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관한 글들

왜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걸까. 음악이 이미 하나의 언어이자 예술이고 경험인데 왜 그걸 굳이 다른 방식의 언어로 치환하는가. 나는 그것이 인간은 의미있는 경험을 남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이 첫번째 이유라고 생각하고, 두번째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경험과 사고를 재정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요즘은 철학에서도 세계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가 대세라고 들었다. 아니면 말고 -_)

지난 여름, 나는 답답한 몇 번의 금요일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봐야 할 책들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책들만 뒤지고 다녔는데, 결론은 참 재미없더라는 것이다.

그때쯤에는 한참 재즈가 듣고 싶을 무렵이라 괜찮은 재즈책 한 권, 그러니까 미술로 말하자면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말하자면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같은 책. 한 번 쭉-읽고는 책장에 묵직하게 꽂아두고 원할 때마다 꺼내 찾아볼 수 있을 만한 책을 한 권 사야겠다...생각했는데 재즈북은 기대에 못미쳤고, 원하는 책도 아니었고, 그 외에는 대개 연주자나 작곡가를 중심으로 한 평전들이 많았다. 재즈나 클래시컬 뮤직이나. 그런데 나는 재즈만큼은 딱딱한 책 No-

그래서 하루키의 책을 찾아나섰다. 알다시피 그는 6000 장이 넘는 레코드를 소유하고 있고, 그 자신이 야구장에서 날아가는 공을 보며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라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재즈바의 주인이기도 했으며, 그의 소설에서는 늘 음악이 중요한 배경이 되고, 어느 에세이에선가 말하길 스탄 게츠라면 다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음악애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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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쓴 재즈 에세이가 있다. 하긴, 요리 에세이도 있더라만. 이 책은 그가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에 대한 감상과 많은 레코드들 중에 각 한 장씩을 추천한 책이다. 즉,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뭔가를 얻기 위해 읽기엔 무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 나는 이렇게 느끼는데 하루키씨는 이 사람의 이런 면을 좋아하는군. 하는 정도.


얼마 전 하나 더 발견한 것이 이 책. 이 책은 좀 더 본격적인 음악에세이다. 시기상으로도 나중에 나왔고. 아마 하루키씨가 위 책을 먼저 내놓고, '음.. 저때는 이 사람 저 사람 얘기 쓰느라고 여기저기 간만 보고 말았지만 좋아하는 주제 몇 개만 잡아 좀 깊이 다루면서 길게 써보고 싶은데-' 라는 마음으로 썼겠지 싶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전자는 출판사에서 기획한 아이템이라, 돈 준다니까-_) 겸사겸사 쓴 거 같고, 후자는 자기가 쓰고 싶어 쓴 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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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씨는 취향도 분명하고, 주관도 뚜렷하고, 글솜씨는 말할 것도 없는 데다가 느긋한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그가 쓴 글은 참 잘 읽히고 재밌다. 무엇보다 감상이 약하지 않다. 대개 활자화되어 나오는 음악평론이나 아니, 평론은 빼자. 음악 감상글이나 음반 리뷰같은 글들은 다른 애호가들한테 욕먹을까봐 그러는건지, 있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 감상의 부재, 음반 속지정보 같은 말들 뿐이고 정말 중요한 것-들어보고 싶다!, 혹은 듣는 것 같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게 많은데 하루키의 글들을 읽다 보면 아.. 맞아. 맞아. 나도 그 사람 연주 그렇게 생각했어. 오... 그렇단 말이야?? 그럼 한 번 들어봐야겠군. 이런 생각이 솔~솔~ 든다.

무엇보다, 꼰대같은 소리를 안해서 좋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기쁨의 하나는 자기 나름대로의 몇 곡의 명곡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몇 명의 명연주가를 가지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의 평가와는 합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신만의 서랍장'을 가지는 것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음악 세계는 독자적으로 펼쳐져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는 나에게 있어서 그와 같은 중요한 '개인적인 서랍장'이기도 하고, 나는 그들의 음악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유진 이스토민이나 월터 클라인이나 클리포드 커즌, 그리고 안스네스 같은 피아니스트들-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는 아니다-이 제각기 엮어낸 뛰어난 음악 세계와 조우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다른 누구의 체험도 아니다. 나의 체험인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개인적인 체험은 나름대로 귀중하고 따뜻한 기억이 되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그와 유사한 것이 적지 않게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결국 피와 살이 있는 개인적인 기억을 연료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만일 기억의 따스함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은 아마 견디기 힘들 만큼 차디찬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도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마치 사랑을 하듯이 음악을 듣는 것일 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 17번 D장조 D850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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