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Special 마음


-침팬지에게는 마음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저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고
침팬지의 마음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침팬지에게는 자아(self)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적어도 초보적인 형태로 거울을 보고 자신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개, 공작은 이렇게 못합니다.

위의 대화에서 답변자인 마츠자와 교수가 정의하는 마음의 3요소는 이렇다.
사물을 아는 지성, 느끼는 감성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의지력. 그래서 마츠자와 교수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침팬지에게 지능, 감성, 어쩌면 의지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그들(침팬지)의 마음을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자신의 마음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것과 다른 당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으며,
당신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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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세이메이처럼 오버하다간 유비추리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이 6부작 다큐멘터리를 약 6개월씩의 시간간격을 두고 세 번을 봤는데 매번 1편부터 5편까지는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오이를 싫어해서  오이 한 조각 때문에 김밥 하나를 들고 20분을 징징대다가 겨우 입에 넣고, 이제는 뱉겠다고 또 징징-_-거리는 사람이 최면치료 후에는 오이를 청양고추라고 생각하며 맛있게 아삭아삭 먹는다든지(진짜 청양고추라고 생각한다면 매워해야 하는거 아냐?), 매일 밤의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실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둔 메달리스트들의 이야기라든지, 암과 함께 살아가는 암환자이자 암전문의인 의사의 이야기 같은 건 실제 생활에서 컨트롤 할 수 있는 여지를 조금 더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매일 자신에게 명상의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비움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겠고, 마음/정신의 매커니즘을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등의 여러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본다.

REM수면때 정보가 재편성되어 정리된다는, 딱히 알아서 뭐 어떻게 써먹을 수는 없지만 아하!그렇구나 식의 지식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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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마음, 몸을 지배하다.
                                                                             2편-생각하면 이루어진다.
                                                                             3편-무의식에 새겨진 마음을 깨우다.
                                                                             4편-기억을 버려라.
                                                                             5편-편안한 마음이 좋습니다.
                                                                             6편-당신을 용서합니다.
 

다만. 내가 세 번째 보면서도 여전히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6번째. "당신을 용서합니다." 편 인데, 도저히 혹은 웬만해서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용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경우라서..정말 대단한 이들이다.

그런데,...용서받을 사람이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먼저 용서란 게 성립될 수 있는 걸까? 그러니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뉘우치지도, 반성하지도, 찾아와 사죄할 생각도 아직은 없는. 혹은 본인이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는 상태인데 피해자 혼자 '나는 그 사람을 용서했어요' 라고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그게 자꾸 포기처럼 보인다. 용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괴롭고 힘들어 살 수가 없으니까 할 수 없이 선택하는 생존반응처럼 생각되고, 용서한 그들의 얼굴이 편하다거나 행복해보이지가 않았다. 용서는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해주는 거여야 맞을 것 같은데, 여전히 약자의 입장, 혹은 딱히 강자라고는 할 수 없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먼저 용서해준다는 게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마땅히 하는 것이 '진짜 용서' 라고 한다면 정말 할 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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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어퍼컷 한방 먹일 기회가 세상 살아가면서 꼭 한번씩은 찾아와주었으면 좋겠다. 그때 돼서 '됐다. 난 이미 그 정도쯤은 영향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스케일 큰 삶이 궤도를 그리고 있으니 그냥 용서한다'고 하든, 아니면 시원하게 퍽- 때려눕히든. 그저 미리 용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날이 올때까지 이 악다물고 살았으면 좋겠다. 용서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강자의 입장이 될 수 있도록. 너무 잘 용서해주니까 뻔뻔하게 잘못한 거, 미안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삶은 삶대로, 용서는 용서대로. 안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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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나중엔 나도 이렇게 생각하게 될까? 그래도, 정의부터 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바람부는 복수, 받은대로 갚아주마는 아니더라도 반성이 좀 있어야죠, 용서부터 챙기지 말고요. 당신 계신 거기는 정의도 평화도 용서도, 더 이상 의미없는 곳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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