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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라카미 하루키의 토끼정과 나의 크로켓 1 2007.01.21

무라카미 하루키의 토끼정과 나의 크로켓




'토끼정'에는 두 종류의 요리밖에 없다.
하나는 매일 바뀌는 정식이고, 또 하나는 고로케 정식이다.
두 음식에 바지락 된장국과 큰 그릇에 한가득 담긴 양배추 샐러드가
딸려 나오는데, 이게 참 무지하게 맛있다.
그리고 신선한 야채절임도 듬뿍 곁들여진다.
갓 볶은 참깨를 뿌린 데친 시금치라든가, 스파게티와 버섯 초무침 같은 게
작은 그릇에 소복이 담겨 나온다.
쫄깃쫄깃한 스파게티와 씹는 맛이 상큼한 버섯 초무침은
여느 정식집에서 나오는 반찬과는 격이 다르다.

그리고 밥은 보리밥이다.
이 보리밥이 투박한 느낌의 큼지막한 밥 공기에 담겨 나오면
은은한 보리 냄새가 온 가게 안에 물씬 풍긴다.
나는 이 순간이 미치도록 좋다.
차 역시 은은한 엽차(여름에는 시원한 보리차)가 나온다.
젓가락은 약간 짙은 색의 날씬한 삼나무 젓가락이고,
젓가락을 싸는 종이는 고동색이 섞인 연둣빛의 무늬 없는 일본 종이다.

날마다 바뀌는 정식의 반찬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쓰자면 한이 없으니 여기에서는 화제를 고로케 정식으로 한정하겠다.
'토끼정'의 고로케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글로 표현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꽤 큰 고로케 두 개가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무수한 빵가루가 바깥을 향해 톡톡 튀듯이 알알이 서 있고,
기름이 쉭쉭 하는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건 거의 예술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삼나무 젓가락으로 꾹 누르듯이 잘라서 입에 넣으면,
튀김옷이 바삭 하는 소리를 낸다.
속에 든 감자와 쇠고기는 녹아들 것처럼 뜨겁다.
감자와 쇠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대지에 뺨을 비비고 싶을 정도로 잘 자란 감자-
이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와,
주인이 엄선해서 구입한 쇠고기를 커다란 부엌칼로 잘게 썰어 섞은 것이다.
양념은 재료의 뛰어남을 살리기 위해 아주 조금만 하고,
맛이 좀 싱겁다 싶으면 '토끼정' 특제 소스를 친다.
소스는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 있어서 스푼으로 그것을 퍼서 치는데,
뭐라고 형용해야 좋을지 모를 불가사의한 맛이 난다.
결코 뒷맛도 남지 않고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두 개의 고로케 중 하나는 소스 없이 먹고,
다른 하나는 소스를 쳐서 먹는다.
소스를 쳐서 먹는 것도 맛있고,
소스를 치지 않고 먹는 것도 맛있다는 미묘한 심정에서다.

무라카미 하루키, '토끼정'주인 중에서.




흔히 먹는 제과점의 고로케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고로케- 아니 잠깐, 고로케라니.
크로켓croquette이지. -가 아니라 빵속에 감자를 비롯 야채와 고기 약간이 섞인 것으로 빵가루 묻은 튀김옷과 속이 분리가 되어 있고 공기층으로 살짝 속이 비어 있으며 포크로 썰어 먹어야 하는 반면에 진짜 크로켓은 포크를 옆으로 눕혀 누르면 스윽- 하고 잘리며 입 안에서도 사르륵- 부드럽게 퍼진다.

이런 크로켓을 먹을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있었다. 토끼정만큼은 아니어도 꽤 맛있는 손바닥만한 크로켓을 파는 곳이었다. 항상 야채크로켓과 감자크로켓 두 개를 사와서 먹고 나면 음. 역시 감자가 맛있어. 다음엔 감자만 두 개 사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또 야채와 감자 하나씩 사곤 했다. 아마 '역시 감자가 맛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야채크로켓이었나보다.

얼마 전 또 크로켓 두 개를 사러 갔더니 이제 더 이상 크로켓을 하지 않는단다. 아, 맛있는 음식 하나가 또 멀리 멀리 가버렸다. 뉴_뉴 이렇게 되면 자가 제작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크로켓은 몇 번 만들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늘 마음에 안 드는 게 빵가루였지. 열심히 손가락으로 두들겨 보니 일본식 돈까스 빵가루는 보통 빵가루가 아닌 생빵가루를 쓴단다. 생빵가루는 식빵을 갈아쓴다는데 식빵이 갈리냐. 아마 손으로 자잘하게 뜯나보다.  얼린 후 갈아 쓰는 거랜다; 수분 함량이 있기 때문에 재료에 더 듬뿍 묻고 오히려 기름을 적게 먹는다는데 이건 좀 아리송. 일본식 돈까스의 빵가루는 오히려 기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듯이 느껴졌는데.

감자를 포슬포슬하게 쪄낸 후 으깨고, 소고기 간 것을 넣고, 채소 몇 종류를 넣고 섞어서, 손으로 빚어서, 밀가루에 굴리고 계란을 묻혀서, 손으로 찢어 만들어 놓은 생빵가루가 왕창왕창 묻도록 해서 기름에 튀길 생각을 하니.......-_-

부럽소 하루키씨. 나도 어서 나의 토끼정을 찾아야 할텐데.
기름이 쉬익- 하는 소리를 내고, 입을 하-하-하고 불어 먹어야 할 만큼
뜨끈뜨끈한 고로케를, 아차차 크로켓을 파는 토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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