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리갈'에 해당되는 글 2건

  1. The Practice 2007.07.01
  2. 드라마 vs 현실 2007.02.19

The Practice



집합 A,B,C의 벤다이어그램을 그리고 각각 재미있는 드라마, 진지한 드라마, 생각하길 요구하는 드라마라는 주제를 넣어본다고 가정하면, 뭐 더 수많은 집합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건 그냥 전제로 깔자. 그러면 그 가운데 삼각형처럼 생긴, 세 집합의 교집합에 들어가는 얼마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가 바로 이 The Practic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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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경에 우리나라 케이블에서도 Boston Justice라는 이름으로 잠시 방영되었던 이 드라마는 프로듀서인 David E. Kelly(미셸 파이퍼의 남편으로도 유명한)의 법률(혹은 법조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 시리즈 중 하나다. 본인이 대학때 법학을 전공한 이력 때문인지 이후로도 이 주제에 꽤나 큰 애착을 가지는데 이 진지하기 짝이 없는 The Practice와 엉뚱한 변호사들의 이야기인 Ally  McBeal이 97년부터 거의 동시에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뇌를 완전히 분리해 전혀 상반된 성격의 두 가지 일을 함께 해내는 사람을 보는 것 만큼이나 놀랍다.

앨리 맥빌의 경우 국내 방영제목인 앨리의 사랑만들기가 더 정확한 제목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말랑말랑하고 코믹한 '변호사가 연애하는 이야기' -등장인물이 전부 싸이코인 드라마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라면, 프랙티스의 경우에는 유머나 조크를 거의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만큼 배제시킨 냉정하고 건조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 두 시리즈는 중간에 크로스오버 에피소드도 가지고 있는데 프랙티스 쪽의 이야기는 못봤고 앨리 맥빌 쪽의 이야기는 봤다. 그땐 프랙티스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므로(지금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 DVD도 판매하지 않으며 transcript 조차 별로 없다.) 이 드라마가 무척 궁금했던 난 오로지 이 에피소드를 보기 위해 앨리 맥빌을 봤는데... 매우 실망이었다. 앨리 맥빌의 분위기에 적셔진 (진지하고 이상적이던) 변호사 바비 도넬이라니.

프랙티스는 8시즌까지 진행되는 중에 큰 축이 되던 인물들이 빠지고 초반의 젊고 열성적이던 인물들이 점차 돈과 권력을 추구하게 되는 등 처음의 순수함을 잃어가는 모습-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처음부터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그저 현실적으로 순수한 변호사들이었다-에 팬들이 실망도 하고 팬층도 빠져나갔던 모양으로, 8시즌에 구원투수처럼 투입된 인물이 바로 James Spader가 연기하는 앨런 쇼어다. 그러나 기존의 프랙티스의 팬들은 이 앨런 쇼어의 이죽거리는 캐릭터,  그를 중심으로 갑자기 몰아가는 분위기에 더 빠져나갔고, 그럼에도 그의 강한 흡인력에 오히려 새로운 팬들이 생긴 듯한데 David E. Kelly의 선택은 아예 그 쪽으로 밀어주자였나보다.

그래서 여기서 파생된, Spin-off 시리즈가 바로 현재 3시즌까지 방영된 Boston Legal이다. Boston Legal은 프랙티스가 던지는 이슈와 앨리 맥빌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싸이코 캐릭터들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프랙티스의 팬들은 대체로 싫어하거나 실망하는 편이고, 앨리 맥빌을 즐기던 사람들은 좋아하는 듯.

사실 쓰고 싶은 포스트는 Boston Legal에 관한 것들인데 그러려면 The Practice가 먼저일 것 같아서. 매우 띄엄띄엄 쓰겠지만 "아- 정말 재미있었다-" 류의 감상기가 아닌, 뭔가 뇌세포가 운동한 흔적을 남길 생각인데 역시 결과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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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vs 현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이 시트콤은 끝날 때가 되자 노홍렬(이홍렬)에게 대대적인 서비스를 한다. (Ep.292)

노홍렬은 아내를 사별하고 딸 민정이를 키우며 홀로 오랫동안 살아오다 옆집에 이사 온 미나엄마 배종옥을 짝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짝사랑의 기간동안 그는 좋아하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오랫동안 배려해 주고, 몰래 도와 주는 등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종옥은 그런 디테일까지는 알지 못한 채 그저 그의 마음이 오래 쌓여 온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결혼해 살던 어느 날.

홍렬이 먼 곳으로 잠시 여행? 출장?을 떠난 사이 종옥은 홍렬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자기가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으며, 홍렬의 깊은 마음&숨겨진 많은 일들이 많은 사건 뒤에 있었음을 알게 되고 감동한다. 홍렬이 예정보다 일찍 들어와 종옥을 놀래주려 하다가 종옥이 자신의 일기장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토라지지만 종옥은 비로소 홍렬이 그렇게 듣고 싶어했던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캐릭터가 흔치 않게 발견된다. Boston Legal의 James Spader가 분한 변호사 앨런 쇼어. 판사에게는 '당신은 법조인의 수치'라는 말을 듣고, 동료에게는 '당신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힘이 있어요' -_- 등등 칭찬 아닌 칭찬을 듣지만... -_) 그가 진짜 사랑한 여자(이름 까먹었다)에게 '당신 속에는 세 명의 앨런 쇼어가 있어요. 착한, 나쁜, 그리고 개구쟁이 앨런.' 뭐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앨런은 자기가 사귄 그 수많은 여자들 중에 그녀만이 드물게 자신의 core까지 들여다 보고 진가를 알아 주는 것을 알고 티는 안 내지만 하여간 흐뭇해한다.

아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그런 여자 캐릭터로는 유일할 듯한. 얼마 전 끝난 환상의 커플 조안나.
조안나는 건방지고, 싸가지없고,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의 진면목을 꿰뚫어 볼 줄 알고, 사건의 진실을 포장없이 대하며 그걸 그대로 얘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려서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고 모든 가족을 잃은 그녀는 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안다. 유일하게 가족으로 생각하는 남편 빌리마저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녀를 오해하지만 운 좋게도, 우연히 만난 장철수는 그녀를 동등하게 대하고, 그녀 또한 기억상실 이후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며 제대로 된 관계를 맺어간다.

특히 그녀가 멋진 점은, 그녀가 돈이 많아서 돈의 힘을 믿고 당당했거나 싸가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조안나건 나상실이건간에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 기억을 잃고 돈 한푼 없는 입장에 서 있어도 당당하고 할 말은 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캐릭터 중 최고는 아다치 미츠루의 H2에 나오는 쿠니미 히로. 굳이 히로 뿐 아니라 아다치의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은 거의 이런 패턴으로 행동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히로의 진가를 알아 준다. 정말 모두 다.




하지만 현실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 혹은 관계 속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를 더 믿고, 겉으로 보이는 것에 더 신경쓴다. 숨겨진 의도나 어떤 행동이 있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같은 것이 저절로 드러나는 일은 더욱 드물고, 드라마나 만화에서처럼 변호해 주는 조연도 없으며, 친절한 카메라도 비춰주지 않는 현실의 캐릭터들은 오해 받거나, 묻혀 버린다. 그렇다고 지 입으로 다 얘기하고 다니면 찐따에 열라붕이고 -_)

어쩌면 그건 세상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기 짝인지 아닌지, 내 사람인지 아닌지를 재빨리 판단하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니까. 즉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쪽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속에서 긴 시간과 많은 사건을 함께 해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저런 마라톤형 캐릭터들은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일 일지도 모른다. 뭐, 그냥 사람이란 다른 사람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하여간 저런 사람을 만나려면 대단한 혜안을 가지던가,  소가 뒷 걸음질 쳐도 쥐를 잡을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나거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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