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샹다관. 갤러리페이크




칭샹(淸香)다관이라 이름붙은 21권 첫 에피소드의 마지막은 이렇다.

어렴풋이 풍기는 차의 향기에 마음이 취하는 것이 칭샹의 경지!
군자의 평안은 칭샹에 숨어 있어.

편안하고 차향 그윽한 내용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80년대 전반, 타이완은 국민당의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중이던 임효방은 상처를 입고 관헌의 추격을 피해 도망가다가 굴러 떨어져 차따는 아이-방에게 발견되고, 방의 할아버지는 이름도 이유도 묻지 않고 치료와 도움을 베푼다. 우리나라 80년대에도 이런 얘기 많을꺼다.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벌써 다 까먹은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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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방은 답례로, 또 표식으로 지니고 있던 옥을 할아버지에게 주지만 좋은 마음으로 준 선물이 때론 화를 불러오기도 하는 법. 소작인 주제에 이런 옥을 갖고 있다며 빼앗으려던 동네 양아치에게 할아버지는 맞아 죽고 이에 분개한 방은 양아치를 찌르는데 공교롭게도 흉기가 옥을 관통한다. 이후, 방은 늘 옥을 관통하는 방법을 쓰는 살인청부업자가 되고 임효방은 다예로 흐름을 바꿔보려는 정치가의 뜻을 품고 육익을 빗대어 임해익으로 이름을 바꾼다.


총통선거를 앞두고 방에게 들어온 제거 대상은 당연히 임해익. 임해익은 술도 여자도 가까이 하지 않고 오로지 갖고 있는 취미는 茶뿐이라 방은 기코시사(宜興紫砂 의흥자사)의 차후(다호)를 구해 그것으로 임해익에게 접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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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의흥자사 작품 중에서도 3대명인으로 꼽히는 시대빈(時大彬)의 작품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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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의 도움으로 임해익을 만나 그의 다원에 들어간 순간 차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방은 갑자기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방은 준비해 온 차를 정성스럽게 우려내어 임해익에게 건너고, 그는 차향을 맡는 임해익의 모습에서 할아버지가 겹쳐 보이는 환상같은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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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을 꺼내 임무를 완성하려는 순간 임해익은 옥을 알아보고, 방은 또다시 할아버지가 떠올라 멈칫 하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후지타가 임해익을 보호한다. 임무에 실패한 방은 마침 옥을 떨어뜨리고....중요한 순간에 굴러가는 물건을 떨어뜨리면 그 물건이 멈춘 곳에 뭔가 기다리고 있다는 클리셰에 따라 방은 죽고 만다.


괜히 은혜 갚겠다고 형편에 맞지도 않는 귀한 옥을 선물한 때문에 할아버지도 죽고 방도 죽고 임해익만 살아남았다는, 그러니까, 선물은 하고 받아야 하며 시공을 초월해 정치가와 엮여서 좋을 일 하나 없고, 이름과 전화번호 교환은 필수라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이다. (진짜?)


시대빈의 다호는 찾아 보니 실물이 있었다. 虛扁(허액)이란 이름이 붙어 있고 밑바닥에는 源遠堂藏 大彬制라고 새겨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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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도 백년이 넘으면 마음을 갖고, 사람을 현혹한다. 우유당몽돌




살아남아 오래된 물건에는 비싼 값과는 별개로 묘한 매력이 있다. 과거에 만들고 썼을,
이제는 없는 누군가와 현재의 내가 마치 하나의 접점으로 연결된 기분.
잘- 만들어진 물건이 시간에 버텨내온 힘.이라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신라시대 토기라든가 고려시대 청자라든가 식으로 '시대' 단위로 넘어가면 인간이 만들었음에도
막상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인간과는 포쓰의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역시 물건에 뭔가 깃든다면, 혼보다는 집착이 더 많지 않을까.


원제가 우유당몽돌인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은
우유당이라는 골동품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므로 골동품점답게 다기들도 많이 등장한다.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벼루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가 이것이다.

일본 미술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한 영국인 교수가 어느 날 벼룩 시장에서
귀여운 티팟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는 중국제 차후(다호)를 하나 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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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문양이 그려진 이 작은 차후에 우유당 손자 렌을 위한 차를 대접해야겠는데
홍차가 똑 떨어진 마당에 수입산 홍차는 비싸서 못 구하고 마침 있는 일본산 홍차라도 내야겠다 생각한다.
맛이 떨어지는 건 우유와 설탕으로 대충 감추면 되고; →이런 대충 자세. 아주 바람직하다. -_)



차를 넣고, 역시 향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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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다. 그냥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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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본인의 컨디션을 의심하며 한 번 더 시도해 보자, 다시 이 동자가 나타나서는
이 찻잎이 아냐.
찻잎은 우이샹 찻잎이 좋아.
물은 두 번 끓이면 안돼.
설탕 안 돼.
우유 안 돼.
차 향기랑 맛을 즐겨.
다음은 더 좋은 차를..


앙증맞은 잔소리를 하고는 스르륵- 사라진다.

렌을 불러놓고도 교수가 계속 맛 없는 차잎을 넣자 차후의 정령?은 버럭 승질을 내며 엎어버리고 사라진다.
아마도 우이샹 찻잎이라는 건 무이산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러쿵저러쿵 해서 맛있는 차를 넣게 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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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비례가 매우 이상하므로 사람 부분은 오래 쳐다보지 말도록 한다.



가끔 물을 넣어두고 멍-하니 있다가 탕약;을 마시는 때가 있는데.
아니 그럴 땐 저렇게 귀여운 동자가 나타나 뒤통수를 한 대 치며
뭐하는거야
시간넘었어
찻잎은 그만큼만
물은 더 뜨겁게
다음엔 더 좋은 차를-
하고 알려준다면.....


부셔버릴지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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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키리키리정의 브라운선생




다기 중엔 표면에 자잘한 crack-관입이 있는 것들이 있다.
쓰다 보면 이 금 사이로 찻물이 배어드는데
이게 또 멋이라, '기른다'고 한단다.


기쿠치 쇼타가 그린 '키리키리정의 브라운 선생'에도 관입이야기가 나온다. (주는 아니지만)
한 샐러리맨이 직장상사의 명에 따라 다도를 배우게 되는데
초 미인인 다도선생이 첫 날 기념으로 찻주발을 선물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사람의 다완에도 물이 서서히 들어가고
다도선생은 이런 말을 한다.


찻주발 하나를 매일매일 소중하게 다루다 보면,
관입에 서서히 차 색깔이 배어들어 간답니다.
그걸 더러움이 아니라, 멋으로 느끼는 것이 다도인의 눈이랍니다.


다도선생에 반해, 소중하게 다완을 기르던 그는 어느 날 퇴근하자
아내의 고양이가 뛰어다니다가 다완을 떨어뜨려 반으로 쩌억-갈라놓은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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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 소리를 지른 그에게 실망해 아내는 친정으로 가버리고
-찻주발의 상태는 중의성을 띠고 있는 거겠지.-그는 찻주발을 수리하기로 한다.

그러나 모두들 수리를 거부하고
곳곳을 들르다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골동품점 호중당.
마침 이 곳에 놀러와 있던 , 역시나 설정상 울트라 뷰티인 브라운선생이 수리를 자청한다.

며칠 후 받게 된 찻주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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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깨진 자리를 숨겨주길 바랬는데
다도선생님이 주신 소중한 다완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며 울고-
브라운은 웃으며 속는 셈 치고 가져가 보라고 한다.

다도선생은 기르는 것을 뛰어 넘어 완전히 탈바꿈을 시켜놨다며,
이렇게 호쾌하게. 깨진 자리를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며 붙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며 감탄하고,
그는 아내에게 찾아가 화해를 청한다는. 그런 에피소드다.

그릇은 아무리 소중히 다루어도 깨질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저렇게 멋지게 붙여준다면야. 일부러라도 두 동강을 내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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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갤러리페이크




좋아하는 음악과 만화책으로 연말을 보내고 있으니, 조용하고 사치스러운 시간이다.
새해가 오기전에 마음껏 만끽할 생각.

다관을 두 개 깨먹고 나니
녹차를 마실 만한 자그마하고 내열성 좋은 다관이 아쉽다.
당연하지만 그런 것만 골라 깨먹었다.
차 종류별로 다관을 갖춰 쓸 재력은 못 되고...성격도 안 되고.
녹차.홍차.중국차용으로 각각 마음에 드는 거 딱 한 개씩만 갖고 있으면 좋겠다.

녹차는 딱 마음에 드는 백자 다관을 인사동에서 본 적이 있다.
그게 벌써 3년 전 얘기. 올해 3월 경 갔을 때는 이미 팔리고 없었다.

중국차용으로 쓰고 싶은 건 아직 딱 이거다. 싶은 건 없었고
적당히 마음에 드는, 괜찮은 가격의 것들은 두 번쯤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로망이랄까. 이상적인 모양으로 그려오던 것이
만화책에 구체화되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게 갤러리페이크였는지,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이었는지,
키리키리정의 브라운선생인지 아니면 오센인지.
감 잡히는 만화책을 슬렁슬렁 뒤져보고 있는 중이다.
내용상 켄잔(오카다 켄잔 尾形乾山)의 작품이다...라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논픽션이라면 실재하는 걸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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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직 못 찾았지만
모 만화책에 나온 고에츠(혼아미 고에츠 本阿彌光悅)의 찻잔.

묘사에 의하면 바닥이 무지개 빛깔로
나전칠기 같다고 했으니 어떤 색채일지 짐작만 간다.
만약 고에츠란 이름에서 카트리지 메이커 고에츠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오타쿠. *-.-*

나는 말차를 (아직은)안 마시니 이도다완에 대한 칭송을 들어도 우와- 보다는
저런 거 하나 구해서 밥그릇으로 쓰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농담아님)
물론 포스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전해지는 게 아닐 테니 실제로 본다면 또 어떨 지 모르겠지만.
이런 찻잔을 봐도 끝내준다- 라는 생각보다는 음. 손에 쥐면 이런 느낌이겠구나..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 찻잔은 정말 손에 쥐면 착 달라붙을 것 같이 생기지 않았는가?
쳐다보고 있으면 양손으로  감싸쥐고 있는 듯 손바닥에 그립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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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mah. 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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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일 모임 때 나눠 받은 딜마의 t시리즈 페퍼민트 차.
유통기한은 살짝 지났으나, 우리 살람 그런 거 상관 안 한다 해. ~(-_-)~
향의 신선함은 약간 덜하지만.
페퍼민트 맛은 다 비슷비슷한 거 같고.

연말 후유증으로 속이 별로 안 좋아 홍차를 쉬는 대신 마셨는데,
오히려 이게 속을 더 깎는다. (=ⓛㅅⓛ=)
하지만 가끔 마시면, 향도 맛도 기분도 상쾌하다.


워터민트(Mentha aquatica)와 스피어민트(Mentha spicata)의 교잡종으로,
향기가 후추(pepper)의 톡 쏘는 성질과 닮았다고 하여
페퍼민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산지는 유럽이지만, 유럽을 비롯해 미국·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전세계 주요 공급국은 미국이지만 영국산이 최상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과연. 마스터키튼의 내용 중에 키튼의 어머니가 민트향을 그리워하다가
영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페르세포네와 관련이 있었는데...



음. 찾아보니 민트 종류도 다르고,
하데스가 플루토로, 페르세포네가 포르세르피나로 다르다.  이 이름이 로마식이었나?
어렸을 때 읽었던 신화 중에 가장 싫었던 게 이 납치사건이었는데.
여기서는 나름 그럴 듯한 스토리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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