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리고 미니홈피나 트위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기-승-전-결 완벽하게까지는 아니라도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긴 글은 긴 글대로
군더더기 없이, 그러나 뚝뚝 끊겨 희미하지 않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완결된 형태로 쓰고 싶어서이다.
그게 잡담이건, 공연감상이건, 여행기이건.

그런데 요즘은 그게 통 되질 않는다.
일례로 올해 본 공연이 꽤 되는데 뭐 하나 제대로 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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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엔 김선욱 공연을 예매해놨다.
아마도 그 공연을 보고 나면 김선욱에 대한 내 마음이 정해질 것 같다.
계속 그의 공연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
뭐 그게 아니라도 당분간 그는 국내공연을 못할테지만.

여태껏 김선욱의 연주를 들으며 그 흐릿흐릿 잡힐 듯 말 듯 했던 것이 저번 공연에서 확실해졌다.
나는 매번 그가 구도자적인 자세로 피아노를 친다고 느낀다.
그가 생각하는 어떤 정확한 음이 있고 그는 그 음을 구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마치 과녁판의 좁디좁은 10점 영역을 겨누고 활을 쏘듯,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음의 지점이 있어 건반의 그곳을 정확하게 눌러야 하고
딱 그 정도의 힘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의 터치는 늘 힘들다.

그의 넓은 등과 어깨는 그가 얼마나 공들여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 
커다란 무게감으로 다가오고
연주가 끝나면 그는 언제나 탈진에 가깝고 이마엔 땀이 흐른다.
나는 그런 그의 연주자세에 감동한다.
그런데 그의 연주 자체에는???

모르겠다.

나는 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혹은 듣고 나서 마다 어느 특정 연주자를 생각한다.
땡기면 치고, 마음에 안들면 그냥 나가버렸다는.
그러나 어느 날 달빛이 마음에 들면 신들린 듯한 연주를 했다는.

김선욱에게 플러스 알파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기같고 안개같고 빛같아서 희미하고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
하지만 뭔가 영혼을 건드리고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

그런 것으로 나를 매료시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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