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에 해당되는 글 21건

  1. 입시예술 2007.05.21
  2. 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2007.05.18
  3. piano and me 2007.04.13
  4. Bach: French Suites, BWV 812-817 2007.04.13
  5. 자체 선정한 2006년의 음반 2006.12.31

입시예술



운동 나갔다가 피아노 소리에 발을 멈췄다. 흔치 않은 피아노 소리라 위를 올려다보니 날이 더워서인지 창문을 열어놓은 2층에 입시음악 이라고 쓰여있었다. 아... 그 위 3층은... 내 친구가 있는 곳이네. 찻길에 붙어있는 건물이라 시끄러워 피아노 소리가 잘은 들리지 않았어도 아주 다이내믹하고 힘이 넘치는 연주였다. 더 듣고 싶어 주변을 서성거렸으나 곡의 마지막 부분이었고, 아는 곡 같았는데..무슨 곡인지 알 수 없었다. 올라가서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생각만.

예전에도 돈 벌다가; 바로 옆집에서 들리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에 한참을 멈춘 적이 있었다. 웬만한 음반으로 듣는 것보다 더 좋은, 정말 날 것의 느낌.

입시생들의 연주에는 뭔가 치열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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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이렇게 찍는 게 그나마 낫구나. 스캐너가 있으면 그냥 싹 밀어버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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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건 이 중에 없다. 이렇게 많이 갖고 있는데 정작 가장 좋아하는 건 씨디로 갖고 있지 않다니. 어쩐지 이상하다.

예전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호구조사도 패스하고 그냥 바로 골트베르크에 대해 신나게 얘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초점은 "음의 지속성"에 맞추어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게는 그게 핵심이다. 그래서 현악기같은 편곡버전은 이 곡에 있어 에러라고 본다.

이 곡이 작곡되어 연주될 당시에 음악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대신 일회성을 획득(?)하게 되었으니 그만큼 음악이란 귀하고 드문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귀가 잠시도 쉴 틈이 없고, 원하건 원치 않건 음악에 자주 노출되니만큼 소리를 덮을 소리도 때로는 필요하다. 이렇게 이 곡을 많이 갖고 있는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인 듯 하다. 일종의 기능성 음악으로, 짤막하게 끝나는 각 변주를 굳이 하나로 묶어 감상을 이어갈 필요 없는 만만함. 즉, 나에게는 키치와 예술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듯 한데, 그래서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변주곡 따위에서는 감동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까페에서 대화의 빈공간을 채워주는 용도의 음악이 키치일지라도 음악을 듣기 위해 대화를 멈추는 순간 그 음악은 곧 예술이 되는 거라면, 내가 좋아하는 연주는 분명 예술의 범주에 속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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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 and me


피아노가 정말 너무너무 치고 싶은 날이 있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한 기분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대체 이렇게 치고 싶은 마음이라면, 얼마나 쳐야 풀리나 어디 한 번 보자- 해서
스탑워치를 눌러놓고, 됐다 싶을 만큼 쳐봤다. 애걔~ -_- 40분이었다. 
음. 이 정도면 점심 먹고 매일 칠 만 하겠군, 했더니 웬걸.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급기야 오늘은 아침에도 치고 저녁에도 치고...
전부 세시간쯤은 친 것 같다.  음.... 나 요즘 스트레스가 좀 쌓였나...



몇 년 전에 잠깐 다시 피아노를 배울 때, 
첫날 인벤션 한 곡을 쭈욱 치고 나자 선생님이 아- 좋다. 라고 내뱉듯이 말했다.
마치 맛있는 차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저절로 나오는 소리 아- 맛있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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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이걸 마지막 곡으로 치고 그랬다.
치면서도 기분이 좋고, 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입으로 소리내어 '아.... 좋다.' 라고
그 날의 선생님처럼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고서도 뭔가 아쉬워 연속으로 세번을 더 치고서야 뚜껑을 덮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손가락연습겸-_) 해서 매일 48곡을 쭈욱- 한 번씩 친다고 했었는데...
새삼 부럽다. 나도 소나티네 치듯이 전곡을 쭈욱 칠 수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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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French Suites, BWV 812-817


들으면서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곡이 있는가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건 쳐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하는 곡이 있다

바흐의 클라비어 곡들 중에서는 WTC와 프랑스모음곡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말해온 것처럼 나도 바흐를 칠 때는 뭔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데
쉬워보이는 악보조차도 사실은 "제대로" 치기 매우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치다보면 그 전에 어떤 일이 있었건 간에, 감정의 찌꺼기나 스트레스 같은 건 날아가버리고
어느새 무념무상의 집중상태에 들어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힘들게 산을 오른 게 아니라 걷다보니 산에 들어가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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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기도 하고
워낙 개성이 강렬해서 굴드로 시작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10년전에도 그렇게들 말했었고 지금의 나도 누가 의견을 묻는다면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제나 굴드를 먼저 선택한다.



하지만 이 곡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이 음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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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6번만 실려있는데, 이 연주를 듣고 그냥 뿅~♡가버렸다.
4번까지는 '음...그래, 굴드도 좋아.' 라고 생각하지만
5번에 오면  '음...역시 좀 부족해...' 하고 생각하며
6번에서는 결국 못참고 해블러를 걸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이 곡은 1-2-3-4와 5-6으로 나뉘어진다) 


전곡반↓ 
씨디들 사이에서 이 음반을 발견하고 덜컹-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역시 직접 가서 음반을 사는 것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집에서 택배박스를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손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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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좋다.

아직은 이 느낌을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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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선정한 2006년의 음반




우리집에는 나 말고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느 누구의 지도나 조언도 받을 수 없었다.
요즘과는 달리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책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튼 용돈을 모아 무턱대고 레코드를 사서
이해가 갈 때까지 그저 듣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 산 레코드를 지금 뒤적거려 보면
꽤나 두서 없이 사 모았구나 하고 스스로도 질릴 정도지만,
당시에는 그런 건 알지 못했으니까 싸게 파는 레코드를 여기저기서 사 모아선
음반 면이 닳아 빠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었다.
젊은 시절에 들었던 연주라는 건 평생 귀에 달라붙는 것인 데다
몇 장 되지 않은 레코드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었으므로,
그 무렵에 산 레코드는 지금의 나에게는 일종의 표준 연주가 되어 버렸다.


-무라카미 하루키 '내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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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동안 그나마 틈틈이 파고 들었던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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