가 많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냥그냥 사는 거 말고, 후회없이 잘. 자~~알 살아볼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미 살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삶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니 -_- 참... 답도 없다. 그래도 더 잉여잉여하게 보내면서 가닥을 잘 잡아야겠다. 사십대 된 다음에 '삼십대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후회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요딴 소리 하지 않으려면.

 

아직 현실세계로 돌아가려면 시간 여유가 조금은 남았다. 마저 잉여잉여 해댈 생각이다. 제대로 아주 미친듯이 널부러져 정신을 채치고 다져서 헤쳐놓아야 뭔가 가닥이 잡힐 것 같다. 잘 살아야지. 잘 삽시다.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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