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31 드레스덴

프라하에서 자는 동안 하루는 근교를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처음 계획 짤 땐 2-3일 정도를 빼서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뮌헨 등을 다녀올까 생각도 했었는데 내가 독일에 큰 흥미가 없다보니;;;계획을 짜도 흥이 안 나던 와중에 둘째가 드레스덴은 어떠냐고 해서 알아보니 동선이 꽤 좋길래 낙찰.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나로드니 트리다 역. 맞게 읽은건지 전혀 모름 ㅋ 체코어로 나로드니는 public 혹은 national 뭐 이런 뜻인것 같더라. 

지하철을 타고 미리 예매해둔 REGIOJET 버스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간다. 이곳에서 버스 탈때에는 대부분 REGIOJET이나, FLIXBUS를 이용하게 된다. 이 버스터미널 찾는게 조금 난해한데,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또 귀인을 만났다. 잉글랜드 어디더라..축구 유명한 데였는데..하여간 거기 출신으로 체코에 정착한 노부부께서 너네 혹시 버스터미널 찾니? 하면서 그럼 우리를 따라와- 라고.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도와주셨다. 여행 중 두번째 만난 귀인이십니다. 감사감사 (_ _) 본인들도 여행가시는 중인데 어디가냐고 드레스덴 간다고 했더니 아 아름다운 도시죠- 라면서 엄청 친절하심. 

이 날의 일용할 양식 납복을 준비하고. 사진찍고 나서 씼었음요. 당연하지만 반드시 씻어먹어야 합니다 ㅋ 난 1일 1납복 할거야 라고 납복납복 노래를 불렀다 ㅋ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맨홀 발견!

여기가 드레스덴 중앙역 HautoBahnHof. 줄여서 HBF로 표기한다.

갑자기 문명세계로 떠밀려온 느낌. 프라하가 비문명인건 아닌데, 느낌이 확 다르다. 아무래도 중세시대에서 현대로 온 느낌 같은게 있다. 

드레스덴이라고 옛 건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복구중이다. 포탄에 파괴되거나 그을렸기 때문이다. 저 윗부분이 시커먼 것이 그을린 흔적.


이것이 유명한 군주의 행렬인데, 사실 큰 흥미없다. 별로 멋지다고도 생각 안 함. 그냥 돈자랑하는 거 보는 기분.

성당에 들어가보았다. 파이프 오르간이 있따고 해서 들어가본건데 시간이 안맞아 연주를 들어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여기도 공사중이다. 르네상스 양식이었던 듯.

이것이 파이프오르간. 

이곳이 츠빙거 궁전. 필터 썼나보다. 색 왜곡이 좀 있군 ㅋ정원코스 티켓을 사면 저렇게 아래 내려가서 정원을 돌아볼 수 있는데 너무 더워서 엄두도 나지 않고 아무런 욕구가 없다 ㅋㅋㅋ 우리는 그냥 무료관람으로 이렇게 내려다보기로. 

진짜 미치게 덥다. 어느 정도로 덥냐면, 그냥 너를 내리쬐서 없애버려주마- 라는 식의 내리꽂는 더위다.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른다. 나는 내가 땀을 이렇게 많이 흘릴 수 있는 사람인 걸 이 여행 와서 처음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드레스덴은 아무것도 아니긴 하다 ㅋㅋㅋ 뒤의 일정에 끝판왕이 기다리고 있다 ㅋㅋㅋ 하지만 이때의 나는 당연히 미래따위 알 수 없으므로 으악. 드레스덴 최악. 너무 더워! 목말라! 으악! 이렇게 내면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각자의 인생샷을 건져보려고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찍고 으헉헉헉헉;;;;; 벌컥벌컥 할 정도로 너무너무너무 더웠다. 그리고 배도 고팠다. 이제 밥먹으러 ㄱㄱ

한국인 사이에서 유명한 아우구스티너. 여행다니면서 그들만의 리그- 블로그맛집- 막상 가보니 한국인만 바글바글한 곳은 안가려고 하는데 역시 실패확률을 줄이려고 무의식중에 움직이게 되는건지, 트립어드바이저로 교차검증했는데도 맛집이라고 하길래 갔다. 배도 고팠고, 목도 말랐고(목은 미칠듯이 말랐다). 일단 메뉴 주문하면서 물부터 얼른 주세요 with ice 로 ㅠㅠ 우린 물에는 돈을 아끼지 말자. 이건 우리의 생명이다! 라며 물을 사서 벌컥벌컥 원샷 투샷 하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학센. 꼴레뇨나 학센이나 나중에 먹겠지만 슈테첼이나. 전부 그냥 돼지족발. 

뉘른베르크 소시지

결론만 말하자면 학센은 아 모르겠다. 난 이런 류를 안좋아하나보다 ㅋㅋㅋㅋ 뉘른베르크 소시지도 모르겠다. ㅋㅋㅋㅋ 감자는 맛있다. 감자는 뭘해도 맛있으니까. 술을 좋아한다면 좀 달랐을까? 둘째의 평을 보면 꼭 그런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먹어보고 경험치를 올린 것에 의의를 두기로. 

배가 고팠다는 게 거짓말인것처럼 학센을 남겼는데 잠시 후에 어마어마한 똥파리들이 떼로 몰려와서 접시를 점령한다 ㅠㅠ 그래서 똥파리들에게 기부했다 ㅠㅠ


하늘은 참 예쁘다. 사진도 참 속절없이 예쁘다. 하지만 저 사진속에 있을 때는 정말 증발해버릴것 같은 기분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유럽의 더위는 그늘에만 들어가면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데 그늘을 벗어나면 그냥 온 몸이 통으로 구워지는 느낌이 든다.

너무나. 미칠듯이ㅋㅋ 반복해서 말하지만 더웠고, 우리는 DM에서 먼저 쇼핑을 한 터라, 짐도 많았고, 무거웠고, 목말랐고, 해서 광장에 있는 스타벅스로 들어왔다. 이 컵 모으는 사람 많던데, 저는 모으지 않습니다. 대신 사진은 찍어요 ㅋ 꺼내어서 찍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진열되어 있는 상태로 한 컷 찍을 뿐; 

그리고 막내는 보온병을 산다. 내가 여행 떠나기전 얘들아 보온병이나 텀블러는 필수야- 라고 했는데 막내가 갖고 온 건 플라스틱 재질이라 깨졌는지 물이 줄줄 샘; 그래서 이걸 샀는데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용량이 거의 590ml였나. 게다가 손잡이도 있고. 내껀 350ml라 나중엔 나도 하나 새로 사야하나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적당한 걸 찾지 못해 나중에는 그냥 1.5리터 PET병을 얼려서 갖고 다니게 된다 ㅋㅋㅋㅋ여러분 여행에서 보온병은 필수입니다. 여름엔 얼음물, 겨울엔 TEA 나도 다음 여름 여행에는 350ml를 갖고 가진 않을 듯.

드레스덴에서 들어갔던 기념품 샵. 목각인형을 파는 곳인데 크리스마스 시즌 컨셉인 것 같더라. 혹은 기독교 컨셉이거나. 계절과 관계없이 겨울느낌 나는 상품도 많았다.

호두알 공예, 목각인형, 예수탄생, 성가대 이런것들이 주된 모티브.

둘째와 막내는 마그넷을 모으는데, 둘 다 여행지마다 꼭꼭 샀다. 둘째는 이번여행부터 모으기 시작한것으로 그 도시의 이름이 주가 되는 마그넷을 컨셉으로 잡았고, 막내는 그냥 자기 취향이면 상관없는 것 같았으나, 색채가 선명한 걸 좋아하는 취향같았다. 이건 내가 강추한 것 ㅋ Ampellmann이라는 것인데, 독일의 신호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구 동독에서 질서를 잘 지키자는 의미로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한다. 신호를 뜻하는 Ampell과 사람을 뜻하는 Mann의 결합

베를린에 가면 암펠만 샵이 따로 있다고 하더라. 그러고보니 나 어렸을땐 동독 서독 수도 따로 외웠었는데 ㅋㅋ 옛날 사람 티 난다. 꽃할배 보니까 이서진이 동독의 수도 베를린, 서독의 수도 본! 얘기 하는데 어어!!! 맞다. 나도 그렇게 외웠었어!!! 라고 새삼 추억소환.

나는 역시나 아무것도 사지 않기 때문에 이 뱀이랑 놀았다 ㅋㅋㅋ 입구에 놓여있던 뱀인데 앵무새처럼 사람 말을 따라한다. 정확히는 사람말을 몇 초간 녹음해서 1.5배속 내지는 2배속으로 재생하는 거겠지? 입구에서 뱀과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놀았다. ㅋ

바로 이것이다. 암펠만.

이 황금동상을 보기 위해 다리 너머로 건너갔다. 

그러다 근처 공원같은 곳에서 조금 쉬게 됐는데. 나는 이게 너무 부럽더라. 장 자끄 상뻬의 그림에서 본 듯한 느낌이라 이런 삽화가 있나 찾아봤는데 이런 그림은 없었다. 나무는 엄청나게 크고, 그늘지고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여유있게 쉬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 커플, 가족, 친구, 자전거. 그냥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특히 서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심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커다란 공원의 모습, 그것을 즐기는 문화가 부러웠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던 곳 Vapiano. 여긴 체인이었는지 이후의 여행지인 오스트리아 에서도 한 번 보게되는데 거들떠도 안보고 지나치게 된다 ㅋ 누가 여기 맛집이라 했나. 동생들이 주문하러 갔는데 와서는 언니 여기 직원들이 너무 잘생김요 ㅋㅋ 우리 끼부리면서 노닥거리느라 늦음요 ㅋㅋ 라고 얘기하면서 나중에 누구닮은 직원이 있으니 꼭 보라고 신신당부.

마르게리따 피자 비주얼 봐라. 저게 뭐냐. 파스타는 치즈가 잔뜩 얹어져있어 맛있어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누가 파스타에 치즈를 저렇게 무식하게 얹냐;;;; 딱 봐도 맛없는게 티가 난다. 우리는 맛없다고 궁시렁거리면서도 나름 열심히 먹었다. 

이미 기대를 내려놓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마르게리따니까. 바질이 너무나 적게 들어있어 리필을 요청하자 테이블 마다 놓여있는 바질화분에서 따다 먹으라 한다;;;; 레알임? 그래서 따서 얹어 먹었다 ㅋㅋㅋㅋ

알리오올리오였던 듯한데 솔직히 내가 이것보다 더 맛있게 만들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한다 ㅋㅋㅋㅋ

이건 기억도 안 남. 리조또였겠지. 여기는 듀럼 밀을 안쓰는지 파스타면이 찐득찐득하고, 밥알까지도 그렇다. 나는 원래가 리조또를 좋아하지 않아서, 더 맛이 없었다 ㅋ


그리고 차를 탈 때가 되어서 REGIOJET을 타는 곳으로 갔는데 거기 계시던 한국인 아주머니들께서 앞의 차가 연착됐다며 아가씨들 차도 연착됐을거라며 말을 걸어오셨다. 네?!!!!!! 그러다가 갑자기 어디 여행중이냐 내일은 어디로 가느냐 묻다가 여행지를 막 추천해주시고, 체스키 크룸로프에 간다. 할슈타트에 간다 이야기하자 우린 거기 있다 왔는데 반드시 어딜 가라, 거긴 별로다 저길 가라- 며 한국인 특유의 오지랖을 시전;;;; 난 이런 얘긴 거의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니까 사실 노 스트레스 노상관. 하지만 입으로는 능숙하게 맞장구치며 오~ 오~ 하며 반응한다 ㅋㅋㅋ 그래서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의 그런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평소 내 성격을 보면 표정과 말투와 행동으로 까칠함 뿜뿜일 것 같은데 의외로 유들유들해서. ㅋㅋㅋㅋ 사회생활 인격은 따로 분리해놓고 살아서 그렇다 ㅋ 그 와중에 이 분들이 바로 뒤의 건물에서 하리보를 잔뜩 샀다는 얘기에 응? 하리보?????? 그렇다면 출동해야지!!!!!!해서 막내랑 달려감 ㅋㅋㅋㅋ 둘째는 지쳐서 의지없음. 셋이 다니니까 좋은 점이 바로 이거다. 반드시 모두가 갈 필요가 없다. 너는 쉬어라. 우리가 다녀오마.

와우. 여기 하리보 천국이로구나. 1유로도 안한다!!!! 다행히 우리버스는 연착없이 제 시간에 왔고, 호텔로 돌아와 뻗었다. 그리고 기념샷 ㅋ 

내가 마트와 DM에서 산 것들.

하리보 3개, 스틸워터 2병(이 물 진짜 맛없다. 막내랑 똥 맛 물이라고 욕했음) 발포비타민3개, 아요나치약3개, 조카줄 영양제1개, 매니큐어 1개. 정말로 약소하다 ㅋㅋㅋ 저 중 맨 왼쪽 하리보는 여행중에 해치웠다. (맛있음) 가운데꺼는 집에오자마자 해치웠고. 이제 와 생각하니 좀 더 많이 살 걸 그랬다. 종류별로 하나씩 다 살 걸. 이후의 여행지에서도 저렇게 혜자스러운 가격에 종류 많은 곳은 없었다. ㅠㅠ 

그리고 납작복숭아!!!!!!!!! 이렇게 10개를 샀는데 5천원 정도다!!!!!! 은혜로운 가격 ㅠㅠ 이것도 좀 더 살 걸 그랬지. 사람이 3명인데 10개가 뭐냐. 15개면 또 몰라. 맛을 장담할 수 없어서 두 팩만 샀는데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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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의 마지막 밤과 16년의 첫 날을 스트라스부르에서

DB Bahn을 타고 하이델베르그에서 스트라스부르로 넘어간다.

한 번에 기차타고 슝 가면 얼마나 좋겠냐만 우리는 환승을 해야 한다.

 

 

 

 

하이델베르그에서 칼스루에로, 칼스루에에서 아펜바이어로, 아펜바이어에서 스트라스부르로.

가격은 둘이 합해 67.2유로

 

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기차역이 어떻게 생겼는지 플랫폼과 플랫폼이 먼지 가까운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하이델베르크 출발. 출발하기 전에 나는 물을 한 병 사고, E는 맥주를 한 캔 사서 기차 안에서 먹을 생각에 신났다 ㅋ 각 나라마다 빵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독일 빵이 딱히 맛있어보이지 않아 관둠. 나는 각 나라의 물을, E는 각 나라의 맥주를 들고 사진을 찍자며 키득키득하고 여행의 설렘 모드로 기차안에서 별별 설정사진을 다 찍었다.

 

 

 

칼스루에 역에 무사히 도착해서 7번 플랫폼에서 아펜바이어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데 전광판에 연착메시지가 뜬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단다. 그래서 그러려니 했다. 안내메시지가 들리지만 독일어고 바덴바덴에 관한 안내메시지다. 그런데 플랫폼에 사람들이 막 뭐라뭐라 하면서 하나둘씩 자리를 뜬다. 무슨 상황이지? 다른 교통편을 선택하는건가? 예정된 시각은 벌써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기차는 오지 않는다. 이상하다. 어느새 플랫폼엔 우리 둘 밖에 없다. 역장도 없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전광판엔 메시지도 없다. 뭐지?

 

아무래도 이상하다. 우린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기차를 타야하는데. 사실상 스케줄대로면 벌써 도착했어야 했는데? 만약 아펜바이어에서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기차를 놓친다면 오늘 스트라스부르에 잡아놓은 숙소까지 날라가는 수가 있다. 망했다; 이젠 더 기다리고 말고가 없다. 환승을 해야하는데 다음 기차가 아예 없다면 아펜바이어에 일단 간다해도 그게 더 망한 상황일 수도 있다.

 

 

 

칼스루에 역은 진짜 이상하게 생겼다 ㅋㅋㅋ 마치 영화에 나오는 우범지대처럼 플랫폼간의 연결계단에 아무도 없고 철망에 자전거들만 잔뜩 있고 다니는 사람들도 없고 하여간 분위기 으스스하다. 물론 그건 밤이었고, 아무도 없었고, 우리가 기다리던 기차가 안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거지만 ㅋㅋㅋㅋ 지금 와서 생각하면 걍 보통 기차역이다 ㅋ 그리고 이 계단을 내려가도 어떤 부스도 안내센터도 없다. 뭐지 대체 이 역은? 나중에 알게 되지만 이 곳은 오로지 승강장으로 역 건물로 가려면 나가서 빙 둘러가야 한다. 그걸 모르던 상황의 나는 고민하다가 도저히 여기서 더 기다려서는 안 될것 같으니 E보고 이 역을 나가 물어보자- 며 캐리어 들고 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ㅋㅋㅋ 덜덜덜 끌고 빙빙빙 돌아가니 역의 정문이 보이고 information 센터가 있다. 그리고 뒤돌아 생각하면 이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고, 비교적 빠른 결단이었다 ㅋ

 

 

거기에 가서 예약확인서를 보여주며

 

-저기 뭐 좀 물어볼게. 이상한데 내 기차 스케줄이 이건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가 안 와. 왜 이러니?

-잠깐만. 확인 좀 해보고.

 (아무렇지도 않게)...응 기차스케줄이 바뀌었네.

 이 기차는 오지 않고 넌 바덴바덴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해.

 기다려봐. 새 스케줄을 뽑아줄게. 플랫폼 넘버는 이거고 시간은 이거야.

 

 

헐. 아까 그 바덴바덴 어쩌구가 그거임? 와... 내가 마냥 기다렸으면 어쨌을거임? 헐.........

물론 도저히 망한 상황이면 그냥 칼스루에 역 앞에 있는 호텔을 새로 잡을 생각을 하자고는 했었지만,

진짜 스트라스부르 숙소 날리고 칼스루에에서 하루 잘 뻔 했다. 야.... 인간적으로 방송을 할 거면 영어로도 좀 방송해줘야 되는거 아니니? 독일어로만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아냐. 아니면 물어볼 사람이라도 좀 대기하고 있거나 딱 봐도 외국인인 우리한테 저리로 가라고 손짓발짓이라도 좀 해주거나.... -_-

 

하아.... 별 수 없이 우리는 기차가 올 시간까지 칼스루에 역의 맥도날드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플랫폼은 너무 추워서 따뜻한 실내공기가 필요했다. 앞으로의 기차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날을 넘기지 않고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의 여행기간 동안 수많은 도시의 맥도날드에 들어가게 된다.ㅋ

 

또 놓칠 순 없으니 조금 일찍 올라가보자 하고 맥도날드를 나오자 아까의 인포메이션은 문을 닫았다. 헐.... 조금만 더 기다리다 내려왔으면 안내고 뭐고 못받고 칼스루에역에 발이 묶일 뻔 했다. 바덴바덴가는 열차에 타서 아펜바이어에 내리자 또 멘붕이다.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플랫폼인 9번 플랫폼은 아펜바이어 역에 없다. 응? 뭐지? 플랫폼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감이 온다. 저들은 스트라스부르로 가는거다. 그들을 일단 따라가자 9번 플랫폼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고 육교같은 곳을 지나 하여간 어딘가로 멀리멀리가자 거기에 9번 플랫폼이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뭐임. 우리는 이제 여행 첫날인데 뭐가 이렇게 험난하지?

 

 

 

15년의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플랫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신이 났다. 딱 보니 술 마시고 몰래 놀고 들어가는 고등학생들처럼 보이는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국경을 넘는건데? 그럼 얘네는 프랑스애들인데 독일까지 와서 놀고 해바뀌고 날 바뀌어 들어가는건가? ㅋㅋㅋㅋㅋㅋ 진짜 최선을 다해 노는구나 ㅋㅋㅋㅋ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스트라스부르 가는 기차가 왔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정말 완전 뿌듯하다. 가긴 가는구나. 뭐가 어쨌든 오늘의 미션 클리어다. 가장 걱정했던 환승을 무사히는 아니지만 어쨌든 해냈다.

 

그리고 우리는 스트라스부르역에 도착한다.

 

헐................너무 예쁘다!!!!!!!!!!!!!!!!!!!!!!!!!!!!!!!!!!!!!!!!!!!!!!!!

 

 

 

 

스트라스부르역은 건물위에 유리돔이 덮여져 있는 형태인데, 원래의 역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외벽을 유리로 덮었다고 한다. 다음날 낮에 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날의 조명과 밤 분위기가 어우러져 투명한 유리 사이로 내부의 빛이 나오는데 정말 멋졌다. 우리는 내부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역에서부터 숙소가는 길을 대충 알아내고 역을 나섰다.

 

 

연말분위기 나게 역 앞에는 반짝반짝 조명이 나무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 우리가 유럽에 왔구나. 이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디어 난다. 얼마나 설레고 좋았던지 나는 역 정문 앞에서 360도 자체 회전하며 동영상을 찍는다 ㅋㅋㅋㅋㅋ 폰카로 찍어 그 느낌은 10분의 1도 제대로 찍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때의 기분만큼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는 습기가 살짝 어린 밤공기 사이를 걸어 캐리어를 끌고 끌고 첫날의 숙소인 몽템포 아파르도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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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시티투어

비가 살짝 온 다음이었는지 땅은 젖어 있었는데 날씨는 따뜻했다. 코트를 벗고 다닐 정도로.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다행. 여행자에겐 날씨와 교통이 받쳐주는 게 최고다.

 

 

 

공항 밖으로 나와 루프트 한자 셔틀 타는 곳으로.

 

 

무슨 레스토랑 앞에서 타는 거라 해서 거기서 기다리는데 셔틀버스라고 해도 엄청 크지 않아요. 작아요. 루프트한자라고 써있는것만 찾았는데 frankfurt airport shuttles라고 쓰여있었던 것 같다. 레스토랑 앞에 설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중간차도에 서더라. 같이 기다리던 한국 분이 저거인것 같은데요- 라고 하셔서 캐리어 끌고 막 뜀 ㅋ 운이 좋았다. 그 분 없이 우리 둘만 있었다면 하염없이 루프트한자 써있는 것만 찾다가 한시간 간격으로 있는 버스를 놓쳤을 듯.

 

 

그렇게 하이델베르그에 내립니다. 계획은 중앙역으로 가서 코인로커에 짐을 맡기고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가는 것. 셔틀은 2시에 탔고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시각은 3시경. 중앙역에서 내려주는게 아니라서 거기까지 가야하는데 대략 30분쯤 걸린단다. 우리는 길도 나쁘지 않길래 그냥 걷기로 한다. 길을 알려주신 유학생?은 거기 걸어가기 좀 먼데....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앞으로 알게 된다 ㅋ 우리는 걷는데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ㅋㅋㅋㅋ 그리고 이후 길을 보는 기준은 캐리어를 끌 수 있는 길인가 로 바뀐다 ㅋ

 

 

 

길 중간에는 이렇게 트램이 다니는 길이 깔려 있다. 트램 처음봐서 한참 신남 ㅋ

 

 

 

어딘가 일본하고 느낌이 비슷하다. 높지 않고 크지 않고 각지고 깔끔한 건물들. 어딘가 통일된 폰트들. 정돈된 분위기.

 

 

연말이라 사람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차가 너무 없어 놀람. 두 사람에겐가 길을 물어 방향을 확인하고 중앙역에 도착했다.

 

 

코인락커는 동전만 사용가능. 역 내부 조금 외진 데 있다. 이 때만 해도 경계심이 한참 강할 때였다. 동전을 만들기 위해 역 내부의 마트에서 물을 하나 사고 E는 맥주를 하나 사고 코인락커 이용. 동전을 넣으면 이런 플라스틱이 나온다. 캐리어 두개가 거뜬히 들어가는 크기에 가격은 6유로. 그래도 이거 하나 넣어놓고 나니 몸이 가볍다.

 

그럼 이제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가볼까?

H의 메시지에 따르면 33번 또는 11번 버스를 타고 성-Bergbahn역에 내려서 6유로짜리 푸니쿨라를 타고 가면 된단다. 근데 어디에서 타는건지는 안 알려줬다 ㅋ 배차간격이 기니 잘 알아보고 타랬는데 나오자마자 33번 버스가 보인다. 아싸 저거다. 냅다 둘 다 올라탔다.

 

 

음... 근데 이상하다.. 노선도를 아무리 봐도 bergbahn역이라는 정류장이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버스는 점점 으슥한 곳으로 들어간다. 대략 몇 분쯤, 몇 정류장 안 가서 내린다고 검색에서 봤는데, 그 정도쯤 온 것 같은데도 보이질 않는다. 진짜 이상하다. 아무리 이상해도 이제는 성의 윗 꼬다리 부분이라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성처럼 생긴것도 안보인다. 아무리 봐도 이건 마을버스 노선이다. 해가 뉘엿뉘엿 진다. 유럽의 겨울해는 과연 짧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친구 사귀기가 시작된다. -_- 붙잡고 물어본다.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갈건데 이 차 맞니? 나 어디서 내려야되니? 근데 얘네들도 모르나보다. 왜 모르지? 우리 동네에 성 있으면 유명해서 대번 알 것 같은데. 친절한 독일 여자애(엄청 예뻤음)가 기사한테 물어봐주겠다더니 뭐라뭐라 독일어로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반대로 탔다는 얘기인거 같다. -_- 망했네.

 

우리가 내린 곳은 어떻게 봐도 마을 한 중간. 정류장의 노선도를 보고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께 여쭤봤는데 역시나 영어는 안 통하고 뭐라뭐라 설명하시는데 잘 모르겠어서 그냥 알아들은척 하고 고맙다 했다. 계속 우리를 주시하던 아저씨가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다. 역시나 끼어들어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한다. 독일어로 --_--. 진짜 열심히. 

 

아... 이럴거면 차나 빨리 와라. 아저씨랑 같은 트램을 타고 결국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옴 ㅋ

하이델베르크 성은 포기하기로 한다. 이미 반대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푸니쿨라 타고 올라가 성을 보기에는 늦은 시각이다. 우리는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해야 하니까.

 

 

여행의 설렘은 첫 도착지에서 전혀 충족되지 않았지만 시티투어 했다 치기로 함. 조금 걱정되긴 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동하는 일정인데, 이런식으로 여행이 진행되면 우린 뭐 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찍고 찍고만 하게 되는건 아닐까? 아직은 시작이라 긍정적인 마음 충만이라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ㅋ 그래도 독일에서 비행기도 타고, 버스도 타고, 트램도 타고, 잠시 후엔 기차도 타게 되니까 ㅋ 나름 교통정복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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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31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이 날의 일정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하이델베르그(루프트한자 셔틀)→스트라스부르(DB Bahn)

 

 

남방항공 기내식. 비프 or 치킨이었던 것 같은데 비프로 선택. 이때만 해도 국내 출발이었기 때문에 한국승객 입맛에 맞춘듯한 간장베이스 양념이었다.

 

 

초점이 나갔지만 다른 사진이 없으므로.

자다보면 불이 켜지고 음료수 서빙. 조금 있다가 식사서빙. 사육당하는 느낌이다. 삶은 채소에서는 묘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강하진 않지만 매우 진득하게 불쾌해 오믈렛에도 햄에도 배어있다. 과일과 빵만 먹고 대충 맛만 보고 포기. 기내식 남기기는 처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남기게 된다.

 

날아날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그리고 나는 어이없는 사건의 시작에 부딪치게 된다. baggage claim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내 캐리어가 나오지 않아 설마, 혹시 했지만 그 설마 혹시가 맞다. 내 캐리어가 도착하지 않았단다. 거구의 독일인 공항 에이전트가 나를 부른다.

 

-혹시 너 짐 안왔니?

-어. 설마?

-이리 와봐. 몇 명꺼가 안 왔어. 보니까 한국-중국간의 경로에서 이런 일이 자주 생기더라고. 혹시 분홍색이니?

-이 신발같은....ㅇㅇ 톤다운된 핑크색이야.

-늦어도 이틀 후에 보내줄게. 너 어디에 있을거니?

-나 그땐 파리에 있어.

-ㅇㅇ 그럼 여기에 호텔주소 적어

-이땐 도착하는거 확실하니? 나 이 다음날 바르셀로나로 가. 그리고 이 날은 호텔을 옮기기 때문에 체크아웃해야돼.

-ㅇㅇ 늦어도 오후 1시까지는 호텔로 도착할거야. 그래도 호텔측엔 미리 말을 해두는 게 좋을거야. 니 짐이 도착할 거니까 너 없을때 도착하면 맡아달라고.

-아.. 진짜... 어휴...알겠어.

-이거(사건발생신고서)받고, 이건 handling agent 전화번호야.  이 업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로 보내게 될거야. 그리고 이건 내 이름이야.

-ㅇㅋ

 

이때만 해도 그냥 우려하던 일이 생겼네 정도였다. 내 옆에 어떤 아저씨는 배낭이 안왔다고 했다. 그 비행기를 탄 사람 중 3명이 안왔다고 한다. 거지같은 남방항공. 대략 비행기 한 편에 2~3명이 이런 일이 발생하는 듯. 싼값으로 유럽 여행을 망치고 싶다면 남방항공 추천.

 

 

다른 비행기로 오는 E와는 프랑크푸르트공항 PP 라운지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터미널 2에서 내린 나는 공항셔틀트레인을 타고 터미널1로 이동해야 한다. 셔틀 트레인 타는 곳은 그냥 에스컬레이터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왼손 팔목엔 무거운 면세품 쇼핑백이 들려있고, 오른쪽 어깨에는 크로스백 짊어진 상태로 막 찍어서 사진이 수평도 안맞는다.

 

 

터미널 1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라운지를 찾아냈다. 이름은 Luxx 라운지인데 오늘 또 다른 비행스케줄이 없으면 3시간만 이용가능한데 너 지금부터 이용할거니? 라고 하길래 그럼 이따올게- 라고 함.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라운지가 매우 특이한 경우. 보통 라운지들은 탑승동에서 이용할 수 있는게 대부분. 여기는 시큐리티 체크를 받기전에 이용가능하다. 어쨌든 E가 12시30분 도착 예정이라 그 시각은 맞춰 대략 10쯤 다시 오는걸로. 자 이제 대략 3시간이 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나가자니 들고 있는 면세품이 너무 무겁다.

 

 

잘 안보이지만 의자에 참새가 앉아있다. 어딘가에 문이 열려있는지 참새들이 공항에 막 날아다닌다. 비둘기였으면 도망갔겠지만 참새니까 앉아 일단 좀 쉬고, 와이파이를 잡아 한국의 사람들에게 도착소식을 알리고, 이거저거 검색도 해보고, 일단 캐리어가 없으니 그 안에 있는 티켓들을 해결해야 한다. 다시 한번 빡치네 중국남방항공. 당장 오늘 타야 하는 것이 루프트한자 셔틀버스와 DB bahn 티켓이다. 이메일에 접속해 예약내역을 확인하고 캡쳐한다.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길때를 대비해 호텔예약과 교통티켓을 E에게 한장씩 더 뽑아주긴 했는데 워낙 초반 일정이라 이걸 뽑아줬는지 어쩐지 기억이 안난다. E에게 확인해보고 없으면 라운지에서 뽑아달라고 해야지.

 

 

면세품이 무거워 이걸 이용해볼까 했으나 아무리 빼도 안빠진다. 한참 생쇼를 하고 보니 유료 이용. 50센트인가 그랬던 듯. 당연히 공짜로 이용하던 것들이 공짜가 아님을 처음 인식하게 되는 순간. 굳이 쓰려고 해도 아직 동전이 없다.

 

 

어 그런데 금호타이어네.

 

 

기다리다 이제 할 일도 없어서 공항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사실 이때까지 고민한 건 캐리어를 살까말까였다. 이미 무거워서 다른 기념품이나 선물 같은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틀 후에 캐리어가 온다지만 면세품도 너무 무겁고, 어깨에 맨 가방에도 짐이 만땅이라 이렇게는 도저히 못 다닐것 같다. 이 가방은 어디까지나 소지품을 간단히 챙겨 나다닐때 사용하려고 들고 온 건데 이렇게 되면 가방채로 호텔에 놓고 빈손으로 다니거나 모두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둘 다 끔찍하다. 일단 호텔에 가기 전인 오늘이 문제다.

 

선택1.

-사고 싶던 리모와 캐리어를 산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돌아볼 계획이 아니므로 공항은 리모와 캐리어를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장점. 이 기회에 사고 싶은 걸 산다. 위기는 기회.

-단점. 비싸다. 택스리펀 받아도 비싸다.

-단점. 내 캐리어를 받게 되면 캐리어가 두 개가 된다. 하나는 버려야 한다.

-한국에서 갖고 온 캐리어는 매우 멀쩡하다. 내 물건 대부분이 그렇듯이 새 것이나 다름없다. 버리긴 아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 캐리어는 TSA lock이 없다. 언젠가 버려야 한다면 그 캐리어를 버리는 것이 맞다.

 

선택2.

-아메리칸 투어리스터나 그 하위로 아무거나 소프트 캐리어를 산다.

-장점. 리모와 캐리어보다 당연히 싸다. 확장형일 경우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짐을 넣을 수 있다.

-단점. 구 캐리어를 받아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새로 산 걸 버려야 한다. 구 캐리어는 하드케이스다.

-단점. 쌩돈이 나간다. 중국남방항공에서 보상해준다해도 아깝기는 마찬가지다.

 

공항을 세바퀴쯤 돌았다. 리모와 루프트한자 판매점을 갔고, 이런저런 편집샵에서 루프트한자 마크가 없는 리모와도 보았고, 샘소나이트에 가서 샘소나이트와 아메리칸투어리스터도 보았고, 투미도 갔고, 그외의 캐리어를 파는 곳이라면 모두 들러보았다. 들어보고 열어보고 들었다놨다 온갖 비교를 해보았는데 아무리 싼 캐리어라도 택스리펀 이전 가격이라면 유로 환율 1300원 기준으로 18만원 이상은 줘야한다. 그리고 며칠 쓰고 버린다고? 아... 그건 도저히 못하겠다. 그렇다고 하드케이스로 사자니 내 캐리어보다 못생긴 걸 훨씬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리모와가 사치다 싶어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소프트 캐리어로 마음을 굳혀 계산 직전까지 갔는데 그 순간 바퀴가 눈에 딱 들어왔다. 헐 내 구 캐리어보다 못한 바퀴를 보았네. 아... 이런 걸 쌩돈을 주고 사야하나. 이왕 사는거 왜 하위기종을 사야하나 에라이 리모와로 결정.

 

 

 

그렇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돈을 씁니다. -_- 리모와 루프트한자 컬렉션. 사이즈는 잘 모르겠는데 25인치 정도 되는거 같으니 63일듯. 다시 한번 열받네 미친남방항공아. PP라운지로 와서 면세품을 다 쑤셔넣고 가방에 있던 것 중 당장 쓰지 않을 것들과 전자제품등을 캐리어에 집어넣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무거운 걸 내내 들고 다니느라 손과 팔과 어깨가 너무 아팠다. 다음날 알게 되지만 손바닥에는 물집도 살짝 잡혔다. 그리고 나는 너무 피곤했고 씻고 싶었다.

 

라운지에서 샤워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자 5유로를 내면 샤워실을 사용할 수 있단다. 당연히 무료혜택일거라 생각하고 물어봤던거라 5유로면 좀 비싸잖아? 싶어 잠시 고민했지만 도저히 이러고는 못 살겠다. 나는 샤워를 하기로 하고 키를 받았다. 갈아입을 옷이 있었다면 갈아입었겠지만 나는 캐리어가 없다. -_- 그래도 샤워를 한 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다. 화장품이 있었다면 화장도 했겠지만 나는 캐리어가 없다. -_- 그래도 얼굴을 씻은 것만으로도 역시 살 것 같다. 수분크림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막판에 나오면서 쑤셔넣은 샘플 몇 개 뿐. 샘플 하나를 얼굴에 바르니 건조했던 피부가 단숨에 흡수한다. 아... 살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당당하게 쌩얼로 다니게 된다 ㅋ

 

 

이제 여유가 좀 생겨 라운지를 둘러보고, 오렌지주스도 가져다 마시고 빵도 두어개 먹었다. 내부에 이것보다 조금 더 큰 공간이 있지만 거기까지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와이파이를 잡아 계속 앞으로의 일정 검색. 이 모든 것을 한국에서 하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전날 자정까지 달달 볶이다 왔기 때문에 우리는 전날 아홉시에 호텔과 교통편을 한 건씩 더 해결한 것만으로도 스스로 장하다 생각하던 때였다. 일단 당장 오늘것부터. 셔틀타는 위치를 다시 검색해서 확인하고, 이따 기차 탈 위치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먹고 쉬고 충전도 하고, 확인도 다 했을 무렵 E가 도착했다는 카톡이 왔다. 이제 셔틀 시간이 촉박하다. ㅋㅋㅋ 하지만 빨리 오라고 재촉할 수는 없으므로 마음은 쫄깃하지만 최대한 티를 안내고 위치를 알려준다 ㅋㅋㅋㅋ 그리고 E가 도착하고 티켓을 확인해보자 역시나. 루프트 한자 셔틀 티켓이 없다.

 

라운지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가 컴퓨터와 프린터를 쓸 수 있냐라고 하자 저쪽에 고객용 컴퓨터가 있으며 내 이메일로 보내면 뽑아주겠다하지만 고객용 컴퓨터는 먹통이고 나는 더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럴땐 모바일이 빠르겠다 싶어 안 되는 건 빨리 포기하고 내 휴대폰 화면을 띄워 보여주자 직원이 이 pdf 파일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급할 땐 늘 그렇듯이 이메일은 갑자기 말을 안듣고 파일첨부가 잘 안 된다. 이제 진짜 셔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티켓 뽑는데 성공. 고맙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셔틀 타는 위치로 달려간다.

 

나는 앞으로도 여행 내내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감사하게 된다. 빠른 판단력. 그리고 좋은 시력. 지금 생각해도 데스크탑 컴퓨터를 오래 붙잡지 않고 빨리 모바일로 바꾸고 직원에게 도움을 구한 건 잘한 일이었다. 내가 조금 더 망설이는 성격이었다면, 조금 더 남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묻기를 껄끄러워하는 성격이었다면, 나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에 부딪쳤을 때마다 매우 많은 걸 놓치게 됐을 것이다.

 

물론 거지같은 남방항공이 내 캐리어만 줬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E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짧게 잡아도 6시간이 비는거라 캐리어만 제때 받았으면 나는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한바퀴 돌고 오려 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럽여행을 적은 노력으로 망치고 싶다면 중국남방항공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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