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 : 오리엔트 특급 살인
신영희 역, 황금가지


복수는 私刑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를 이루면서 사사로운 처벌을 허용하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 복수를 묶어버렸다. 그것을 두고 누군가, 어디선가는 인간은 이제 복수마저도 남의 손에 뺐겼다. 라고도 했고, 어떤 사람은 비겁하게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채 남에게 싫은 일을 시키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실 받은대로 돌려주마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고, 상황에 따라 모든 요소가 달라지기 때문에 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받은 자가 자기가 받은 고통의 크기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해 돌려주는 과정에서 너무 넘치게 돌려줄 경우, 혹은 너무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 법이 그걸 대신한다.

그런데 내가 받은 고통을 법에서 정한 6:4 과실비율이라든가, 몇백만원 벌금 같은 것으로 "그래. 이 정도면 됐어." 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가능한 일일까? 물질적 보상은 그렇다치고 내 마음이 아직도 다쳐서 아픈데, 남들이 그걸 얼마나 안다고.

그래서일까, 인디언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아는 자가 그것을 판단했다고 한다. 양쪽을 모두 잘 알아야 왜 그런 일이 생겼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지 알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모르는 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가 그 판단을 하게 한다.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복수를 꿈꾼다. 현실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현실에서의 복수란 또다른 범죄에 불과하지만 작품속에서의 복수는 제법 정의를 찾는 듯도 해 보인다. 다만 무협지에서의 복수가 대를 이어 질기게 피의 고리를 엮어나가는 데 비해 추리소설에서의 복수는 대개 한 세대 정도로 그치고 무협지 속 복수는 후손의 오해와 과잉감정이 섞인데 비해 추리소설속에서는 선악 구분이 명확한 편이다. 즉, 무협지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것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복수란 깨끗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며 내 자손의 발목까지 붙잡는, 덧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복수의 덧없음&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사적인 처벌을 긍정하게 하려면 어떤 소설적 장치가 필요할까. 먼저 그 대상은 "절대악"이어야 한다. 되도록이면 아주 용서받지 못할 종류의 죄를 저지르는 것이 좋다. 물론 뉘우치지도 않는다. 두번째는 법의 집행을 벗어난 인물이어야 한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거나(ex.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형을 선고받기는 했으나 법망을 벗어나 달아나있다거나(ex.오리엔트 특급 살인) 공소시효가 지났다거나.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처벌이 어려운 경우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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