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기록. 드디어 CD의 차례

덕후의 기질을 타고나지 않아, 그 무엇도 덕후에 이르지 못했고, 매니아까지도 다다르지 않았고, 기껏해야 애호가 정도이다. 그래서 불만이냐면, 어렸을때는 조금 섭섭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아니다. 덕후의 기질을 타고나지 않아 매우 만족한다. ㅎ 나는 지금의 내가 좋아.


진심으로 나는 미니멀리스트라,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대개 마음정리가 끝난 상태이므로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다. 그 와중에도 이 긴 세월동안 CD만이, 마치 건드리지 않은 성역처럼 남아있었다. 오히려 물건이 많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 어느 정도가 되면 바로 정리해버리는데 CD는 예외인가. 많아도 거슬리지 않나보군. 잘하면 평생도 가겠어-라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달에 대대적으로 정리를.


예전에 H가 그랬었다. 자기는 레퍼토리별로 결정반 하나만 남기고 다 정리한다고. 인생은 짧고 자기가 그렇게 많은 것을 누릴 수 없다는 걸 안다고. 정말 좋은 것만 듣기에도 주어진 시간이 짧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한다면 많은 것을 듣기보다는 좋은 것을 여러 번 듣기로 했다-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그런 말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 그는 나보다 먼저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 거라는 걸.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당시 나는 비슷한 나이였음에도 아직 어른이 아니었고, 그 말을 한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약간의 쓸쓸하게도 보이는 그 표정에서 나는 저런 표정을 짓지 말아야지. 계속 이렇게 욕심부리며 와구와구 듣고 살아야지. 라는 얼척없는 다짐을 했었다. ㅋ


아무튼. 나는 드디어. 음반정리를 하게 됐다. 처음에만 해도 몇 가지의 원칙을 세워놓고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하다보니 그냥 마구 하게 되었다. ㅋ 무원칙 중의 원칙이라면

 

  • 당연하게도, 정리하기 전엔 CD를 리핑한다. 무손실 음원 그런거 없다. 그냥 mp3로 리핑. 기존에 m4a로 해놓은 게 있다면 지우고 다시. 

  • 앨범사진은 구글링으로 다운받아 그때그때 정보에 추가하는 것으로. 이것도 나중에 한꺼번에 하려면 일이라 안 하게 된다. 안해도 전혀 상관없지만 역시 음악을 들을때 앨범 사진이 뜨는 것과 안 뜨는 것은 맛이 다르다. 구글링해보니 아마존의 표지 사진이 가장 쓸만 하기도 하고 맨 처음으로 나오기도 해서 결국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 판매는 알라딘으로. 개인간 거래가 가격이 후하게 쳐지겠지만 배송도, 팔리지 않고 남는 것도 귀찮다. 그냥 싸그리 알라딘에서 했고, 온라인도 아닌 그냥 광화문 나갈 때 마다 가능한 만큼 들고 갔다. (알라딘 앱을 설치하면 바코드를 촬영해 매우 쉽게 미리 가격을 알아볼 수 있다.)

  • 갖고 있는 음반들을 하루에 한 장씩 듣는다고 해도 3년은 걸리겠고, 그래도 한 음반을 세 번은 들어봐야지 생각하면 10년은 되겠더라 ㅋ 그럴 수는 없지. 그래서 일단은 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처음에만 해도 다 들으면서 한 장 한 장 사진 찍을 생각이었다. 앞으로 할 일의 노동량과 소요시간을 우습게 본 거지. ㅋㅋ 칼 리히터의 마태수난곡은 살아남았다. 나한테 마태수난곡은 이게 결정반이다. 그러니 이건 아직 더 갖고 있어보기로. 



나는 한 때 마태수난곡을 정말정말 열심히 들었다. 한....25~30종류 쯤을 몇 달을 들은 듯. 요한수난곡도 만만치 않게 들었고 더 안들어도 되겠다고 결론내렸다. 그래서 이건 방출하고 싶었으나, 알라딘에 매입불가라 살아남았다 ㅋ



마태수난곡은 리히터가 결정반이라면 미사B단조는 오자와 세이지가 결정반이다. 



이것도 알라딘 매입불가라 살아남음 ㅋ KBS명연주 명음반인가. 그 아저씨가 네빌 마리너가 지휘하는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라고 소개하면 엄청 있어보였는데 ㅋ 



요훔도 매입불가라 살아남음. 다시 들어봤는데 나쁘진 않다. 한때 미사B단조를 또 그렇게 팠었는데 ㅎ 미사 B단조는 사실 거의 다 좋다. 엥간히 실력이 없으면 이 곡에 도전하지 않아서- 로 결론내렸다. 



결국 미사B단조에서는 레온하르트, 패롯 방출



한 때 칸타타에 빠져 있을때가 있었어서. 특히 82번이 많다. 하지만 이걸 들을바에 마태수난곡을 한 번 더 듣겠지.



문제는 이 녀석이다 ㅋㅋㅋㅋ 칸타타 컴플릿. 당시 풍월당에 딱 3 set 들어왔었는데 그 중의 한 개를 내가 산 거다. 60장이다 60장 ㅋㅋㅋㅋ 이거 살 때 옆에서 침흘리면서 망설이던 S씨가 절대 다 못들을걸요- 했었는데. 그땐 부러워서 그러죠? 라고 받아쳤으나, 네. 다 못들었습니다 ㅋㅋㅋㅋ 원래가 성악곡 안 좋아하는 취향인데 꾹꾹 참고 들어봤으나 지겨워서 20장 넘기기가 힘들었다.



이것만 해도 꽤 무게가 나가는데 중고매장에 들고가니 알라딘 직원이 열어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어이쿠야 ㅋ 미안해요;;;; 이런 거 들고 와서. 직원들도 확인하고 등급판정을 해야 하는데 판정하는 동안 저쪽가서 책 보시라고 하더니 두 명이서 하나씩 다 꺼내봤다 ㅠ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부 리핑하면서 한 번씩 다 들어보고 결정했다. 사실 듣기 전엔 밀스타인만 남기는 걸로 마음을 정해놨었다. 파르티타 3번을 특히 좋아하는데 이 곡의 마무리는 밀스타인이 정말 기가 막히다. 그래서 하이페츠를 마지막으로 한 번 들어볼까? 하고 듣는 순간 어이쿠야. 역시 이 분은... 바이올린의 신이시다. 도저히 놓아드릴 수가 없다;; 해서 예외적으로 두 개 남기는 것으로. 



테츨라프와 쿠이켄 방출. 하이페츠가 스륵스륵스륵 슝슝슝 한다면 테츨라프는 벅벅벅벅 한다. 매우 속주를 하고 잘하지만 음......미안해요 하이페츠랑 비교해서. 하이페츠는 바이올린의 신님인데. 쿠이켄은 처음부터 건조한 녹음이 위산분비 되는 느낌이어서 오랜 세월 고민해왔으나, 이 중에선 가장 오래된 거고 정말 어렸을 때 산거라 조금 망설였지만 추억으로 버티기엔 여태까지의 시간도 충분한 듯.



17장으로 된 오르간작품 컴플릿. 박스set은 웬만하면 방출하기로.  



무반주 바이올린, 무반주 첼로- 이런 식으로 두 곡이 같이 묶이는 경우가 많지만 난 바이올린 소나타 &파르티타가 압도적으로 좋다. 첼로 솔로는 둘 다 방출하기로. 둘 다 방출해도 안너 빌스마 세트에 이 곡이 또 있다 ㅠ



건반으로 넘어와서 Well Tempered Clavier, WTC는 특히 좋아하는 곡인데 굴드를 남기기로 결정. 존 루이스가 재즈 버전으로 한 4장짜리 녹음이 있는데 그건 일본음반이라 방출불가여서 같이 남김 ㅋ 투렉은 정말 좋아하지만 방출.



리히테르는 좋아하는 연주자이지만 역시 방출. 이 녹음은 일명 목욕탕 녹음으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옛날에는 녹음보다 연주에 중점을 둬서 이것도 나름대로 좋아했는데 이젠 늙어서 그런건지 녹음이 선명한게 좋다. 



여기서부터 귀찮아져서 남기는 것들은 안 찍음. 방출되는 것만. 


골트베르크. 에라 모르겠다 이제 앞면은 찍지도 않는다 ㅋㅋㅋ 골트베르크를 엄청 좋아하는게 아닌데 이상하게 많다. 굴드와 역시 방출이 안 되는 존루이스&미라냐 루이스의 재즈버전, 버지니아 블랙, 레온하르트를 남기고 다 방출. 깔끔하게 하나만 남기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네 ㅎ


그 와중에 낙소스의 예뇌 얀도는 다시 들어보니까 너무 좋더라. 스콧 로스도 좋아하는 거라 조금 고민했다. 버진녹음 말고 에라토의 라이브 버전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라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이미 갖고 있는 것도 많다. 어차피 파일은 남기니까 계속 들으면 되고. 왼쪽부터 차례로 시츠코베스키의 현악편곡버전, 버진에서 나온 스콧 로스, 낙소스의 예뇌 얀도, 마리아 티포, 키쓰 자렛(그 키쓰 자렛 맞다. 재즈는 1도 묻지 않은 하프시코드 연주), 에라토의 스콧 로스 라이브, 피에르 앙타이, 투렉, 쉬프, 페라이어.



프랑스 모음곡은 잉그리드 헤블러가 결정반이므로 방출. 그리고 쉬프는 내 취향이 아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굴드의 파르티타 프렐류드&푸가, 로버트 힐의 크로마틱 푸가와 등등, 굴드의 프랑스 모음곡(굴드를 좋아하지만 이 곡에선 헤블러에게 밀린다), 역시 낙소스에서 나온 로버트 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이때 한참 로버트 레빈과 로버트 힐에 빠져있었다. 로잘린 투렉의 솔로워크, 낙소스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는 루시 반 다엘, 굴드의 인벤션, 쿠프만의 인벤션, 영국모음곡 굴드, 키보드 협주곡(=하프시코드 협주곡) 굴드, 그리고 괴벨 박스. 괴벨 박스도 좋아하는 거라 남길까 했는데 막상 다시 들어보니 내보내도 되겠더라 ㅋㅋ



음악의 헌정. 소느리 앙상블(이렇게 읽는게 맞나), 조르디 사발, 엔리코 가티, 쿠이켄과 그의 친구들

음악의 헌정은 원래도 좋아하는데 또 이 기회에 며칠을 빠져서 들었다. 이것들은 다 방출.



푸가의 기법. 음악의 헌정이나 푸가의 기법이나 바흐의 다른 곡들에선 느껴지지 않는 뭔가 퇴폐미가 있다 ㅋㅋ 전엔 푸가의 기법이 더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들어보니 음악의 헌정 쪽이 또 더 좋더라. 오락가락 한다. 켈러 콰르텟. 굴드. 소콜로프. 코롤료프 이 중에서 베스트는 코롤료프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들어보니 또 긴가민가 싶더라. 암튼 다 방출.



여기까지가 바흐. 바흐가 딱 반으로 줄었다. 



다음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역시나 모차르트와 베토벤인데 손대기가 겁나서 일단 절대 내보낼 토스카니니 박스부터. 이건 다섯장짜리. 열심히 리핑하는데 마지막 케이스가 비어있어 헐? 뭐지?  마침 집에 놀러온 오빠한테 베토벤 9번 씨디 혹시 오빠한테 있냐? 했더니 응? 동공이 마구 흔들리길래 차에 내려갔더니 백미러 뒤에 내 씨디가 여섯장이 나왔다 ㅋㅋㅋㅋㅋㅋ 대여기간이 무슨 10년이야. 싹 갖고 왔다. 오빠가 '왜? 요즘 생활이 어렵냐?' 라며 측은한 눈빛을 1초 보냈다 ㅋ 결국 순조롭게 방출. 이제 구녹음들은 아무리 연주가 좋고 특색이 있어도 듣기가 힘들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일단 놔두고 BBC Legends부터. 여러 작곡가의 곡이 컴필레이션 된 음반들도 웬만하면 방출하는 것으로. BBC 레전드는 텐슈테트의 베토벤 9번만 남기고 다 방출하기로 했다. 이 중에서 특히 좋아서 자주 들었던 것들은 미켈란젤리와 존 오그던인데 리스트 피협은 라자르 베르만으로 내심 결정하고 있어서 별 미련 없이 방출했는데 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그던을 들으면서 오오오오오!!!!!!!!!!!! 너무 좋잖아. 괜히 내보냈나 1초 미련. 감탄해서 한 이틀동안은 계속 이것만 들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켐프의 브람스 슈만 슈베르트, 

-길렐스의 슈만 스카를라티 바흐, 

-호르초프스키의 바흐 베토벤 슈만 쇼팽. 

 바흐는 프랑스모음곡 6번인데 이게 또 기가 막히다. 6번만 있어서 그렇지 헤블러만큼이나 좋다.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루빈스타인

-존 오그던의 리스트 피협 1번 2번과 메피스토 왈츠, 라 캄파넬라, 초절기교

-리히테르의 리스트 피협 1번과 2번. 한참 리스트 피협에 빠져있을때라 ㅋ 

 분명 좋았던걸로 기억하는데 다시 들어보니 읭? 싶은게 취향이 변했나보다. 

-미켈란젤리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드뷔시, 라벨. 이건 정말 열심히 들었었다. 




테스타먼트의 음반들. 


왼쪽부터 

-길렐스의 생상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칸텔리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6번은 따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하이페츠의 랄로 심포니, 베토벤, 쇼송

-칸텔리의 롯시니, 멘델스존, 베토벤

-켐페의 스트라우스 돈키호테,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그리고 BBC Legends 방출할 때 빠진 리히테르의 드뷔시, 쇼팽



그 다음은 EMI도 컴필레이션 음반들이 많아 싹 방출하려고 했으나 매입불가인 것은 당연히 빠지고 이것들만. 


-클렘페러의 브람스 교향곡. 

-리파티의 바흐. 모짜르트. 스카를라티. 슈베르트

-코르토 티보 카잘스의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아르헤리치의 바흐 바르톡 등등

-미켈란젤리의 바흐-부조니 브람스 슈만

-리히테르의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자끌린 뒤 프레와 바비롤리의 엘가 첼로 협주곡 등

-리파티의 브장송 리사이틀

-리히테르의 브람스 피협 2번과 슈만 피아노 소나타 2번

-크라이슬러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컴플릿



여기서부터는 듣는 속도가 리핑&방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리핑하면서 오.... 이런 곡이 여기 숨어 있었네. 하기도 하고 들으면서 맞아... 이게 이렇게 좋았었어 새삼 감탄하기도 한다. 오늘은 저 중에서 자끌린 뒤 프레를 내내 듣고 있다. 분명 엄청 재밌는 책을 읽으면서 듣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책을 확 덮었다. 맞아 이거 완전 좋았지 ㅠ 너무 당연하게 방치하고 있었네.



알파 음반 세 개. 알파 시리즈는 앨범 디자인이 참 멋지다. 이 세 개는 그래도 꽤 열심히 들어서 알파 음반을 모아볼까-도 생각했으나 전술한 바와 같이 난 컬렉터의 기질이 없다. 바르톨트 쿠이켄의 플룻 솔로 음반은 솔직히 어땠는지 기억이 안난다. 비버의 묵주 소나타도 솔까 기억이 안 난다 ㅋㅋㅋ 어제 들어봤는데 아마 호기심에 한 두번 듣고 음... 넣어뒀나보다. 



-젤렌카의 트리오 소나타.

-조지 셸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드보르작 교향곡.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어쩌구 저쩌구

-니콜라이 드미덴코의 쇼팽 스케르초

-니콜라이 드미덴코의 쇼팽 피협 1.2번

-코렐리 소나타 라폴리아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플룻 소나타

-쿠벨릭의 드보르작 심포니

-플레트뇨프의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소나타와 론도


이건 씨디장에서 막 골라낸 뭉탱이 ㅋ 

과거 소환이다 ㅋ 드보르작 교향곡에 갑자기 꽂혔던 때, 플레트뇨프 한참 들었던 때. 파비오 비온디 내한공연 즈음해서 한참 들었던 음반들. C.P.E 바흐도 기억나지 않는 계기로 한참 들었었지.




이건 오늘 나가는 길에 들고 가서 방출할 음반들. 


-로널드 브라우티검의 모차르트 피아노 변주곡 컴플릿. (아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의 그 변주곡)

-아르농쿠르의 모짜르트 협주곡들

-칼 뵘의 모차르트 심포니 40, 41번

-탈리히 콰르텟의 모차르트 사중주

-폴리니와 칼뵘의 모피협 19번과 23번

-브루노 발터의 모차르트 심포니 36번과 38번

-이머질의 모피협 20번과 21번

-클리포트 커즌의 모피협 20, 23, 24, 26, 27

-윌리엄 카펠 리사이틀

-윌리엄 카펠 전집 중 1번

-호로비츠의 바흐, 스카를라티, 모차르트

-호로비츠의 프라이빗 컬렉션

-리히테르 소피아 리사이틀

-리히테르의 멜로디야 시리즈 5번

-리히테르 in MEMORIAM

-아르헤리치와 플레트뇨프의 프로코피에프 신데렐라

-굴드 meets 메뉴힌

-아믈랭의 고도프스키 피아노 소나타 파사칼리아

-니콜라이 드미덴코 위그모어 홀 라이브

-루돌프 제르킨 the Imcomparable

-켐프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파브리치오 치프리아니의 비발디 12개 바이올린 소나타


한참 모차르트 그 중에서 피아노 협주곡에 빠졌었지. 특히 23번과 24번 엄청 들었었다. 그 시기는 여태껏 살아온 내 인생에서 가장 터널같던 시기이기도 했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이렇게 CD를 방출하는 한 달간, 근 5년간 통틀어 가장 음악을 오래, 열심히 들었다. 이별 전 애틋함도 약간 있었을테고, 익숙하다고 언제든 들을 수 있다고 방치해뒀던 것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게 된 것도 있고. 


최근에 읽은 아날로그의 반격에도 나오지만, (물론 그 책에서는 씨디가 아닌 바이닐 이야기이긴 하다) 아무래도 씨디플레이어를 사용해 음악을 들을 때는 씨디장에서 씨디를 고르는 일, 케이스를 열고 디스크를 꺼내는 일, 뚜껑을 닫고 회전소리를 듣는 일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는데 아이팟을 쓰면서 간편해진 대신 손맛이 떨어진 게 있겠지. 내 개인적으로는 출퇴근 시간에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음악과는 한 발 더 멀어진 것도 있는 것 같다.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S씨가 한 말이 하나 더 생각났다. 너무 많은 건 없는 것과도 같아요. 그땐 뭔 개똥같은 소리인가 했으나. 맞다. 너무 많은 건, 그리고 갖고 있다는 건 없는 것과도 같네. 


갈 길이 멀다. 반으로 줄이려면 아직 멀었다. 다음주부터는 속도가 더뎌지겠지만 그만큼 듣는 속도와 내보내는 속도를 맞출 수 있겠지. 덕분에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온갖 생각을 다 내려놓고 음악을 들었다. 사실 이런 말을 하고나니 내가 무슨 생각이 많은 것 같네. 평소에 아무 생각이 없는데 ㅋㅋ 그럼 내가 내려놓은 것들은 뭐지. 




,

8월의 크리스마스

 

 

처음 국내에 소개됐을 때만 해도 '꽤 괜찮은 저가 레이블'이었던 낙소스가 세월이 흐르자 세계적인 음반레이블이 되어있다. 그저 저가이기 때문에 성공한 건 아니고, 처음부터 복각음반을 저렴하게 출시하기 시작해서 눈길을 끌고, 이런 시리즈, 저런 시리즈를 발표한 전략이 먹혔겠지. 우린 앞으로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는 비전 제시- 그런 젊은이스러운 시각이 이 업체를 크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이미 다른 레이블들은 우린 할 일 다했고 새로운 음악가와 새로운 녹음이 나오지 않는 한 할 일이 별로 없다는 듯한 늙은이스러움이 어느 정도 내비치던 시기였으니까. 씨디만 고집한 게 아니라 스트리밍 서비스를 함께 끌어나가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적응력이 또 하나의 성공원인일테고.

 

 

 

2004년 2월이나 3월쯤에 산 걸로 추정되는 이 음반은 막상 샀을 때는 몇 번 듣지도 않고 꽂아둔 것이 분명한데, 솔직히 말하면 안 사도 됐을 음반이기도 하고... 오늘 들으니까 매우 좋구나. 왜 안 사도 됐냐면... 나는 칸타타 전집을 2개쯤 갖고 있기 때문에-_- 겹친다. 그리고 찾아보면 몇 개쯤 전집 아닌 음반이 더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 칸타타라는 주제에 충실했으려면 좀 더 알아보고 고르고 골라 샀을텐데 전혀 그런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냥 땡겨서 어디 한 번 들어볼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샀단 얘기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칸타타라고는 하나 독일어라고는 eins zwei drei 밖에 모르는 내가 이게 뭔 소린지 알아야 아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야! 하며 느낌이라도 만끽하지. 그냥 들으면 크리스마스 칸타타인지 삼위일체 칸타타인지 알게 뭐람. 또 막상 크리스마스 되면 내가 퍽이나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듣고 있겠다. 아니 일단 집에나 있냐고.

 

게다가 전집이라니. 일 년 내내 무슨절이니 무슨 주간이니에 맞춰서 칸타타만 들을 게 아니라면 칸타타 전집 같은걸 대체 내가 왜 샀는가 싶다. 첫 장부터 완청하는 걸 목표로 삼은 적도 두어번 있었는데 하다보면 대체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듣고 싶은 음악은 못 듣고 내내 사람들이 오오오오- 하는 것만 듣고 있자면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아무튼. 바흐는 한 달에 한 곡 꼴로 칸타타를 썼다고 한다. 그 사이사이 애도 많이 낳고 --_--  어디 칸타타만 썼나. 미사곡에 수난곡에 협주곡에 독주곡들에...매일 영화평 한 개씩 올리는 듀나만큼이나 부지런한 인간이다. 가장 충실한 직업인으로서의 음악인은 바흐였지 싶다.

 

아무튼 크리스마스 칸타타라는 건 뭐 크리스마스 칸타타라고 한다면 이 칸타타들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음반 제목인거고 여기에 수록된 칸타타들은 크리스마스 당일을 위한 곡이라기보다는 그 전부터 준비하는 기간을 위해 쓰여진 곡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성탄절 전 4주간을 강림절, 또는 대림절이라고 한다. 예언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을 시작으로 생각하기 때문인지 교회력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이 강림절로부터 시작한다. 이 중요한 성탄절 전 4번째 주일인 첫 강림절 칸타타로 작곡된 것이 BWV 36, 61, 62의 세 곡이다. 이 중 61번과 62번은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 라는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예수탄생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61번은 바흐 칸타타 중에서도 손꼽히는 곡인가보다. 61번이 더 좋은지 62번이 더 좋은지, 왜 그런지 생각하고 싶으면 전집중에서 꺼내 들으면 되지만 그건 너무 귀찮고.

 

이 음반으로 한정하자면 정작 나는 61번보다는 36번쪽이 더 좋다. 이 음반에는 36번과 61번 132번 이렇게 세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앞의 두 곡은 첫번째 강림절, BWV 132는 4번째 강림절, 즉 크리스마스 바로 전 일요일을 위해 쓰여진 곡이다. 여기에 수록되어있진 않지만 2번째 강림절을 위한 곡에는 70a, 3번째 강림절에는 186a와 141, 4번째 강림절에는 132와 147a 가 있다.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면서도 독실한 신자들은 때때마다 챙겨서 듣고 텍스트까지 감상하는 듯 한데(물론 그런 사람은 극소수지만) 교인이 아닌 나는 가사를 음미하다보면 듣기 싫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절제되고 정련된 분위기 그것인것 같다. 사실 이런 교회음악의 진짜 목적은 텍스트의 전달일텐데.

 

음반 표지 그림은 The Adoration of the Magi(동방박사의 경배)이다. 16세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누구 작품인지는 안  나와있다. 그냥 German School이라고만 되어있네.  당연히 동방박사가 예물을 드리는 장면이다. 황금, 유황과 몰약. 태어나면 죽는 건 누구나 당연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선물로 장례에 쓰일 몰약을 받는 이 아이러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파면 팔수록 크리스마스 분위기따위는 전혀 나지 않는 크리스마스 칸타타 ㅋㅋ 그러니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듣는게 레알 "음악"감상인지도.

 

 

,

Bach: Well-Tempered Clavier. Sviatoslav Richter


#1.
지난 몇 년 간은 듣는 음악 레퍼토리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사용 빈도에 있어서, CD플레이어→아이팟으로 중심이 확 이동했기 때문이다.
만장 단위, 혹은 벽 단위로 씨디를 세는 중증환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꽤나 많은 씨디를 갖고 있다보니 저걸 다 옮길 시간도 없고,
갖고 있을 하드용량도 부족해 맨날 듣는 것만 듣거나, 진짜 고픈 것만 듣거나.
(외장하드 구입을 진지하게 고려해보았으나 역시 가격,크기 대비 용량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 살까말까하련다)

두번째 이유는 씨디플레이어의 리모컨이 고장났다는 데에 있다.
내 씨디피(D-EJ2000)는 자체에 액정이 없어서 리모콘이 고장나면 대체 몇 번 트랙이 돌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는 걸 들을때 or 걍 그러려니 하고 들으면 상관없는데 모르는 곡을 들을 땐
몇 번을 들어도
대체 지금 뭘 연주하는거야 -_-+ 
울컥울컥 하고 솟구치기 때문에 정신건강을 위해 팽개쳐놨었다.
얼마전에 아...이대로는 도저히 못살겠다!!! 걍 리모컨을 다시 샀다.


오랜만에 알아봤더니 용산에서 물어봤을 때보다 가격이 반으로 뚝 떨어졌다. (인터넷 만세!!)
혹시 소니CDP를 나와 같은 이유로 팽개쳐놓고 있는 사람들은 옥션이나 지마켓같은데서 검색해보시라.


#2.
6월말부터 7월말까지는 넋을 놓고 산 듯한 시간이었다.
자구책으로 WTC를 들었는데...
난 이걸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이걸 들을 정도면 이미 상태가 심각하단 반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건 나에게... 조율용 음악이기 때문이다. -_-

역시 아이팟에 있는 버전들만 듣다가 리모컨이 배송된 이후 씨디들을 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리히테르의 WTC를 들었다.

J.S.Bach: The Well-Tempered Clavier, BWV849-893

앨범표지는 전설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듯 오바스럽다;;;


이 음반은 약간 목욕탕 울림이라고 할까.

사실 그리 좋은 녹음은 아니다. 그 이유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내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억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잘 안 듣기도 하고.

그 때만 해도 나는 이 연주를,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성당 안 저쪽에서
성당이니까 파이프오르간이어야 할 것 같아도 걍 피아노라 치자.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그게 마치 나 한사람만을 위한 연주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연주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오랜만에 다시 이 연주를 들어 보니 그런 느낌보다는 아.. 이거 참 성실한 연주구나. 싶다.
초반에 몇 회 보다 엎은 선덕여왕에서 유신랑이 내려치기 천 번을 하다가
마지막에 흐트러졌다고 다시 1부터 시작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무도 보는 사람 없어도 자신에게 정직하게 한 곡 한 곡을 연주해 나간 흔적.

하긴, 이 음반은 총 4장의 씨디로 되어 있고 연주시간을 모두 합치면 4시간 반쯤 된다.
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만만한 일이 아니다.




,

090403. 2009 교향악축제-부천필


뭐 다른 곡은 예습도 안 해 갔으니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과 앵콜곡에 관해서만 쓰자면.

1. 소리: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선명하지 않고 마치 반투막이라도 통과해 날아오는 것처럼 살짝 뿌옇게 들렸다. 설마 D블럭이 A블럭보다 소리가 나쁜가? 열로 따지자면 오히려 오늘 좌석이 저번보다 약간 앞쪽이었는데.

2.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Op.64: 나는 1악장부터 3악장까지 분위기가 각각 확실하게 다른 연주를 원했다. 1악장에선 걍 스르르륵- 미끄러지듯이 연결되는 부드러움이 불만. 2악장에선 이거 왜 이렇게 느려? 라고 짜증낼 뻔. 아...안단테지 --_--. 그런데 희한하게 여태까지는 그걸 딱히 의식못했었는데 새삼 느리게 느껴졌고, 흐름이 아니라 비브라토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더라.  또 이 곡의 매력은 시원하게 긁어주는 부분과 찢어질 듯 온 몸이 조여들며 업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뭐랄까, 나한텐 그의 연주가 맹숭맹숭했다.

3. 스테판 재키브의 앵콜: 두 곡이나 해주었는데.. 사실 난 딱히 앵콜곡을 원하는 건 아니라(물론 해주면 고맙지만) 걍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 뿅 가도록 좋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나는 J.S.Bach의 Sonatas & Partitas for Violin Solo. 일명 무반주 바이올린의 파르티타 3번 중 Prelude였다. 두번째는 쇼팽의 녹턴 20번 C# minor 였던 듯. 프렐류드 좋았다. 참 잘하는데 막 온 몸이 짜릿짜릿하게 좋은 건 아니라 연주보다 곡이 새삼 좋아서 아..역시 바흐 좋구나...ㅠ_ㅠ 이러고 있었다. 쩝...

4. 부천필의 앵콜: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었다.

불만만 말했지만 좋아하는 곡에는 기대치가 높아지기 마련이고 특히 좋아하는 부분을 잘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게 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고.. 뭐 그렇다. -_-a

돌아오는 길에는 오이스트라흐 버전으로 멘델스존 협주곡을 계속 들었고 집에 와서는 밀스타인 버전으로 파르티타 3번 프렐류드를 무한반복하고 있다.(밀스타인 만세!!) 잠자리에선 클라이버 버전의 피가로의 결혼을 들을테다.


,

Bach: Concertos for Piano&Orchestra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Vol 1. BWV 1052, 1055, 1056
Vol 2. BWV 1053, 1054, 1058

한 대의 쳄발로와 현과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
D minor BWV 1052  바이올린과 현과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
E major BWV 1053  오보에와 현과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
D major BWV 1054  바이올린과 현과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
A major BWV 1055  오보에 다모레와 현과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
F minor BWV 1056  바이올린과 현과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
G minor BWV 1058  바이올린과 현과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



나는 바흐에 한해서만 굴드를 듣지만,
정말 굴드의 바흐는 특별하다.
특히나 좋은 몇몇 연주는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 처럼
한 음 한 음이 모두 반짝반짝 빛나며 떨어져 내리는데,,
바닥에 닿으며 녹아버리는 그 지점까지도 아름다운 거다. 막 아쉬워서 붙잡고 싶고.

아우. 좋은 시스템으로 듣고 싶다. T_T


,

Bach: Cantata, Karl Richter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 목소리는 거의 안듣는 취향이지만,
지난 밤에 자발적 의지 0%로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듣고 나니 문득 칸타타가 듣고 싶어서.

와- 이 음반 산 게 벌써 4 년 전인가. 딱 요맘때 샀다.
쯧, CD로 세월을 세다니. -_-

,

Bach: Sonatas & Partitas BWV 1001-10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뭣도 모르던 시절 산, 내 첫 무반주 CD.
음.. 근데 셰링과 쿠이켄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왜 쿠이켄을 샀는지는 까먹었다.

바흐를 좋아하지만 무반주첼로는 거의 듣지 않고 무반주 바이올린도 자주 듣지는 않는다.
분당에서 그림 배울때 그나마 가장 자주 들었던 이 음반은 특히나 빈속에 녹차마시는 기분,
딱 그거라서 일년에 한 번쯤 듣는데 오랜만에 들으니까 좀 덜하네?
그래도 역시 이 연주가  내 베스트는 아니다.


덧. 고전음악애호가인 모씨가 왜 그렇게 글을 아껴쓰는지 예전에는 이해가 안갔는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

Heifetz plays Bach Partita no.3 Prelude






,
|  1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