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Voyage!/Sep. 2010 안동+경주'에 해당되는 글 14건

  1. 첨성대+안압지 2015.07.31
  2. 100919 경주여행. 도솔마을 3 2015.02.20
  3. 100919 대릉원. 천마총 2015.02.20
  4. 100919 노동리 고분군 2012.12.24
  5. 안동→경주도착, 명동쫄면 2 2011.02.03
  6. 도산서원 4 2010.12.30
  7. 퇴계종택+열화재에서의 아침식사 2 2010.09.25
  8. 고계정에서의 하룻밤. 1 2010.09.25

첨성대+안압지

 

 

분명 어렸을 때 봤겠지만 처음 본 것 같은 첨성대.

어렸을땐 그냥 그러려니 했겠지만 머리가 커서 그런지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

이걸로 어떻게 천문관측을 했다는거지? 왜 굳이 저기 들어가서 하지?

저 위치를 보나 규모로 보나 그냥 들판에서 보는게 훨씬 잘 보일텐데.

저게 저 자체로 완성형일까? 정말 용도가 천문관측일까?

 

하여간 경주는 신기한 곳이다.

길바닥에 막 이런 게 널려있어.

 

이 길을 지나 안압지에 도착.

 

 

안압지는 야경으로 유명한데, 사실 그 야경이라는 게 인공적인 불빛이 아니고서야 야경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안압지는 곳곳에 조명을 심어놓았다. 눈이 아릴 정도의 불빛이지만 멀리서 보니 나름 멋있다.

 

 

사실 안압지는 원형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현재의 안압지는 복원해놓은 것이지만

저 건축양식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이 아니라고 주워들었다.

하긴 어딜 보나 너무 조선스럽다.

 

 

이것이 복원모형. 이정도만 봐도 사실 멋지다.

 

 

이 정도 규모의 건축물이 청사진만 남아있었어도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어디서 보아도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는 안 들어오는 구조와 규모로 되어있다.

 

 

그리고 누가 찍어도 같은 뷰의 사진이 나온다 ㅋ

인터넷 돌아다녀보면 모두가 똑같은 구도의 사진이다.

통행이 허락된 곳에서는 각이 그렇게 밖에 안 나오니 어쩔 수가 없다.

 

 

 

물에 비친 건물의 모습이 우유니 사막 수준이다.

완전한 데칼코마니.

 

 

밤이라 연꽃이 모두 닫혀있다. 연꽃이 절정일 시기는 조금 지났었는데. 

워낙 연꽃이 많다 보니 아직 이렇게 남아있다. 

너무 많으니까 감흥도 없더라 ㅋ 벌레도 많고.

하지만 그 옛날 신라시대에는 가슴 설레는 풍경이었겠지.

 

 

+ 정식명칭은 안압지가 아닌 동궁과 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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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19 경주여행. 도솔마을

 

대릉원을 빙 돌아난 길을 따라 밥을 먹으러 갔다.

미리 알아둔 몇 개의 맛집 중 도솔마을이 있었는데 마침 위치도 가깝고 해서 여기 먼저 가자 했던 듯.

 

 

요 길을 요래요래 쭉 따라가면 도솔마을이 나온다. 벌써 저녁이다. 해가 저물었어.

 

 

솟대가 여러 개 있는 가운데 눈에 잘 띄는 도솔마을 간판.

 

 

도솔은 불교에서 말하는 하늘 중 하나인 도솔천에서 딴 것이겠죵.

 

 

토속느낌 나는 그릇 컨셉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토속느낌이라기보다는 그냥 옛날 느낌이지요;;

 

 

이렇게 물을 떠서 먹는 것이죵. 그런데 식기에서 쇠냄새가 심하게 나서 일단 기분이... ㅠㅠ  급 식습니다.

아무리 그러려니 하려고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냄새였다.

 

 

반찬은 무난무난하였습니다만, 무엇 하나 딱 입맛에 맞거나, 좋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가격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잘 나온다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맛집이란 음식이 다양하게 많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

몇 개 안되는 찬이라 할지라도 음식 각각에 맞는 온도와 맛을 갖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가 왜 유명한 맛집인지 당췌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인기는 매우 많았던 곳. 앞으로도 그럴테지.

도솔마을이라는 이름 답게 각 방마다 건달바를 비롯 인도신화와 관련된 신의 이름이 붙어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아도 누군가의 입맛과 기준에는 맞으니 맛집으로 소문났겠죠.

 

 

만족스럽진 않으나, 평소 지론이-맛있는 건 어차피 서울에 다 몰려 있다,

딱히 재료가 산지와 가까워야 하는 특성이 있는 음식이 아닌 이상에야

이미 다 서울에 올라와 있음-이라 걍 그러려니 한다.

 

 

이제 날은 더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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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19 대릉원. 천마총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행기는 갔다오자마자 그냥 슉슉 써나가야 되는데. 이젠 뭐. 사진을 봐도 이게 거긴지 저긴지. 아무튼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으로 갔다. 경주 여행 내내 대릉원 앞은 수시로 지나가게 된다. 왜냐하면 숙소가 대릉원 근처였으니까. ㅋ 대릉원을 베이스캠프로 잡고 찍고 돌아오고 찍고 돌아오고. 방사형으로 다닌 듯.

 

 

 

이건 뭐 그냥 무덤공원;;;;;;;;;;;

 

정말 묘한 동네다. 경주는. 무덤이나 묘지 있다고 하면 혐오시설이라 땅값 내려간다고 할텐데. 그러고보면 size does matter 인지도 몰라. 일단 크고 보는거다. ㅋㅋㅋ

 

 

9월이라 서울은 이미 가을이었는데 경주는 그냥 여름이었다.

 

 

 

 

풀을 긁어 모아놓은 거겠지? 이젠 이런 사진을 왜 찍었는지도 기억이 안나 ㅠㅠ

 

 

 

대릉원은 정말 넓어서 길을 가다 보면 어떤 길에는 사람이 와글와글 몰려있고, 벤치마다 빈자리 없이 앉아있는가 하면 어떤 길로 가면 이렇게 사람이 없기도 했다.

 

 

사람과 비교해보면 나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기모노 입은 여자분의 의상이 워낙 특이하다보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천마총. 총은 출토유물로 미루어 귀족 이상인 것 같긴 한데 정확한 매장자를 모를때 그 특징을 잡아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여기는 천마도가 나왔으니 천마총. 내부는 어두워서였는지 사진을 안 찍음.

 

사실 들어가기전엔 천마총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무덤이 아니라 무슨 건물 같아; 분명 수학여행왔을때 여기도 들어가봤을텐데 말이지 ㅋ. 그땐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서 여행따위 아무래도 좋았었나보다.

 

참. 이건 모 시험문제에도 나왔던 건데,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오답의 보기로는 가죽, 종이가 있었지요. 아 추억 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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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19 노동리 고분군

 

 

나 참.. 2 년도 더 된 여행기를 이어쓸라니.... 긁적긁적 -_-a

 

무덤동네 경주. ㅋㅋㅋ 걍 조금만 슬렁슬렁 걸으면 바로 무덤이 밭처럼 펼쳐있다. 네네. 어렸을 때 물론 왔었죠.

그때는 같이 왔던 철딱서니 남자애들이 저기를 벅벅 기어올라가서 뛰놀다 선생님께 쳐 혼났었던 기억이... 잠깐? 남자애들???

 

나 여중 나왔는데?;;;;;

 

 

 

 

어찌나 무덤이 많은지 여기는 걍 노동리 고분 공원이다. 공원이에요. 공원. 무덤공원이죠. ;;; 위 사진은 125호 봉황대. 노동리에는 고분 1기와 고분터 2기가 있는데 고분 1기인 봉황대는 아직 발굴이 안된 것으로 안다. 무덤에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당연한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쌔;;;하기도 하고.

 

저 왼쪽 구석에 금령총이 약간 보이는 거 같기도 한데...오른쪽 뒤에 보이는 게 식리총인가?? 아 모르겠다 헛갈린다..ㅋㅋㅋ 대체 어디에서 사진을 찍으면 이런 각도가 나오나. --_--

 

금령총(127호)은 금방울이 출토되어 말 그대로 '금방울 무덤'이고 식리총(126호)에서는 신발 밑창(?)이 출토되었다. 풀어 말하면 '장례용 신발 나온 무덤'되겠다.

 

 

 

무덤 형식은 돌무지 덧널무덤이에욤. 그게 뭐냐고요? 왜 이래요. 고등학교 때 국사 안 배운 사람들처럼. ㅋ 나무로 방(덧널) 한 번 만들고 그 안에 관(널)이랑 부장품(껴묻거리)이랑 넣고. 덧널 위에 돌을 무지하게 덮어서 돌무지 만든 다음 흙으로 한 번 더 덮은 거죠. 통일신라 이전 무덤트렌드의 대세.

 

금령총과 식리총은 일제시대에 발굴..이라고 해야 돼? 걍 도굴 아님? 하여간. 그래서 봉분 위가 싹 잘린 것처럼 없다. 고분터만 남았다. 돌무지 덧널무덤의 장점이 도굴이 어렵다는 것인데 돌무지 싹 치운거지 뭐. 그러니 터만 남아있다. 예의가 그따구다.

 

 

봉황로를 기준으로 동쪽이 노동리, 서쪽이 노서리. 무덤 사이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뭘 한단다.

묘한 동네야 이 동네;;;

 

 

보도블럭 보소. 섬세 돋습니다.

 

 

배수구 보세요.  딱 봐도 경주. 좋군요.

 

 

가로등은 당초문입니다. 캬아.

 

 

여기까지가 노동리 고분군. 사실 노동리 고분군은 작습니다. 작아요. 겁내 큰 무덤이지만 경주에서는 무덤 세 개  모여있는 거죠. 이 동네에서 번호표 125~127번 받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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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경주도착, 명동쫄면



도산서원을 다 보고 나와 차 시간을 놓치지 않게 살짝 긴장하며 과자를 먹었다;;;
써놓고 보니 앞뒤가 호응을 안하는 듯한 문장이지만 그건 기분탓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찍은 사진인데
이게 딱 전체적으로 느낀 안동의 이미지였다.

안동을 느낄만한 곳을 많이 안가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세우는 슬로건이 "전통문화의 수도"인 것과는 달리
내가 느낀건 도시발달의 과도기적 형태라고 해야하나.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그것.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찍은 것;
난 지나가다 강이나 물이 보이면
지금 어딘가를 건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듯이 꼭 이렇게 찍는 버릇이 있더라.


안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드디어 경주역에 도착.
아담한 사이즈의 역에다가 지금 보니 지붕선도 특이하군.
안동에서 12:18 출발 → 경주역에 14:28 도착.


여기가 바로 원조 황남빵 집이다.
일단 나중에 여길 들러야 한다! 고 머리속에 위치 입력해 놓고 
배가 고프니 점심밥부터 먹으러 고고씽


맛집 검색했을 때 걸린 쫄면집.
딱 쫄면 네가지만 있다.
일단 베이직한 비빔쫄면과... 나머지 중에서 고민하다가
이 날 좀 더웠으므로 냉 쫄면을 시켰다.
조금 후에 이 선택을 엄청나게 후회하게 된다. --_--


이것이 비빔쫄면.
쑥갓이 들어있는 거 빼고는 엄청 달라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쫄면에 계란 안주나보다.
짜장면 위에, 쫄면 위에 올려져 있던 계란 반 개 만큼의 인심은 다 어딜 갔단 말이냐.


역시 비빔샷은 항상 그럴싸 하네.
맛은. 뭐 나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엄청 특별할 것도 없는 맛이었다.


이것이 냉쫄면.
음....
대체 이 맛은 무어냐... --_--
다른 사람들은 다 맛있게 먹던데
우리는 이거 진짜 손도 안댔다.
괴식이었음.

못믿을 블로거들 같으니.
별 맛도 없구만 맛있다고 설레발들을 쳐가지고 -_-+
오뎅쫄면이나 유부쫄면이라면 조금 더 나았을까???

모르겠다. 먹지 않은 음식은 가지 않은 길과 똑같다. (얼씨구-)


저 간판이 바로 명동쫄면.
유명한 집인지 물어보면 위치는 다 아는 듯.

선택실패의 쓰라림을 새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여행 다니는 내내 식사가 대체로 만족스러웠는데
이 냉쫄면만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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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진짜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여행기는 후딱후딱 써야된다.
이게 뭐냐. -_- 한겨울에 한여름 여행기를.
9월 19일이었으니 사실 한여름은 아닌데 날씨는 그랬다;
이렇게 묵혀뒀다 쓰면 여행의 감상도 희미해지고, 생각도 잘 안 나고 그렇다.


이게 어렸을 때 어느 아파트를 가건 있었던 조경수-가시나무(?)였던 거 같은데
원래 이렇게 생긴게 아니라 아랫부분을 다 깎아낸 거다.
진짜 뭥미;;;;

이거 보고 둘이서 엄청 웃었음.


이 위치가 천연대인가 운영대인가..
이 밑으로는 절벽처럼 되어 있다.
view를 넓게 잡은 사진으로는 표현이 잘 안 된다.


물속에 반쯤 잠긴 길을 따라 저 언덕처럼 생긴 곳에 올라갈 수 있다...라고 쓰지만
솔직히 저길 어떻게 지나가는지 이해는 안 된다.
길이 있긴 한데 말이야.

물이 빠지나?


저 곳이 시사단試士檀
저기에서 한 명씩 과거를 보는 거라고 들은 듯.

도산서원이 워낙 유명한 사학시설이다 보니
정조대왕이 불쑥 찾아와서 인재등용의 기회를 준 셈인데
한 명씩 불러서 면접을 봤나? 여러 명 시험봤나? 그건 모르겠고.
요 동네에서만 7천명이 모였다니 대단하지.

원래 저 모습은 아니고 안동댐 수몰로 시사단, 비각만 남은 것이지만
옛 모습을 모르니 대략 짐작도 가지 않는다.


정우당. 화중군자
연꽃을 심었다.

도산서원 안의 우물 하나, 연못 하나에도 다 가르침의 의미가 있다.


도산서당.

여기는 퇴계선생이 거처하던 곳이다.
방은 완락재, 마루는 암서헌이라 했다.


여기가 아마 천 원짜리 뒷면에 보면 퇴계선생 앉아 계신 그 집일껄.
맞나? 아닌가?
아님 말고-_-;


여행운이 참 좋았던 게
왼쪽 중앙에 보이는 손가락이... 하여간. 저 분께서
거의 모든 건물+몇몇의 특별한 나무를 동선을 따라 인도;하며 다 안내해주셨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거의 설명을 듣고
나중에 다시 한 번 돌면서 보충한 사진도 있고 해서

사진 순서는 엉망이지만ㅋ


 여기에 심어진 나무 하나 꽃 한송이 다 나즈막하게 조화를 이루며 심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박전대통령이 와서 금송을 심어놨다.
육여사와 함께 한 그루씩 심었다지.
그리고 육여사 피살과 거의 동시에 한 그루는 죽었다고 한다.

한 그루는 아직 있는데 혼자만 우뚝 솟은게 진짜 주변과 안 어울린다.
어지간했으면 내가 사진도 안 찍었다 -_-


이게 서쪽은 어린 사람들


동쪽은 나이 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기숙사 같은 거라고 들은 거 같은데
자신없다. 반대일 수도 있다.
어쨌든 공부에 힘쓰라고 工자로 배치되어 있다.

이거 들으면서 우리는 OB니까 동쪽이야 동쪽. 이랬던 거 같은데.
아니 그보다 우린 옛날같으면 여기 출입금지였음 -_-
아마 이때 성균관스캔들 한참 할 때였지?
뒷심이 딸려서 그렇지 중반까지는 명품드라마 하나 나오나 했는데.
물론 성균관은 관학이지만 그래도 그 드라마 덕분에 조선시대 학생들의 생활을 좀 더 상상해볼 수 있었다. (정말?)


이 문도 뭔가 설명을 들었을 텐데 기억이 안 나;;
그리고 저 문 양쪽에 나무가 공글려져 붙어 있는 저거.
저건 뭘까. 저것도 나중에 찾아보고 추가.


전교당.
요즘으로 치면 강의실이겠지?


도산서원이라 쓴 현판은 한호, 즉 한석봉의 글씨다.
여기에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안내해주신 분께 들은 거임)
정조가 한석봉을 불러서는 현판을 하나 쓰라고 했단다.
어디에 내릴 횡액일지 전혀 말도 안해주고는 한 글자를 불렀다.
"질그릇 도"
"뫼 산"

마지막 원 자에 와서야 한석봉은 이게 도산서원 편액이구나 싶어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마지막 글자가 옆으로 기울어졌단다.

믿거나 말거나~


전교당에는 계단이 둘 있다.
하나는 스승님이 오르내리시는 계단
하나는 학생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다.
당연히 학생들은 스승님 계단을 감히 밟을 수 없다.

그걸 설명해주시는 손가락.
우리는 왼쪽을 이용해야 하냐 오른쪽을 이용해야 하냐.
나는 둘 다 되지롱~ (자랑이다-_-)


기울어졌나? 그건 모르겠고
난 이 글씨가 좋은 지 모르겠다. 균형도 안 맞고
당근 난 글씨 볼 줄 몰라염.


한옥에 오면 열려진 문을 중심으로 꼭 이런 사진이 찍고 싶어진다.


여기는 부엌. 학생식당인 셈인데
그 분 말씀으로는 부잣집 애들은 다 밥해주는 사람 데리고 들어왔단다.
하긴, 사립학교인데 어지간 했을라나 싶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이 길을 바쁘게 걷고 공부했을 옛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사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ㅎ
대략 여기도 80:20 아니었을까? -.-


이거 뭔지 꼭 찾아봐야지.



이게 현재 도산서원의 전체적인 모습인데
아랫쪽이 앞마당같이 널찍한 곳은 사실 절벽이고 나루터다.
천원짜리 뒷면을 보면 대략 가늠할 수 있다.





담 사이에 끼어있는  나무...라기보다는
기존에 나무가 있었고 나무를 생각해 담을 틔운거겠지.
솔직히 내 생각으로는 차라리 담을 들이든가. -_-


막는다는 의미보다는 가린다는 의미가 더 적합할 듯한 담.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이 없던 우리는 비를 피했다.
왜 우산이 없었지? 안 가져 갔나?? @@


이런 데서 공부가 됐을까.
난 못했을 것 같다.
위치상 갇혀있는 듯한 느낌 들었을 것 같고
이런 경치, 이런 건물 배치에서는 집중 못했을 듯.


멍때리며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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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종택+열화재에서의 아침식사


아침에 일어나 퇴계종택 한 번 슥 둘러보고 밥을 먹기로 했다.


여기가 퇴계종택.
퇴계선생때부터의 집은 아니고 그때의 규모를 짐작해 다시 지은 것이다.
실제 종손이 살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이니 당연하지만 사실은 생활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런 사진은 사생활이 함께 찍혀서 올리지 않았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고,
어떻게 보면 조금은 흐트러진, 집과는 부조화스러운 모습이기도 했다.

남의 집에 말이 많다;;;





꽃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꼭 어디 나가면 이렇게 새삼스럽게 꽃 사진을 찍는다. -_- 처음 보는 것처럼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보니 운동하는 하천가 트랙에도 피어있더라 이 꽃 --_--;;;


얘가 아마 백일홍


벼가 익어간다.


열화재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자율배식이고 반찬은 이렇게 세 종류.
피클이라기보다는 뭐라고 하지? 오이지?에 가깝고 가운데는 샐러리장아찌와 김치.

죽이 함께 나온다.
쑴언니는 여기 죽이 맛있대-
전날에는 꼬꼬마가 먹고 있는 걸 보고 저 죽인가봐.. *_*
하면서 기대를 반짝반짝 하는데

나는 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 언니가 왜 기대를 하는지 이해불가;;


이 분이 주인.
매우 무던하신 분으로 우리는 그래. 이래야 숙박업을 하지- 라고 생각했으나
경주에 가서는 완전 반대의 유형을 보게 된다. 
진짜로 집은 사람을 닮나보다.


솔직한 감상으로 이 죽, 나에겐 괴식이었다;;;; (다 먹긴 했지만)
다들 맛있게 먹는 거 보면 내 입맛에만 안맞는지도.
샐러리 장아찌는 맛있었다.
샐러리로 장아찌를 만들다니 그 자체로 신기.



여기가 열화재

여기 계신 실장님이 도산서원까지 태워주셔서
우린 진짜 편안하게 도산서원 열기 전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옥체험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다 지나면 에피소드고 추억인데
여기서 잔 덕분에 세네 개쯤은 늘어난 기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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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정에서의 하룻밤.


도산서원으로 가는 67번 버스를 타고 50분쯤 달려 퇴계종택에서 내렸다.
우리 숙소는 종택은 아니고 퇴계선생이 50세때 짓고 살기 시작하셨다는
한서암과 장서각 옆의 고계정이다.

고계정에는 방이 세 개 있고, 대청마루가 하나 있는데
이 날 우리 독채썼다. ㅋ


여기가 우리가 잔 방. 청학실
방 자체 면적은 좁지만 내부에 가구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좁지 않다.
거기다가 대청마루를 쓸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

버뜨. 입지가 워낙 산 속 들판이다 보니 정말 온갖 벌레들을 다 볼 수 있음 -_-


고계정은 요렇게 생겼다.
모기장을 내려놨지만 벌레들은 참 잘도 들어온다.
그렇게 꾸역꾸역 들어와서 대체 뭘 할라고 그러는지
빗자루로 쓸어도 쓸어도 들어온다. -_-


마당 앞쪽엔 이렇게 벤치가 두 개 있다.
나는 먼저 씻고 와서 옷을 갈아입고
쑴언니가 씻는 동안 이렇게 사진도 찍고
저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주변도 둘러봤다.


앞에서 보이는 뷰는 대략 이렇다.
저 산 위의 소나무들은 정말 산수화에서 보던 그 모습이다.


하늘도 좋다.


화면에 나오지 않은 오른쪽에 샤워실이 딸린 화장실이 있고,
오른쪽부터 한서암, 장서각, 그리고 고계정.


시골이라 확실히 해가 빨리 저문다고 느껴진다.
거기나 여기나 해 저무는 시각이 뭐 얼마나 차이난다고-
아마 다른 불빛이 없어서 그렇겠지.
혹시 여기서는 노을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당연히 못봤다. 산에 가려져서. -_-

우리는 벤치에 앉아
낮에 먹다가 포장해온 찜닭과 쑴언니가 싸 온 옥수수,
먹다 남은 버버리 찰떡을 저녁으로 먹는다.
포장할 생각이었으면 당면을 해치웠어야 했는데.
당면이 찜닭국물을 아주 쪼-옥 쪼옥 흡수했고 그걸 먹었으니...
우리는 다음날 놀랍게 변신한다.
나는 여행내내 한쪽 눈의 쌍꺼풀이 사라짐 -_-
쓰고 나니 식단이 좀 불쌍한 듯도? -_-'

그리고는 벤치 등받이에 목을 대고 밤하늘을 본다.
하늘에 별이 많다.
이 때 시각은... 꼴랑 7시 반이다. --_--

그리고 우리는 8시 20분쯤 별똥별도 본다.;;;;;
뭐야 이 동네;;;


점점 둥글어지는 달.
이게 아마 8시 반 쯤 찍은 사진일껄? -_-

벌레가 하도 많아서 대청마루로 들어가 모기향을 켜고
내 아이팟으로 노래를 들으며 따라부르기도 하고
얘기도 하고....
얘기도 하고...

아... 지겹다... -_-
시골의 밤은 너무 길다.
이제 할 일도 없고.

여행할 때마다 내가 부르짖는 소리가 있다.
난 문명이 좋아!
알라뷰 대도시! 알라뷰 서울!
아...난 진짜 시골에서 못 살 듯.
가끔 여행은 좋아. 하지만 사는 건 역시 도시.

이래서 옛날 사람들은 자식이 많았던 거다.
근데 우리는 애도 못만들고; 뭐하고 노나. -_-
걍 자자.
그래서 진짜 일찍 잠자리에 든다.

어여 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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