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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드보일드 탐정 필립 말로 2009.12.25

하드보일드 탐정 필립 말로





예전의 포스트에도 쓴 적이 있지만, 이 책의 번역자는 내가 블로그 생활을 하면서 마주친 몇 안 되는, 참 글맛이 좋은 글을 쓰는 블로거였다. 글 한편이 모두 정련된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고 구조도 나무의 추재처럼 단단했다. 관심이 생기는 사람이 있으면 1페이지부터 다 읽고 마는 나의 평소 습성과는 다르게 그의 글은 아껴 읽곤 했었는데 지금은 블로그를 접어버렸다. 꼭 쿠폰 9장 모았는데 장사 접어버린 피자집처럼 치킨집처럼 -_- 하여간 그 사람이 번역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뭐 때문인지 참 재미도 없고 읽히지도 않았는데 이 레이먼드 챈들러 시리즈는 음... 챈들러의 힘일까 번역자의 힘일까.

한동안 추리문학에 열을 올렸는데 추리문학은 참 매력적인 장르이지만 안타깝게도 장르 특성인 건지 글맛이 덜하다. 사건이 중심이 되니까 아무래도 빠른 호흡이 필수라 문장은 짧아지고 수식어는 뻔하고.. 등장인물들이 다크하니 그들을 서술하는 말도 거기서 거기인가. 그런 책들만 읽다가 처음 『기나긴 이별』을 읽었을 때의 그 신선함이란.

아...그래 이런게 문학이었지. 라고 생각했다니깐 정말로.

하이 윈도는 기나긴 이별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지만 여기서는 필립 말로라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개념은 그 태생부터 함께 하지 않으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애매한 것들이 있는데 나에겐 하드보일드라는 개념이 그렇다. 이 책을 읽으니 그게 어떤 건지 조금 느낌이 다가온다. 정말 오랜만에 책 읽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새서 읽어버렸다.

마침 이 날은 주문한 가습기가 왔다. 온갖 프린트물도 잡동사니도 없는 모처럼 깨끗한 책상 위에는 가습기, 한 쪽에는 워머 위에 홍차가 데워지고 있고,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반쯤 누운 자세로 배 위에는 쿠션을 얹어 책을 받치고 읽는데 아... 이게 얼마만에 느끼는 촉촉한 평화인가. 만약 하필 집어든 게 그지 같은 책이었다면 -_- 완성되지 못했을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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