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27 여행의 끝은 여행기의 완성

여행의 여운이 채 가시기전에 후다다닥 여행기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은데, 갈수록 여행기를 쓰는 것이 귀찮아진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사진을 봐도 이게 왜 찍은 사진인지, 이 때 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처럼 촘촘하게 일어서 모든 것을 예민하게 느끼던 감각들이 다시 스르르륵 내려앉아버리고 비일상은 다시 일상으로 변해버린다. 그러니까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지금, 빨리 하나라도 더 지난 여행기를 글로 써내야 한단 소리다. 그렇지 않으면 데이터를 덮어씌운 것처럼 예전의 여행기억은 흐릿하고 둔탁해질걸.



몇 번의 여행으로 나는 나를 좀 더 잘 알고 있는데 일단 여행할때의 나는 이렇다. 


  • 숙소는 크게 상관이 없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고, 깨끗하게 씻고 잠만 푹 잘 수 있다면 부대시설이나 조식여부를 전혀 따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숙소 예약은 내가 하면 안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여행다닐 땐 거의 안 먹는다. 식사를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때론 없으며, 군것질도 거의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 한 끼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대충 떼워도 된다. 현지음식에 매우 적응을 잘하며 오랜 여행중에도 딱히 한국음식이 생각나는 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행인이 뭘 먹자 해야 된다. ㅋㅋㅋ

  • 엄청 걷는다. 걷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여행 가면 특히 그렇다. 웬만한 거리는 걷는 것을 넘어  서서 웬만하지 않은 거리까지 걷는다.

  • 교통편을 알아보는 것에는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지도를 잘 보고, 길눈이 밝고, 동선을 짜는 데에 소질이 있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걸 위주로 사고하는 능력이 발달한 것 같다. 그렇다고 급하게 움직이거나 교통편을 놓치는 일도 거의 없는 걸 보면 이쪽은 확실히 특화되어 있다. 게다가 여행지에 가면 판단력이 매우 빨라진다. 한국에 있을때는 확실히 약간 멍~한 상태로 사는 것 같다 ㅋㅋㅋ

  • 자연, 풍경이나 전망을 보는 것보다는 인간이 만든 걸 좋아한다. 잘 짜여진 것을 좋아하고 인간의 노동력을 말도 안되게 때려넣은 극강의 예술품이면 더욱 좋아한다.


이번 여행을 같이 간 T와 K에게 먼저 이것을 분명히 했다. 숙소예약은 꽝임. 먹는 것도 잘 안챙겨서 너네가 챙겨야 함. 그러나 교통과 동선에는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제법 소질도 있으니 그건 확실하게 가이드 하겠음. 10년전이지만 그래도 교토는 한 번 다녀왔으니 제법 잘 할 거임. 그리고 엄청 걸어다녀. 나랑 여행가면 살 빠지는 걸 보장할 수 있어 ㅋㅋㅋㅋㅋㅋ 일본어를 읽을 줄 알고, 한자를 제법 많이 알기 때문에 웬만한 건 대충 때려맞출 수 있어서 표지판을 읽거나 하는데에 불편함도 없을거야 ㅋㅋㅋㅋ 정 안되면 영어 쓰면 됨 ㅋㅋㅋㅋㅋ


T는 불안했는지 출발 전엔 매우 걱정이 많았고

- 뭐? 잘 안먹는다고? 초밥의 나라 일본에서???1일 5식은 해야지!!!!! 

- 뭐? 많이 걷는다고? ...................난 까페에서 쉬고 있을게 둘이 갔다와 ㅋ

- 일본어 잘 해? 뭐?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 음................. 

중간에 따로 다닐 생각까지 살짝 했던 모양이나, 막상 다녀보니 나에게 커다란 감명을 받아 ㅋㅋㅋㅋㅋ 안그래도 나를 좋아했는데ㅋ 더욱 좋아하게 되었으며, '너랑 여행 다니니까 너무 좋다. 앞으로 니가 여행가자면 어디든지 따라갈거야' 라고 외치는 매우 강력한 나의 빠가 되었다 ㅋㅋㅋ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난 너랑 여행간 거 너무 좋았어. 또 가자-를 말하고 있다. ㅋㅋㅋ 




이렇게 매우 좋았던 봄교토여행의 시작은 업무 땡치자마자 카카오택시 불러서 잡아타고 바로 김포로 슝- 하는 것으로. 일본 출국은 김포가 짱인듯요. 여유롭고, 사람 안많아서 쾌적하고. 한 번도 택시타고 공항에 간 적이 없어서 내심 불안했는데 매우매우 널럴했다. 면세품이 워낙 많아 몇 번에 걸쳐 정리하고 비행기 출발. 


간사이공항의 길게 늘어선 줄에서 출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순간, 포켓와이파이에 연결했고, 연결된 휴대폰 카카오톡에는 200개가 넘는 메시지가 들어와있었고, 공항내의 TV에는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내내 비춰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장면은 도보다리회담이었다. 나는 무슨일이지? 하고 메시지를 읽다가 저 멀리에 서 있는 T에게 입모양으로 "헐!!! 종전선언했대!!! 대박!!!" 이라고 계속 말을 했으나 T는 알아듣지 못했고, 엉뚱하게 내 옆에 서있는 한국인들만 놀라고 또 웃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제일 안 반가워할 일본에 와 있구나!!!!!!!!!! 물론 나중에 종전선언은 그렇게 간단히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간사이공항에 도착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올라가면 하루카특급을 탈 수 있다. 한국에서 미리 사둔 건데 이코카패스는 안샀고 하루카특급+교토1일버스권을 묶어서 샀다. 출발 3일 전인가 소셜로 구매, 이틀 후 직장으로 택배 받았다. 결론적으로 이 구매는 딱 좋은 선택. 세가지 가량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이쪽이 가장 체력적으로, 시간상으로도 이후의 일정에 맞는 것으로도 최선이었다. 


서비스로 교토버스노선도를 넣어줬는데 막상 여행다니는 동안은 거의 안 썼고, 출발 전 동선 생각해 계획 세우고, 대략의 이동경로 파악할 때 매우 유용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이쪽엔 소질이 있어서 동선을 짜고 이동경로를 생각해두면 머리에 그림지도처럼 그게 딱 픽스가 된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데 하여간 된다. 나에겐 자연스러운일이니 다들 나 같은 줄 알았는데 이 사람 저 사람 같이 여행다녀본 결과 그건 아닌것 같더라.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했는데 게이한 시치조역과 매우 가까운 곳. 정말 매우매우매우매우 가까운 곳 ㅋ. 위치가 워낙 좋아 마지막 날 오사카로 출발할 때도 바로 이동해서 좋았고 교토역과도 당연히 가까워서 여행 내내 거점역할을 제대로 했다. 이 위치가 너무 마음에 들어 가을 교토여행도 시치조역 근처로 잡으려고 했으나 인원도 다르고 디테일도 다르다보니 가을엔 다른곳으로 ㅎ 역시나 내가 안했기도 하고 ㅋ


교토역에서부터는 캐리어를 끌고 도보로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미리 짐을 좀 정리했다. 면세품이 너무나 거추장스러워서 T와 K가 편의점에서 물을 사는 동안 나는 뽁뽁이 비닐과 커다란 박스를 웬만큼 버리고 캐리어에 쑤셔넣었음에도 여전히 많았다. 얼른 가서 다 정리하고 박스 다 버릴거야가 해야할 일 1순위. 도착하자마자 면세품부터 정리하고 씻고 푹 잤다. 


나는 이때 직업병으로 인한 ㅋ 목감기가 서서히 심해지는 때였고, 계속 기침이 나고 목이 아팠다. 다음날부터는 목소리가 완전히 맛이 간다. 출발 며칠 전 이비인후과도 다녀왔고 약도 챙겨와 꾸준히 먹었지만 걍 여행 내내 목상태가 좋지 않았다 ㅋ 그러나 다행히 열이나 몸살은 없어서 조금 불편했을 뿐 열심히 다니는데에 지장은 없었다.


이 날은 제대로 도착한 것으로 해야 할 일을 다 한거고, 그거면 됐지.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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