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week, 2013

130119

요 며칠 계속 나가놀았다. 집에 있자니 너무 아쉬워서 매일매일 밖으로 나간 건 아니고, 그냥 매일매일 나갈 일이 생겼다. 지하철에 타니 새삼스럽게 우리 나라가 단일민족국가라는걸 알겠더라. 겨울옷이 다 시커매서 더 잘 알아차렸나. 다들 새까만 머리에 구간이 적은 범위 안에 들어가는 신체사이즈에, 어느 정도 돌출된 구강구조와 비슷비슷한 피부색. 어쩌면 이렇게도 고만고만하게 생겼을까. 이렇게 차이가 작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끼리 몰려살다보니 그 범위를 조금만 넘어가는 사람이 생겨도 이상하게 보고, 상대방의 그 조그만 차이를 그냥 받아들이기보다는 구분하고 뭐 이런건 아닐까 싶더라. 태어나면서부터 아, 사람은 몽땅 이렇게 다 천차만별이구나. 인종박람회같은 놀라운 다양성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들과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진실은 알 수 없고. 

 

이런 사람들 속에 빨간머리에 회색눈에 190cm키를 가진 사람을 한 사람 박아놓는다 생각하면. 혹은 분홍색피부에 타는 듯한 금발에 빨간눈의 사람이 있다면.

 

사람이 자기 신체의 생김새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우리나라로 치자면 자유화(?)가 되는 순간 길이를 대폭 늘리겠지. 그동안 이상적인 키라고 생각해왔던 길이의 신체를 손에 넣을거야. 그 다음은 이목구비겠고. 큰 눈, 컬러가 다양한 눈동자, 오똑한 코, 작은 얼굴, 머리카락 컬러 등등. 그런데 그 다음엔??? 흐름이 생길거고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에는 대략 어떤 폭이 생기겠지. 남들과는 다른 개성을 주장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과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을거고. 결국은 빈부차로 고급형과 보급형/한정판과 중고시장이 생기겠네. 거기에 반발해 나는 쭉 이걸로 가겠다는 사람들도 생길거고. 이건 뭐.. 휴대폰이네?  그러고 보면 신체는 빼도박도 못하게 타고나는 거라 다행인거 같기도 하고. 뭐가 어쨌든 애정을 붙이고 살게 된다.

 

 

 

130120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오니 너무 좋아서 엄마 아빠에게도 보여드리려 했는데 두 분 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 보겠다 하셨다. 안타깝다. 파이 인생의 진실보다는 그 3D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젊은 나도 그게 놀랍고 신기한데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좋겠나 싶어서. 내가 영화를 볼 때 내 옆에 앉은 노부부가 좋아보여서 그랬던 것도 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계속 면박을 주고 가는 귀가 안좋은 듯한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긴 했지만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아 됐어! 이 양반 또 못알아듣네- 이러는 게 아니라 같은 말을 질리지 않고 상대방이 알아들을때까지 세 번이나 하다니.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다. 지치지 않는 의사소통에의 의지가 느껴지잖아. 영화 다 끝나고 할아버지가 "재밌었어?" 라고 묻는 게 또 참 좋더라. 할머니가 어머나. 새가 아주 눈앞에 있는 거 같네. 하실 때도 좋더라. 우리 부모님도 영화를 같이 보러간다면 뭐. 사이가 좋기만 하겠나. 오랜 세월 살아온 부부인데. 그래도 그들만의 의사소통 방식이 있는거니까 그건 또 그것대로 좋지 않은가 싶다. 내 눈에야 못마땅하지만.

 

 

 

130121

제목에 날짜를 쓰다가 일주일 전 날짜를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맙소사. 이제 정말 직장으로 복귀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뭐한다고 이렇게 시간이 갔나 싶지만 달력에 쓰여있는 작은 메모들을 보니 뭐... 다 빼도박도 못하게 내가 살아낸 시간들이구만. 아쉬워할 것이 없구나. 오후에는 직장에 잠깐 들렀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갔는데 일주일에 5번씩 몇개월을 들락거렸더니 고새 익숙해졌는지 그 인근은 그냥 우리집 가는 것처럼 익숙하다. 일어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올라가는 길에 떡볶이를 1인분 사고, 붕어빵황금잉어빵도 2천원 어치 사서 모 부서에 들러 드리고 올라갔다. 새로운 부서가 생기기 때문에 공사중인 직장은 적당히 어수선했다. 내가 쓰는 사무실엔 히터가 나오지 않았다. 무슨 라인이 달라서 그렇다는데 이것도 나올때야 마주친, 당직이신 선배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불도 반만 켜고, 히터도 없이 무릎담요를 덮고 코트를 걸치고 타닥타닥 데이터 입력을 하고 있자니 뭔가 나쁜짓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나쁜짓이어서 안해도 되면 좋을텐데. ㅋ 하루 단위에서도 시간은 정말 잘도 가더라. 더 있어봤자 한 두 시간 더 있는다고 끝내질 일이 아니라 결국 남은 일은 싸짊어지고 왔다.

 

내가 차를 산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다. 다른 사람들하고 부딪치는 데서 오는 불쾌감. 물론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데 편하기도 하겠지만 그게 대중교통이 주는 다른 좋은 점들과는 다이다이가 안된다. 그러니 내가 만약 못참고 차를 사게 된다면 슬픈 일이지만 도저히 다른 사람과는 불쾌해서 공간을 나눠쓰지 못하겠다는 철저히 이기적인 이유 밖에는 없다. 겨울철의 비오는 날 사람 많은 대중교통은 이 불쾌감이 무한대로 증폭되는데 우산 꼬나잡은 분을 피해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정류장에서 뒤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쳐다도 안보고 뒤를 향해 우산을 털어대는 분이 있지 않나. 우르르 탄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며칠 밤낮으로 묵은 듯한 냄새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눈은 감으면 되고 귀는 이어폰을 끼면 되지만 코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왜 이럴까? 왜 자기 몸 하나 씻고 옷 깨끗이 입고 남에게 부딪치거나 뭘 묻히거나 하지 않는, 당연해 보이는 이런 걸 모두 다 같이 하는 게 어려운걸까. 매너를 안 배워서 그런걸까? 그럼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사람들은 어디서 이런 걸 배우고 고칠 수 있는걸까? TV보고 아나? 아니면 주변사람들에게 충격적일 정도의 지적을 들은 후에야? 언제쯤 전체적으로 이보다 더 좋아질 수 있는걸까.

 

조금전까지 일대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친절하다가 불특정다수에게 놀랄만큼의 속도로 너그러움이 증발하는 거 보면 도시가 참. 사람많고 복잡한 도시가 원흉이다 싶기도 하다. 어느 정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름다운 거리가 유지되어야지. 닭장도 아니고. 아, 그래도 우리, 안그래도 복잡한 이 도시를 닭장으로 만들지 맙시다. 서로 좀 지키고 보듬으며 살자구요. 우리도 닭은 아니잖아요.

 

 

 

130122

먹을거 사먹으러 가는데는 어쩌면 이렇게 부지런할까. 난 정말 이 열정을 어느 한 분야에 쏟았다면 대단한 인재가 되었을것임에 틀림없다. 무지 맛있다는 김밥집이 지척에 있다는 걸 모르고 산 것을 한탄하며 굳이 그 김밥을 사러 가겠다고 -_- 굳이 굳이 나가는 김에 병원에도 들렀다. 저번에 성대가 좀 늘어났다고 했는데 다행히 성대는 원위치했단다. 근데 목소리는 왜 약간 변한거 같지. 이거 내 장사밑천이라 상하면 안되는데. 어허허- 김밥은 그냥 그랬다. 김밥은 솔직히 아무렇게나 싸도 맛있는거라 두툼하게 말아 두툼하게 썬 계란과 짜지 않은 단무지, 그 외에는 어떤 재료를 넣어도 다 맛있다. 근데 사먹는 김밥은 밥이 안좋은 거 같아 잘 안사먹으려고 한다. 여기 김밥을 평하려니 인터넷검색에 한 단어만 치면 걸리는 집이라 평도 못하겠구나. 하여간, 맛은 그냥 그랬다. 두 번은 안 갈듯. 다만 이 김밥집 근처에 엄청 유명한 빵집이 있는데 아.. 정말 사랑한다 이 집. 올리브 빵도 너무 맛있고, 그리시니도 맛있다. 그리시니를 하나 사서 한 개씩 빼 오독오독 먹으면서 집에 왔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내가 헨젤과 그레텔이 아니라 다행이야. 나는 아마 빵 다 먹었을 걸. ㅠㅠ

 

 

 

130123

내 사수(?)가 다른 곳으로 간단다. 원래는 그렇게 안 되는 거였는데 뭐가 어떻게 바뀌었다. 그 개인에겐 잘 된 일이라 축하해 줄 일이지만 나에겐 흔치 않은, 마음 붙일 만한 사람이었는데 아쉽다. 이 동네가 만남과 헤어짐이 잦은 곳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년은 좀 짧다. 배운 것도 꽤 있고, 앞으로 배울 건 더 많았을 텐데. 일하다가 툭 던졌다. "가지마요" 그렇게 말하는 건 당신밖에 없다고 고맙단 말이 돌아왔는데 그건 이 양반 말하는 스타일이 원래 그렇고. 뭘요- 모두가 아쉬워할거 같은데. 이 사람이 감으로써 내 마음도 내 마음이지만 2-3인분의 일이 공중에 뜨게 됐다. 올해는 힘든 1년이 되겠구나. 나는 0.8인분이고, 이 사람은 3인분이고. 어허허허-

 

이 방식 안 좋은 거 같아. 라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한테는 지옥일수도 있잖아요. 적당한 때에 물갈이 되는게 좋은지도 몰라요.

 

진짜라니까요.

 

 

 

130124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가 내가 듣고 있는 노래들의 반도 가사를 모른다는 걸 알았다. 원래부터 알고 있던 노래들 말고 새로 알게 된 노래들은 그냥 듣고만 살았네. 어허허허- 나는 언제부터 노래를 부르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살았나. 이렇게 수동적으로 늙어갈 수는 없다. 열심히 따라부르고 흥얼거려야지.

 

 

 

130125

장수하신 두 할머니께 여쭈었더니(내가 물어본 거 아님. 신문기사내용) 장수비결이 인스턴트 음식 안 먹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란다. 인스턴트 음식은 최대한 줄이겠다만 후자는 안 할란다. 그렇게 남의 일에 관심 끄고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아서 얻어지는 장수라면 걍 적당히 살고 적당히 아웃할란다. 난 걍 내 몫의 오지랖을 펼치면서 살란다. 요즘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남 일이라고 참견 안 하고 살면 되는 세상 맞나.

 

모씨가 언젠가 말하길, 사람이 사람을 가장 속속들이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연애라고 했다. 맞다. 적당한 거리에서 멋져보였던 상대방의 모공까지 보일 뿐만 아니라 내가 이런 인간이었나 하고 내 밑바닥까지 볼 수 있는게 연애다. 다만 연애 횟수만 많을 뿐 똑같은 연애 반복하는 사람들은 자기 밑바닥 외면하는 거겠지만.

 

그거 말고 상대방을 잘 알 수 있는 건 싸움이다. 싸워보면 안다. 어떤 생각하는 사람인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싸움이 끝난 후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된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내가 했던 말들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내 표정, 내 몸짓 그 뒤에 숨어있는 진짜 나의 모습이 복기되며 드러나니까.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알게 된다.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역사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결국 사람은 다른 사람과 부딪쳐야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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