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맘때에는 집에서 여유있게 차를 마신다는 건 걍 깨끗이 접고 산다. 몇 달 동안 꺼내놓았던 다반, 티팟 등등을 모두 박스에 넣어 옷장으로 고고씽
가벼운 보온병을 하나 사야겠는데...하다가 맘에 드는 것을 발견. 블랙이나 회색이었으면 단숨에 샀을 것을 비비드한 핑크-라임-블루-_- 여서 아... 셋 다 딱히;;;; 그러다 지난 주,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어-_-;;; 점심시간을 이용해 슝-나가서 슝- 사왔다.
300ml와 250ml 중에 고민하다가 250ml로. 내 손으로 한 뼘도 안된다. 무지하게 가볍고.
내가 좋아하는 향수는 대개 시원한 느낌을 갖고 있는 향수들이다. 시원하지만 지나치게 날카로운 건... 꼭 날밤새고 다음날 점심 무렵 위액이 분출하는 느낌이라 못 쓰고, 그렇다고 너무 시원하기만 한 향수는 밋밋해서 싫고. 주로 쓰는 향수는 르 빠 겐조지만, 그걸 겨울에 쓰기엔 좀 무리가 있다. 넓게 봐줘도 본격적인 봄부터 늦여름까지랄까.
좀 따뜻한 느낌의 향수를 원해서, 좋아하는 디올의 패런하이트Farenheit를 큰 맘 먹고 지를까 하고 있었다. 남자향수이긴 하지만 일단 좋아하는 향수-하니까 이게 떠오르고, 한 번 더 시향해봤더니 음 역시 좋아. 끄덕-... 더 물색해보긴 귀찮았던 게지-_-... 주변에 향수전문가가 있으면 얻어듣고, 킁킁 맡아보고, 어? 니가 지금 뿌린 건 뭐냐-라든가, 이러이런 걸 원하는 데 추천 춈 해바바- 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내 주변엔 그렇게 향수를 즐기는 사람도 없고, 그나마 뿌리는 사람들도 미묘하게 내 취향이랑은 다르더라. 그렇다고 내가 분노의 검색질과 시향하러 다니는 부지런을 떨며 향수에 대해 깊이 알아보기엔....지금 즐기는 취미만으로도 충분히 잡다하다. ㅡ_)
아...그러나 과연 내가 패런하이트를 쓰면 얼마나 쓸 것이고, 일단 여자가 남자향수를 쓸 때는 뭔가 포멀한 차림-정장같은 걸 좀 입어줘야 구색이 맞는 건데 나는 정장차림은 입을 일도 별로 없지만 답답해서 싫어한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중, 같이 쇼핑을 하던 쑥쑥이가, 언니- 전 이 향수를 좋아해요. 라며 정말 좋아하는 눈빛으로 집은 것이 RALPH ROCKS였다.
난 이런 향수의 이미지컷만 보면 참....향수란 사기의 엑기스란 생각이 든다. 코스메틱 산업 자체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 향수가 표방하는 이미지란 모델이 풍기는 것처럼 뭔가 자유분방하고 야성적;이며 이그조틱한 느낌도 춈 풍기고 뭐 그런 컨셉으로 만들어낸 향수인가본데 사실 그런 거 잘 모르겠다. 그래서 포스트하려고 구글에서 검색해보고 이 이미지가 걸리자 (((쿠궁))) 아...뭐야..이 향수 이런 컨셉이었나...--_-- 싫다... -_- 그만 쓸까 -_);;; 싶었다. 내 눈에 저 모델의 스타일은 참... 미친; 느낌에다가 지저분한 이미지일 뿐. 거기다가 저 부담스런 1:9 가르마 신경쓰여;;; 넘겨주고 싶어..목걸이는 개나 주라지. 가죽조끼는 벳기고, 실밥은 라이터로 지지고, 끈은 묶어주고 싶다.(근질근질) 꽃무늬도 지우고 벨트도 걷어 치우라고! 그냥 뚜껑색과 똑같은 청록색의 뱅글 하나면 좋잖아!!! 그 나이쓰한 바디가 아깝지도 않은가 당신!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병을 보고 받은 첫인상이 또 저 사진과 비슷해 할 말이 없네. 뭔가 과하고 촌스러움;;; 그러고 보면 랄프 로렌이란 브랜드의 경향 자체가 그렇기도 하다. 옷만 해도 어떤 건 클래식하면서 심플해 그야말로 무난의 대명사로 대히트를 치는가 하면, 어떤 건, 뭐야 이건! 후아유-써즈데이 아일랜드-랄프 로렌으로 진화하는 촌스러움의 돈지랄인가 -ㅁ-ㆀ 싶기도 하고; 이 향수도 막상 시향해보고는 느낌이 바뀌었지만 세 개의 시리즈가 있는데 빨강+파랑(WILD), 주황+청록(ROCKS), 투명+스카이블루(RALPH) 중, 처음에 병만 보고 제일 안 땡겼던 게 이 ROCKS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계속 향을 맡아보고 있다. 시향기를 쓰려는 목적은 아니므로 분석은 관두고, 과거에 썼던 향수 중에서 이 비슷한 게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생각 안 난다. ㅡ_-) 첫 느낌은 살짝 달콤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나고 그렇다고 그저 부드럽고 편안하지만은 않다. 약간은 긴장하게 하는 면이 있달까.
하여간 이게 내가 요즘 꾸준히 쓰는 향이다. 어딘가 불편한 향은 결국 안 쓰고 커튼에나 뿌려 방향제로 쓰게 되는데 그래도 손이 자주 가는 걸 보면 잘 맞는 것 같고. 계절로 치자면 겨울에 어울리는 듯 특히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 마신 것처럼 1℃ 정도 따뜻하게 해 주는 기분. 그러나 확신은 못하겠는 게 겨울 다 되어서 샀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는 뿌려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으로는 봄만 돼도 좀 더운 느낌이 날 것 같은데...아직 질렸다고 할 정도는 아니나 계속 뿌리다 보니 요즘엔 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똑 떨어지는 향이 땡긴다. 아- 소비가 소비를 부르는구나.
내 첫 향수는 스무 살 생일 때 선물로 받은, 까사렐의 아나이스 아나이스였다. 그 무렵 그 나이를 대상으로 하는 온갖 잡지에는 일명 스무살 특집이랄까. 니들이 대학생이라면 이제 향수 정도는 뿌려줘야 하는 거란다-는 생각을 마치 운동권 학생들이 사상교육 시키듯 이데올로기처럼 주입시키는 향수 특집 기사가 꼭 하나씩 포함되어 있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성인이라면, 자기를 대표하는 향기를 하나쯤 가져야 하고 그걸 찾기 위해선 스무살쯤부터 자신만의 향기를 찾아나서는 여행-_-을 떠나야 하지. 향수는 패션의 완성과도 같단다. 마지막에 입는 옷이랄까. 스무살이라면 스무 송이의 장미꽃, 향수 그리고 키스-_- 는 받아줘야 하는 거고, 스무 살에 어울리는 향기라면 아나이스 아나이스지-를 한 사람이 모처럼 원고 하나 써서 뽕 뽑을라고 여기저기에 팔아먹은 듯 잡지란 잡지는 몽땅 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던 것이다.
얘다. 동그란 반투명 하얀 뚜껑이 뭔가 닿을 듯 비칠 듯 아련한 느낌도 주고 마찬가지로 옅게 그려진 꽃그림도 좋게 말하면 부드럽고 섬세하다. 그냥 말하면? 고리타분하다 --_-- 왠지 모르게 안방 침대 옆 탁자에 놓일 스탠드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나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꽃 향기는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플로랄 부케향이라는 것. 말 그대로 온갖 꽃들을 모아놓은 꽃향기의 향연이랄까- 덕분에 이것만 뿌리면 위(stomach)가 피곤해지고 신경이 온통 곤두서서 별로 뿌려보지도 못했다. 그런 채로 이 향수는 서랍 한 구석에 처박아뒀다가 가끔 방향제로 썼다. 그렇게 몇 년쯤 방치하다 결국은 주변의 누군가에게 줘버렸다.
뭐, 딱 봐도 나랑 안 어울리지 않나. -_)
설명에는 사랑스러운 소녀를 연상케 하는 향수 뭐 대충 이랬던 것 같은데 사실 사랑스러운 향수라고 하기엔 온갖 꽃들이 난리치는 느낌이라 좀 쎄다. 요즘 그 나이대의 여자애들이 쁘띠 에 마망 같은 파우더리한 향을 찾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근데 생각해보면 사랑스러운 소녀란 은은하고 청순하며 여리여리한 소녀인가?? 오히려 은은함이란 성숙함과 좀 더 닿아있는 것은 아닌지. 소녀란, 더군다나 사랑스러운 소녀란 물론 개인적인 시각과 취향의 차이야 있겠지만 오히려 아직 자리잡지 못한 갖가지 개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느라 이리저리 정신도 좀 없고, 조금 쎄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 미숙함이 어딘지 눈을 못 떼게 하는, 그런 게 그 나이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스무 살이 소녀냐? 라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지만 -_-
그렇다면 과연 그 때의 나에게 어울리는 향기는 뭐였을까... 하고 생각해볼 때 향수는 무슨 향수. 그냥 비누향이면 됐을꺼다. 서투르게 시작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두껍게 바르고 다녔던 화장-_-이나 8 센티 통굽구두를 떠올리면 웃긴다. 많이 웃기지. 그때 내가 했던 웃긴 짓은 또 어디 한두 개인가. 스무 살은 그냥 그렇게 좀 웃긴 나이인 것 같다.
자기 주변의 다섯 사람을 평균 낸 것이 자기라던데, 까탈을 그 주제로 놓는다면 나는 내 주변 어떤 다섯 사람을 골라 평균을 내도 평균 이상은 할 자신이 있다. ;;;.... -_- 특히 손목시계는 하루를 늘 시간 단위로 쪼개 생각해야 하는 생활이 몇 년 째인지.. 또 거의 매일 하고 다니다 보니 내게는 액세서리가 아닌 필수품이 되어 버려 까탈기준이 자연히 생겨 버렸는데 그 조건이란 딱 세 가지였다.
① 원형프레임 ② 시침,분침,초침 모두 다 있을 것. ③ 문자반의 시표기는 꼭 숫자.
와. 까다로운 사람치고는 정말 단촐한 조건 아닌가? 그런데 이게 참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만족시키면서도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시계는 흔치 않다. 그렇지, 여기가 바로 까다로움이 생기는 지점인 것이다. 특히 메탈 밴드인 것 중에서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 옷 사러 몇 바퀴 돌고 나서 내뱉는 소리와 똑같이 요런 소리 절로 나온다- '아니 내가 원하는 건 지극히 기본적인 아이템인데 왜 아무리 찾아도 그런 건 없는거야?!'
나는 한동안 스와치시계를 썼었는데 첫번째 시계는 너무 투박+무거워서 오빠한테 넘기고, 두 번째 시계는 가격도 적당하고, 가볍고, 문자반, 시간표시, 밴드까지 모두 하얀색으로 된 시계라 딱 내 취향이어서 밴드만 갈아가며 참 오래도록 썼다. 내가 갈아댄 밴드 값만 모으면 이 시계 한 번은 더 샀다.
GK733 White Linen. 그런데 이 시계의 최대 단점은 변색과 갈라짐으로 주기적으로 교환해 줘야 하는, 돈 잡아먹는 밴드...가 아니라 바로 초침이 움직일때 소리가 난다는 거. 짤깍. 짤깍~! 아...이거 한 번 신경쓰기 시작하면 정말 귀 뒤를 바늘 끝으로 살살 긁는것처럼 짜증이 난다. 내 시계도 짤깍이지만 도서관 열람실에서 시계소리 날 때 그자리에 가 보면 백이면 백, 다 스와치 플라스틱 밴드 시계였다. (딱딱한 책상 위에 올려두면 소리 증폭-_-) 그래서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추가가 됐다.
④ 초침이 움직일 때 소리가 안날 것.
그 다음에 산 건 메탈밴드의, 역시 스와치 시계였는데, 적당~히 가격과 타협한-_- 디자인의 시계이기도 했고. 연속으로 한 브랜드의 제품을 세 개 써보고 나니 질릴대로 질려 이 다음부터는 스와치는 쳐다도 안보기로 했다.
그 다음 마음에 들어 계속 차고 있는 시계가 FOSSIL에서 나온 FRANK GEHRY시계다.
가죽 갈라진 거 안 나오게 찍으려고 참 애썼다 -_-;;;;
FOSSIL은 우리 나라에서 철수한 지 꽤 됐고, 프랭크 게리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평생 몰라도 상관없는 건축가인데, 그렇다고 이 시계를 그 사람이 디자인했냐 하면.. 뭐 딱히 디자인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글씨가 그 사람 글씨다-_- 손으로 그은 듯, 직선이 아닌 삐뚤삐뚤한 시,분침도 마음에 들어 ebay를 통해 샀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계 뒷편에 새겨있는 프랭크 게리 사인을 제외하면 디자인은 진짜 심플 그 자체. 숫자는 니 글씨/언니 글씨 같아요 소리를 다섯 번 쯤 들었고. (본인은 숫자를 저렇게 쓰지 않습니다 -_-)
장점은 조용하고 시간 보기가 정말 편해 딱 보면 시간을 알 수 있다는 것,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 :-) 각종 시험을 볼 때도 늘 이 시계였다. 단점은 가죽밴드라 여름에 땀이 차니까 오래 지나면 기분이 나빠지고, 가죽이 서서히 갈라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A/S 받을 방법이 없으며(단종이라 어쩌면 미국에서도--_--), 디자인의 특성상 다른 밴드로는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것. ㅡ_-)y~
그래서 아무래도 시계는 가죽밴드와 메탈밴드 두 개는 있어야 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이번에 나갈 때 면세점에서 마침 시계 세일을 하는데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길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메탈밴드 시계를 하나 샀다. 스와치 싫다고 싫다고 해놓고 결국 ck-_- (ck는 스와치의 무브먼트를 쓴다) 일단 스뎅;;이라 밴드 갈라질 일 없고, 적당한 무게감도 좋아 질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초침도 없고-_- 문자반에 숫자도 없다. -_- 그래서 요즘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시계를 딱 보고 응, 몇 시 몇 분-이 바로 인식이 안되고 한 2 초쯤 걸린다. 결론은 까탈이 아니라 나 바보?
윤광준의 생활명품산책은 이런 이야기다. 내가 쓴 시계 이야기 같은 걸 좀 더 자세하고 깊게 들어간 윤광준식 생활명품 18가지 이야기. 그러니까 여기서의 명품은 luxury goods가 아닌 masterpiece의 개념이다.
+18 가지 중 9개는 쓰지도 않고 앞으로 쓸 것도 같지 않은, 생활이 겹치지 않는 물건들이지만 쿼드 앰프와 메주몽고간장-_-만큼은 꼭 맛보고 싶다. 18개 중 2개면 건진건가? +이런 글의 단점은 글 쓴 사람이 참.. 없어보이기 딱 좋다는 거다. -_- 물건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 착- 어우러져야지 자기 입으로 이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춈 벨로다. 그런 느낌 안들게 쓰면 그건 또 재주고.