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 앤 프린세스 (Princes et Princesses, 1999)



개봉 때부터 보고 싶었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십년(!!!)이 넘어서야 보게 되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밤이 되면 한 소년과 소녀,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자 이렇게 세 명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어 연극같기도 하고 영화같기도 하고 혹은 시공간을 이동해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시작은 셋 다 작업실 같은 분위기의 책상앞에 앉아 있다.
간단한 설정을 짜고, 자료를 입력하면 변신기계(?)가 그들에게 맞는 의상과 소품을 입혀준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장면이 전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된 이 이야기들에는 거의 왕자와 공주가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에 제목은 왕자들과 공주들.

첫 에피소드는 EBS에서였나..어디선가 더빙판으로 봤는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엇- 하고는 그냥 푹 빠져서 보고 말았다. 풀밭에는 111개의 다이아몬드가 흩어져있다. 다이아몬드를 한 개라도 집어 드는 순간 모래시계를 든 공주와 공주받침대-_-; 괴물로 이루어진 패키지가 나타난다. 공주는 마법에 걸려 움직일 수 없고 시계속의 모래는 떨어진다. 모래가 떨어질 동안 다이아몬드를 모두 주워 한 개는 공주를 지키는 괴물의 입에 던져줘야 하며 나머지로는 목걸이를 완성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개미로 변한다. 

아마 나는 시간 내에 목걸이를 만들 수 없겠죠. 개미로 변해버린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만 당신을 구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라며. 용기와 계획으로 무장한 비장한 결심이 아니라 마치 체념처럼 들리는 소년의 목소리와 무거운 몸짓.. 안되겠죠. 당신도 못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왜 다이아몬드를 주워들었나요. 내가 경고했는데... 당신도 개미로 변하고 말 거예요. 라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살짝 배어나는 공주의 목소리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게다가 섬세하고 장식적인 선과 아름다운 실루엣, 최소한의 색채를 사용했는데도 늘 저녁같고 황혼같고 새벽같은 시간적 아름다움, 그 색채를 돋보이게 하는 블랙.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공돌이스러운(ㅋㅋ) 마녀(?)가 나오는 이야기. 마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성의 스프링쿨러를 작동시키고 심지어는 성 자체가 쿠구궁- 하며 위로 솟아오를때는 나도 모르게 브라보!!! 하며 박수를 쳤다. 손님을 기꺼이 맞아들여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을 이리저리 구경시켜주는 것도 신선하고. 하지만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건 첫번째의 목걸이 이야기였던 듯. 그건 모래시계 때문이기도 한데, 나는 모래시계라는 아이템 자체에  좀 매료되는 것 같다. 뭘 모으는데는 소질이 없다보니 모래시계를 모을 생각은 애시당초 접었지만(한때는 했었단 얘기) 특히 이 애니메이션에서 공주가 정지된 자세, 고정된 팔로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모습에는 뭐랄까. 모순이랄까 역설이랄까 그런게 있다. 모래시계는 움직이지만 공주는 움직이지 못하고, 모래시계는 초조하게 시간을 재촉하지만 공주는 포기와 체념때문에 조급하지 않다. 그게 묘하게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