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말러


어젯밤부터 아바도의 말러 2번 루체른 영상을 몇 번 돌렸는지 모르겠다. 주말엔 쉴꺼야. 볼꺼야. 들을꺼야 작정한 만큼 열 번은 확실히 넘게 보고 들은 듯. 하지만 어딘가 부족해 텐슈테트의 LPO 89년 라이브 음반을 주문했다. 그러니 적어도 다음 주말까지는 계속 말러를 들을 것 같다.

심지어는 시크릿가든도 안 보고 말러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김주원이 더이상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말러가 김주원을 이겼다. -_- 혹은 시간에 쫓기는 게 눈에 보이는 엉망편집을 참을 수가 없어서인지도.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읎다.


내가 앞으로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뭐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나한테 말러하면 생각나는 지휘자는 텐슈테트다.
그건 아마 말러 1번 때문일 거 같기도 하다.

말러 1번을 좋아하게 된 게 텐슈테트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녹음 때문인데 이미 내가 음반을 구하려고 했을 때는 절판이었다. 지금은 라이센스반으로 나와있는 것 같지만.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어, 아는 사람이 보내 준 mp3 파일만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그땐 아이팟을 사기 전이라 컴퓨터 스피커를 통해서만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 언젠간 결국 구할 수 있을거란 걸 알았지만 그 언제가 언젠데! 참다참다 별 수 없이 차선을 택하기로 했다.

당시 내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말러 1번을 들었고 최종 후보에 오른게 쿠벨릭과 아바도였는데 결국 쿠벨릭을 샀다. 이 때문에 가끔 헛갈려 나한테 1번 아바도가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왜 쿠벨릭이었는지 지금은 기억 안 나지만 대략 생각해 보니, 내가 원하는 다이내믹에 가까운게 아바도보다는 쿠벨릭이었나보다. 아바도 녹음이 아마 병을 딛고 일어난 후 녹음이었던가 해서 좀 힘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아닌가? 아님 말고)

하지만 최선이 뭔지 아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택한 차선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적당히 타협하고 만족하려 해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나는 틈만 나면 텐슈테트+시카고 조합의 음반을 찾았고, 그걸 아는 모처의 실장님이 텐슈테트+NDR 녹음을 주긴 했는데(이게 당시엔 못구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또 모르겠다) 텐슈테트라고 다 같은 텐슈테트가 아니라서 이것도 역시 불만족이었다.


그러다가 쑴언니가 일본에 있을 때 HMV Japan에 있는 걸 확인하고 부탁해서 건졌다. ㅎㅎ 교토에 도착한 첫 날  방안에 짐을 내려놓고 씨디들을 주고 받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살다보면 아.. 정말 이건 그때 사길 잘했지. ┐(  ̄ー ̄)┌  하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이것도 그 중의 하나. 당시엔 환율이 쌀 때여서 지금 라이센스반 정도에 샀으니 가격도 딱 좋았고. :-) 쑴언니, 새삼 또 땡큐!

내가 가지고 있는 1번이 네 종류인데 쭉 들어보니 왜 이거여야만 하는지 알겠다. 제 1 바이올린, 제 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A음을 하모닉스로 연주하는 1악장 도입부에서 텐슈테트가 표현해내는 것은 딱 새벽의 그, 반쯤 투명하지만 서늘하고 날카로운 공기다. 공기가 깔렸다 사라졌다 하면 안 되지. 이건 말 그대로 하나의 시간+공간적 배경을 만들어 놓는 건데. 무언가 바뀌는 시점. 안개인지 수증기인지 얇은 막 사이로 저 멀리 풍경이 비친다. 뻐꾸기 소리가 들리고 새가 푸드득 날아가고 아침 햇빛도 비친다. 이 때의 햇빛은 꼭 구름을 뚫고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영화적 햇빛이어야만 한다. ㅎ

말러 1번에 TITAN이란 제목이 붙어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표제음악도 아닌데 나는 1번을 들을때마다 어스름한 아침안개 사이로 저 멀리 커다란 산이 보이고 큰바위얼굴이 (((((두둥))))) 하고 나타나는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_-

워낙 다이내믹하게 느껴지는 연주라 미처 몰랐는데 생각난 김에 러닝타임을 비교해보니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길다. 하긴, 다이내믹이 속도전일 필요는 없는 거지. 표현해내야 하는 것을 시간을 충분히 들여 연주해서 그야말로 입체적이고 생생하다.

오늘 다시 들어보니 3악장이 좀 아쉽긴 한데 흐름으로 보자면 뭐.  무엇보다 4악장이 최고다. 쿵쾅쿵쾅 때려주는 관악기 밑으로 슥삭슥삭 긁어주며 오르내리는 현악이 긴장감을 아주 딱 좋게 조성하고
다른 연주들처럼 관악이 튀거나 해서 전체적인 몰입에서 끌어내는 게 없다.

벌을 내리거나 응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복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태수난곡으로 하자면 비로소 자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난 후의 그날 밤 같달까. 혹은 반지의 제왕 전투씬 같기도 하다. 음음...이 쪽이 더 낫겠다. 그래야 그 다음 부분 연결이 자연스러우니까.

이제 또 2번 들어야지. 올해는 아무래도 연주회는 적게 가고 음반이나 영상으로 음악을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뭐. 그건 그거대로 또 괜찮겠지. 분기별로 맛있는 거나 챙겨먹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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