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이 날은 작정하긴 했지만. 진짜 반나절을 먹고 마셨네.

1시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30분 미루더니 또 30분을 미뤄서 2시. 
뭐 다행히 출발 전이니까. 나는 출발 전엔 한없이 대인배.  
그런데 약속장소에 가봤더니 없어. 5분 정도 기다렸는데 문자도 없어.
어.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너뭐믿고안오냐.얼른안날라왓?" 
바로 조금 후에 뻘쭘 웃음으로 나타나는 친구.

나중에 왜 약속시간을 미뤘는지 얘기했는데 그야말로 이 친구다워서 깔깔.
보통사람들 같으면 약간 게으름을 피거나 밍기적이 이유겠지만.
그래. 날씨가 이렇게 덥고 쨍쨍한데. 진짜 너답다.

사실 동네친구끼리는 동네에서 가볍게 이동하지 딱히 뭘 보러 간다거나 하는 게 아닌 이상 멀리 안간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는 친구쪽에서 먼저 제안한 삼청동.  

나는 4지선다형으로 보기를 제시하고 메뉴를 고르게 하는 짓을 잘하는데
이 날은 부첼라가 땡겼기 때문에 부첼라 부연설명이 길었고,
역시나. 보기가 길면 답이다. 아니 보기가 길면 답이 아닌가? 하여간 친구가 덥썩 물었기 때문에 부첼라 고고씽


이 날 삼청동엔 말 그대로 사람이 줄을 이었다.
요즘 삼청동은 어느 가게든 줄을 다 서있는 듯.
쏘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동네는 줄 안서면 자존심 상하겠다"
부첼라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앉았는데 머지 않아 여기도 줄서겠지..생각하면 좀..

이 자리는 굉장히 긴 테이블인데 한쪽끝에는 시식용 빵과 판매용 빵이 있고 한쪽 끝에는 2인용 좌석.
거기가 우리 자리.


일단 더우니까 물부터.


시식용 치아바타와 올리브+발사믹.
빵담는 하얀 접시는 옆에 따로 있었고 저 스뎅그릇은 사실 소스 그릇인데.. 음.. 내가 왜 이랬을까.
빵이 정말 따끈을 넘어 뜨겁고, 겉은 단단, 속은 쫄깃. 두 개나 먹어치웠다.


빵은 여기 뒤쪽 후드 있는데서 구워지는 거 같은데, 삼청점은 천창으로 햇빛이 들어와서 밝고
서브해주시는 분이 매우 친절해서 좋았다. 
EBS 갈 일 있을때야 매봉점이겠지만 여기 단골하고 싶어졌음.


prawn 샌드위치와 타코치킨 샌드위치.
아아. 난 역시 prawn 샌드위치가 좋아. 다음에는 저것만 먹어야지.


자리를 옮긴 곳은 차마시는 뜰.
손님이 꽉 차있어 아저씨가 굉장히 미안해하며 바깥자리밖에 없다고 하셨지만...
더워서 밖은 No. 그냥 기다릴께요. 자리 나면 안내해주세요.
다행히 자리가 금방 났다...기보다는 계속 서있으니까 눈치가 보여서인지 가장 가까운 좌석의 분들이 일어나셨음;;;
감사합니다.. 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고. 그러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

그나저나 정말 이런 데서 살면 좋겠다.
나: 둘이 살면 딱 좋을 거 같지 않냐?
쏘: 둘? 야. 넷은 살겠다.
(이후의 대화는 직업윤리측면에서 삭제)


아아... 너무 더웠다. 오늘까지 연속 3일. 여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33℃ 여름.
아니 이 날은 더 더웠을 지도. --_-- 그래서 둘 다 여름 메뉴를 시켰다.
이 메뉴 이름은 얼음꽃차? 꽃얼음차? 뭐 그랬는데 오미자에 딸기시럽이었나


이렇게 꽃을 넣어 얼렸다. 얼음이 녹으면 하얀꽃이 이쁘게 둥둥 뜹니다.


내가 마신건 복분자였는데 이름은 까먹었음. 어. 이거 맛있었다.
오미자의 신맛을 별로 안좋아하는 나에게는 이쪽이 훨씬 좋았음. 색깔도 이쁘고.

먹고 마시고 신나게 떠들다보니 어느새 배도 꺼졌고.
야.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노냐. 저녁까지 먹고 가자.

살짝 매콤한 게 땡기던 내려가는 길.

그러나 먹쉬돈나 앞의 줄은 음... --_--
기다리기 싫어 근처의 유사떡볶이집에 가서 먹었다.

흑. 역시.. 기다릴 걸 그랬어. ㅠ_ㅠ
그러면서도 과식의 의지는 꺾을 수 없어 2인분에 밥까지 볶아먹었으니 맛을 운운할 처지는 아님 -_-

먹고나니 또 디저트를 먹어야겠고;;; 아.. 쓰다보니 이거 뭐...;;;; 진짜 과식일지구나.
마침 지나가던 길에 팥빙수 입간판이 있는데 친구가 탄성을 지른다. 

앗! 빙수!
(기다렸다는 듯이) 어, 너 빙수 먹고 싶냐? 빙수먹을래?


그래서 또 여길 갔다. --_--
먹다보면 중간쯤에 견과류+연유+팥 등장

우리 옆 테이블의 세 부인께서는 뭔가 자녀교육에 관한 대화에 열을 올리셨는데,
난 딱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한귀로 들어와서~(-_-)~ 한귀로 나가는 타입이고
내 친구는 열발자국 뒤에서 소근소근 얘기하고 있어도 갑자기 뒤돌아보면서 대화에 참여하는,
인간인 척 하는 소머즈형 안드로이드-_-)라 갑자기 "역시 자식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뭐래; 어이어이. 이제 넌 옆테이블 대화에도 참여하냐? --_--

이렇게 자리를 네 곳이나 바꿔가며, 또 오며 가며. 그 동안 밀린 얘기 실컷 하고 헤어졌다.


야무지고 똑똑하고 기특한 친구.
희한하게 인간관계에서 특정한 삽질을 반복하는 거 딱 하나만 나한테 구박을 받는데.
생각해보니 이 친구가 하는 실수와 내가 일상에서 하는 실수를 비교해보니,
그래도 이 친구가 하는 실수가 기본적으로 좋은 인간성, 남에게 주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라면.
내 실수는 그냥 말 그대로 삽질 & 바보짓--_--

이 날 친구를 춈 구박하고(속상하다보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내 주변 대개 좋은 사람들이고, 내 눈으로 판단하면 안됨.
그것까지도 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벽돌일지도.
걍 나나 잘하셈  -_ㅡ;;)

그래도...
친구에게도 말했듯이, 친구는 동정심으로 사귀는 게 아님.
좋은 관계를 맺읍시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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