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왜 박해일이어야 했는가.

 

 

은교를 본 건 아마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 보게 된 예고편에서

김고은이 너무 매력적이라 저건 보고싶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감독이 김고은보고 눈에 요사스러움이 있다고 했댔나.

하여간 뭐 비슷한 표현을 했는데.

아마 나도 여우에게 홀리듯이,

김고은의 표정과 눈빛에 홀려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핵심은 극중 인물들의 대사를 두 번만 빌리면 압축될 수 있다.

서지우가 싸인회에서였나, 지도 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했던 말.

"사물은 하나인데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은교가 했던 말. 은교는 이 말을 영화를 통해 두 번쯤 한다.

"할아버지. 저는 제가 그렇게 예쁜 앤 줄 몰랐어요. 예쁘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안나도 뭐 대충 뜻이 그렇다.

 

 

 

영화는, 카메라는 정말로 집요하게도 은교의 몸 구석구석을 애틋하게도 훑는다.

은교의, 한 줌도 안 되게 손에 잡힐 듯한 발목부터

넋을 놓고 자고 있는 여고생의 쇄골언저리부터 가슴팍.

들어올려진 교복 상의 사이로 살짝 드러난 탄력있는 허리, 피부의 솜털, 말랑말랑한 발뒷꿈치까지.

아.... 정말 예쁘다. 눈부시다. 어쩌면 저렇게 고울까. 탄력있을까.

마치 내가 이적요인듯이.

몸에는 검버섯이 피고 배가 늘어진 70대 노인의 시선으로 보기라도 하는 듯이.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박해일은 미스캐스팅이었다. 더 노인이었어야 했다. 이런 말들을 한다.

물론 박해일은 절대 70대 노인으로 보이지 않고,

아무리 노인처럼 말을 해도 목소리가 젊으니 영화의 몰입에 적응을 좀 해야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영화를 보다보니 '저래서 박해일이어야 했구나'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박해일이어서 좋은 건지를 생각하게 됐다.

 

 

70대의 이적요는 너무도 마시고 싶은 젊음의 기운, 돌아가고 싶은 그 순간을 은교를 통해 가진다.

마음은 아직도 달리고 싶은데, 가뿐하게 뛰어넘고 같이 웃고, 같이 미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그는 너무 성공했고, 70대의 노인이며, 은교는 그를 할아버지라 부른다.  

하지만 은교랑 있을때의 이적요는 노인의 껍질을 쓰고 있을 뿐, 눈을 감으면 자신이 청년인 것처럼 느껴진다.

 

노인인 박해일이 갑자기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듯이, 해사한 얼굴로 뛰어다닐 때

그 절절한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너랑 뛰고 싶다. 웃고 싶다. 몸에 있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검은 점들이,

얼굴의 늘어진 피부가,  늙어버린 몸이 괴롭고 억울하다.

내 마음은 이렇게 가벼운데. 젊은데...

70대의 이적요를 더 나이든 배우가 연기하고, 청년 이적요를 다른 젊은 배우가 연기했다면

아마 이 장면에서의 몰입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돌려 생각해보니 그렇네.

실컷 누리고 살아서 나이들었는데 그걸 또 누리고 싶다고,

그 젊음의 맛을 또 보고 싶다고 칭얼대는 건 반칙아냐? 그땐 뭐하고?

 

그러니까 한 시간이라도 젊을 때 실컷 놀자.

열심히 나다니고. ㅋ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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