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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8월의 크리스마스 2013.08.17
  2. Bach: Cantata, Karl Richter 2008.02.05

8월의 크리스마스

 

 

처음 국내에 소개됐을 때만 해도 '꽤 괜찮은 저가 레이블'이었던 낙소스가 세월이 흐르자 세계적인 음반레이블이 되어있다. 그저 저가이기 때문에 성공한 건 아니고, 처음부터 복각음반을 저렴하게 출시하기 시작해서 눈길을 끌고, 이런 시리즈, 저런 시리즈를 발표한 전략이 먹혔겠지. 우린 앞으로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는 비전 제시- 그런 젊은이스러운 시각이 이 업체를 크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이미 다른 레이블들은 우린 할 일 다했고 새로운 음악가와 새로운 녹음이 나오지 않는 한 할 일이 별로 없다는 듯한 늙은이스러움이 어느 정도 내비치던 시기였으니까. 씨디만 고집한 게 아니라 스트리밍 서비스를 함께 끌어나가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적응력이 또 하나의 성공원인일테고.

 

 

 

2004년 2월이나 3월쯤에 산 걸로 추정되는 이 음반은 막상 샀을 때는 몇 번 듣지도 않고 꽂아둔 것이 분명한데, 솔직히 말하면 안 사도 됐을 음반이기도 하고... 오늘 들으니까 매우 좋구나. 왜 안 사도 됐냐면... 나는 칸타타 전집을 2개쯤 갖고 있기 때문에-_- 겹친다. 그리고 찾아보면 몇 개쯤 전집 아닌 음반이 더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 칸타타라는 주제에 충실했으려면 좀 더 알아보고 고르고 골라 샀을텐데 전혀 그런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냥 땡겨서 어디 한 번 들어볼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샀단 얘기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칸타타라고는 하나 독일어라고는 eins zwei drei 밖에 모르는 내가 이게 뭔 소린지 알아야 아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야! 하며 느낌이라도 만끽하지. 그냥 들으면 크리스마스 칸타타인지 삼위일체 칸타타인지 알게 뭐람. 또 막상 크리스마스 되면 내가 퍽이나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듣고 있겠다. 아니 일단 집에나 있냐고.

 

게다가 전집이라니. 일 년 내내 무슨절이니 무슨 주간이니에 맞춰서 칸타타만 들을 게 아니라면 칸타타 전집 같은걸 대체 내가 왜 샀는가 싶다. 첫 장부터 완청하는 걸 목표로 삼은 적도 두어번 있었는데 하다보면 대체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듣고 싶은 음악은 못 듣고 내내 사람들이 오오오오- 하는 것만 듣고 있자면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아무튼. 바흐는 한 달에 한 곡 꼴로 칸타타를 썼다고 한다. 그 사이사이 애도 많이 낳고 --_--  어디 칸타타만 썼나. 미사곡에 수난곡에 협주곡에 독주곡들에...매일 영화평 한 개씩 올리는 듀나만큼이나 부지런한 인간이다. 가장 충실한 직업인으로서의 음악인은 바흐였지 싶다.

 

아무튼 크리스마스 칸타타라는 건 뭐 크리스마스 칸타타라고 한다면 이 칸타타들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음반 제목인거고 여기에 수록된 칸타타들은 크리스마스 당일을 위한 곡이라기보다는 그 전부터 준비하는 기간을 위해 쓰여진 곡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성탄절 전 4주간을 강림절, 또는 대림절이라고 한다. 예언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을 시작으로 생각하기 때문인지 교회력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이 강림절로부터 시작한다. 이 중요한 성탄절 전 4번째 주일인 첫 강림절 칸타타로 작곡된 것이 BWV 36, 61, 62의 세 곡이다. 이 중 61번과 62번은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 라는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예수탄생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61번은 바흐 칸타타 중에서도 손꼽히는 곡인가보다. 61번이 더 좋은지 62번이 더 좋은지, 왜 그런지 생각하고 싶으면 전집중에서 꺼내 들으면 되지만 그건 너무 귀찮고.

 

이 음반으로 한정하자면 정작 나는 61번보다는 36번쪽이 더 좋다. 이 음반에는 36번과 61번 132번 이렇게 세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앞의 두 곡은 첫번째 강림절, BWV 132는 4번째 강림절, 즉 크리스마스 바로 전 일요일을 위해 쓰여진 곡이다. 여기에 수록되어있진 않지만 2번째 강림절을 위한 곡에는 70a, 3번째 강림절에는 186a와 141, 4번째 강림절에는 132와 147a 가 있다.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면서도 독실한 신자들은 때때마다 챙겨서 듣고 텍스트까지 감상하는 듯 한데(물론 그런 사람은 극소수지만) 교인이 아닌 나는 가사를 음미하다보면 듣기 싫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절제되고 정련된 분위기 그것인것 같다. 사실 이런 교회음악의 진짜 목적은 텍스트의 전달일텐데.

 

음반 표지 그림은 The Adoration of the Magi(동방박사의 경배)이다. 16세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누구 작품인지는 안  나와있다. 그냥 German School이라고만 되어있네.  당연히 동방박사가 예물을 드리는 장면이다. 황금, 유황과 몰약. 태어나면 죽는 건 누구나 당연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선물로 장례에 쓰일 몰약을 받는 이 아이러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파면 팔수록 크리스마스 분위기따위는 전혀 나지 않는 크리스마스 칸타타 ㅋㅋ 그러니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듣는게 레알 "음악"감상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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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Cantata, Karl Ric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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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목소리는 거의 안듣는 취향이지만,
지난 밤에 자발적 의지 0%로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듣고 나니 문득 칸타타가 듣고 싶어서.

와- 이 음반 산 게 벌써 4 년 전인가. 딱 요맘때 샀다.
쯧, CD로 세월을 세다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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