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Bang Theory
추천받아 보고 있는데 사우스파크 이후로 이렇게 딱 내 취향인 영상물은 처음이다.
이 격하게 사랑스러운 jerks, nerds and geeks.
나도 나중에 저런거 하나 구해야지.
2007/10/09 - [screen/dramaholic] - The West Wing
웨스트 윙의 두 번째 좋아하는 에피소드. 4x02 20 Hours in America-Part 2
이 에피소드는 대통령인 제드 바틀렛(마틴 쉰)의 재선을 위한 연설을 따라간 비서실 부국장 조쉬 라이먼, 조쉬의 비서 다나, 공보국 부국장인 토비 지글러가 어쩌다가 차량행렬을 놓치고 헤매는 20시간 동안의 이야기이다.
일행들의 차도 놓치고, 기껏 쫓아갔더니 섬머타임을 실행하는 주와 하지 않는 주 사이의 시간 차로 비행기를 놓치고, 겨우 갈아탄 기차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등 온종일 헤매고 다닌다. 그렇게 헤매다가 막간을 이용해 승부욕이 강한 조쉬와 토비는 내기를 하게 되고, 지는 사람은 당일 하루동안 앞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통성명할때마다
계속 백악관에서 근무한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게 조건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자랑하는 캐릭터들이 절대 아니므로 이건 무지하게 쪽팔리는 벌칙이다.
토비: 난 토비야..... -_- ...백악관에서 근무하지.
타일러: 아,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백악관에서 근무하시는 걸 직접 말씀하시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내게 하는 게 훨씬 멋져보일거예요.
조쉬: (룰룰루~ 도망-♪)
토비: --_-- (말없이 기차에 올라탄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절대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는다. 나도 알아. 근데 내가 이 사람이랑 내기를 했고 그래서 블라블라~ 이런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어찌나 쿨하신지들.
하지만 이 에피소드의 진짜 이야기는 뒷부분에 있다.
이들은 헤매다 헤매다 비를 만나고 몸을 말리기 위해 근처 호텔에 들러 방을 잡는다. 들어오자마자 호텔로비의 뉴스에서 수영장의 폭탄사고 소식을 보게 된다. 게다가 이 날은 주가가 엄청나게 폭락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뉴스는 아니지만 정책을 수행하는 입장에서, 특히나 재선을 앞두고 있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이 뉴스들의 무게가 다르다. 착잡한 마음으로 바의 테이블에 앉아서 계속 선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백악관에서 일하고 있죠.
잠깐 얘기할 시간이 있으신가요?
저희가 맥주를 대접하고 싶네요.
토비: 이 일을 하면서 배운게 있다면 다음 대통령이 어떤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지 모른다는 점이야.
비전과 용기를 가진 사람, 숭고한 정신을 지닌 사람, 국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일들을 대면하고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룩할 수 있을거야. 누가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지를 국민들에게 말해주고 누가 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주기 보다는 그걸 자명하게 만들자는 말이야. 물론 힘이 들 거야.
조쉬: 그럼 힘든 일을 해보자구요.
어제 만났던 토비예요. 네. 잘 도착했어요 고마워요.
우리가 하려는 걸 설명 드릴께요.
집합 A,B,C의 벤다이어그램을 그리고 각각 재미있는 드라마, 진지한 드라마, 생각하길 요구하는 드라마라는 주제를 넣어본다고 가정하면, 뭐 더 수많은 집합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건 그냥 전제로 깔자. 그러면 그 가운데 삼각형처럼 생긴, 세 집합의 교집합에 들어가는 얼마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가 바로 이 The Practice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이 시트콤은 끝날 때가 되자 노홍렬(이홍렬)에게 대대적인 서비스를 한다. (Ep.292)
노홍렬은 아내를 사별하고 딸 민정이를 키우며 홀로 오랫동안 살아오다 옆집에 이사 온 미나엄마 배종옥을 짝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짝사랑의 기간동안 그는 좋아하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오랫동안 배려해 주고, 몰래 도와 주는 등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종옥은 그런 디테일까지는 알지 못한 채 그저 그의 마음이 오래 쌓여 온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결혼해 살던 어느 날.
홍렬이 먼 곳으로 잠시 여행? 출장?을 떠난 사이 종옥은 홍렬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자기가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으며, 홍렬의 깊은 마음&숨겨진 많은 일들이 많은 사건 뒤에 있었음을 알게 되고 감동한다. 홍렬이 예정보다 일찍 들어와 종옥을 놀래주려 하다가 종옥이 자신의 일기장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토라지지만 종옥은 비로소 홍렬이 그렇게 듣고 싶어했던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캐릭터가 흔치 않게 발견된다. Boston Legal의 James Spader가 분한 변호사 앨런 쇼어. 판사에게는 '당신은 법조인의 수치'라는 말을 듣고, 동료에게는 '당신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힘이 있어요' -_- 등등 칭찬 아닌 칭찬을 듣지만... -_) 그가 진짜 사랑한 여자(이름 까먹었다)에게 '당신 속에는 세 명의 앨런 쇼어가 있어요. 착한, 나쁜, 그리고 개구쟁이 앨런.' 뭐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앨런은 자기가 사귄 그 수많은 여자들 중에 그녀만이 드물게 자신의 core까지 들여다 보고 진가를 알아 주는 것을 알고 티는 안 내지만 하여간 흐뭇해한다.
아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그런 여자 캐릭터로는 유일할 듯한. 얼마 전 끝난 환상의 커플 조안나.
조안나는 건방지고, 싸가지없고,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의 진면목을 꿰뚫어 볼 줄 알고, 사건의 진실을 포장없이 대하며 그걸 그대로 얘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려서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고 모든 가족을 잃은 그녀는 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안다. 유일하게 가족으로 생각하는 남편 빌리마저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녀를 오해하지만 운 좋게도, 우연히 만난 장철수는 그녀를 동등하게 대하고, 그녀 또한 기억상실 이후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며 제대로 된 관계를 맺어간다.
특히 그녀가 멋진 점은, 그녀가 돈이 많아서 돈의 힘을 믿고 당당했거나 싸가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조안나건 나상실이건간에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 기억을 잃고 돈 한푼 없는 입장에 서 있어도 당당하고 할 말은 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캐릭터 중 최고는 아다치 미츠루의 H2에 나오는 쿠니미 히로. 굳이 히로 뿐 아니라 아다치의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은 거의 이런 패턴으로 행동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히로의 진가를 알아 준다. 정말 모두 다.
하지만 현실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 혹은 관계 속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를 더 믿고, 겉으로 보이는 것에 더 신경쓴다. 숨겨진 의도나 어떤 행동이 있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같은 것이 저절로 드러나는 일은 더욱 드물고, 드라마나 만화에서처럼 변호해 주는 조연도 없으며, 친절한 카메라도 비춰주지 않는 현실의 캐릭터들은 오해 받거나, 묻혀 버린다. 그렇다고 지 입으로 다 얘기하고 다니면 찐따에 열라붕이고 -_)
어쩌면 그건 세상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기 짝인지 아닌지, 내 사람인지 아닌지를 재빨리 판단하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니까. 즉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쪽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속에서 긴 시간과 많은 사건을 함께 해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저런 마라톤형 캐릭터들은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일 일지도 모른다. 뭐, 그냥 사람이란 다른 사람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하여간 저런 사람을 만나려면 대단한 혜안을 가지던가, 소가 뒷 걸음질 쳐도 쥐를 잡을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나거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