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에 해당되는 글 5건

  1. 새 전화기. 갤7 2016.08.20
  2. 새 살림살이 2016.08.20
  3.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2016.08.17
  4. 곡성 2016.08.16
  5. 내가 휴가에서 건져올린 것들. 2016.08.16

새 전화기. 갤7

진짜 휴대폰 따위가 이렇게 확장된 신체기관같은 역할을 하는 세상이 올 줄이야. 직장동료가 좋은 기회를 알려줘서 E와 뜻을 뭉쳐 잽싸게 바꿨다. 이로써 E와 나는 아이폰4→갤럭시S4→갤럭시S7 을 함께 하게 되었다. 뭐지;; 왜지;;;  왜긴. 교체주기가 맞아떨어져서지.

 

E는 핑크공쥬-_-니까 신상품인 핑크블로썸을, 나는 스뎅을 좋아하므로 실버로 했는데 매우매우매우매우 만족스럽다. 아이폰4의 화이트보다 갤7의 스뎅이 더 만족스러울 정도로. 이거 사고 다다음날인가 갤놋7이 나왔는데, 그걸 보면 엣지가 대세인가 싶지만 플랫을 선택한게 전혀 후회스럽지 않음. 엣지 못생김.

 

 

걍 올 스뎅 ㅋㅋㅋ

 

 

뒷면도 스뎅. 카메라 옆에 있는 건 센서인데 건강관리 앱인 S헬스에서 스트레스, 심박수, 산소포화도 같은거 잴 때 손가락을 저기에 댄다. 그 외의 용도는 아직 모르겠다.

 

 

런처 깔고 원래 쓰던 대로 커스터마이징 완료. 와이파이 잡아 구 휴대폰에서 주소록도 다운로드 완료.

 

 

돈들여서 전면 풀커버 필름도 붙여주고,  새 옷도 입혀주고. 이제 쓴 지 한 달 됐는데 완전 좋다. 

 

①삼성페이가 편해서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피렌체에서 지갑 따위를 왜 샀던가) ②저장공간이 16G에서 32G로 늘어나서 음악이나 사진을 좀 더 여유있게 들고 다닐 수 있고 ③S4를 쓰다가 넘어와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화면의 해상도와 선명도가 좋아졌고 ④카메라가 좋다(가장 큰 이유) 기능면에서도 훨씬 좋아짐. ⑤빠르다. ⑥지문인식으로 해제하는 거 편하다. ⑦아직 어떤 휴대폰도 물에 빠뜨린 적은 없지만 방수되는 것도 좋다. ⑧마무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예쁘다.

 

돈이 좋군요. 2-3년 동안 이렇게 바뀌다니. 이런 신기술을 그때그때 누리고 살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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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살림살이

당분간 살림살이를 줄이면 줄였지 들이지는 않는 방향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사야겠다 싶어서 샀다. 현재도 내 삶인데 미래의 삶을 위해서 현재를 무조건 미루거나, 무시하거나 하는 건 좀 아니지 싶어서가 첫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도저히 못참겠어서이다. 쓰다보니 첫번째와 두번째의 우선순위가 바뀐것 같기도 하고 첫번째와 두번째가 그게 그건거 같기도 하다.

 

외식비중이 높은 주제에 이런 말 하는거 부끄럽지만, 나는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구워놓은 생선을 데워 먹는 것이라든가, 밑반찬류라든가, 국이나 찌개 같은 것도 그렇다. 누구는 좋아하겠냐고 말한다면 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엄마가 해주는 거에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등짝스매싱을 당하기 딱 좋을거고(실제로 우리엄만 그러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겠지. 지가 해먹지도 않으면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그러나, 아니. 난 내가 해먹는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이런 소리 해도 됨요. 앞으로 가능하다면 그 날, 혹은 단위 기간 동안 해치울 만큼의 재료만 준비해 바로 해먹고 어쩔 수 없이 남은 짜투리 재료들만 냉장고에 "잠시" 보관하면서 사는 방식으로 식생활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로, 외식비중을 점점 낮추고 DIY 싫어하지만 DIY의 비중을 식생활에서만큼은 높이려고 하고 있는데, 올해 가장 많이 해먹은 음식은 스테이크인것 같다. 편하기도 하고, 질 좋은 단백질을 먹으려고 하다 보니. 그런데 가장 마음에 안드는 게 팬. 일단 코팅성분이 찝찝하고, 온도를 확 올리면 이렇게 올려도 되나 싶고, 다 쓰고 나서 깨끗이 씻는다고 씻어도 쓸 때마다 상태가 변해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그게 아무리 눈을 가려도 아웅이 안된다는 점이 그랬다. 가장 큰 이유는 온도 조절이다. 조리하다가 팬의 온도가 확 올라가거나 조금만 뭘 넣어도 뚝 떨어지는게 느껴져서. 어차피 무쇠팬을 쓸 생각이었는데 지금 당장 쓰지 뭐. 그리고 점찍어놨던 것들을 고민고민했다. 먼저 주문했던 것은 일본 디자이너 소리 야나기의 주물팬.

 

 

완전히 딱 덮히는 스테인리스의 뚜껑이 있다는 것이 첫번째 장점. 양쪽 날개라고 하나, 둔탁하게 생기지 않았으면서도 무언가를 따르기 좋은 구조, 게다가 뚜껑을 살짝 엇갈리게 덮으면 스팀의 역할까지 한다는 것. 그리고 마감이 깔끔하고 예쁘다는 것. 근데 실제로 결제까지 했다가 취소했다. 그건 뒤늦게 눈에 들어온 손잡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민고민하다가 결제한 것은 결국 롯지다. 처음부터 롯지는 배제했었는데ㅠㅠ 하지만 계속 더 알아보다보니 소리야나기는 파이버fiber가공? 뭐 그런거 했다길래 차라리 잘됐다 했다. 쓰다보면 그 fiber가 결국 음식에 붙어나오고 뭐 이런이야기도 있던데 난 뭐 이런저런 가공한것보다 그냥 통짜의 무쇠주물이 좋으니까.

 

 

이렇게 왔다 ㅋ 사이즈는 8인치. 시즈닝 된 상태로 오는데 수세미로 빡빡 닦거나 소다를 넣고 끓인 후에 감자를 넣고 검은물이 나올때까지 기름에 볶아내고 닦고 다시 기름을 입혀서 써야한다는 인터넷 글들을 보고... 난 그런과정 다 생략. 시즈닝 됐다는데 뭐. 소다나 세제는 다 사용하면 안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냥 깨끗이 물로 씻었다. 시즈닝 과정에서 엉겨붙은건지 덩어리 진 쇳덩어리? 같은게 그립 부분에 튀어나와 있었는데(위 사진에서도 보인다) 그런 건 미리 가위로 벅벅 긁어냈다 ㅋ 그리고 기름을 묻혀 닦아내봤는데 딱히 묻어 나오는 게 없어서 바로 기름을 얇게 입혀 연기 날때까지 구워냈다.

 

 

그리고 마끈을 감았다. 마끈은 feat.다이소. 소리야나기 팬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덕분에 돈 굳었다) 소리야나기팬은 그립에 구멍이 없어서 끈감기가 안 될 거 같아서. 내 손은 소중하니까 두 겹으로 감았는데 단단히 감는다고 감았는데도 1층과 2층이 살짝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뭐 쓰다가 나중에 다시 감지 뭐. 이렇게 감고 며칠 써봤는데 엄청나게 오래 가열하지 않는 보통의 요리를 해 본 결과 굳이 실리콘 손잡이나 주방장갑으로 잡지 않아도 괜찮다. 혹시나 많이 뜨거워졌다 해도 경고를 해 줄 정도의 방어막은 될 것이다.

 

 

대략 이정도의 크기. 나 혼자 뭐 해먹기는 괜찮은데 본격적인 주부용으로는 작겠다. 나도 쓰다가 나중엔 스킬렛이 아닌 좀 더 납작하고 큰 사이즈를 들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귀찮지 않다. 바로 찬물에 씻으면 두 쪽으로 쩍 갈라지는 기적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난 애초에 게으르기 때문에 요리하고 바로 찬물에 팬을 넣을리가 없다. 당장 씻지 않아도 전혀 답답하지 않다. 어차피 온도차가 문제인 걸텐데 다 먹고 나면 팬이 식었을테고, 그냥 보통 온도의 물에 아무것도 묻히지 않은 수세미로 살살 문질러 닦아낸다. 그리고 다시 가스렌지 위에 올려 물기를 날리고 올리브오일을 살짝 두르고 문질러 표면에 입히고 그을린다. 

 

①쓸 때는 예열한다. ②씻을 때 세제는 쓰지 않는다. ③다 쓰고 난 후엔 기름으로 코팅을 해 둔다. 결국 이 세가지만 잘 지키면 되는 듯.

 

아직 계란후라이는 안 해 봤지만 여태 음식이 눌러붙는다거나 과하게 탄다거나 한 적이 없어서 대만족. 무엇보다 중불만 써도 요리가 충분히 되며 온도가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유지된다. 래스팅같은거 할 때도 좋고 하여간 좋다. ㅋ

 

 

 

 

동시에 주문한 건 스타우브의 베이비웍.

 

 

이건 오로지 감바스 알 아히요를 해먹겠다는 이유로 산 건데 ㅋ 아직은 안 해 먹었다. 처음 롯지 스킬렛을 받고는 어라? 이정도로 작은 크기라면 베이비웍은 안 사고 걍 원소스 멀티유즈를 해도 됐겠는데? 싶었으나 막상 베이비웍이 도착하니, 아냐아냐 역시 모든 물건에는 그 쓰임이 있는 것을. 팬은 팬, 웍은 웍.

 

 

캬. 예쁘다. 근데 이것도 손잡이에 마끈 잡아야 할 듯. 보통 조리기구 쓰던 습관이 남아서 무심결에 맨손으로 잡아버릴까 겁난다. 그럼 치이이익- 하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ㅠㅠ

 

 

사이즈는 이렇다. 딱 원하던 사이즈. 롯지는 1.5kg 정도 되는 것 같고, 베이비웍은 뚜껑 빼고는 900g정도? 뚜껑 얹으면 1.3kg 정도 되는 듯. 이것도 개시를 해야 할텐데...집에 모든 재료가 다 있으나 대하를 사러 가기 귀찮아서 안 해먹고 있다. 물론 대하 철이 아니기도 하고.

 

아무튼 장비빨은 무시할 수가 없다니까.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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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대성당

 

 

 

 

가까이서 보아도 아직 안개속에 쌓여있는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성당.

 

 

저쪽으로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간다. 당연히 우리도 들어가야지. 앞에 있는 차는 청소차.

 

 

프랑스 고딕양식이고, 찾아보니 거의 700년동안 지어진 성당이다. 지어질 당시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었고,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 몇 번째로 손꼽힌다.

 

 

파이프오르간. 미사시에 실제로 연주되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가득해서 어디를 찍어도 화려하다.

 

 

밖에서 봤을때 상상할 수 없는 공간감. 갈빗뼈 같은 궁륭이 천장을 가로지르고 무게를 지탱하며 높게 공간을 띄워 이 안에 들어와있는 것만으로도 압도된다.

 

 

사진이 각도가 좀 묘하게 찍혔는데 설교단이다. 공간안에 또 다른 공간이 있는 것처럼, 마치 토굴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 지어질 때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이 부분이 먼저 지어졌기 때문이다. 워낙 건설기간이 길다보니 중간에 고딕 양식으로 변했고 이 성당은 두 가지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조각기둥들.

 

 

이 사진을 왜 찍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ㅋ

 

 

대성당만큼이나 유명한 성당의 천문시계. 12시 30분마다 종을 친다고 한다. 소리가 나면서 저 인형들이 막 돌아간다. 예수와 12사도 등등 조각에도 나름의 의미와 스토리가 있다. 시간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황도12궁도 알려주고 뭐 그러는데 난 크게 관심이 없었음.

 

 

로사리오, 팔찌 등을 판다. 카톨릭인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봤으나 딱히 끌리지 않아 사지 않음. 바티칸도 갈 예정이기 때문에 굳이 산다면 바티칸이 좋겠다고 생각했기도 하다.

 

 

이건 디카로 찍은 것. 아 다시 봐도 멋진 장미창.

 

 

천문시계 아래쪽에 위치한 이걸 뭐라고 해야돼...하수구도 아니고 맨홀도 아니고 하여간 아래의 지하공간을 덮어놓은 덮개. 종교관련한 곳은 어디나 비슷한 듯,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놓았다. 밑에 반짝거리는 것은 동전이다.

 

 

 

실컷 보고 나와 성당 앞에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뒤로 멀어지면서 아쉬워서 또 찍었다. 아무리 멀리서 찍어도 전체의 모습을 다 담는 것이 어렵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안개에 가려 첨탑 꼭대기 부분은 아직도 희미하다. 나왔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성당앞의 상점들도 문을 열어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되었다. 성당의 모습은 더 선명해졌지만 들어갈 때의 그 순간이 너무 좋아 이 성당은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이후 여행하면서 수많은 성당을 보게 되지만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은 여행 중 처음 들린 성당이었고 워낙 극적으로 처음 마주해서인지 여행 마무리 무렵에 넌 어느 성당이 가장 좋았어? BEST 3를 꼽아봤을 때 둘 다 여기는 빠질 수가 없었다.

 

전날 밤에 도착했다면 성당 벽면에 빛을 쏘아 만드는 화려한 레이저쇼(?)를 볼 수 있었겠지만 이 아침의 물기 어린 모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전날 밤에 보지 못한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만약 전날 밤에 봤다면(볼 수도 없었겠지만 시간상) 아마 이 감동은 없었을거라 생각했고 둘 중 어느걸 택할래- 한다면 역시 이쪽이 좋았다.

 

그러고 보면 짧게 짧게 스쳐가는 여행자에게 언제 어떻게는 정말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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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나홍진이 감독한 영화는 현재 왓챠 기준으로 다섯편이다. 한, 완벽한 도미요리, 추격자, 황해, 곡성. 이 중에서 한과 추격자를 빼고 세 편을 보았고, 단 세 편에 별점을 매긴것만으로도 나홍진은 내가 선호하는 감독 9위로 집계됐다.

 

곡성은 개봉한 날 바로 보고 싶었지만 무슨 사정인가가 있어 둘째날 봤다. 같이 보려고 했지만 시간을 맞출 수 없어 미룰까 하던 차에 그냥 혼자 심야로 봤다. 그리고 좋았다. 좋았다는 것은 이 영화가 행복하며  나에게 고양되는 기분을 주었고 이 영화가 너무 사랑스럽다- 이런 얘기가 당연히 아니다. 이 영화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며,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허구로 쌓아올린 세계가 마치 진실인듯이 어떤 부분에선가 울림을 주었다는 뜻이다.

 

전에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자기가 그런 말을 한것도 까먹었겠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마치 구덩이처럼 불운이 바닥에 깔려있는거 같다고, 그 구덩이는 도처에 있어서 조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고. 나홍진은 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족중 가까운 사람의 불행을 경험하게 되었고, 왜 그것이 그에게 일어났는지 화가 났다고 했다. 이 영화는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화냐고 분노했지만 나는 그 말이 그냥 와닿았다.

 

천우희는 왜냐고 묻는 곽도원에게, 그것은 딸의 애비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황정민은 그냥 미끼를 던진 것이고 너는 미끼를 덥석 문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던진 입장에서는 누가 물었어도 상관없는 거였는데 그냥 니가 미끼를 문 것이라고. 마치 도처에 깔려있는 지뢰처럼. 누구여도 상관없으니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구덩이처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너만큼은 좀 다른 결과가 되길 바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잡아끌어보았던 천우희의 마지막 표정은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다는 절망, 또 하나 놓치고 말았다는 회한을 그 찰나의 순간 보여주었고, 이 영화는 천우희의 그 표정으로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나홍진이 피해자를 위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왜 하필 나냐고 생각하다가,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불행이라고 생각하다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다가. 자책과 후회와 절망이 범벅이 되어 발목을 잡아끄는 늪 같은 상태에 있을 살아남은 자들에게, 아니라고. 니가 어떻게 행동했건 별 변수가 되지 못했을, 그건 그냥 지뢰같은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자책도 후회도 내려놓으라고.

 

물론 이 영화가 영화 자체로 보여주는 것은, 끝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갈림길의 입구에서 제한된 정보와 끝없는 의심만을 가지고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갈팡질팡하는 모습과 한없는 무력감이었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나에게는 슬픈 영화였다. 그리고 진짜 무서운 영화는 슬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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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휴가에서 건져올린 것들.

이번 여름 휴가의 키워드를 뽑아보자면, 물론 아직 휴가가 끝나진 않았지만-집 앞 탐앤탐스, 한국사, 다이어트, 요리. 이렇게 4가지가 되겠다. 지난 겨울휴가에 유럽여행을 다녀와서인지 모두들 이번 여름엔 어디 안가냐, 혹은 어디 가냐가 인사였다. 왜, 대체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휴가=여행이 되었나 하고 약간 시니컬한 마음이 드는 주제에 나조차도 누군가가 휴가라고 하면 어디 가세요? 어디 안가세요? 하고 묻는걸 보면 이건 그냥 식사하셨어요? 안녕하세요~와 비슷한 인사말이 된 모양이다. 몇 년 전부터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은(혹은 그럴 필요 없는) 질문에는 말도 안되는 개그나 드립으로 받아치고 있기 때문에 누가 여행 안가냐, 왜 안가냐라고 물어보면 "가난뱅이라서요" "돈이나 좀 주고 그러시든가요" 뭐 이런 태도로 대답해왔는데 슬프지만 이건 드립이 아니다. 과거 누군가 했던 말처럼 정말 농담은 언제나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는지도. 내년에 큰 돈을 쓸 계획이 있기 때문에 여행 지출은 당분간 동결해놓을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여행을 꼭 가야 한다. 가고 싶다-이런 생각을 원래 안한다. 막상 가면 누구보다 신나게 다니고 얘 뭐야 싶을 정도로 즐기지만 출발 과정을 즐기는 타입은 아닌거지.

 

이번 휴가의 목표 두 가지는 다이어트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었는데 막상 휴가가 되고 나니 내 소중한, 이 피같은 시간을 공부에 쓰기는 너무 싫어서 탱자탱자 놀았다. 개버릇 남주냐, 아니 지버릇 개주냐인가? 아무튼 최소 시간을 들여 최대 효율을 뽑으려는 게으른 생활방식으로 당연하게 몇 년 살다보니 이번에도 일단 놀고 나중에 공부한다- 자세로 놀고 놀고 또 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시험이 일주일 남았네? 에이 이렇게 된거 월요일에 환불; 하려고 들어가보니 50% 환불인거다. 에이 망했네. 어차피 50%인거 귀찮아라, 내일 환불해야지 했더니 화요일부터는 환불이 안되는거다 -_- 레알 망했네. 어이쿠 이젠 걍 쏟아부어서 공부해야지 하고 퇴근하고 화.수.목.금 4일을 집 앞 탐앤탐스에 가서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 일단 책은 한 번 다 읽고 기출은 좀 풀어봐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풀파워로 집중해서 읽고 수험생의 자세로 문제 하나하나를 씹어먹을 듯이 풀어가며 머리속에 쑤셔넣어봤으나 한국사 고급은 나처럼 오랜만에 공부하는 애가 4일만에 볼 수 있는 시험은 아니었다. ㅋㅋㅋ 아 솔직히 내심 한 구석으로는 기대했는데. 책 한 번 집중해서 보고 나면 어떻게 1급 커트라인은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건방지게 ㅋ 이 시험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수험생들에게 미안한 소리지. 게다가 시험 전전날 치아재교정에 들어가 치아가 이동하느라 아파 이틀동안 밤에 잠을 못잤고, 시험은 당연히 어려웠는데, 그 와중에 오랜만에 한 공부는 너무 재밌더라. 어이없게도. 뭐에 오랜만에 열중해서 그런가? 이틀만 더 공부했으면 싶을 정도로. 그래서 다음 시험도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책을 열심히 읽기보다는 기출을 분석해서 요령껏 외우면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걸 알겠는데, 내가 시험점수와 자격증으로 뭐 써먹을려고 시험보는게 아니다보니 정말로 공부를 재밌게 깊이하고 머리속에 쭉 꿰어진 인과관계의 흐름과 역사에 대한 이해로, 진짜 다 알아서 시험을 잘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100점 받았네, 99점 받았네 하는 글들을 보니 나도 시험 이후에도 휘발되지 않는 단단한 내 실력으로 100점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진작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ㅎ

 

다이어트는 현재로서는 잘 되고 있다. 워낙 시작점이 맥시멈을 찍기도 했거니와, 이번엔 정말 열심히 하고 있기도 하다. 마침 시작하던 때가 주기를 맞춰서 흐름을 잘 탔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런 짓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없는건 아닌데, 목표가 분명해서 그런가. 대충 하다가 적당히 만족해버린 몇 번의 다이어트와는 달리 이번엔 꽤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부로 -5.5kg를 찍었고, 처음 목표까지는 6.6kg 남았다. 사실 여기서 2kg 정도만 더 빼면 모두가 다이어트 안해도 되지 않냐? 소리를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데 남 보기 좋으라고 살을 빼는 게 아니라, 내가 가장 편하게 지내던 체중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라서 올해는 저기 도달하고 유지해서 평생체중으로 삼으려고 한다. 다이어트 할때마다 느끼는 건데 당연히 체중감량의 바이블은 식이90%+운동10%라는 것. 두번째는 내가 근 10년동안 얼마나 개떡같은 식생활을 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그 전 10년 동안은,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 다 죽어도 넌 흡혈귀처럼 탱탱하게 살고 있을거야'- 라고 말할 정도로 몸에 나쁜 짓 몸에 나쁜 것은 안먹고 살았던 거 같은데. 평생 안 먹던 디저트, 초콜렛 같은 단 것들도 자주 먹고. 밤늦게 떡볶이 먹고. 뭐 어쩌겠나. 몸은 정직하니 시간을 들여 걷어내야지.

 

그래서 슬슬 시작해야지... 하던 요리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지금 내 생활은 필요없는 물건을 줄이고 버리고 필요한 물건 중 정말 필수적이고 급한 것만 구입하기-체제로 돌입한지 3년쯤 됐는데 요리를 하다보니 별 수 없이 몇 가지 살림살이를 줄줄이 들이고 있는 중이다. 아 할 수 없지. 움직일 때 좀 짐이 되겠지만 감수하는 수 밖에. 그렇지 않으면 식생활에서 자꾸 타협을 봐야 하니까. 근데 이것도 하다보니 좀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속에 떠오른 메뉴를 만들려고 참고하는게 아무래도 인터넷인데 만들고 나면 뭔가 아쉽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인터넷에 있는 레서피들은 요즘 인터넷의 정보가 대부분 그렇듯이 야매랄까. 혹은 백종원의 2쇄 3쇄 4쇄랄까. 혀에 닿는 맛만을 내기 위해 뿌리고 칠하고 흉내낸 느낌이 든다. 그게 나쁜건 아닌데, 내가 지향하는 바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구체적으로 든 것은,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은, 여행기부터 마무리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싫어 블로그를 팽개쳐두다가, 글 쓰기는 귀찮으니 글을 읽고 싶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리고 좀 요리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어떤 사람의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블로그를 읽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몇 가지의 부글부글 끓고 있던, 마그마같은 마음이 깊은 곳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근 2년정도 동안 느껴온 감정이 슬럼프가 아니라 '권태'라는 것도 순간 뚜렷해졌고. 오랜만에 무언가 하고 싶고, 누군가를 샅샅이 읽어내고 싶다는 느낌이 든 것도 오랜만이다. 요즘 왜 이렇게 모든 사람과 모든 주제와 모든 것이 하나같이 시시껄렁하게 느껴지는가라는(사실은 내가 시시껄렁하기 때문이겠지) 진흙같은 감정속에 파묻혀 있다가 저 멀리서 반짝- 하고 빛나는 별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건 저 별을 갖고 싶다라거나 저 별에 가고 싶다라거나 그런게 아니라 아. 역시. 어쩔 수 없이 캄캄한 밤하늘인줄 알고 포기했었는데 달도 있고 별도 있었어. 없는게 아니었어. 내가 어두운 쪽을 보고 있던 거였어-를 확인한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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