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살림살이

당분간 살림살이를 줄이면 줄였지 들이지는 않는 방향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사야겠다 싶어서 샀다. 현재도 내 삶인데 미래의 삶을 위해서 현재를 무조건 미루거나, 무시하거나 하는 건 좀 아니지 싶어서가 첫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도저히 못참겠어서이다. 쓰다보니 첫번째와 두번째의 우선순위가 바뀐것 같기도 하고 첫번째와 두번째가 그게 그건거 같기도 하다.

 

외식비중이 높은 주제에 이런 말 하는거 부끄럽지만, 나는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구워놓은 생선을 데워 먹는 것이라든가, 밑반찬류라든가, 국이나 찌개 같은 것도 그렇다. 누구는 좋아하겠냐고 말한다면 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엄마가 해주는 거에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등짝스매싱을 당하기 딱 좋을거고(실제로 우리엄만 그러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겠지. 지가 해먹지도 않으면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그러나, 아니. 난 내가 해먹는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이런 소리 해도 됨요. 앞으로 가능하다면 그 날, 혹은 단위 기간 동안 해치울 만큼의 재료만 준비해 바로 해먹고 어쩔 수 없이 남은 짜투리 재료들만 냉장고에 "잠시" 보관하면서 사는 방식으로 식생활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로, 외식비중을 점점 낮추고 DIY 싫어하지만 DIY의 비중을 식생활에서만큼은 높이려고 하고 있는데, 올해 가장 많이 해먹은 음식은 스테이크인것 같다. 편하기도 하고, 질 좋은 단백질을 먹으려고 하다 보니. 그런데 가장 마음에 안드는 게 팬. 일단 코팅성분이 찝찝하고, 온도를 확 올리면 이렇게 올려도 되나 싶고, 다 쓰고 나서 깨끗이 씻는다고 씻어도 쓸 때마다 상태가 변해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그게 아무리 눈을 가려도 아웅이 안된다는 점이 그랬다. 가장 큰 이유는 온도 조절이다. 조리하다가 팬의 온도가 확 올라가거나 조금만 뭘 넣어도 뚝 떨어지는게 느껴져서. 어차피 무쇠팬을 쓸 생각이었는데 지금 당장 쓰지 뭐. 그리고 점찍어놨던 것들을 고민고민했다. 먼저 주문했던 것은 일본 디자이너 소리 야나기의 주물팬.

 

 

완전히 딱 덮히는 스테인리스의 뚜껑이 있다는 것이 첫번째 장점. 양쪽 날개라고 하나, 둔탁하게 생기지 않았으면서도 무언가를 따르기 좋은 구조, 게다가 뚜껑을 살짝 엇갈리게 덮으면 스팀의 역할까지 한다는 것. 그리고 마감이 깔끔하고 예쁘다는 것. 근데 실제로 결제까지 했다가 취소했다. 그건 뒤늦게 눈에 들어온 손잡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민고민하다가 결제한 것은 결국 롯지다. 처음부터 롯지는 배제했었는데ㅠㅠ 하지만 계속 더 알아보다보니 소리야나기는 파이버fiber가공? 뭐 그런거 했다길래 차라리 잘됐다 했다. 쓰다보면 그 fiber가 결국 음식에 붙어나오고 뭐 이런이야기도 있던데 난 뭐 이런저런 가공한것보다 그냥 통짜의 무쇠주물이 좋으니까.

 

 

이렇게 왔다 ㅋ 사이즈는 8인치. 시즈닝 된 상태로 오는데 수세미로 빡빡 닦거나 소다를 넣고 끓인 후에 감자를 넣고 검은물이 나올때까지 기름에 볶아내고 닦고 다시 기름을 입혀서 써야한다는 인터넷 글들을 보고... 난 그런과정 다 생략. 시즈닝 됐다는데 뭐. 소다나 세제는 다 사용하면 안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냥 깨끗이 물로 씻었다. 시즈닝 과정에서 엉겨붙은건지 덩어리 진 쇳덩어리? 같은게 그립 부분에 튀어나와 있었는데(위 사진에서도 보인다) 그런 건 미리 가위로 벅벅 긁어냈다 ㅋ 그리고 기름을 묻혀 닦아내봤는데 딱히 묻어 나오는 게 없어서 바로 기름을 얇게 입혀 연기 날때까지 구워냈다.

 

 

그리고 마끈을 감았다. 마끈은 feat.다이소. 소리야나기 팬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덕분에 돈 굳었다) 소리야나기팬은 그립에 구멍이 없어서 끈감기가 안 될 거 같아서. 내 손은 소중하니까 두 겹으로 감았는데 단단히 감는다고 감았는데도 1층과 2층이 살짝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뭐 쓰다가 나중에 다시 감지 뭐. 이렇게 감고 며칠 써봤는데 엄청나게 오래 가열하지 않는 보통의 요리를 해 본 결과 굳이 실리콘 손잡이나 주방장갑으로 잡지 않아도 괜찮다. 혹시나 많이 뜨거워졌다 해도 경고를 해 줄 정도의 방어막은 될 것이다.

 

 

대략 이정도의 크기. 나 혼자 뭐 해먹기는 괜찮은데 본격적인 주부용으로는 작겠다. 나도 쓰다가 나중엔 스킬렛이 아닌 좀 더 납작하고 큰 사이즈를 들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귀찮지 않다. 바로 찬물에 씻으면 두 쪽으로 쩍 갈라지는 기적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난 애초에 게으르기 때문에 요리하고 바로 찬물에 팬을 넣을리가 없다. 당장 씻지 않아도 전혀 답답하지 않다. 어차피 온도차가 문제인 걸텐데 다 먹고 나면 팬이 식었을테고, 그냥 보통 온도의 물에 아무것도 묻히지 않은 수세미로 살살 문질러 닦아낸다. 그리고 다시 가스렌지 위에 올려 물기를 날리고 올리브오일을 살짝 두르고 문질러 표면에 입히고 그을린다. 

 

①쓸 때는 예열한다. ②씻을 때 세제는 쓰지 않는다. ③다 쓰고 난 후엔 기름으로 코팅을 해 둔다. 결국 이 세가지만 잘 지키면 되는 듯.

 

아직 계란후라이는 안 해 봤지만 여태 음식이 눌러붙는다거나 과하게 탄다거나 한 적이 없어서 대만족. 무엇보다 중불만 써도 요리가 충분히 되며 온도가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유지된다. 래스팅같은거 할 때도 좋고 하여간 좋다. ㅋ

 

 

 

 

동시에 주문한 건 스타우브의 베이비웍.

 

 

이건 오로지 감바스 알 아히요를 해먹겠다는 이유로 산 건데 ㅋ 아직은 안 해 먹었다. 처음 롯지 스킬렛을 받고는 어라? 이정도로 작은 크기라면 베이비웍은 안 사고 걍 원소스 멀티유즈를 해도 됐겠는데? 싶었으나 막상 베이비웍이 도착하니, 아냐아냐 역시 모든 물건에는 그 쓰임이 있는 것을. 팬은 팬, 웍은 웍.

 

 

캬. 예쁘다. 근데 이것도 손잡이에 마끈 잡아야 할 듯. 보통 조리기구 쓰던 습관이 남아서 무심결에 맨손으로 잡아버릴까 겁난다. 그럼 치이이익- 하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ㅠㅠ

 

 

사이즈는 이렇다. 딱 원하던 사이즈. 롯지는 1.5kg 정도 되는 것 같고, 베이비웍은 뚜껑 빼고는 900g정도? 뚜껑 얹으면 1.3kg 정도 되는 듯. 이것도 개시를 해야 할텐데...집에 모든 재료가 다 있으나 대하를 사러 가기 귀찮아서 안 해먹고 있다. 물론 대하 철이 아니기도 하고.

 

아무튼 장비빨은 무시할 수가 없다니까.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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