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하루키'에 해당되는 글 7건

  1. 오랜만의 하루키 장편, 1Q84 2 2009.10.13
  2. 공중 부유 클럽 통신 2008.07.24
  3. 음악에 관한 글들 1 2007.11.21
  4. Chet Baker 2007.11.20
  5. 6월. OPEN & CLOSE 1 2007.06.01
  6. 무라카미 하루키의 토끼정과 나의 크로켓 1 2007.01.21
  7. 자체 선정한 2006년의 음반 2006.12.31

오랜만의 하루키 장편, 1Q84





 
뭐 일단은 3권 집필예정이라고 하니 3권까지 다 읽어봐야 알겠지만-

먼저 좋은 점::번역이 좋은 건지, 하루키가 더 촘촘해진 건지 디테일이 전보다 더 풍성해졌다. 게다가 이 사람이 이제 60대에 접어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놀랍다. 마라톤+생선+두부+규칙적인 생활의 힘인가. 한창 40대에 써내던 작품과 지금 작품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나는 실망이지만. 

이 책을 손에 제대로 넣기 전, 서점에서 시간 떼우다가 200page까지 미리 읽었는데 처음 인상은- 아.. 이제 난 진짜 하루키는 못읽겠구나..였다. 손발이 오그라든달까. 하지만 일단 덮고 며칠 뒤 다시 읽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런가. 꽤 재미있게 읽었다. 마치 잘 짜여진 미스테리를 읽듯이. 아니 하루키상, 말 나온 김에 미스테리를 쓰세요, 미스테리를!!!! .......

단숨에 쭉쭉 읽었다. 우시카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_-- (우시카와는 하루키의 전작 『태엽감는 새』에 등장했던 인물) 

문제는 같은 인물의 재활용이 아니라 『1Q84』자체가 『태엽감는 새』의 변주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단편을 늘려 장편을 만들고 장편에서 다시 가지를 치는 단편을 만드는 하루키의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할 새 작품에서 같은 이야기를 거의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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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부유 클럽 통신

하루키의 책을 읽고 있는데 하루키는 종종 공중을 부유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이 얘기는 그가 에세이에서 여러 번 했던 거 같은데, 그는 주로 50 cm 정도, 붕 떠서 더 높지도 않고 더 낮지도 않은 딱 그 정도쯤 떠있는 모양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비슷한 꿈을 종종 꾼다.

꿈에 대해서라면, 그냥 간단히 잠이 싸는 똥-_-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홍의 집에 놀러갔더니 책장에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이 꽂혀 있어서 완전 놀랐었다. 홍은 이런저런 책을 잘 안읽는다. (미안 홍, 사실이잖아-_-) 그때 빌려 읽고, 그 이후로는 꿈에 감춰진 의미, 꿈에 반사된 내 무의식같은 것을 열심히 해석해 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왜 난 오늘 이런 꿈을 꾼 걸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무슨 생각을 했지? 떠올려 보면서. 예지몽 같은 건 꿔본 적도 없고 사실 그 쪽으로는 잘 생각도 안되니 어디까지나 어제 어땠는지에 한정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꿈은 REM수면 단계에서 그 전날 처리되지 못한 정보들이 정리되는 과정의 부산물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요즘 경향으로는 말 그대로 뇌파가 무작위로 싸는 똥-_- 더도 덜도 아닌 그냥 그거라는 거 같다.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데 그런거 치고는 좀 비슷한 몇 가지 유형의 꿈을 자주 꾼다. 그 중 하나가 부유하는 꿈인데 내 경우는 아예 대놓고 날아다니는 꿈은 한 번도 꿔본 적이 없고 모두 점프다. 즉, 꽤 거리가 되는 내리막길이 있고 나는 그 길을 뛰어간다. 근데 뛰었다가 착지하는 순간이 매우 smooth하고 길다. 대략 한 번 뛰는 간격이 한...높이 2 M, 보폭 5 M쯤. 부---웅, 부---웅, 부---웅. 마음만 먹으면 어라, 이러다 날아가 버리겠는걸? 싶을 정도로 더 날듯이 뛸 수도 있는데 그건 내가 조절을 하는 편이다. 그 사뿐사뿐한 느낌이 좋아서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아침에 깨서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마치 현실에서도 그렇게 날듯이 뛰어갈 수 있을 듯 생생한 느낌이 남아있다. 아...현실에서도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완전 좋겠지. -_-

anyway, 책에서는 하루키가 꿈의 권위자에게 자신의 부유하는 꿈 이야기를 이야기하자 이런 답변이 왔다.
"허허, 공중 부유라는 것은 어쨌든 결론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조금 밖에 뜨지 않는 것이죠. 그걸로 된 겁니다. 높은 곳까지 붕 올라가는 꿈을 꾸는 것은 어린애들입니다. 어른은 일단 그런 꿈을 꾸지 않습니다."

우후후. 나는 어른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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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한 글들

왜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걸까. 음악이 이미 하나의 언어이자 예술이고 경험인데 왜 그걸 굳이 다른 방식의 언어로 치환하는가. 나는 그것이 인간은 의미있는 경험을 남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이 첫번째 이유라고 생각하고, 두번째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경험과 사고를 재정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요즘은 철학에서도 세계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가 대세라고 들었다. 아니면 말고 -_)

지난 여름, 나는 답답한 몇 번의 금요일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봐야 할 책들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책들만 뒤지고 다녔는데, 결론은 참 재미없더라는 것이다.

그때쯤에는 한참 재즈가 듣고 싶을 무렵이라 괜찮은 재즈책 한 권, 그러니까 미술로 말하자면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말하자면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같은 책. 한 번 쭉-읽고는 책장에 묵직하게 꽂아두고 원할 때마다 꺼내 찾아볼 수 있을 만한 책을 한 권 사야겠다...생각했는데 재즈북은 기대에 못미쳤고, 원하는 책도 아니었고, 그 외에는 대개 연주자나 작곡가를 중심으로 한 평전들이 많았다. 재즈나 클래시컬 뮤직이나. 그런데 나는 재즈만큼은 딱딱한 책 No-

그래서 하루키의 책을 찾아나섰다. 알다시피 그는 6000 장이 넘는 레코드를 소유하고 있고, 그 자신이 야구장에서 날아가는 공을 보며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라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재즈바의 주인이기도 했으며, 그의 소설에서는 늘 음악이 중요한 배경이 되고, 어느 에세이에선가 말하길 스탄 게츠라면 다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음악애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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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쓴 재즈 에세이가 있다. 하긴, 요리 에세이도 있더라만. 이 책은 그가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에 대한 감상과 많은 레코드들 중에 각 한 장씩을 추천한 책이다. 즉,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뭔가를 얻기 위해 읽기엔 무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 나는 이렇게 느끼는데 하루키씨는 이 사람의 이런 면을 좋아하는군. 하는 정도.


얼마 전 하나 더 발견한 것이 이 책. 이 책은 좀 더 본격적인 음악에세이다. 시기상으로도 나중에 나왔고. 아마 하루키씨가 위 책을 먼저 내놓고, '음.. 저때는 이 사람 저 사람 얘기 쓰느라고 여기저기 간만 보고 말았지만 좋아하는 주제 몇 개만 잡아 좀 깊이 다루면서 길게 써보고 싶은데-' 라는 마음으로 썼겠지 싶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전자는 출판사에서 기획한 아이템이라, 돈 준다니까-_) 겸사겸사 쓴 거 같고, 후자는 자기가 쓰고 싶어 쓴 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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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씨는 취향도 분명하고, 주관도 뚜렷하고, 글솜씨는 말할 것도 없는 데다가 느긋한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그가 쓴 글은 참 잘 읽히고 재밌다. 무엇보다 감상이 약하지 않다. 대개 활자화되어 나오는 음악평론이나 아니, 평론은 빼자. 음악 감상글이나 음반 리뷰같은 글들은 다른 애호가들한테 욕먹을까봐 그러는건지, 있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 감상의 부재, 음반 속지정보 같은 말들 뿐이고 정말 중요한 것-들어보고 싶다!, 혹은 듣는 것 같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게 많은데 하루키의 글들을 읽다 보면 아.. 맞아. 맞아. 나도 그 사람 연주 그렇게 생각했어. 오... 그렇단 말이야?? 그럼 한 번 들어봐야겠군. 이런 생각이 솔~솔~ 든다.

무엇보다, 꼰대같은 소리를 안해서 좋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기쁨의 하나는 자기 나름대로의 몇 곡의 명곡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몇 명의 명연주가를 가지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의 평가와는 합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신만의 서랍장'을 가지는 것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음악 세계는 독자적으로 펼쳐져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는 나에게 있어서 그와 같은 중요한 '개인적인 서랍장'이기도 하고, 나는 그들의 음악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유진 이스토민이나 월터 클라인이나 클리포드 커즌, 그리고 안스네스 같은 피아니스트들-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는 아니다-이 제각기 엮어낸 뛰어난 음악 세계와 조우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다른 누구의 체험도 아니다. 나의 체험인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개인적인 체험은 나름대로 귀중하고 따뜻한 기억이 되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그와 유사한 것이 적지 않게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결국 피와 살이 있는 개인적인 기억을 연료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만일 기억의 따스함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은 아마 견디기 힘들 만큼 차디찬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도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마치 사랑을 하듯이 음악을 듣는 것일 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 17번 D장조 D850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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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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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vourite Songs. -the last great concert-



무라카미 하루키의 Portrait in Jazz(재즈의 초상)는 쳇 베이커로 시작한다.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은 많지만
'청춘'이라는 숨결을 이만큼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사람이
그 말고 또 있을까?
라는 말과 함께.


나는 행복한 인생과 위대한 예술 둘 중에라면 단연 행복한 인생쪽에 손-_-)/번쩍이라.. 삶을 희생해서야
얻어지는 예술이라면 그런 예술 안해도 좋으니까 부디 행복하게 좀 살아요. 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럴 때 생각나는 두 명의 재즈 뮤지션이 바로 쳇 베이커와 빌리 할리데이.


쳇 베이커는 젊었을 때 어우, 이거 제임스 딘이잖아?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잘 생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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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무성, Jazz it up! 1


마약과용과 잦은 체포로 심신이 망가지고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깡패들에게 맞아 이가 부러지기까지 하면서 그의 음악인생은 끝나는 듯 했다. 트럼페터에게 이가 부러졌다는 건 Out 선고와 다를 게 없으니까. 그런데 그는 다시 일어선다. 그게 바로 이 레코딩이다. 그리고 그는 이 레코딩 2주일 후에 의문사한다.

이 앨범에서의 My Funny Valentine은 정말 최고다. 부드럽고 따뜻한 수프 속에 빠져드는 것 같은 음색,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체념과 고독. 빠진 이 사이로 바람이 새어나가듯 느슨한, 그래서 허한 마음. 그런데 하루키는 이 마지막 앨범이 아닌 그의 젊음에 주목한다. 그가 재평가된 것이 물론 기쁘지만 50년대의 직선적이고 격렬한 연주를 머릿속에 잡아두고 싶단다.


물론, 아직 내게 쳇 베이커는 이 앨범이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축- 늘어져 들을 수 있는 앨범이 흔한 게 아니다. 무리해 다가가려 하지 않으면 체념과 고독은 그 모습을 바꿔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다. 저쪽 구석에서는 아저씨가 노래부르다 트럼펫 불다를 하고 있고, 이 쪽 구석에서는 내가 느긋하게 음악을 듣다가 책을 읽다가를 하는 것처럼.  더군다나 상대의 얼굴을 보라. 여자 꼬실 힘도 없어보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사실은 50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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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OPEN & CLOSE

엄마는 매달 15일쯤 되면 이번달도 다 갔다~라고 하다가 나한테 꼭 한 소리를 듣는다.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꼭 그렇게 세월을 빨리 보내야겠냐고. 근데 진짜 5월이 다갔다. 언제 다갔나. 진작 여름날씨여서 뭐 딱히 6월이라고 달라질 건 없지만, 하여간 새 달. 새 날이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4권짜리의 이 소설은 이제 내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므로 정확한 내용 확인은 할 수 없다.

주인공-이름이 와타야 노보루였나? 의 외삼촌인지는 하는 가게마다 족족 성공한다. 그래서 와타야 노보루에게 그 비결을 설명해주면서 이런 얘기를 한다. 사람들은 늘 A.B.C 순서로 일을 진행하려 하지만 벽에 가로막힌, 실이 마구 엉켜있는 것 같은 상태에서는 뭐가 진짜 중요한 일인지도 잘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 잘 되지도 않는다. 그럴때는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일, 가장 중요하지 않아보이는 일부터 처리해나가면 어느샌가 해결이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X.Y.Z부터.

그 부분의 맨 마지막 문장은 마침 어딘가에 적어두었다.
시간을 들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돼.
충분히 무언가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제일 세련된 형태의 복수란다.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나. 어떤 변화는 긴 시간과 큰 노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간쯤은 각오하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작은 것부터. 당장 할 수 있는 가벼운 것부터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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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토끼정과 나의 크로켓




'토끼정'에는 두 종류의 요리밖에 없다.
하나는 매일 바뀌는 정식이고, 또 하나는 고로케 정식이다.
두 음식에 바지락 된장국과 큰 그릇에 한가득 담긴 양배추 샐러드가
딸려 나오는데, 이게 참 무지하게 맛있다.
그리고 신선한 야채절임도 듬뿍 곁들여진다.
갓 볶은 참깨를 뿌린 데친 시금치라든가, 스파게티와 버섯 초무침 같은 게
작은 그릇에 소복이 담겨 나온다.
쫄깃쫄깃한 스파게티와 씹는 맛이 상큼한 버섯 초무침은
여느 정식집에서 나오는 반찬과는 격이 다르다.

그리고 밥은 보리밥이다.
이 보리밥이 투박한 느낌의 큼지막한 밥 공기에 담겨 나오면
은은한 보리 냄새가 온 가게 안에 물씬 풍긴다.
나는 이 순간이 미치도록 좋다.
차 역시 은은한 엽차(여름에는 시원한 보리차)가 나온다.
젓가락은 약간 짙은 색의 날씬한 삼나무 젓가락이고,
젓가락을 싸는 종이는 고동색이 섞인 연둣빛의 무늬 없는 일본 종이다.

날마다 바뀌는 정식의 반찬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쓰자면 한이 없으니 여기에서는 화제를 고로케 정식으로 한정하겠다.
'토끼정'의 고로케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글로 표현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꽤 큰 고로케 두 개가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무수한 빵가루가 바깥을 향해 톡톡 튀듯이 알알이 서 있고,
기름이 쉭쉭 하는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건 거의 예술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삼나무 젓가락으로 꾹 누르듯이 잘라서 입에 넣으면,
튀김옷이 바삭 하는 소리를 낸다.
속에 든 감자와 쇠고기는 녹아들 것처럼 뜨겁다.
감자와 쇠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대지에 뺨을 비비고 싶을 정도로 잘 자란 감자-
이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와,
주인이 엄선해서 구입한 쇠고기를 커다란 부엌칼로 잘게 썰어 섞은 것이다.
양념은 재료의 뛰어남을 살리기 위해 아주 조금만 하고,
맛이 좀 싱겁다 싶으면 '토끼정' 특제 소스를 친다.
소스는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 있어서 스푼으로 그것을 퍼서 치는데,
뭐라고 형용해야 좋을지 모를 불가사의한 맛이 난다.
결코 뒷맛도 남지 않고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두 개의 고로케 중 하나는 소스 없이 먹고,
다른 하나는 소스를 쳐서 먹는다.
소스를 쳐서 먹는 것도 맛있고,
소스를 치지 않고 먹는 것도 맛있다는 미묘한 심정에서다.

무라카미 하루키, '토끼정'주인 중에서.




흔히 먹는 제과점의 고로케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고로케- 아니 잠깐, 고로케라니.
크로켓croquette이지. -가 아니라 빵속에 감자를 비롯 야채와 고기 약간이 섞인 것으로 빵가루 묻은 튀김옷과 속이 분리가 되어 있고 공기층으로 살짝 속이 비어 있으며 포크로 썰어 먹어야 하는 반면에 진짜 크로켓은 포크를 옆으로 눕혀 누르면 스윽- 하고 잘리며 입 안에서도 사르륵- 부드럽게 퍼진다.

이런 크로켓을 먹을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있었다. 토끼정만큼은 아니어도 꽤 맛있는 손바닥만한 크로켓을 파는 곳이었다. 항상 야채크로켓과 감자크로켓 두 개를 사와서 먹고 나면 음. 역시 감자가 맛있어. 다음엔 감자만 두 개 사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또 야채와 감자 하나씩 사곤 했다. 아마 '역시 감자가 맛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야채크로켓이었나보다.

얼마 전 또 크로켓 두 개를 사러 갔더니 이제 더 이상 크로켓을 하지 않는단다. 아, 맛있는 음식 하나가 또 멀리 멀리 가버렸다. 뉴_뉴 이렇게 되면 자가 제작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크로켓은 몇 번 만들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늘 마음에 안 드는 게 빵가루였지. 열심히 손가락으로 두들겨 보니 일본식 돈까스 빵가루는 보통 빵가루가 아닌 생빵가루를 쓴단다. 생빵가루는 식빵을 갈아쓴다는데 식빵이 갈리냐. 아마 손으로 자잘하게 뜯나보다.  얼린 후 갈아 쓰는 거랜다; 수분 함량이 있기 때문에 재료에 더 듬뿍 묻고 오히려 기름을 적게 먹는다는데 이건 좀 아리송. 일본식 돈까스의 빵가루는 오히려 기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듯이 느껴졌는데.

감자를 포슬포슬하게 쪄낸 후 으깨고, 소고기 간 것을 넣고, 채소 몇 종류를 넣고 섞어서, 손으로 빚어서, 밀가루에 굴리고 계란을 묻혀서, 손으로 찢어 만들어 놓은 생빵가루가 왕창왕창 묻도록 해서 기름에 튀길 생각을 하니.......-_-

부럽소 하루키씨. 나도 어서 나의 토끼정을 찾아야 할텐데.
기름이 쉬익- 하는 소리를 내고, 입을 하-하-하고 불어 먹어야 할 만큼
뜨끈뜨끈한 고로케를, 아차차 크로켓을 파는 토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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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선정한 2006년의 음반




우리집에는 나 말고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느 누구의 지도나 조언도 받을 수 없었다.
요즘과는 달리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책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튼 용돈을 모아 무턱대고 레코드를 사서
이해가 갈 때까지 그저 듣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 산 레코드를 지금 뒤적거려 보면
꽤나 두서 없이 사 모았구나 하고 스스로도 질릴 정도지만,
당시에는 그런 건 알지 못했으니까 싸게 파는 레코드를 여기저기서 사 모아선
음반 면이 닳아 빠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었다.
젊은 시절에 들었던 연주라는 건 평생 귀에 달라붙는 것인 데다
몇 장 되지 않은 레코드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었으므로,
그 무렵에 산 레코드는 지금의 나에게는 일종의 표준 연주가 되어 버렸다.


-무라카미 하루키 '내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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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동안 그나마 틈틈이 파고 들었던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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