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키리키리정의 브라운선생
다기 중엔 표면에 자잘한 crack-관입이 있는 것들이 있다.
쓰다 보면 이 금 사이로 찻물이 배어드는데
이게 또 멋이라, '기른다'고 한단다.
기쿠치 쇼타가 그린 '키리키리정의 브라운 선생'에도 관입이야기가 나온다. (주는 아니지만)
한 샐러리맨이 직장상사의 명에 따라 다도를 배우게 되는데
초 미인인 다도선생이 첫 날 기념으로 찻주발을 선물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사람의 다완에도 물이 서서히 들어가고
다도선생은 이런 말을 한다.
찻주발 하나를 매일매일 소중하게 다루다 보면,
관입에 서서히 차 색깔이 배어들어 간답니다.
그걸 더러움이 아니라, 멋으로 느끼는 것이 다도인의 눈이랍니다.
다도선생에 반해, 소중하게 다완을 기르던 그는 어느 날 퇴근하자
아내의 고양이가 뛰어다니다가 다완을 떨어뜨려 반으로 쩌억-갈라놓은 것을 본다.
화가 나 소리를 지른 그에게 실망해 아내는 친정으로 가버리고
-찻주발의 상태는 중의성을 띠고 있는 거겠지.-그는 찻주발을 수리하기로 한다.
그러나 모두들 수리를 거부하고
곳곳을 들르다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골동품점 호중당.
마침 이 곳에 놀러와 있던 , 역시나 설정상 울트라 뷰티인 브라운선생이 수리를 자청한다.
며칠 후 받게 된 찻주발은.
그는 깨진 자리를 숨겨주길 바랬는데
다도선생님이 주신 소중한 다완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며 울고-
브라운은 웃으며 속는 셈 치고 가져가 보라고 한다.
다도선생은 기르는 것을 뛰어 넘어 완전히 탈바꿈을 시켜놨다며,
이렇게 호쾌하게. 깨진 자리를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며 붙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며 감탄하고,
그는 아내에게 찾아가 화해를 청한다는. 그런 에피소드다.
그릇은 아무리 소중히 다루어도 깨질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저렇게 멋지게 붙여준다면야. 일부러라도 두 동강을 내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