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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8. 화이트래빗, 이사카 고타로 2019.01.27

2019-018. 화이트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금도 기억나는데, 그러니까, 맙소사. 벌써 10년쯤 전이네. 정말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학교도서관에서 '용의자 X의 헌신'을 뽑아서 읽었다가 바로 그 대목에서 헐? 헐! 헐?!!!!!!!!!!!!! 하고 감탄했었다. 그 이후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눈에 띄는 대로 거의 다 읽었었지. 물론 용의자X는 반전의 대표격인 소설이라. 이후 읽은 책들에서 그걸 뛰어넘는 충격을 받는 일은 없었지만, 소소한 재미는 꽤 있었다. 매스커레이드 시리즈에 나오는 고스케 형사라거나, 용의자X와 갈릴레오 시리즈에도 나오는 유가와 교수처럼 애정을 가지게 되는 주인공들도 있고. 하지만 대부분은 작가가 너무 쉽게 등장인물을 죽이고, 뜬금포 교훈을 던지는 식의 이야기가 많아서 그냥 그냥 관성으로, 의리로 읽게 되는 책이 대부분이었다. 거기다가 어마어마한 다작이라 몇 년쯤 지나고 나니 내가 이걸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도 안나서 다시 읽다가 중간쯤 가서야 윽, 이거 읽은 거네... 한 적도 두세 권 쯤 있다.


하지만 여기서 알 수 있는 나의 취향은, 뭔가 탐정스러운,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아이코닉한 인물을 좋아한다는 것. 엘큘 포와르나, 셜록 홈즈나, 미스 마플이나, 주인공이 내세우는 시리즈 인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너무 진지한 작품보다는 적당히 유머와 여유가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물론 진지하고 묵직한 작품도 좋지. 하지만 그런 건 1년에 한 두세편이면 된다. 독서가 취미이자 생활인데 매번 너무 헤비한 작품을 읽어서는 나도 일상생활이 곤란하다.


그런데! 그런 작가를! 또 만난 것 같다. 사실 모른다. 이 작가의 작품은 몇 개 '알고'는 있었지만 읽은 건 처음이라. 근데 느낌이 왔다. 오- 이 사람은 파볼만한 가치가 있겠어.


이 책에는 레 미제라블과 흰토끼가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 그 두 이야기를 살짝씩 섞어 변주하면서 마치 전래동화처럼, 예를 들면 호랑이한테 잡힌 나그네를, 토끼가 혹은 여우가 꾀를 내어, 호랑이에게 유리한 걸 제시하는 것처럼 하면서 나그네도 구출하고 자기도 적당히 살고. 그 과정에서 호랑이는 응징하고. 아니면 나그네는 가던 길 가고. 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작가가 중간에 불쑥 불쑥 등장해 마치 변사처럼 독자한테 이야기를 던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주인공 구로사와가 매우 매력적이다. 구로사와가 툭툭 던지는 말이, 그 말이 만들어내는 상황이 재밌다.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아깝다. 물론 모른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 이 등장인물이 시리즈로 등장할지 어쩔지, 다른 작품도 이처럼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어쨌든 이 작품은 재밌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흥미가 생겼다. 부디 다른 것도 재밌기를.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구로사와를 재활용했기를.


첫 느낌은 이거 영화를 염두에 두고 썼구만. 혹은 자기 작품이 영화화된 전력이 많구만- 간혹 소설 중에 그런 것들이 있다. 씬Scene처럼 읽히는 소설들이. 여기서 장면이 바뀌겠군, 아 여기서 과거회상이군, 카메라가 이렇게 움직여서 여기를 클로즈업 하겠군 하는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소설들.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변사의 활용이다. 다음이 궁금한 거 아는데 잠깐 기다리라고. 이 타이밍에서 저쪽 사정도 좀 보고 오자는 둥, 잠깐 과거 이야기로 가자는 둥. 변사(사실을 작가)가 장면전환의 역할을 한다. 반대로 어떤 점에서 그런 느낌을 주는 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를 소설처럼 찍는 감독들도 있는 모양이다. 소설가이자 전직 장관인 모 감독(이렇게 말하면 누가 몰라 ㅋㅋ)의 최근작 영화가 바로 그 이유로 재미없었단 사람이 있더라. 영화에는 영화만의 이야기 방식이 있는데 그 감독은 마치 소설을 쓰듯이 영화를 찍더라. 그래서 자기는 너무 그 영화가 구렸다- 뭐 이렇게. 


다시 이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이 책을 신나게 읽다가 거의 다 읽었을 무렵, 1/4 가량이 남았을까 싶을 즈음,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감이 좋은 독자는 사건의 흐름, 흰토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지도 모르지만," 정확히 이 부분에서, 책장을 돌려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딱히 감이 좋지 않아도 여기까지 읽으니 사건의 전모를 나 역시 다 파악할 수 있었으나, 오! 재밌어! 재밌어서 다시 읽고 싶어- 해서 다시 읽었다. 


작가의 말이나 역자의 말처럼, 읽다가 벌떡 일어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여기까지면 어지간히 했겠지- 하다가 뒷부분에서 어이쿠 ㅋ 역시나 그냥 넘어가지를 않네 ㅋ 하는 만족감이 있었다.


덧. 당연히 영화화 되었겠지-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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