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박사는 누구인가?-이기호

그러니까 지금처럼, 볼 게 너무 많고, 들을 게 너무 많아, 내 수많은 입시생활을 버티게 해준 1일1예능도 가차없이 끊고, 미드영드도 사정없이 끊다보니 이젠 도저히 예능이나 드라마는 자극이 약해 볼 수 가 없어 뉴스나 정치사회팟캐만 파고 있던 때가 아니었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던 때는 그랬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잠자기 전 30분 후 저절로 꺼짐을 걸어놓고 하루를 정리하던 그런 때였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 안나고 이 제목과 작가만 머리속에 남았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와 이기호 작가.

 

캬. 그런데 이거 걸작이었네. 글솜씨도 보통이 아니지만 이야기의 구성 뿐 아니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는 뻥 걷어차고 들어오는 게 기가 막히는구나.

 

나는 정말로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도 왜지? 뭐지? 이 다음에 어떻게 되는거지?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 다음에 다가오는 건 헉??!!!!! 이었고. 조금 아쉬운 건 마무리. 강력한 한 방의 끝맺음이 없는 것이 좀 그렇지만 왜? 라고 생각하는게 작가의 의도라면야. 가장 훌륭한 건 플롯보다는 놀라운 상황묘사라고 해야되나. 세상에.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부끄러운 상황(부끄러움이 아니라)에서 겪게되는 자잘한 사고다발을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굳이 부끄러운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대개의 상황에서 그렇지만 좀 더 잘 드러난 것은 그런 것들이다. 와 이따위로밖에 표현 못하다니. 정말 비루한 언어능력이구나. 그냥 읽다보면 와... 헐.... 어떻게 이걸.. 이건 진짜 내가 느꼈던 바로 그... 라는 생각만 들게 한다. 그런 정밀묘사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큰 그림속에서의 디테일로 훌륭하게 녹아 있다. 

 

이걸 읽으면서 프라이드 89년 광고를 찾아봤다. 정말 남자배우는 그렇게 탄다. 여자배우도 그렇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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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 (2009)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2010)

김 박사는 누구인가? (2008)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2011)

탄원의 문장 (2011)

이정(而丁)-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2 (2012)

화라지송침 (2012)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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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책방 29회+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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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라지-옆으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땔나무로 이르는 말

송침-땔감으로 쓰려고 꺾어서 말린 소나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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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랑은 어쩌다 이렇게 옆길로 새게 되었나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책은 할 일 쌓아놓고 죄책감 느끼며 읽는 책이 아닐까. 그래. 그랬다. 중학교 때부터 시험기간에 읽는 책은 어쩐지 미묘하게 가슴 떨렸지. 나쁜 짓 하는 기분이었고, 이래서야 다가오는 시험은 괜찮은 걸까 싶었고.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과자 부스러기 만큼이라도 여유가 있으니 하는 짓, 정말 똥줄타게 다가오는 시험기간에는 감히 나도 이런 짓을 하지는 못한다. 그렇다. 나는 오늘 날 밝으면 발표가 있는 날인데, 그리고 좀 졸린데-_-날이 이렇게 써늘할때 폭신따끈한 이불 속에 들어가면 잠 진짜 잘오는데-_- 집에 오자마자 일단 과식을 좀 하고-_- 차를 마시면서 하루종일 틈틈이 읽었으나 다 읽지 못한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읽기 잘했어. 기분이 좋아 볼이 뽈록뽈록해진다. 또 내 바이오리듬이 충동과 즉흥의 구간에 들어섰구나. 에헤라디야-

교토가 배경인 연애판타지. 너무 팬시해서 그냥 이대로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지만 그건 너무 뻔하니 소설로 남겨두었으면. 기억 어딘가에 얼룩;처럼 남아 있는 교토의 몇몇 곳과 아, 그래 거기에 내가 잠시 스쳐갔었지 하는 거리 이름도 나오지만 그건 뭐 그렇고, 그 곳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이 적당한 판타지. 또 재기발랄한 문체가 어우러져 즐거웠다. 그러고 보면 연애란, 썸씽스페셜이란 몽땅 밤에 이루어지는 것. 그러니까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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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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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도 책도 요즘 귀에 몇 번 들어오던 차라, 일단 책부터 읽어보았다. (그리고 드라마도 봤다) 사실 연애 관련 소설은 잘 안 읽는데, "드라마 재밌대요. 근데 책이 더 잘됐대요." 라는 말에 그래? 하고 낚였다. --_-- 원작에선 75 년생들로 되어있으나 드라마에선 말띠 운운하는 걸 들어보니 나이를 31살로 맞추느라 78년생으로 잡은 듯. 원래 오은수 역에는 김정은이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김정은보다야 최강희가 더 잘 맞지 싶기는 한데, 둘 다 아닌 제 3의 인물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좀 덜 귀여운 척 하는 사람으로.
 
책도 재밌고 드라마도 재밌다. 책은 재기발랄한 문체와 표현이 좋고, 주인공의 캐릭터가 존재감에서 작가에게 지지 않아 소설로서도 잘 읽힌다. 무엇보다 그냥 재미로만 읽혀지지 않는, 비슷한 연령대를 살아온 삶에서 느끼는 공감이 있다.

관능을 자극하는 남자들하고만 만났더니 현재의 삶이 요모양 요꼴이 되었더라. 그래서 첫인상에 놓쳐버린 수 많은 남자들의 그 매몰비용(이건 쑥이에게 배운 경제용어다.)에 대해 새삼스레 인식하게 되었다든가, 직장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백수가 되어버리니 느끼는 것들, 오래된 친구사이에서 맛보는 참 구리구리하고 희한한 감정, 음탕하고 축축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생활인 동거. (작가는 '판타지가 거세된 적나라한 생활'이라고 표현했다.)

드라마는 책과는 아주 약간 달라졌지만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고, 배우들이 그 달달하고 아스라한 연애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는 게 좋다. (특히 최강희) 그리고 최강희의 패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

그러나 책을 읽어 결말을 아는 입장에서 과연 드라마를 끝까지 볼 지는 의문. 달콤하다기보다는 씁쓸해서.
그러고 보니 제목에 '달콤한' 운운 하는 것이 반어법적 표현인 것도 어느새 전통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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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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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쓴 소설이라, 또 마침 내 마음에 10cm의 여유는 있던 때이기도 하고. 이렇게 소설책을 흠뻑- 읽기는 참 오랜만이다. 처음의 수다스러움에 가볍고 밝은 소설인 줄 알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 사건"이 뭔지 알아채자마자 이 소설의 의미가 달라져버렸다.

마치 이 소설은 방금 밭에서 따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토마토인데, 내가 이 소설을 표현하자면 토마토 케첩을 물에 푼 것같은 토마토쥬스처럼 되어버리겠지만, 그 정도로 상투적이고 신선도가 떨어지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별 수 없어 꿋꿋이 말하자면.  어떻게 그 깊은 슬픔을 이렇게 안타까운 아름다움으로 풀어내 쓸 수 있는 걸까.

드러내는 슬픔도 슬프지만 꾹꾹 눌러 삭이는 슬픔은 왜 다른 사람에게까지 더 잘 전해질까. 웃는 건 한번 웃고 땡인데, 왜 슬픔은 안 그럴까. 이 책을 읽고 머리를 감는 동안 나는 내 볼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려 상상의 눈물을 도로 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뉴욕의 모든 베개 밑에서 저수지로 이어지는 특수 배수구를 발명했다.
사람들이 울다가 지쳐 잠이 들 때마다 눈물이 전부 같은 곳으로 흘러가게 되면,
아침마다 일기예보관이 눈물저수지의 수위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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