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초여름 사이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쌀쌀했는데
오늘 낮은 마치 초여름 날씨.
연두색 은행잎이 뾰족뾰족 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이 계절.
무슨 꽃을 가장 좋아하냐고 당연히 아무도 안 묻겠지만
자문자답하자면. 네. 매화입니다.

학교에는 매화가 4월에야 피어서
물론 떼로 무리지어 3월에 핀다는 저 남쪽 어디쯤과는 비교도 안 될테지만
그 아래를 지나가면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아프게 하는 매화 향기가 솔솔 났다.

그 다음은 라일락입니다. 네.

우리 집 근처에는 산동네라고 해도 좋을, 가파른 주택가가 있어서
걸어오다 보면 그 동네를 지나치게 된다.
근데, 정말. 어떻게 봐도 좋은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그 높은 언덕 입구의 집에는
라일락을 잔뜩 심어 놓아서 이 맘때쯤이면 담장 밖으로 흐드러지게 피는데
대략 50미터 전 부터 바람을 타고 그 파우더리한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글로는 이렇게밖에 표현 못하지만 정말 그 향기를 맡을때면
설레면서도 아프다.
왜 좋은 냄새를 맡으면서 아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이 아프다.


요 며칠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잠이 미친듯이 쏟아지는 때가 있었다.
그게 체력이 딸려서인지.
아직 덜 떨어진 감기 때문에 먹는 약기운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게 미친듯이 졸릴 때는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몇 곡 듣는다.
그럴 때의 노래는 그냥 노래일 뿐인데
희한하게도 집에 걸어오면서 듣는 노래는 가사가 쏙쏙 들어와 박힌다.

그런 때가 있더라. 음악이 들리는 게 아니라 가사가 들리는 때가.
그때도 그랬지. 계절이 바뀌는 게 전에 없이 잘 느껴지고
오감이 마치 열려있는 듯, 색채가, 향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노래 가사가 모두 다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고.
그때는 연애중이라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나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듣던 노래 가사가 아.. 그렇구나. 그거구나. 하고 그냥 알겠다. ㅋ

꽃 얘기를 시작한 김에 마무리를 하자면.
라일락쪽이 색깔도 좀 더 내 취향이고, 더 예쁘고, 향기도 더 좋다.
만약 사람이 향기를 뿜을 수 있다면.
그래서 하나 택해야 한다면 난 라일락을 택하겠다.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꽃 1위가 매화인 이유는 간단하다.
열매를 먹을 수 있으니까. ㅋ


날이 더워지고 있다.
시간은 너무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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