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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90107. for Viola and Piano 4 2009.01.08

090107. for Viola and Piano


우리 동네에는 슈만과 클라라라는 경양식(?)집이 있었다. 친구들끼리 분위기 잡을 때, 후배들 밥 사줄 때 데리고 가던 곳으로(그래봤자 고딩들 주제에 -_-) 건물 입구까지 오솔길;같은 게 깔려있고 입구 위에 풍차가 붙어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키치 그 자체지만 나름 익스테리어&인테리어의 선두주자; 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꽤 잘되는 곳이어서 바로 옆에 그 이름을 살짝 딴 슈만분식-_-도 있었다. 물론 음식맛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그러나 그건 꽤 강한 연상고리여서 나에게 슈만이란-로베르트 슈만이건 클라라 슈만이건-경양식집과 분식집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이름이다. ㅡ_-)

백만년 만에 금호아트홀에 다녀왔다. 하도 오랜만이라 가는 길을 까먹었을까봐 걱정했을 정도였는데 늘 나는 나의 내비게이셔너블러티-_-를 못 믿지만 그래도 항상 헤매지 않고 제법 빠른 시간 내에 제대로 찾아가더라. 오늘 연주회의 주제는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독일 낭만시대의 주요 작품들』로 레퍼토리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슈만의 판타지스튀케 Op.73, 브람스의 소나타 작품넘버 120의 1 번이었다. 즉, 평소에 내가
전혀 찾아듣지 않는 것들로 이번 연주회를 기회로 음반을 찾아 예습을 해보았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야 뭐 워낙 유명하니까 오다가다 들은 걸로 웬만큼 귀에 더께가 앉아서 익숙했고, 슈만의 판타지스튀케Fantasiestücke는 Op.73 보다 Op.12 가 걸작이어서 예습하려다가 샛길로 빠져서 12 에서 허우적댔다. 슈만은 잘 듣지 않지만 어떤 계기로 막상 듣게 되면 세 번에 한 번 꼴로는 오~ 좋은데? 하고 빠져드는  나름의 매력이 있는 거 같다.

어제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이어폰을 끼고 자리에 누워있자니 친구가 보내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내가 갖고 있던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고, 눈 앞에 이미지가 그려지는 듯한 좋은 연주여서 나는 상상모드로 전환. 비올라는 던져버리고 바이올린을 왼쪽 어깨에 걸친 후 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맞춰 내가 연주를 하는 것 같은, 쑈 곱하기 쑈는 쑈-스러운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 그러다 그만 새벽 6 시까지 내내 깨어있는 바람에 오늘 이동 중에 틈틈이 자야했지만.

실제 연주는 기대한 것만 못했다. 늘 그렇듯이 당연히 레코딩의 퀄리티가 좋다. 레코딩이야 수없는 연습을 바탕으로 하고 가장 좋은 부분의 짜집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미스터치와 실수와 연주장의 소음등을 넘어서는, 아니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관객을 휘감아버리는 공연이 있다. 가슴이 떨리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아.. 그래 정말 오길 잘했어. 이래서 레코딩은 통조림이란 소리를 듣는 거야.. 생각하게 하는.

그러나 그런 공연은 귀하고. 반 정도의 공연은 음.. 그래. 이 곡을 실연으로 들었다는 것에 만족하자-정도이다. 다들 화려한 약력, 쟁쟁한 실력의 연주자들이지만 역시 사람 마음의 가장 정확한 혈을 푹- 찌른다는 건 그것만으로 안되는 것 같다. 에디슨이 한 말, 천재는 1 %의 영감과 99 %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가 사람들이 흔히 관용적으로 쓰듯이 노력의 중요성을 설파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99 %의 노력은 1 %의 영감이 있음으로해서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처럼.


그런 오늘의 수확(?)이라면 사람이다. 서로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이름을 알게 되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후 오늘 만났는데. 막상 만나니 어머 딱 내 타입이야-! 남자라면 반전이겠지만 그건 아니고^^;

서로 당연히 상대는 자기보다 어릴 것이다 라고-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들인지-생각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틀림없이 자기가 나이가 많을테니 나이 깔 것도 없이 걍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으나, 내가 '그건 까봐야 아는 법. 대체 그쪽은 몇 년생이신데-' 하고 물으니 뭐야. 동갑이잖아. -_- 그 자리에서 말 트고 친구먹었다. 마치 오래된 사이처럼 대화가 잘 통했다. 그저 동갑이라 그렇다고 하기엔 취향도 겹치는 부분이 많고. 서로 바빠 언제 또 볼 지 모르겠지만.



첫 만남이라 오는 길에 나 주려고 샀다는 초컬릿.
내가 기념사진 찍고 먹을게- 라고 말한 걸 농담으로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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