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is Anais


내 첫 향수는 스무 살 생일 때 선물로 받은, 까사렐의 아나이스 아나이스였다. 그 무렵 그 나이를 대상으로 하는 온갖 잡지에는 일명 스무살 특집이랄까. 니들이 대학생이라면 이제 향수 정도는 뿌려줘야 하는 거란다-는 생각을 마치 운동권 학생들이 사상교육 시키듯 이데올로기처럼 주입시키는 향수 특집 기사가 꼭 하나씩 포함되어 있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성인이라면, 자기를 대표하는 향기를 하나쯤 가져야 하고 그걸 찾기 위해선 스무살쯤부터 자신만의 향기를 찾아나서는 여행-_-을 떠나야 하지. 향수는 패션의 완성과도 같단다. 마지막에 입는 옷이랄까. 스무살이라면 스무 송이의 장미꽃, 향수 그리고 키스-_- 는 받아줘야 하는 거고, 스무 살에 어울리는 향기라면 아나이스 아나이스지-를 한 사람이 모처럼 원고 하나 써서 뽕 뽑을라고 여기저기에 팔아먹은 듯 잡지란 잡지는 몽땅 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던 것이다.


얘다. 동그란 반투명 하얀 뚜껑이 뭔가 닿을 듯 비칠 듯 아련한 느낌도 주고 마찬가지로 옅게 그려진 꽃그림도 좋게 말하면 부드럽고 섬세하다. 그냥 말하면? 고리타분하다 --_-- 왠지 모르게 안방 침대 옆 탁자에 놓일 스탠드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나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꽃 향기는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플로랄 부케향이라는 것. 말 그대로 온갖 꽃들을 모아놓은 꽃향기의 향연이랄까- 덕분에 이것만 뿌리면 위(stomach)가 피곤해지고 신경이 온통 곤두서서 별로 뿌려보지도 못했다. 그런 채로 이 향수는 서랍 한 구석에 처박아뒀다가 가끔 방향제로 썼다. 그렇게 몇 년쯤 방치하다 결국은 주변의 누군가에게 줘버렸다.

뭐, 딱 봐도 나랑 안 어울리지 않나. -_)

설명에는 사랑스러운 소녀를 연상케 하는 향수 뭐 대충 이랬던 것 같은데 사실 사랑스러운 향수라고 하기엔 온갖 꽃들이 난리치는 느낌이라 좀 쎄다. 요즘 그 나이대의 여자애들이 쁘띠 에 마망 같은 파우더리한 향을 찾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근데 생각해보면 사랑스러운 소녀란 은은하고 청순하며 여리여리한 소녀인가?? 오히려 은은함이란 성숙함과 좀 더 닿아있는 것은 아닌지. 소녀란, 더군다나 사랑스러운 소녀란 물론 개인적인 시각과 취향의 차이야 있겠지만 오히려 아직 자리잡지 못한 갖가지 개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느라 이리저리 정신도 좀 없고, 조금 쎄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 미숙함이 어딘지 눈을 못 떼게 하는, 그런 게 그 나이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스무 살이 소녀냐? 라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지만 -_-

그렇다면 과연 그 때의 나에게 어울리는 향기는 뭐였을까... 하고 생각해볼 때 향수는 무슨 향수. 그냥 비누향이면 됐을꺼다. 서투르게 시작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두껍게 바르고 다녔던 화장-_-이나 8 센티 통굽구두를 떠올리면 웃긴다. 많이 웃기지. 그때 내가 했던 웃긴 짓은 또 어디 한두 개인가. 스무 살은 그냥 그렇게 좀 웃긴 나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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