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실이 추론에 맞지 않을 경우, 그 추론을 버려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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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2 :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김남주 역, 황금가지



재미없다. 신경자극이 랑비에 결절을 도약하듯이 읽었다. 그러다보니 다시 페이지를 앞으로 reward 하기를 몇 번. 재미없는 책을 집중해서 읽는 건 어렵다.

모든 작품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특징중 하나라면 로맨스와의 결합인데, 이 점이 팬들에게는 매력인 모양이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반감요소. 게다가 번역체의 특징-중년 남자의 대화에서 모든 어미가 ~라네. ~했네. 운운하는 하게체네네체와  ~했소, ~다오-하는 하오체소소체는 등장인물을 순식간에, 아주 효과적으로 지루하게 만들어버린다.

딱 한군데, 반짝이는 부분은 에르큘 포와르의 말이다.
 "모든 살인범은 누군가의 오랜 친구일세. 감정과 이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네."

세상을 놀라게 한 범죄의 끝에는 주변인물의 인터뷰가 곁들여지게 마련인데, 실제로 그때마다 주변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어요."... "보기엔 멀쩡한 사람인데..." ...맞다. 모든 범죄자는 다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며 초등학교 동창이고 지역주민이다. 음.. 쓰고 나니 어쩐지 영화 '우리동네'의 홍보문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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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란, 보통 강박관념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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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 0시를 향하여
이선주 역, 황금가지



노부인의 침대옆에는 기다란 끈이 달려있어서 그걸 잡아당기면 윗층의 하녀가 종소리를 듣고 달려올 수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분명히 이 책을 읽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영화가 있다면 영화도 봤을지 모른다. 이미지가 마치 본 듯이 선명하니까) 책이 거의 끝나갈때까지 내 나름대로 엉뚱한 범인을 찍고 있었다. -_- 틀림없다고 확신하면서! 저렇게도 단서가 널려있는데!

초등학교때 N은 맞은편 동에 살았다. 안방창문을 열고 이름을 부르면, N이 창문을 열고 대답하고 어느 집에서 놀지를 결정하곤 했던 작은아파트에서. 우리남매는 홈즈를 좋아했고, N남매는 아가사 크리스티를 좋아했다. 또 다른 멤버였던 Y는 루팡을 좋아했던 것 같고. 아닌가...? 뒤섞였나? -_-a 그러니까 아마 이 책은 그때 읽은 거겠지.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이 책에 담겨있는 성인 남녀의 애증과 강박관념, 집착등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럴리가)

퍼즐 조각이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이전에 주어진 단서들이 물고기가 튀어오르는 것처럼 탁! 튀어오를때 앗! 맞어! 하고 감탄한다. 역시, 추리소설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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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통찰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 :열세가지 수수께끼
이은선 역, 황금가지



드디어 미스 마플의 등장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하거나 악한 게 아니라 뭐랄까, 어리석게 보이거든."

그녀는 한적한 시골에서 살다보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게 된다, 즉 저절로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건 네 착각이야.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들 그런 줄 모르고 살지."

화요일 밤 모임이라고 즉흥적으로 이름 붙인 이 모임에서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한가지씩 수수께끼를 내게 되고, 당연하게도 그 모든 수수께끼는 구석에서 별로 귀기울여 듣지도 않는 듯 뜨개질을 하던 미스 마플이 다 풀어낸다. 물론 미스 마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녀보다 모자라거나 성급하고.

단지 시골에 살고,  여자이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폄하다가 어느새 사람들은 그녀에게 놀라고, 그녀의 지성과 통찰을 믿게 되며, 흠모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된다.  미스 마플과 이런 면에서 비슷한 인물 중에는 브라운 신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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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 : 오리엔트 특급 살인
신영희 역, 황금가지


복수는 私刑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를 이루면서 사사로운 처벌을 허용하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 복수를 묶어버렸다. 그것을 두고 누군가, 어디선가는 인간은 이제 복수마저도 남의 손에 뺐겼다. 라고도 했고, 어떤 사람은 비겁하게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채 남에게 싫은 일을 시키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실 받은대로 돌려주마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고, 상황에 따라 모든 요소가 달라지기 때문에 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받은 자가 자기가 받은 고통의 크기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해 돌려주는 과정에서 너무 넘치게 돌려줄 경우, 혹은 너무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 법이 그걸 대신한다.

그런데 내가 받은 고통을 법에서 정한 6:4 과실비율이라든가, 몇백만원 벌금 같은 것으로 "그래. 이 정도면 됐어." 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가능한 일일까? 물질적 보상은 그렇다치고 내 마음이 아직도 다쳐서 아픈데, 남들이 그걸 얼마나 안다고.

그래서일까, 인디언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아는 자가 그것을 판단했다고 한다. 양쪽을 모두 잘 알아야 왜 그런 일이 생겼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지 알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모르는 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가 그 판단을 하게 한다.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복수를 꿈꾼다. 현실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현실에서의 복수란 또다른 범죄에 불과하지만 작품속에서의 복수는 제법 정의를 찾는 듯도 해 보인다. 다만 무협지에서의 복수가 대를 이어 질기게 피의 고리를 엮어나가는 데 비해 추리소설에서의 복수는 대개 한 세대 정도로 그치고 무협지 속 복수는 후손의 오해와 과잉감정이 섞인데 비해 추리소설속에서는 선악 구분이 명확한 편이다. 즉, 무협지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것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복수란 깨끗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며 내 자손의 발목까지 붙잡는, 덧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복수의 덧없음&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사적인 처벌을 긍정하게 하려면 어떤 소설적 장치가 필요할까. 먼저 그 대상은 "절대악"이어야 한다. 되도록이면 아주 용서받지 못할 종류의 죄를 저지르는 것이 좋다. 물론 뉘우치지도 않는다. 두번째는 법의 집행을 벗어난 인물이어야 한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거나(ex.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형을 선고받기는 했으나 법망을 벗어나 달아나있다거나(ex.오리엔트 특급 살인) 공소시효가 지났다거나.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처벌이 어려운 경우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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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새로운 애거서 크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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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김남주 역,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는 언제나 새롭다. 늘 내용을 완전히 까먹어서 새롭다. -_);;; 생각해보니 굳이 애거서 크리스티만 그런 것도 아니네. 추리소설은 거의 그렇다. 물론 어렸을 때(초중딩때)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Y의 비극이라든가 오리엔트 특급 같은 건 몇 번을 읽었는데도 대충 살인 방법 같은 것만 기억날 뿐, 뭔 내용이었는지, 누가 범인인지, 동기는 뭐였는지, 하~~나도 기억안난다. -.-

이 소설은 10명의 등장인물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한 명씩 한 명씩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섬-병정섬-에 초대되고, 당연히 그건 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는 의도다. (김전일에서 지겹게도 써먹는다) 그러나 그들을 초대한 주인부부는 보이지 않고, 응접실에 있는 10개의 도자기 병정인형과 각 방에 써 있는 시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하는, ............
→여기까지가 읽은거 또 읽는 걸 방지하기 위한 줄거리 요약 -_)

이 이야기는 결국 사형에 관한 것이다. 私刑인 동시에 死刑. 그럼 그것이 정당한가. 의 문제인데 ......음.... 그건 생략.
다만 거기에 관해서는 금자씨보다도 더 조건을 잘 배제시킨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독자가 그 자체만을 순수하게 판단하게 만드는.


덧1. 여기(홤금가지판)에는 병정섬, 병정인형이라고 되어있지만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에는 검둥이인형이라고 되어있다. 해문출판사 판에는 인디언인형이라고 되어있고. 하나의 원문을 보고 번역했을 텐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적어도 병정과 인디언은 너무 멀잖아.

덧2. 어렸을 때 읽은 버전엔 인디언 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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