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재능. 책 읽고 잡소리.

 

 

 

어렸을 때 가장 자주 들은 질문 중의 하나는 "넌 꿈이 뭐니?" "장래희망이 뭐니?" 이거였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가 아니라.

 

나는 어렸을때 꿈이 없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이 질문이 매우 짜증났다. 아니 대체 태어난지 얼마 안돼 아직 세상도 모르겠고 나도 모르겠는데 미래 따위 알 게 뭐람. 언제나 대충 적당한 대답을 둘러대곤 했다. 그래서 별로 되고 싶지도 않은 피아니스트 라든가, 과학자 같은 걸 써내곤 했다. 그러면 어른들도 별 말이 없으니까. 아무리 어려도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서혜경이라든가, 정트리오 얘기가 한창 신문에 심층기사로 나던 시절이란 말이지. 아 물론, 그들도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거나 과학자가 될 거라곤 생각 안했을거다. 심지어 어릴때 내가 생각했던 과학자는 로보트 태권브이 만드는 사람이었는 걸 뭐.

 

내가 나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을때, 그러니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뭘 할 때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 늦게 들고 좀 오래할 수 있는 인간인가를 생각할 능력이 됐을 때 나는 갑자기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 중 일부는 재능은 있으나 노력을 안해놔서 물 건너간 것들이었고, 일부는 제법 해볼만한 것들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나는 그 중 무엇을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나름 해냈을 것 같고, 나름 즐거워했을 것 같다. 좀 아깝기도 하다. 타이밍은 좋았는데 내가 준비가 안 되어있었던 것이. 뭐 바로 그게 재능이 없단 증거지만.

 

다만 단 한 번도 되고 싶다거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글쓰는 업이다. 정말 단 한번도 없다. 내가 글로 먹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굳이 마음을 먹었다면 비슷한 업계에 어떻게라도 발끝 정도는 걸치고 살 수 있었지 싶은데. 실제로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누구말처럼 작가가 엉덩이 힘으로 되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구말처럼 어떻게 글을 쓰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이 책을 읽으니 그냥 이건 재능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더 크게 든다. 이걸 27살에 썼단다. 어허허허허허허허

 

안 그래도 읽으면서 끝마무리가 허술하다든가, 어딘지 모를 치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생각은 했더랬다. 생각해낸 범죄방법이라든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같은 것도 좀 디테일하지 못하고 짧기도 하고. 그래도 그렇지 27살에 이런 걸 써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나라당 한 두 명일걸. 게다가 미미여사는 장편도 잘 쓰는데 단편도 잘 쓰고, 무서운 것도 잘 쓰면서 유머러스한 것도 잘 쓴단 말이지.

 

그런걸 보면 내가 그런 허황된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다. 강유원씨도 말했지만 진짜 비극은 바로 그런거지. 알지 못하고 하지 못하는 것, 혹은 알지 못하고 하는 건 비극이 아니다. 하지 못하는 걸 아는데 하고 싶은게 비극이지.

 

사실 내가 보기엔 미야베 미유키 같은 작가보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가 되기가 더 어려운 거 같은데. 미야베 미유키를 흉내내는 사람보다 하루키를 흉내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아이러니다. 아무래도 하루키는 세상에 좀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어쨌든 미야베 미유키도 굉장한 다작이다. 재능이 흘러넘치는 것 만큼이나 성실함이 흘러넘치는 건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그 자체가 재능이자 핵심인거지. 끊임없이 어떤 일에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재능. 계속해서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초점을 모아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들일 수 있는 재능.

 

나는 아무래도 소비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어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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