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Symphony no.6 "Pathé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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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hail Petnev/Russian National Orchestra/Virgin/1991 (44:29)
Carlo Maria Giulini/Los Angeles Philharmonic Orchestra/DG/1981 (46:35)
Guido Cantelli/Philharmonia Orchestra/Testament/1952  (42:54)
Mikhail Petnev/Russian National Orchestra/DG/1995  (45:57)
Evegeny Mravinsky/Leningrad Philharmonnic Orchestra/DG/1978  (43:46)
  Herbert von Karajan/Berliner Philharmoniker/DG                        


엄마는 오빠와 내가 각각 초등학교 5학년 쯤 됐을 때마다 음악사에 데려가서는 하나씩 테입을 사주셨다. 그렇게 갖게 된 내 소유의 첫 테입은 유재하였다. 엄마는 별로 마음에 안들어했지만. 아마 내심 클래식을 고르길 바라셨던 것 같다. 그 기대에 맞게도 오빠는 처음엔 합창(카라얀), 그 다음엔 전원(뵘), 그리고 비창(카라얀)순으로 아주 착실하게도 성음의 시리즈를 열었다.

오빠가 매니아의 기질/수집가의 성향을 타고 났다면 그 덕에 나도 이거저거 들어볼 수 있었을텐데. 오빠는 뭐든 하나 있으면 지겹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는지 전혀 레퍼토리를 늘리지 않는 타입이고, 나는 더 우선순위가 높은 아이템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므로 어쨌든 둘 다 지겹게도 저 세 개의 교향곡과 몇 개의 협주곡을 반복해 들었다.

덕분에 내 머릿속에는 카라얀의 지휘가 일종의 표준연주로 각인이 되어 있어서 어떤 씨디를 들어도 그 느낌이 안 나 다시 카라얀을 사야되나...하던 차에 내 포스트를 보고 한 블로그 이웃이 그렇다면 쥴리니를 들어보는 게 어떠냐며 갖고 있던 (이미 폐반된)쥴리니의 음반을 선물로 주었다. 당연히 기대가 높았으나...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거기서 또 2 년이 흘러, 이번에 오빠방에서 먼지 쌓인 카라얀의 테입을 찾아냈고, 한 달 동안 틈틈이 여섯 개의 연주를 돌아가며 들어보았다. 지금의 나는 조금만 주의를 집중하면 머릿속에서 비창이 끊임없이 흘러갈 정도다.

그런데 들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Pathétique.
정말?

디테일까지 외워 버릴 정도로 들었지만 단 한번도 슬프거나 울고 싶을 정도로 공감한 적은 없다. 이건 이상하다. 슬프기는 커녕 3악장에서는 팔까지 휘두르고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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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iu Celibidache/Münchner Phiharmoniker/EMI/1992  (57:39)


첼리비다케를 두고 누가 그렇게 말해놨더라. "통곡하지 않고 흐느끼는 무거운 연주"라고. 번스타인과 스베틀라노프(아울로스)를 추천하면서는 "추운 겨울에 눈보라 속에서 울고 있는 느낌의 연주" 란다. 그래서 첼리비다케를 골랐다. 한 달 들었으면 됐다, 더 들어도 여기서 달라지는 건 없을꺼니까 다른 걸 들어보자는 내 나름대로의 돌파구였던 셈이다.

위의 연주들을 들으면서는 Pathétique이라는 표제만 없다면 3 악장이 끝이다-라고 생각했다. 첼리비다케는 다르다. 전체적으로 느릿하고 거기에서 오는 긴장감이 4 개의 악장 모두에 깔려 있어 곡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밤에 헤드폰을 끼고 누우면 영화음악을 듣는 것 같이, 대사없는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이, 서로 화답하고 고조되며 울부짖는 듯한 느낌까지 선명하다.

지금의 나는 마치 유행가를 너무 많이 들어 가사가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면서도 정작 그 노래가 전달하려는 정서는 느낄 수 없는 상태와도 비슷한 것 같지만, 언젠가 다시 비창을 듣고 싶어질 때 꺼내게 되는 것은 아마도 첼리비다케일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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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French Suites, BWV 812-817


들으면서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곡이 있는가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건 쳐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하는 곡이 있다

바흐의 클라비어 곡들 중에서는 WTC와 프랑스모음곡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말해온 것처럼 나도 바흐를 칠 때는 뭔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데
쉬워보이는 악보조차도 사실은 "제대로" 치기 매우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치다보면 그 전에 어떤 일이 있었건 간에, 감정의 찌꺼기나 스트레스 같은 건 날아가버리고
어느새 무념무상의 집중상태에 들어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힘들게 산을 오른 게 아니라 걷다보니 산에 들어가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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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기도 하고
워낙 개성이 강렬해서 굴드로 시작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10년전에도 그렇게들 말했었고 지금의 나도 누가 의견을 묻는다면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제나 굴드를 먼저 선택한다.



하지만 이 곡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이 음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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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6번만 실려있는데, 이 연주를 듣고 그냥 뿅~♡가버렸다.
4번까지는 '음...그래, 굴드도 좋아.' 라고 생각하지만
5번에 오면  '음...역시 좀 부족해...' 하고 생각하며
6번에서는 결국 못참고 해블러를 걸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이 곡은 1-2-3-4와 5-6으로 나뉘어진다) 


전곡반↓ 
씨디들 사이에서 이 음반을 발견하고 덜컹-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역시 직접 가서 음반을 사는 것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집에서 택배박스를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손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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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좋다.

아직은 이 느낌을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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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Brandenburg Concertos, BWV 1046-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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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오랜만에 헤드폰을 끼고, 마리너를 들으며 자려고 했던 건데
천둥소리때문에 깨서 마리너-괴벨-브륄까지 연속쓰리콤보로 들어버렸다.

그러다가 퍼뜩! 이 연주의 장점을 알게 됐다.
어떤 것이 가장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다운 브란덴부르크인가.
어떤 것이 가장 그 곡다운 연주인가- 라는 기준은 어떻게 생기는가.
요 며칠 계속 들으면서도 잡힐듯 말듯 흐릿- 했는데.

이어폰이나 스피커로 들을 땐
1번과 2번의 관악이 쏘는게 심하게 거슬려서 계속 3번부터 들었지만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곡의 흐름을 잡고 나니 거슬림이 사라져버렸다.
이럴 때마다, 역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같이 가야 한단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아마도)치아키가 지휘하는 부분에서
노래하게 하라- 음이 노래하고 싶어하는 길이 만큼! 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찾아보려고 했으나 몇 권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 연주를 들을 때 감상이 그 비슷하다.
마리너나 브륄의 경우 지휘자가 있고
모든 악기들이 지휘자의 설계에 맞추어 연주한다면
괴벨의 경우에는 지휘자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고
모든 악기들이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게 조화가 된다.
유기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모든 성부가 독립되어 있는 동시에 커다란 하나의 호흡을 같이 하고 있어,
A가 치고 빠지는 사이 어느새 B가 리듬을 타며 넘실댄다.


특히나 3번의 1악장 Allegro Moderato는
쇄골 사이의 움푹 패인 곳(영국인 환자에서 여길 뭐라고 불렀더라)부터
명치밑까지를 먹먹하게 만드는 동시에
커다랗게 휘어진 발톱이 사정없이 후벼파 긁어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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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선정한 2006년의 음반




우리집에는 나 말고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느 누구의 지도나 조언도 받을 수 없었다.
요즘과는 달리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책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튼 용돈을 모아 무턱대고 레코드를 사서
이해가 갈 때까지 그저 듣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 산 레코드를 지금 뒤적거려 보면
꽤나 두서 없이 사 모았구나 하고 스스로도 질릴 정도지만,
당시에는 그런 건 알지 못했으니까 싸게 파는 레코드를 여기저기서 사 모아선
음반 면이 닳아 빠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었다.
젊은 시절에 들었던 연주라는 건 평생 귀에 달라붙는 것인 데다
몇 장 되지 않은 레코드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었으므로,
그 무렵에 산 레코드는 지금의 나에게는 일종의 표준 연주가 되어 버렸다.


-무라카미 하루키 '내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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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동안 그나마 틈틈이 파고 들었던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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