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둘째주

 

 

(이런저런 이유로 내 취향이 아닌 책들이 섞여 있다.)

 

퇴근하면서 머릿속에 책상위에 쌓아둔 책이 아른거릴 정도다. 얼른 집에 가서 책 읽어야지. 아 책 읽고 싶어- 이런 생각이 가득하니까, 이건 뭐, 그냥 사랑이네. ㅋ 집에 책을 한가득 쌓아놓고도 퇴근길에 또 도서관에 들른다. 대출가능권수가 한 권만 남아있어도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더 들고 온다. 그렇게 해도 읽고 싶은 책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걸 하나씩 줄여나가는 재미, 그리고 또 추가시키는 재미가 아주 간질간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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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14/01/01 - [Ex Libris] - 2013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12/12/31 - [Ex Libris] - 2012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12/01/26 - [Ex Libris] - 2011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10/12/31 - [Ex Libris] - 2010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09/12/31 - [Ex Libris] - 2009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09/01/22 - [Ex Libris] - 2008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경제]

01. 경제민주화를 말하다/노엄 촘스키, 조지프 스타글리치 외

02. 골목사장 분투기/강도현

 

[인문]

03.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강신주.지승호

04. 미각의 지배/존 앨런

05.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승효상

 

[여행]

06. 그림 여행을 권함/김한민

 

[소설]

07. 은교/박범신

08.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살아있는 시체들 속에서 살아남기 완벽 공략/맥스 브룩스

09. 신참자/히가시노 게이고

10. 갈릴레오의 고뇌/히가시노 게이고

11. 마구/히가시노 게이고

12.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존 르 까레

 

[에세이]

13. 마음에 들어/김나영

14.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우

 

[실용]

15. 살림이 좋아/이혜선

16. 흙 살림이 좋아/이혜선 

17. 띵굴마님은 살림살이가 좋아/이혜선

 

[잡지]

18~46. 시사IN 304호~332호

47~92. 매거진M vol.43~88

 

 

2014년도 빈약한 독서량을 자랑하는구나 ㅋ 뭐 상관없다. 100권 못 읽었으면 어때. 2014년은 책은 적게 읽었지만 영화에 빠져있었던 해니까. 책이건, 다큐멘터리건, 영화건 상관없다. 그 자리에 고여있지만 않으면 된 거지. 지난 연말부터 서서히 책으로 돌아서고 있는 중이라 올해는 책이 이보다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그 증거로 현재 내 책상위에 책이 8권이 쌓여있다. 2015년에는 내 독서취향에 다른 사람들의 독서취향도 합쳐질 것 같다. 1년 후 이 날엔 좀 더 풍성한 리스트를 쓸 수 있기를!

 

R.I.P. 구본준 기자.  당신의 글로 2013년의 며칠은 꿈꾸는 듯 보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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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온통 스포일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어느 날, S군이 와서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영화를 봤다고 했다. 영화취향이 같을 수는 없지만 -_- 평소 영화 얘기를 서로 자주 해온 터라 무슨 영화냐고 물었다. 솔직히 당연히 내가 본 영화,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들어본 영화중에 하나를 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름이 어려워서 입에 잘 안붙는다며 다음에 알려주겠다고 하더니 며칠 후 그 때 말한 영화제목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라고 했다. 원작이 있는 영화라는데 처음 들어보는 영화였고, 나는 그게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재작년의 일이다.

 

영화를 봤다. 오호- 일단 믿고 보는 워킹 타이틀. 게다가 좋아하는 배우인 게리 올드먼과 콜린 퍼스, 잘생김을 연기하는 지구 유일의 배우인 베네딕트까지. 근데 영화를 다 보고 뭘 얘기하는지 스토리의 가닥은 알겠는데 뭔가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조지라고 했다가 스마일리라고 했다가. 컨트롤은 또 누구고, 칼라는 뭐며. 나름 어렸을때부터 각종 소설과 비디오로 고유명사에 단련되어 온 나라고 자부하는데 당최 등장인물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게다가 디테일을 놓치는 기분이 든다. 인물들이 자꾸 눈빛을 주고 받는데 저기에 뭔가 의미가 많은 느낌이 있다. 근데 난 그걸 잘 모르겠다.

 

어떻게어떻게 해서 각 등장인물이 체스의 말에 대비되며, 각각이 팅커, 테일러, 솔저로 대응되고 조지 스마일리, 토비 에스터헤이스 등 풀 네임에 좀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뭔가가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도 책도 그들만의 용어로 불친절하게, 그들만의 서술방식으로 회상과 현재가 구분없이 마구 진행되기 때문에 장담하건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이 영화를 극장개봉으로 봤다면 뭥미- 했을 것이다.

 

 

연말, 드디어 여유가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영화도 그렇더니 책도 불친절하기가 역대급이다. 등장인물 소개 같은 건 없다. 사건도 연대순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화와 소설은 전개방식도 다르고, 디테일도 달라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고 해도 중간까지는 크게 도움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 년도 전에 본 영화인걸. 그러다가 슬금슬금 영화의 장면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TTSS(Tinker, Tailor, Soldier, Spy)는 존 르 까레(John Le Carre)의 소설이다. 존 르 까레는 영국정보부 MI6에서 실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영국정보부는 MI5와 MI6로 나뉘는데 MI5는 국내, MI6는 국제관계를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MI5를 다룬 영국 드라마로는 Spooks가 있다.우리 나라 같은 경우는 이 둘의 업무를 국정원이 하는 셈이고. 르 까레의 스파이 소설은 스마일리 시리즈, 혹은 카를라 3부작 등 여러편이 있다.

 

영국에서는 아마 애당초 인기있는 작품인듯 드라마로도 방영되었었고, 영화로도 이게 처음이 아니다. 그러니 11년판 TTSS 영화가 국내의 아무런 기초없는 관객들에겐 이게 뭔 소리임? 싶을 수 밖에.

 

제목의 팅커 테일러 어쩌구는 영국의 동요에서 따온 것인데, 책 맨 앞장에는 서술되어 있다. Tinker, Tailor, Soldier, Sailor, Rich man, Poor man, Beggar man, Thief...로 시작되는 동시라고 해야하나 동요라고 해야하나, 꽃잎 떼거나 내 미래의 남편은 누구일까~ 뭐 이렇게 점치듯이 흥얼거리는 노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뭐 이런 노래인 셈인데 차례차례 1. 김수한무, 2. 거북이, 3. 두루미, 4. 삼천갑자, 5. 동방삭 하는 식으로 각각에 넘버링을 해서 난수표처럼 암호화해서 쓰게 된다.

 

일단 시대적 배경은 냉전시대. 무대는 일명 Circus라고 불리는 MI6이다. 이야기의 시작에서는 컨트롤이라고 불리는, 실명은 밝혀지지 않은 사람이 수장으로 있고, 위치크래프트라고 불리는 작전이 수행중이다. 말은 거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폴리아코프라는 이중간첩을 이용해 러시아에서의 유용한 정보를 빼내고, 영국의 쓸모없는 정보를 주며 거래하는 작전이다. 이 위치크래프트는 당연히 보안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만이 관여되어 있다.

 

그런데 컨트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 서커스 안에 이중간첩(=Mole=두더지)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년의 컨트롤은 조심스럽게 정보를 모으고 추론을 해서 하나씩 하나씩 지운 뒤 오지선다형 보기를 만들어낸다. 이때쯤 컨트롤은 파워도 잃은 상태고, 육체적으로도 쇠약했으며 주변 사람들은 컨트롤이 집착과 과대망상에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컨트롤은 믿을만한 사람인 조지 스마일리(=영화에서 게리 올드만)를 찾았으나 그는 그때 베를린 임무 중이었으므로 차선책으로 스캘프헌터(암살 및 회유 전담요원)의 책임자이자 체코 전문요원인 짐 프리도를 불러 임무를 맡긴다.

 

체코 브르노로 가서 정보를 하나 확인하고 오라는 것.(영화에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변경) 서커스안에 썩은 사과가 있는데 그 썩은 사과가 누구인지 가서 알아낸 후에 그걸 나에게 암호명으로 전달해라. 이 임무는 비공식이니 발각되면 영국과의 관계는 부인해라. 라는 것이 짐 프리도에게 맡겨진 임무이고 이 작전명은 엘리스이다. 썩은 사과(=스파이)의 이름을 말하면 정보가 노출될 수 있으니 암호는 이렇게 하자. 내가 추리고 추린 보기는 다음과 같다. 퍼시 올러라인(=토비 존스), 빌 헤이든(=콜린 퍼스), 로이 블랜드(=시아란 힌즈), 토비 이스터헤이스(=다비드 덴칙),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 두더지는 이 다섯명 중에 하나일 것이니 각각의 암호에 팅커 테일러를 대입시킨다. 1. Tinker=퍼시, 2. Tailor=빌, 3. Soldier=로이, 4는 세일러가 올 차례지만 빌 테일러의 테일러를 연상시키므로 빼고, 리치맨을 붙이자니 이미지상 안맞는다(나름의 개그인듯) 그래서 4. Poor man=토비, 5. Beggar man은 스마일리. 니가 확인한 스파이의 암호명에 대응되는 한 단어만 나에게 보내면 된다. 인 것이다.

 

그러나 이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꼬이게 된다. 그 결과 짐 프리도는 오른쪽 등에 총알을 맞고 거구의 곱추가 되며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러시아인들은 무슨 이유인지 그를 고문하고, 그는 겨우 살아남아 영국으로 돌아오지만, 모든 것을 잊고 살라는 명령을 받은 후 학교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살게 된다. 한편 스마일리는 베를린에서 돌아와보니 아내는 바람이 나 결국 떠나고, 컨트롤은 죽었고, 영화에서는 죽진 않았으나 죽기 전 괜히 퇴직하면서 스마일리까지 퇴직을 시키고(썩은 사과에서 썩지 않은 사과를 분리하려는 의도), 서커스는 퍼시가 부장을 맡게 되며 빌 헤이든의 런던 스테이션 체제로 돌아가게 된다. 로이 블랜드는 런던 스테이션의 2인자를 맡게 되며 토비는 그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삼각형 모양을 이룬다.

 

죽은 줄 알았던 리키 타르가 몰래 들어와 상급자인 토비 길럼(=영화에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을 찾게 되고, 리키 타르의 이야기로부터 서커스 내에 로튼 애플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며 그 로튼 애플은 KGB인 Karla와 관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건 컨트롤이 괜히 집착했다거나 편집증이었던 게 아니라 그의 의심이 합리적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위로는 내각 조정실 실장인 올리버 레이콘이 서커스의 문제를 찾으려면 서커스로부터 거리가 있는 사람이 적임자라 판단되어 스마일리에게 이 일을 맡긴다. 스마일리는 길럼의 상급자로 서커스의 로튼 애플을 찾게 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이걸 왜 쓰고 있나 싶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나는 원작을 다 읽고 난 후 영화를 다시 봤다. 이 순간을 기다려 일부러 영화를 쟁여놓았었다. 그러고 나니 맙소사. 영화는 엄청난 수작이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기의 핵심만으로 솜씨좋게 짜여있는데다가 서늘하면서도 긴장이 서린 분위기에 연기 엄청 잘하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눈빛만으로 전달되는 수많은 함의. 게다가 막판은 시대적상황까지 맞물려 묵직하게 슬프다. 누구는 결국 한 편의 치정극인 셈이라고도 하던데. 글쎄. 영화에서는 간단히 넘어가지만 원작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Mole은 냉전을 겪으면서 어느새 주도권에서 밀려나게 된 좁고 작은 섬나라 영국의 상황에 절망한다. 그래서 그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할 것인지 숙고하다가 러시아를 선택하고, 그 다음부터는 내적인 갈등없이 Mole로 살게 된다. 물론 그건 Mole의 성향 자체가 야망이 큰 자이며 추구하는 것이 Majority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그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성향을 평생 드러내지 않고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위치크래프트에서 영국은 그저 전화교환수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칼라가 정말 원하는 것은 미국을 주무르는 것이고 미국을 교란시키는 것일뿐.

 

원작에서 조지 스마일리는 작고 뚱뚱하고 느린 홀아비스타일의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고, 반면 빌 헤이든은 빛나는 존재, 서커스의 워너비, 모든 이들의 선망이다. 그리고 컨트롤, 조지 스마일리, 빌 헤이든, 짐 프리도는 모두 옥스퍼드 출신이다. 영화에서는 조지 스마일리를 게리 올드만이 맡아 사색적이면서도 조용하고 신중한 이미지가 부각되었고, 빌 헤이든은 콜린 퍼스가 연기해 그 와중에 매력남이긴 하다. (게리 올드만은 레옹에서 정말 간지 작살인 악역이었는데, 배트맨부터는 어느새 착한 사람 얼굴을 하고 있어;;;;)

 

영화에서 Mole은 총에 맞아 죽는다. 원작에서 Mole은 목이 부러져 죽는다. 영화와는 달리 누구에게인지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그를 사랑했던 그러나 그에게 배신당한 남자에게 죽는다는 것이 충분히 암시되어 있다. 허세넘치는 영웅도 없고, 미녀도 없고, 저게 말이 되긴 하나 싶은 생각도 안들만큼 허황된, 오~~ 감탄하게되는 액션도 전혀 나오지 않는데 여운이 길다. 책은 사방에서 짜기 시작한 무늬가 마지막에 와서야 드러나는 느낌이 있다면 영화는 모든 것이 밝혀지고도 아련하고 씁쓸하게 남는 끝맛이 있다.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지만 영화에서는 각각의 인물을 체스말에 비유해 퍼시를 White Rook, 빌은 White Bishop, 로이는 Black King, 토비는 Black Knight, 스마일리는 Black Queen, 칼라는 White Queen에 대입하고 있다. 앞의 다섯개는 컨트롤이 붙여놓은 것이지만 칼라의 화이트 퀸은 스마일리가 붙인다.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체스 말을 붙였는데(특히 빌을 비숍에 비유한 것) 자신이 블랙 퀸이라면 싸워야 할 진짜 상대는 칼라라는 것을 아는 스마일리의 혜안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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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임무는 탈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책 표지 봐라. 저질 싸구려 가이드북 흉내낸 일러스트 하며 좀비 표정하며 ㅋㅋ

World War Z를 쓴 맥스 브룩스의 책이다. 이 책이 좀 더 먼저 나온걸로 알고 있는데 설정이 좀 안맞는 것도 있어욤. 맥스 브룩스는 SNL의 작가였기도 했다. 그런 이력답게 개그감을 꾹꾹 눌러 담아 만든 설정집이다. 어찌나 진지하게 썼는지 아...진짜 살아남으려면 빗물정화용 알약과 비상식량, 무전기, 언제든 챙겨나갈 수 있는 배낭, 그리고 좀비의 뇌를 바로 가격할 수 있는 무기를 챙겨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수도 있다. -_- 하지마 -_-;;;

 

나는 이런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생각을 끝간데 없이 하면 이런 걸출한 설정픽션이 나올 수도 있구나. 하여간 뭐든지 창작자들은 생각의 고삐를 풀어놓는 사람들이다. 그래야 뭐가 나와도 나오지. ㅋ 보통 나는 잠자기 전에나 생각하다가 쿨쿨 곯아떨어지는데.

 

결국 이 책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도망치기

(2) 공격과 방어

(3) 살아남

 

 

(1) 도망치기

피해야 할 장소와 가야 할 장소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일단 집이건 사무실이건 학교건 2층 이상의 건물이라면 출입구를 봉쇄하고 계단을 부수고 엘리베이터는 멈추게 한 다음 1층을 비우고 고층으로 올라가기. 좀비들은 계단을 부수어 놓으면 잘 못 기어오르니까. 보통 공포영화라면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대부분 큰일나요.;;;

 

피해야 할 장소로는 병원, 경찰서, 대형 마트, 교회 등이 있다. 영드 spooks에도 나오지만 전염병에서 최악인 장소는 병원이다. 왜냐면 뭔가 심상치 않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원인이 밝혀지기 전에는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가기 마련이고, 거기서 확산되니까. 시체들이 일어날때도 마찬가지다. 물린 사람들도 병원으로, 시체들도 병원으로. 벌떡. 벌떡.

 

그럼 가야 할 장소는 어디냐. 고층아파트 안에서 영원히 숨죽인채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계속 2차 피난처를 찾아가야 한다. 뭐 어디든 안전한 곳은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극지방? ㅋㅋㅋ 아니면 무인도?

 

(2) 공격과 방어

공격과 방어는 뭐 무기별로 서술이 되어있으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좀비에게 붙잡힐 정도로 치렁치렁한 옷은 곤란하다. 몸에 딱 붙으면서도 피부를 모두 보호할 수 있는, 활동이 편한 옷과 뛰기 좋은 신발을 착용해야 하는 건 당연. 또 좀비에게 끄잡혔다가는 골로 갈 수 있는 머리카락 따위는 3cm이하로 잘라야 한다. 갑옷이 유용할 거라는 건 착각. 무거워서 도망치기만 어렵고 어차피 좀비에게는 뚜껑따기 어려워서 그렇지 통조림일 뿐이다. ㅋㅋ

 

공격과 방어를 위해서는 평소부터 살을 빼고 근육보다는 심폐위주의 운동으로 장거리 이동에 적합한몸을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인원은 셋이 좋아욤. 혼자서는 안전보장, 불침번, 정찰 등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이동수단은 자전거를 추천하는데 왜냐하면 자동차는 엔진소리가 시끄러워서 좀비떼를 몰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연료가 떨어졌을 때 보충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자동차는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공격용으로는 쓸 수 있다. 한 사람이 시끄럽게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속도는 딱 좀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만큼으로 몰면 뒤에서 스나이퍼들이 맨 뒷줄의 좀비부터 처치하면 된다. 좀비들은 어차피 앞만 보고 시끄러운 자동차를 쫓아가느라 뒤에서 좀비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어도 모른다. ㅋㅋ

 

(3) 살아가기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지내는 것! 긍정적인 마음 가짐으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나 뿐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남은 사람들이 절망이나 환각, 망상에 시달리지 않도록 건강한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오락 시간도 가져야 하고, 보드게임 같은 것도 하고 좀비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음으로 즐겁게 노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것. 쓸모 있는 것은 모두 알아내서 익혀두어야 한다. 일행들이 분업을 하면 더욱 좋다. 좀비가 싹 쓸어버린 새 땅에서는 경작도 새로 해야 할 것이고, 식물과 약물에 대한 지식도 필요할 것이고 심하게는 문명을 새로 건설해야 할 수도 있다. -_-

 

 

얼마나 잘 속이느냐. 오로지 독자를 속이기 위해서 설정을 쌓고 쌓아 디테일을 촘촘하게 박아서 잘 만들어놓을수록 좋은 픽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 끝까지 읽다보면 네이버 지식인에 좀비가 진짜 있나요? 이런 질문 할 수 있으니 자기가 생각했을떄 아.. 난 좀 정신이 산란한 사람이야 싶다거나 덜 여물었다 싶은 사람은 읽지 마시길. 괜히 후유증 생겨서 생수 주문하고 배낭 챙기는 정도면 뭐 조심해서 나쁠건 없는데 그 이상 할까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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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12/12/31 - [Ex Libris] - 2012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12/01/26 - [Ex Libris] - 2011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10/12/31 - [Ex Libris] - 2010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09/12/31 - [Ex Libris] - 2009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2009/01/22 - [Ex Libris] - 2008년,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경제]

01. 경제민주화를 말하다/노엄 촘스키, 조지프 스타글리치 외

 

[에세이]

02. 콜렉터/이우일

03.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무라카미 하루키    

04. 국경없는 괴짜들/ 신창범       

 

[소설]

05. 나생문 외/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6. 라쇼몽/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7. 세계대전Z/맥스 브룩스

08. 괜찮아요 리락쿠마/콘도우 아키

09. 우리 이웃의 범죄/미야베 미유키

10. 심야치유식당/하시현

11. 해변의 카프카 (상)/무라카미 하루키

12. 해변의 카프카 (하)/무라카미 하루키

13.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이수진

14. 파이이야기/얀 마텔

15.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16.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

17. 모피아/우석훈

18. 무국적요리/루시드폴

 

[역사]

19. 조선왕조실록 1-개국편/박시백

20. 조선왕조실록 2-태조.정종실록/박시백

21.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이순구

22. 조선왕조실록 3-태종실록/박시백

23. 조선왕조실록 4-세종.문종실록/박시백

 

[사회]

24.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25. 달려라 정봉주/정봉주

26.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동형

27. 골목사장 분투기/강도현

28.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 하루키

 

[건축]

29.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구본준

30. 고친 집, 새로 지은 집/성정아

31.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구본준

  

[문화]

32. 에티켓을 먹고 매너를 입어라/손일락

33. 미각의 제국/황교익

 

[잡지]

34~67. 매거진M  vol.9~vol.42

68~94. 시사인 277호~303호

 

 

 

2013년이 시작하던 날,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중 한 가지가 책 80권 읽기였는데 그거 하나 꼴랑 지켰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책을 일고 내가 과연 얼마나 컸고 얼마나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았던 책과 시간이 아까웠던 책은 지금 제목만 슥 훑어봐도 알겠다. 알게 모르게 내 영혼에, 내 인성에, 내 가치관에 흔적으로 남았으리라 믿으련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나를 가슴뛰게 했던 책은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이었다. 한 때 건축가가 되고 싶어했었던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혹은 운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그 길을 가지 못했는데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왜 나는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건축이 좋다면 꼭 건축물을 만드는 것만이 건축일이 아닌데. 이렇게 다른 길로 간 사람이 있는데. 나의 우매함을 비로소 느끼고 쓴 입맛을 다셨다. 뭐, 어쨌든 나는 현재의 나로 있으니 그걸로 됐다. 나중에 좋은 건축주가 되어야지~ :-)

 

또 한편으로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써야지. 라는 생각에 내가 감히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재미로 판단하자면 world war Z 가 가장 재미있었다. 올해 읽은 소설 중에 잘 쓰여진 소설로 치자면 일등이다. 인터뷰로만 구성되어 있는 형식이면서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같은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을 구성했다. 그런 면에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는 술술 읽긴 했어도 이건 좀 아니라고 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태엽감는 새 이후 자기복제를 반복하고 있다. 단순히 단편을 늘려 장편을 만들고, 장편에서 스핀오프처럼 단편을 뽑아내는 식이 아니라 혹은 같은 주제로 다양한 변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이걸 뭐라고 해야 돼.

 

이래저래 가장 무거웠던 것은 시사iN이다. 다루고 있는 기사의 성격상 마음의 무게도 무거웠고,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늘 마음 한 구석이 얹힌 듯 불편했다. 잡지라고 말하기 뭐하도록,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담고 있는 내용은 감탄에 감탄이라 읽어치운다는 마음으로 읽지 않도록 경계하며 매 한 호 한 호를 씹어먹듯이 읽었다. 제법 바빴고(감히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 와중에도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2013년 7월 중순것부터 쌓여있다. 연말에 정기구독을 다시 해달라는 요청전화에 나도 모르게 싸늘한 목소리로 응답이 나간 것은 내가 읽을 것들이 쌓여있기 때문이지 신문끊을라는 자세가 아니랑께요. 당연히 정기구독 합니다. 이건 내가 정기구독을 해주는 입장이 아니라, 부디 계속해서 잡지를 내주세요 -_- 열심히 읽을테니까.

 

올해는 아직 새해 결심 3가지를 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꼭 새해에는 결심 3가지씩을 하고, 그것만큼은 꼭 지키려고 노력할 셈인데 (결심이란, 지켰다는 결과보다는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의의가 있다) 독서에 관련된 것을 넣을지 말지 고민했다. 독서가 의무가 되는 것이 버겁기도 하지만, 꼴랑 이거 읽는 것 갖고 무게를 운운하는게 치욕-_-스럽기도 하고 당연히 이것의 몇 배 쯤은 읽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인데 현실은 그걸 따라와주지 않으니. 그래서 올해는 다른 것을 좀 줄이려고 한다.

 

영화, 예능, 드라마, 다큐멘터리 하여간 모든 것을 통틀어 동영상은 하루에 딱 한 개씩만 보기.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최대한 독서로 돌리기. 2014년 목표 중 하나는 책 100권 읽기로 해보자. 가능하다면 읽고 씹어 소화한 것을 글의 형태로도 좀 남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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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누군가에게는 작은 영향을, 또 누군가에게는 아무 영향도

저자 후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여전히 내겐 마카롱보다 오란다가 어울렸고, 또 입에 맞았다. 마카롱인 척 해보려 더 노력했던 적도 있었는데 영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취향을 훔치는 게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느꼈는데 오히려 기분이 낫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운명이라는 거였고 그게 안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내 것이 내 것일수밖에 없단 것과 같은 말이었다. 뭘 놓았다는 뜻은 아니고 그게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더는 노력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소설은 고급 취향 획득에 실패한 쌈마이 하나가 투덜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혁명이란 투덜거림이 모여서 생겨나는 것 아니겠는가."

 

어렸을 때 시험기간에 세계문학전집 같은 걸 나쁜짓하는 기분으로 배깔고 읽었던 것처럼, 사실은 할 일이 쌓여있는데 들고다니면서 틈틈이, 아니.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결국은 이렇게 주말에 집에서 다 읽었다.

 

저자는 87년생이다. 이제는 87년생이 글을 쓰는구나. 어허허허허허- 그것도 이렇게 잘.

 

이 책에는 부제같은 것이 붙어있다. CLUB Anti-Butler.

고양이에 관해 여러 가지 차별을 겪은 몇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집사라 칭하며 자신의 취향을 무기삼아 취향이 같지 않은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데에 울분을 느끼며 결국은 혁명(?)을 이뤄내는 이야기인데. 인물 몇몇의 이야기는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기도 한다. 또 등장인물들은 곽, 오, 박, 김A, 김B등 이니셜로 처리되는데 이게 더 책을 읽는데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어떻게 이름을 지어도 소설속의 이름들은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는데 마지막에서야 등장인물중 한 명이 풀네임으로 불린다. 마치 존재감을 획득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가 도도하고 새침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고, 솔직히 고양이가 뭔 생각이 있겠나. 걔네들은 그냥 사는거지. 다만 나는 고양이가 멍청해서 좋아한다. 사랑스러워 *-.-* 하지만 고양이를 기를 수는 없어요. 아마 앞으로도 안 기를 거예요. 첫 번째로는 호흡기가 약해서 고양이 털을 견뎌내지 못할 거고, 두 번째로는 책임감이 희박해서 --_-- 나는 다른 생명을 기를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욤. 내 한 몸의 일인분도 허덕허덕거리는 것이 현실. 고양이를 기를 수 있는 환경과 성정을 갖추신 분들. 부러워욤. 흑-

 

어쨌든, 자기 취향은 드러내되 남의 취향은 존중합시다. 그럼 되죠 뭐.

오란다가 뭔지 찾아봤다. 이건 나도  환장하는 거네, 단지 이름을 몰랐을 뿐. ㅋ

 

 

 


"그러니까 취향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동사는 존중하다 정도란 얘기고,

 취향이니까 존중해달라고 아까부터 말하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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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책을 쓴다.

가지고 있는 책을 되도록이면 다 처분하고, 책을 갖는 것 보다 읽는 것에 집중하려고 마음먹은지 몇 년이다. 처음에 벽면 한쪽을 다 메운 책장 네 개를 가득 채운 책을 보곤 엄마가 그랬다. 있어보인다고. --_-- 너 방의 책장을 보면 엄마가 다 뿌듯하다고.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나이먹어서도 이렇게 책 읽기를 좋아하는 딸이 될거라곤 엄마도 생각못했겠지. 엄마에게 고마운 건 단 한 번도 넌 그 많은 책 읽어서 대체 어디다가 써먹으려고 하냐?(=넌 책 읽은 값을 못하는구나) 소리를 하신 적은 없다는 것.

 

근데 그, 돈 주고 산, 있어 보이는 책을 하나씩 하나씩 팔아치우고 책장에는 책을 대신해 화장품, 옷, 다도구 등등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하자 엄마가 물었다. 넌 왜 아깝게 돈 주고 산 책을 파는 거니? 길게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얘기한 거 같다. 뭐 이랬겠지. 다 읽은 책이야- 앞으로 또 읽을 일 없어- 뭐 이렇게.

 

사실 책을 갖고 있으면 안 읽는다. 이미 갖고 있으므로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읽고 싶은 책을 가진 것만으로 이미 읽은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우선 순위가 미뤄진다. 이게 한 달 두 달을 넘어가 심지어는 산 지 일년이 넘어가는 책도 그대로 꽂혀있는 것을 깨닫고 이대로는 안되겠다-생각을 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휴대폰이나 메모장에 끄적거려둔 읽고 싶은 책 리스트는 몇 장을 넘어가는데 이 많은 책들이 결국은 인테리어로 전락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도서관은 늘 향하는 동선 반대쪽이라 마음먹고 빌려놓은 다음 반납하러 가기가 끌려가듯 귀찮았는데 출퇴근 라인에 도서관이 하나 더 생긴 이후로는 그곳을 이용하고 있다. 물론 가벼운 결벽증이 있는 나는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고, 가끔은 책장 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질이 끼어있는 책을 이용하는게 찝찝할 때도 있다. 그래도 역시 도서관에 가면 신난다. 다 내 것 같고, 읽을 책이 저렇게 많다는 것이 아직 인생에서 흥미진진한 요소를 발견할 가능성이 많은 것 같아 두근거린다. 다섯 권을 대출 할 수 있는데 대체로 3권은 휴대폰 리스트에 저장된, 궁금했던 책을 찾고 두 권 정도는 그냥 서가를 돌아다니면서 흥미를 끄는 책을 빌린다. 이번에도 그렇게 책 다섯 권을 빌렸다. 역사책 세 권, 소설 한 권, 에세이 하나.

 

그런데 이 에세이가 문제였다. 대략 내 나이 정도의 저자가 쓴 책으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법한 유명 단체에서 몸담았던 이야기를 썼다. 나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동경을 갖고 있던 단체이기도 했고, 그런 곳에서 경험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니까 냉큼 집었는데 책의 1/3을 넘어가도록 대체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거라면 에피소드의 기-승-전-결이 있어야 할 거고, 주제가 있는 형식이라면 그 단체가 하는 일은 무엇이며, 단체의 의의는 어디에 있고, 저자의 경험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가 있어야 할 텐데 그냥 생각나는대로 무용담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사담이 끼어들고 이 사람 저 사람이 한 이야기가 인용문으로 거칠게 삽입되어 있었다.

 

읽다 보니 짜증이 솟구쳤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겠지.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배움이고 하나는 즐거움이다. 인간은 그냥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 작가도 독자도 모두 각자의 바늘과 실을 가지고 진주알을 하나씩 꿰어 나간다. 그리고 그게 하나의 목걸이가 되었을 때 기쁨을 느낀다. 최소한 퍼즐 조각 몇 개를 맞추어 전체 그림의 일부라도 개연성을 발견했을 때 독서의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읽은 몇 개의 책들은 정말 개나 소나 책을 쓰는 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내 뇌의 기능이 떨어져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는건가? 자책까지 했다. 실제로 요즘은 내가 좀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중이라(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확실히 똑똑했던 것 같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이런 책을 몇 권 겪다보니 슬슬 화가 난다.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설정하고 스케치를 한 후에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게 아니라 대충 쓰다보면 뭔가 그럴싸한 그림이 나오겠지.. 라면서 벽에다가 아무렇게나 페인트를 칠한 낙서를 읽은 기분이다.

 

물론 세상에 명작만 있을 수야 없겠지. 고급예술(?)만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고. 개나 소나 책을 쓰는 상황에서의 퀄리티 높은 작품들의 양(10%라고 가정하자)이 소수의 특정계층만이 책을 쓰는 상황에서의 양질의 작품 절대수(10%)보다 많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만큼 일반 독자들은 지뢰밭을 넘어 사금을 캐게 된다. 나는 다시 생각을 번복해 책을 사고, 책장에 꽂고, 다시 꺼내 보고, 수많은 책을 꽂기 위한 좋은 책장을 고민하는 그런 장서가로 변하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여전히 책을 '갖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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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 일 없이 산다

 

아마 시사인의 책광고를 보고 휴대폰에 메모를 해뒀던 것 같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라면 일단 패스- 하는데 그냥 밑져야 본전으로 들고 왔다. 물론 나라고 처음부터 남을 덮어놓고 안 믿고 그랬던 건 아니다. 이것도 다 경험의 축적에서 발로한거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에 대해서 쓴 거면 그래도 읽을만 한데 정신과 의사가 쓴 '영화'책,  '음악'책, 이런 건 영 별로더란 말이지.

 

 

 다 읽고 나니 심리 에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그렇다면 괜찮다. 이게 소설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심리 에세이라면 읽을 만하고 재미있겠다. 다만 하필이면 어제 무라카미 하루키의『잡문집』을 읽고 난 후라 잘 쓴 소설에 대해서는 기준이 한참 깐깐해져 있던 터였다.

 

약간.. 오쿠다 히데오의공중그네』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 덜 짜여진 이야기이고, 더 전문적인 에세이다. 어떤면에서 덜 짜여진 이야기냐면(=소설로는 별로냐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보니 그 얘기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어서 허구의 벽을 쌓는데는 공을 덜 들였다고 해야하나. 허구의 벽을 쌓아 독자가 스스로 진실을 알아채게 하려면 왜곡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그렇게 둘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좀 과감하게 에피소드에만(임상에만) 집중했다면 오히려 완성도는 높았을 것 같은데 저자에 대해 검색해보니 팔방미인인 것 같다. 음악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그러다보니 자기 재능을 드러내고는 싶고. 그 사이의 균형점을 찾다 보니 이 책이 나왔지 싶다.

 

장점이라면 엄청나게 심각하고 우울한 질환이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 에피소드로 나온다는 것이다. 일단 주인공인 전직 정신과 교수인 주인공은 그 삶의 방식을 버리고 No side 라는 이름의 바를 연다. 막상 바를 열고 보니 바만 하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식당 개념이 되었다. 진성 단골로는 친구인 내과의사와 정신과 전공의 2년차가 있고, 그 다음부터는 각 에피소드의 손님들이 환자와 손님의 경계를 타며 자리를 잡게 된다.

 

현장에 있을 때는 정해진 프로토콜로 환자를 우겨넣었다면 이제는 실질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에 주인공도 제대로 솜씨를 발휘한다. 약간 일본만화 같기도 한 설정이다. 재야의 고수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성골. 그 성골에게 멋진 필드까지 주어지는 직업판타지물.

 

장점으로는 실제 정신과 교수인 저자의 이야기솜씨와 처방이고, 단점으로는 작명센스가 안 좋다. 그냥 촌스럽거나 세련되지 못하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기억에 안 남는다. 철주와 영수는 둘째치고 미수, 상진, 동우 등등이 나중에 또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누구였더라? 하고 다시 찾아보게 된다. 소설이건 에세이건 가상인물이라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인물의 캐릭터와 이름이 하나가 되어야..까지는 좀 과해도 어느 정도의 연결고리는 가져야 독자가 편하다. 그러니까 너무 과하게 평범한(평범하게 여겨지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별로다.

 

책 자체는 좋아서 누구에게 권해주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정작 나에게는 별로 효용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래도 모르지, 나중에 혹시 이 책이 생각나서 다시 꺼내 읽게 될 지도. 그럴 일 없길 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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