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22 서울시향 마스터피스 시리즈 V



베토벤 레오노레를 할 때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1. 아까 재연이와 말할 때 이름이 생각 안났던 그 여배우의 이름은 무엇인가. 가갸거겨부터 훑어보자. --_--
2. 작년에도 그렇게 깠는데 왜 또 합창석을 오픈해 무대를 저렇게 좁게 쓰나. 내년부터 진짜 안올까보다
3. 아 벌써 연말이구나. 올해 가장 좋았던 공연은 뭐였지. 1.2.3위를 뽑아볼까.
그렇다고 레오노레가 안좋았단 얘기는 아니고(그렇기는 커녕 매우 좋았지), 집중이 덜 된 상태였다.



그리고 인터미션 없이 9번 합창교향곡이 시작되었다.

참 이상하다. 분명 음악을 듣는 것은 귀인데. 음악이 좋을 때는 몸이 먼저 안다.  좋은 연주를 들을 때는 몸이 들썩거린다. 신발 안에서 발이 꿈틀대고, 손가락이 까딱대고 어깨가 움직댄다. 이런... 이 연주는 1악장부터 시작이다. 아........이 오케스트라는 살아있구나. \(´ ∇`)ノ 저 사람들 사이에 넘실대는 긴장감은 한 방향을 향해 일어서 있고 모두가 온 힘을 다해 음악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내가 만약 연주자라면 이런 오케스트라에 있고 싶을 것이다. 몇 밤쯤은 설레고 몇 밤쯤은 이불속에서 하이킥을 날리겠지. 긴장하지 않고 곤두서지 않은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매력이 없는지 이들을 보니 알겠다. 아아..단원들의 몸이 물결친다. 음악을 만드는 몸짓은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움이라 더 멋지다.  ㅠ_ㅠ

당근 타이머를 재지 않았으니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템포를 약간 빠르게 잡았다. 3악장에서야 그 생각이 들어 시간을 얼핏 쟀는데 대략 16분 안쪽으로 떨어진 것 같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컨트롤이 흔들리기도 했고, 미스도 몇 번 났다. 하지만 가끔 쏘기는 했어도 물속에 떨어진 잉크방울처럼 부드럽게 퍼져가는 관악, 볼륨있게 넘실넘실 리드미컬한 곡선을 그리는 현악. 아... 이게 딱이다. 나는 9번이 이렇게 다이내믹하게 몰아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3악장에서 조금만 숨을 고르고 4악장부터는 그냥 달리는거다. 불꽃놀이의 클라이맥스처럼 그냥 빵빵빵빵하고 터져서 정신없이 혼을 쏙 빼놓을 때까지. 이렇게 안하니까 1.2.3악장은 지루하다는 얘기를 듣는거다.

어떻게 4악장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악장간에 터져나오는 기침소리가 너무 길어 연주자들도 지휘자도 그랬겠지만 나도 답답했다. 흐름이 사라질만치 간극이 너무 길다. 조금만 쉬고 이 여세를 쭉 몰아쳐 달라고... ㅠ_ㅠ


4악장이 시작되고 사실 나는... 나를 조금만 놓았어도 울었을 것이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서 서서히 차오르는데 이건 뭐. 이럴때보면 나 같은 애는 참 꼬시기 쉬운 애다.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빛이 통과되고 돔형 지붕 아래 합창단과 연주자가 이런 음악 빵빵 연주해대면 그냥 종교로 귀의해버렸을지도 몰라. -_- 굳이 텍스트를 동원할 필요가 없다니깐.  이런 분위기면 한방이다. 하지만 음량이 부족하다. 부족해. 좀 더 크게 좀 더 나를 감싸줘. 저 소리, 저 파장과 진동 한가운데 있고 싶다. 아....다섯 줄만 앞으로 가서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ㅠ_ㅠ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 뿜어내는 파워는 이렇게나 강력하다. 뒷목이 쭈뼛 서고 정수리가 열릴 만큼. 환희의 송가 중에 나는 두 세번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하나의 감각으로 무의식적인 집중이 일어나는 거겠지. 바로 이걸 바라고 그 많은 연주회를 다녔는데 왜 올해엔 이런 경험이 처음인거지?


정말 최고였다. 올해 보고 들은 연주회 중 최고.





이런 게 이해가 된다니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