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의 토요일.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정말 피곤했던 한 달이었다.

 

 

11월 5일 토요일. 중고생연대의 등장. 정말 멋있었다. 얘네가 등장하자 모두가 길을 비켜줬고,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은 매우 예의바르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지나가는데 정말 죄송함이 느껴져서 안 죄송해도 돼- 라고 대꾸했다. 집회에서 돌아가는 길에서는 역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광화문 뒷골목에서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들고 청소하는 모습을 보았다. 집회 후 남은 쓰레기를 먼저 처리하는 본보기를 보인 건 단연코 중고생들이었다. 멋지다 우리나라 학생들.

 

 

내 앞을 지나간 한 남성. 저 실루엣 때문에 임산부 or 애기아빠의 인상으로 남아있지만 이 분 굉장히 젊으시다. 이 사진 찍을때 주변 모두 꺄악 꺄악 난리였다. 집회동안 곳곳에서 우리가 가진 힘은 여유와 유머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날은 안국동부터 광화문 일대까지 차벽이 촘촘했다. 행진은 광화문부터 종로 3가까지 걸어갔는데 들어야 할 청와대가 듣지도 않는 거기서 퇴진구호를 외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뜬금없는 경로의 거리행진이었다.

 

 

 

11월 12일 토요일.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무대가 마련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광화문은 여전히 차벽이다. 이 날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전세버스가 모두 매진되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있고 유명인사를 많이 본 날이기도 하다. 박원순 시장을 보았고, 노회찬 전 의원을 보았고, 표창원 의원도 보았다. 앞뒤로 많은 사람들로 다리를 펼 수가 없어서 집에 오니 고관절이 너무 아팠다. 내내 앉아있다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행진을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까지 앉아있는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모든 골목마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회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내자동 로터리까지 행진했다. 내가 통인시장 기름떡볶이를 사러 가는 길, 광화문 폴앤폴리나에서 빵을 사는 그 익숙한 길이 차벽에 막혀있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지난주같은 뜬금없는 경로가 아니었다. 모두가 동시에 소리를 지르면 청와대까지 들리는 거리에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

 

건물 뒤 공간에서 아픈 골반과 고관절을 쉬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옷? 싶었으나 나만 알아보고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못알아보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 목소리 들으니 맞다. 인사하고 나면 그 이후에 앉아있는 상황이 너무 서로 뻘쭘할거 같아 내내 가만히 있다가 일어날때 다가가서 조용히 인사했다. "작가님. 팬입니다." 그러자 수줍게 몸을 반쯤 일으켜 아. 예. 라며 고개를 숙여 화답하셨다.

 

폐끼치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 주변에서 알아봤을지도. 그런데 정말 왜들 못알아보지? 무한도전에도 나오셨고, 그 모습 그대로인데??

 

다시 광화문광장을 지나 시청쪽으로 지나가는데 이승환이 노래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바로 그 자리에 깔고 앉아서 조금 더 따라부르다가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팬이었는데, 내가 그들의 가치관이나 정견을 기준으로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좋아했던 뮤지션들이 정치적으로 실망스럽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랬다면 내 사람보는 눈에 절망했을 거야. 나뿐이 아니겠지. 또 한 명 떠오르는 뮤지션이 있었다. 살아있었으면 반드시 가장 먼저 저 무대에 섰을 사람.

 

집으로 돌아와 오마이티비, 팩트티비를 보니 차벽에서 대치중인 경찰과 시민의 모습이 보였다. 경찰차 위로 올라간 시민인지 쁘락치인지들에게 시민들은 비폭력!과 내려와!를 외쳤다. 그 목소리에 섞여 있는 감정은 울분이다. 그동안 쁘락치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비폭력평화시위가 난도질당했었냔 말이지. 우리는 그게 음모론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제 우리가 절대다수다. 쁘락치들로 조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11월 19일 토요일. 여전히 무대는 세종대왕상 앞, 세종문화회관 근처. 이 날은 주기상 컨디션 최악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기 앞의 빈 공간에 들어와 앉으라며 손짓해주어 앉았고, 뒤의 사람들이 일어나며 우린 지금 일어나니 이제 편하게 다리 뻗고 앉으라고 말해주었다. 주문했던 LED 촛불이 배송되어 처음으로 써봤는데 처음엔 밝아서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밝기가 줄어들었다. LED가 아닌거군. 그냥 건전지 촛불인것으로. 그리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클래식이 정답이다. 다시 아날로그&오리지날 양초를 들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이 날은 몸상태가 워낙 안좋아 행진은 무리였다. 교보문고에 들렀다 나오는데 길에 전인권의 목소리가 말 그대로 거리에 '울려' 퍼졌다. 음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말은 발음이 웅얼거려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려면 집중해야 하고 노래인지 외침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목소리. 그런데 정말 독보적으로 감동적이더라. 나와 반대편으로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다.

 

 

11월 26일 토요일. 비 소식이 있긴 했지만 눈이 올 줄이야. 커뮤니티들마다 힘 빼는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이런 날씨엔 안나가는 게 답이다.', '오늘 사람 적겠네요.' 그 말이 빡쳐서 나갔다. 진짜 바람불면 꺼지고 날씨 궂으면 안 나오는게 촛불이라고 생각할 게 뻔한 그들의 표정을 생각하니 빡쳐서. 늘 이쯤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화면이 딜레이된다 싶더라니 저게 무대가 아니었다. 무대는 광화문 앞. 늘 무대가 있던 이 곳에는 대형화면이다. 집회 나올때마다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청와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건전지촛불은 필라멘트가 끊어졌는지 맛이 갔다. 급한대로 촛불앱을 다운받아서 들었다. 역시 아날로그가 답인가. 돈은 얼마 안하지만 이런 소모품을 또 사기가 싫어졌다. 정말 추웠다. 바람이 불고 코가 시리고 이런 게 아니라 젖은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오고 무릎이 시렸다. 붙이는 핫팩을 배에 붙여서 그나마 조금 버틸만 했는데 엉덩이가 차가워서 진심으로 내 내장기관들이 걱정됐다. 제발 알아들주시길. 잘못 찍힌 도장 한 번의 대가와 연대책임이 이렇게 큽니다 여러분.

 

이 날은 4시 행진하고 6시 문화제 시작이라 분위기가 영 어수선한것이 늦게 자리잡혀서 체감하는 사람수가 전혀 많게 느껴지지 않았다. 날씨탓인지 함성소리 메아리도 작게 느껴져서 사람이 얼마나 모였는지 걱정됐다. 이번 주는 150만 목표라 하더라. 그동안의 추세로 봐서는 200만도 될거라 예상했는데 왜 겸손하게 잡는거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날씨 때문에 100만도 안될까봐 걱정돼 통신사정으로 로딩되지 않는 뉴스를 계속 새로고침하며 들어가봤다. 다행히 160만을 넘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행진이 허용되었다. 골목길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세종대왕상을 지나 광화문으로 직진했는데 뻥 뚫려있었다. 내자동 로터리를 지나 청운동쪽으로 행진했지만 너무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은 멀뚱멀뚱한 상태로 모여드는 중이었다. 밥먹으면서 티비를 보니 좀 늦게 대열이 정비되고 사람들이 질서있게 집회를 하고 있더라. 그 와중에 채널이 TV조선이길래 JTBC로 바꿔달라고 했다.

 

살면서 십년 단위로 생각해보니 시위도 많이 변했다. 화염병과 최루탄을 보았고 분신도 보았다. 미선이 효순이때 처음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이제 너무도 당연히 촛불과 함성, 행진이다. 평화시위. 비폭력집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게 여러 번 반복되니까 긴가민가 했던 시민들이 가족단위로 나온다. 처음엔 무섭다고 위험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집회에 나와도 시위에 참여해도 안전하다는 걸 느낀 사람들이 자기가 경험한만큼 점점 더 많이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백만이 넘게 모여 큰 흐름이 된다. 폭력시위는 얼핏 강할 것처럼 보이지만 공포와 두려움을 밑바탕에 깔고 있고 그 다음을 보장할 수 없게 만든다.

 

매주마다 변하는 행진 허용 범위를 보며 느낀다. 시민들이 나와서 서로 연대를 확인하며 성숙해가는것이 눈에 보인다. 이 성공경험은 투표로 뽑은 정치인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걸 한 번 경험하면 뒤로 퇴보하기도 쉽지 않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걸 생각해봤을 때,  이 속도의 성장이면 희망을 가질 만하다. 물론 장기전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힘들어도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음날 웃으면서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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